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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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7화
196화. 빙동마령(氷洞魔靈)
백색의 괴인들의 등장에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무인들을 죽인 습격자는 거인, 곱추, 아이, 노인과 여인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백색 털에 뒤덮여 있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들은 적진 한가운데서도 너무나 여유로웠다.
수많은 무인들을 죽이고 모닥불 곁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섬뢰가 갑작스러운 소란에 자신의 거도를 들고 뛰쳐나왔다.
“웬 놈?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그리 부른 것은 네놈이 처음이구나.”
“뭣이?”
백색 괴인의 말에 섬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미 환갑을 지나 칠순을 향해 가는 나이였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자신을 어린아이 보듯 했다.
“그래도 네놈은 좀 쓸 만해 보이는구나. 모처럼 궁주님의 은총으로 빙마동(氷魔洞)을 나왔는데 쭉쩡이들만 있을까 걱정을 했거늘.”
빙마동?
섬뢰는 잠시 멈칫하며 몸을 떨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북해의 전설.
그저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북해에 살고 있다는 백모(白毛) 일족, 북해의 보물이라 불리는 만년빙정으로 인해 변해 버린 그들은 흔히 설인(雪人)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저 전해 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거늘…….”
하지만 단지 구전이었기에 그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었다.
그저 북해빙궁의 수많은 일족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 전해져 오는 내용은 흉측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이었으니까.
사람을 피를 먹는 자들이니, 어린아이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느니 하는…….
신기함은 신기함일 뿐이었다.
수많은 뇌령도문의 무사들이 죽었다.
섬뢰는 그것이 백모 일족이든, 빙궁주든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섬뢰의 몸이 떨린 것은 두려움이 아닌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무인의 호승심이자 전의를 불태우는 전율이었다.
백모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살기가 그의 호승심을 자극해 왔다.
“흐흐흐, 좋군. 좋아.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도 안 가는 것들이……. 여유가 넘치는구나. 감히 나, 뇌도 섬뢰를 두고 말이지.”
섬뢰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머금어지고 그의 거도를 움켜쥐었다.
“모조리 죽여 주마!”
파앙!
거칠게 쏘아지며 솟구쳐 오른 섬뢰가 거도를 수직으로 들었다가 거세게 내리쳤다.
우르릉!
뇌성이 울리고 도신에서 피어오른 무지막지한 전격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뇌신 천뢰살(天雷煞) 분영.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뇌기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콰릉! 콰쾅! 쾅!
낙뢰처럼 떨어진 섬뢰의 공격에 백모 일족이 재빨리 범위에서 벗어났다. 일격에 담긴 뇌기가 쉬이 막을 정도의 위력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섬뢰의 신형이 가장 가까운 거한을 향해 날아갔다.
“제길, 생각보다 강한 놈이군!”
백모의 거한이 섬뢰의 도를 향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엉!
주먹을 뻗었던 거한이 반탄력에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며 몸을 바로 잡으려는 순간 섬뢰의 신형이 유령처럼 휘어져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곧게 편 칼끝이 아래에서 사선으로 뻗어 나왔다.
땅!
뇌전도강을 잔뜩 품은 칼끝이 거한의 가슴에 닿는 순간 쇳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크윽!”
거한은 실린 힘이 강렬했기에 놀랐고 섬뢰는 마치 철갑이라도 때린 듯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섬뢰의 무공이 너무 강하자 놀란 듯한 거한이 물러남과 동시에 자신의 털을 뽑아 비침을 날렸다.
슈슈슛!
허연 기운으로 감싸인 비침이 암기처럼 쏘아지자 섬뢰가 칼을 옆으로 잡고 막았다.
따다다당!
“……!”
아무리 암기처럼 날렸다고 하지만 털일 뿐인데 도신을 뚫고 박혔다.
그리고.
쩌저적!
털에 담겨 있던 음한지기가 도신 위에 얇은 살얼음을 만들었다. 한기의 차가운 느낌이 손을 저릿하게 만들자 섬뢰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뇌기는 열기다.
그럼에도 도신에 한기가 스몄다.
“합!”
한기의 느낌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섬뢰가 뇌기를 증폭시켰다.
쩡!
살얼음이 일시에 쪼개지고 한기가 사라지는 찰나 아이와 노인이 섬뢰의 좌우측을 공격해 왔다.
펑! 퍼펑!
음한지기가 담긴 쌍장이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자 도를 슬쩍 던져 올린 섬뢰가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양팔을 뻗었다.
콰쾅! 쾅!
분명 손바닥이 부딪혔으나 반탄력이 없었다.
놈들이 섬뢰의 힘을 이용해 훌쩍 물러나며 여인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는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공격했다.
“이놈들!”
섬뢰가 띄워진 도신을 잡고 빠르게 서너 번을 긋자 길게 뻗어 나온 도기가 올가미처럼 휘어졌다.
콰드드득!
도기가 원을 그리며 날아가 아이와 노인을 잡아 메치듯 때렸다.
쩌어엉!
몸을 잘라 버릴 생각으로 뇌기의 기운을 추가로 집어넣으려는데 여인이 털을 뽑아 또다시 비침을 날렸다.
“쳇!”
비침의 위력을 이미 보았기 때문인지 섬뢰가 기운을 회수하며 재빨리 몸을 물렸다.
파파파팍!
비침이 꽂힌 바닥이 허옇게 얼어붙었다.
‘극음지기(極陰之氣)…….’
섬뢰가 여인을 매섭게 노려보는 데 물러났던 거한이 주먹을 날려 왔다.
쩌어엉!
실린 힘이 만만치 않아 팔을 교차해 막은 섬뢰의 몸이 두 걸음이나 밀렸다.
“이것들이!”
그리 강하진 않다.
하지만 그들 다섯은 자신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수 합격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틈이 생길 때마다 주위를 공격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다.
잠깐, 넷?
분명 처음 보았던 놈은 다섯이었는데? 곱추, 곱추가 없다!
파학!
순간 지면을 뚫고 쇠꼬챙이가 솟구쳐 올랐다.
취릿!
옆구리에 아릿함이 느껴질 정도로 상처가 생겼다. 가까스로 피한 섬뢰는 솟구친 물체를 쏘아보았다.
곱추…….
자신이 넷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은밀히 접근하고 기회를 기다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망할 놈의 종자들이!”
열이 뻗친 섬뢰가 주먹에 뇌기를 집어넣고 곱추의 머리를 후려쳤다.
팽!
갑자기 섬뢰의 전면에서 솟구치는 힘으로 몸을 말며 회전했고 주먹이 곱추의 등 어림을 거세게 강타했다.
콰아아앙!
곱추의 몸이 공처럼 튕겨 나가 바닥을 치고 솟구쳤다.
“냉악!”
거한이 재빨리 물러나며 곱추의 몸을 잡았다.
“크윽!”
몸을 말아 방어했음에도 섬뢰의 주먹에 실린 뇌기가 강력했음인지 곱추가 신음을 흘렸다.
섬뢰는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수하들과 다른 세 명의 백모인들이 싸우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전장에서 모두를 보호할 수도 없었다. 전사에게 싸우다 죽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섬뢰가 신경 쓰이는 것은 백모인들의 정체였다.
검기에도 상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털가죽을 가졌고, 살이 에일 정도로 강력한 음한지기를 익히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아는 것처럼 말하더니……. 우리는 빙동마령(氷洞魔靈)이다.”
“얼음 굴에 사는 귀신이라고? 그게 뭐지? 빙마동의 주인인가?”
“주인? 크크크, 그건 천천히 알아보려무나!”
곱추가 눈 사이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또다시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은신술.
아니 마치 보호색처럼 자신의 백색털이 가진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고, 찬 바람이 놈의 음한지기까지 가려 버리니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상당히 더럽게 싸우는 놈들이군. 좋다. 내 단숨에 해치워 주마!”
섬뢰가 도를 바닥에 꽂아 넣고 단전의 뇌기를 모조리 끌어모았다.
“하압!”
거한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 장여의 거리를 쿵쿵 소리를 내는 발걸음 세 번 만에 좁히고 주먹을 뻗어 왔다.
지지직! 지직!
갑자기 섬뢰의 전신에서 새하얀 전격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뇌령신(雷靈身)을 쓰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거한의 주먹이 섬뢰의 턱밑까지 다가오는 찰나 섬뢰가 양팔을 뻗어 올리며 모든 힘을 개방했다.
꽈르릉!
우레와 같은 폭음과 함께 그의 몸에서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우욱!”
거한의 주먹은 튕겨 나가 버렸고 새하얀 전극이 그의 몸에 검게 그을린 상처를 만들었다.
뇌전이 섬뢰가 발을 대고 있는 지면까지 지져 놓자 곱추가 땅속에서 팍 하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도를 움켜쥔 섬뢰가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솟구쳐서 세 줄기 뇌전을 쏘아 내었다.
콰릉!
칼을 휘두를 때마다 귀를 때리는 우레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쾅! 콰콰쾅!
섬뢰의 뇌전도에 빙동마령들이 공격을 멈추고 일제히 몸을 피했다.
“쳇! 대충 전력을 대충 파악했으니 우리의 일은 끝났다. 냉악과 거웅을 데리고 물러난다!”
여인이 날카롭게 섬뢰를 쏘아보며 명령하자 빙동마령들이 일제히 눈보라 속으로 도망쳤다.
“이놈들, 누가 보고만 있을 줄 알고!”
섬뢰가 급히 그의 뒤를 쫓는 순간 수백 개의 비침이 눈보라에 뒤섞여 날아왔다.
자신이 아니라 수하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비겁한!’
전장에 비겁함이라는 것은 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고 도망칠 때는 무엇이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빙동마령들의 대처는 매우 적절했다고 볼 수 있었다.
수하들의 죽음을 방치할 수 없었던 섬뢰는 재빨리 물러나 수하들 앞을 막아섰다.
두 손으로 도신을 잡아당기며 거칠게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일어나 비침을 날려 버렸다.
후우웅!
그사이 빙동마령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젠장!”
뒤쫓아서는 안 되었다.
눈보라에 익숙한 놈들이다.
음한지기까지 익히고 있으니 찬 공기가 흐르는 공간에서는 더욱 강할 것이 분명했다.
첫수를 교환한 것이고 다시 만날 것이다.
“문주님! 보고드립니다.”
빙동마령이 물러난 이후 부상자들을 파악한 추상이 섬뢰의 곁으로 다가왔다.
“말하라!”
“적의 습격으로 오십을 잃었습니다.”
“오십…….”
고작 다섯 놈에게 당한 숫자치고는 너무 많았다.
“한데 부상자들의 상처가 이상합니다.”
“뭣이?”
추상의 말에 섬뢰가 급히 따로 수습된 부상자들을 살폈다.
“이건…….”
음한독(陰寒毒).
독이되 독이 아니다.
그것은 극음의 내공을 수련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기운의 흔적과도 같은 것이다.
음한독에 당한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얼어붙고 몸에 빠르게 동상이 퍼진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음한독이 퍼지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잘라 내야 했고, 만약 심장까지 전이되면 더는 살릴 방법이 없었다.
치료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약이나 침이 아닌 열양공으로 음한독을 태워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서둘러 부상자들을 따뜻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음한독은 추위에 닿으면 더욱 빨리 퍼지기 때문이었다.
‘제길…….’
앞서서 그들의 선발대를 막으려 했던 섬뢰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해 버렸다.
으드득.
섬뢰가 이빨을 거칠게 갈았다.
첫 번째 패배였다.
고작 다섯밖에 되지 않는 적에게 오십을 잃었고 자신이 있었음에도 놈들을 죽이기는커녕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두고 보자, 네놈들. 내 반드시 껍데기를 벗겨 주마.”
속에서 천불이 날 정도로 화가 났지만, 일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물러난다. 저들과 눈보라 속에서는 싸울 수 없겠구나.”
“예. 문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