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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9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8화

197화. 안 쉬고 사흘

 

 

 

 

눈보라에 모습을 감춘 빙동마령들은 대막으로 가는 길목에서 물러나는 섬뢰와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은 대체 뭐지? 중원 놈들이 죄다 서천맹으로 몰려갔다고 하지 않았나?”

곱추 백모인, 냉악이 뇌기에 거슬려 버린 자신의 털을 보며 신경질을 부렸다.

섬뢰는 자신들보다 훨씬 강했다.

백모인들의 몸에 난 털은 금강섬모(金剛纖毛)라 불리는 것으로 극음지기를 주입하면 한철에 가까운 강도를 보인다.

뽑으면 암기가 되고, 몸에 있을 때는 든든한 갑옷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금강성모를 태워 버릴 정도라면…….

“거웅, 괜찮나?”

“음, 내기가 좀 진탕되긴 했으나 하루 이틀 쉬면 될 듯하다.”

“다행이군.”

여인, 추련화의 물음에 거웅이라 불린 거한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궁주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강자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궁주께서 중원 정벌이 끝나면 북천대공이 만든 금마동의 금제를 풀어 준다 약속을 하셨다.”

“…….”

“무슨 일이 있어도 대막을 무너뜨리고 중원으로 가는 길을 연다.”

추련화가 물러날 준비를 거의 끝낸 섬뢰와 뇌령도문의 무인들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 * *

 

하북을 지나 산서로 들어갔던 소청은 자신을 찾아온 하오문도를 만나게 되었다.

“하오문의 앵화입니다.”

“진소청이오.”

“문주님께서 지금 즉시 북천맹으로 향해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북천맹으로?”

“예. 실은…….”

앵화는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북해의 선발대가 내려오고 있으며 이미 혁련휘가 오태산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대막으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흠, 알겠소. 그리하지. 한데 휘는 언제쯤 출발했소?”

“음, 중학 지부장께서 저와 함께 출발하셨으니 오태산에서 이틀 전쯤 떠나셨을 겁니다.”

“이틀…….”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쉬고 있는 별동대들을 바라보았다.

“집합!”

차자자작!

짧은 명령에 소강과 별동대가 빠르게 달려와 일렬로 늘어섰다.

사흘 전 마승들을 잔인하게 학살해 버리는 소청의 모습을 본 뒤로는 그를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틀 전, 휘와 별동대들이 대막혈궁을 향해 떠났다고 한다.”

모두가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정말로 북해와 전쟁이라는 생각에 더러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틀이 지났으니 지금쯤 그들의 속도라면 대막의 초입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렇겠지. 얼추 그 정도 거리지.’ 하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청이 한마디를 보태었다.

“지금부터 휘 일행을 따라잡아 대막혈궁에 먼저 도착한다.”

“……!”

순간 소강마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듣고 있던 하오문의 앵화와 방효곤마저 소청의 발언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미친 소리, 정말 염병하고 있다.

아무리 소청으로부터 단폐폭승을 배워 장거리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이틀이나 벌어진 거리를 어떻게 따라잡는단 말인가?

경공 할아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 안 될 것 같아?”

“…….”

이 자식이 또 누굴 잡으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후환이 두렵다.

“저,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이 대막의 초입에 도착했다면 쉬어 간다 해도 닷새 안에 도착할 것인데…….”

의아해하며 방효곤이 중얼거리자 별동대원들이 그를 마음속 깊이 응원했다.

“방 어사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 죄송합니다.”

칼같이 잘라 버리는 소청의 말에 방효곤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난 지금 출발해도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다.”

너나 가능하겠지. 괴물인데…….

“나에게 요령을 배운 너희들이라면 빠르면 사흘, 늦어도 나흘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하지 마! 자신하지 마! 이 괴물 같은 자식아!

라고 말하고 싶었다.

“저들이 쉬어 가며 닷새 만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아주 조금씩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무조건 뛴다. 그럼 여유 있게 나흘 안에 도착할 거야.”

“…….”

소청의 말에 별동대 무인들의 얼굴이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진짜로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다들 알다시피…… 제일 늦게 도착하는 놈은…….”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자고 신은 그들에게 진소청이라는 악귀를 만나게 했단 말인가?

물론 그를 통해 무공이 진일보했다는 것은 각자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불과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엄청난 진보를 한 것이다. 더욱이 격체진공을 받은 이들은 내공 흐름 자체가 달라졌다.

막힘없이 흐르는 기운 덕에 이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자, 그럼 출발한다!”

“…….”

아무도 대답이 없자 소청이 슬그머니 창대를 쥐었다.

“출발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하자 소청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매가 사람을 만들 뿐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믿게 끔도 한다.

“초사 너는 그만 돌아가라. 가서 제갈휘문을 도와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초사는 함께 가고 싶다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휑한 오른팔을 슬며시 잡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디 모두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그래.”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하려는 순간 방효곤이 그를 잡았다.

“진 공자,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왜요?”

“예?”

“관부와 무림은 서로 관여치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소청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저는 그저 도움이 되고 싶어서…….”

방효곤은 관부의 인물이었지만 무관이었고 무인이었다. 그들의 싸움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혹시 소청에게 무언가 하나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저언혀! 도움 되지 않습니다.”

“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예의상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방효곤은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가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절대로……. 예?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요?”

“예. 진 공자와 별동대 분들을 뵙고 나서 제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데려가 주십시오. 별동대와 함께 수련하도록 해 주십시오.”

“호오?”

소청이 갑자기 손으로 턱을 쓸었다.

그 모습에 별동대 무인들은 ‘분명 뭔가 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야.’라고 똑같이 생각했다.

“훈련이 고될 텐데요? 지금으로서는 방 어사께서 가장 약하기도 하고…….”

“방 어사라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저들처럼 그저 효곤이라 부르십시오. 수련 중에 사랑의 매를 드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흐흠…….”

소청이 게슴츠레하게 방효곤을 쳐다보았고 별동대의 무인들은 ‘왜 저런 미친 짓을 스스로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좋습니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깁니다.”

“알겠습니다!”

방효곤이 자신 있게 대답했고 소청은 음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핍박받았던 모든 일들을 복수해 줄 것이다. 흐흐흐…….

이 기회에 모든 설움을 씻어 낼 것이야!

“그럼 어쩔 수 없군. 하루를 푹 쉬고 출발하도록 하지. 효곤에게 단폐폭승의 경공술을 가르칠 겸.”

어? 순간 별동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방효곤으로 인해 하루를 쉬게 되었으니 혁련휘 일행보다 빨리 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를 쉬었으니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한다. 그럼 사흘. 사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어.”

“…….”

이 무슨 조삼모사도 아니고…….

아니 조삼모사보다 더하다.

방효곤이 끼어들면서 잠시나마 얻게 되었던 휴식마저 날아가 버렸다.

방금 전까지 방효곤을 바라보던 온화한 눈빛에 살기가 쏟아졌다.

 

다음 날 새벽.

하루를 쉬고 난 별동대의 무인들의 얼굴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하지만 대열의 맨 마지막에 선 방효곤의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마치 생사대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자그마한 실수라도 하면 소청이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별동대의 누구도 그렇게 맞아 본 적이 없었다.

구타에 질색한 방효곤은 ‘안 가겠소. 나는 그만 돌아가리다.’라고 말 했다가 ‘지랄 염병하네. 주워 담기에는 늦었어!’라며 소청에게 구타만 더 당했다.

밤사이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나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나 ‘살려 주시오.’라며 잠꼬대처럼 비는 모습이 너무나 아련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 덕분에 단폐폭승의 경공술을 엄청난 속도로 습득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출발하지. 지금부터 대막혈궁까지 곧장 직진이다!”

파앙!

소청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쏘아져 나가자 별동대원들과 방효곤이 그 뒤를 쏜살처럼 뒤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사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휑한 팔을 움켜쥐었다.

어쩔 수 없다.

방해만 될 뿐이었다.

 

* * *

 

“크아악!”

“으악!”

챙! 콰쾅!

비명이 난무하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폭음이 사방을 진하게 울려 놓았다.

“밀리지 마라! 좌선을 방어하라!”

북해빙궁의 선발대가 대막혈궁을 공격해 온 지 사흘째.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왔고 내뿜은 지독한 한기는 검은 대지의 열기조차 식혀 버렸다.

병력의 수가 훨씬 많았던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우세를 점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인해 지쳐 가고 있었다.

더욱이 음한독에 당한 이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갔다.

화산의 끓어넘치는 용암이 음한독의 발작을 둔화시켜 주고 있기는 했으나 완치를 할 수는 없었다.

팔과 다리를 잘라 낸 부상자들이 수두룩했다.

특히나 그들의 선발대에 섞여 있는 빙마동의 마인들은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극음의 지기를 가진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전선이 부서지고 퇴각할 때마다 새로 구축되기를 반복했다.

열양공의 일종인 뇌기를 가진 섬뢰와 뇌령도문의 정예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한편 적들을 맞아 싸우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흐아압!”

콰콰콰쾅!

전선에 빙동마령 다섯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섬뢰가 가공할 뇌전을 퍼부으며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빙동마령들은 그를 비웃듯이 퇴각해 버렸다.

“이런 망할 자식들이!”

죽어 가는 문도들로 인해 그들을 쫓을 수가 없었던 섬뢰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문주님, 쉬셔야 합니다.”

추상이 거칠게 칼을 던져 버리는 섬뢰를 향해 말했다.

“닥치거라! 저놈들에게 당한 문도들이 얼마나 많은데 쉰단 말이냐!”

“그래도 체력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지금 빙동마령 다섯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문주님뿐입니다. 저들은 공격과 퇴각을 반복하며 내력을 회복하는데 문주님께선 부상자들을 돌보느라 운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추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력이 바닥을 보였다.

간간이 호흡하여 내력을 최대한 쥐어짜 내고 있지만, 언제고 분명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벌써 내공이 회복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만약 전장에서 내력이 고갈되면 빙동마령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일초지적도 안 되는 것들이…….”

섬뢰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 손에 꼽히는 강자이기는 했으나 전형적인 공격형 무인이었다.

계략에 약하다.

놈들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제길……. 하오문주께서는 도대체 무얼 하시는 건가? 이럴 때 신승과 백인회라도 보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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