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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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4화
233화. 전생을 만나다
소청이 누운 방 안에는 진가신과 소강, 무황과 혁련휘만이 자리를 했다.
“흠…….”
소청의 맥문을 잡은 무황이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놓았다.
“어떻습니까?”
“음, 뭐라 말하기 그렇소. 일단 의원을 다시 불러와 주시오.”
진가신의 물음에 무황이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강 의원을요?”
재차 묻는 진가신을 향해 무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강이 의원을 부르기 위해 급히 나가고 난 뒤 무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거참.”
“어찌…….”
“혹, 이 녀석이 어떤 내공법을 익히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건…….”
알지 못했다.
패월창법이라면 이미 진가의 모든 이가 배워 익혔으나 내공법만큼은 알지 못했다.
소청은 오직 소강에게만 팔괘공을 가르쳤다.
무황이 진가신을 바라보다가 혁련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평소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그라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도 내공법은 모릅니다. 소청 외에 알고 있는 것은 소강뿐일 겁니다. 하지만 그가 취한 것들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말해 보게.”
“처음 그가 취한 것은 짐조(鴆鳥)의 내단이라 하더군요.”
“짐조?”
“예. 소청의 말로는 봉황이 되지 못한 새라 했습니다.”
짐조에 대한 이야기는 진가신이나 의원을 부르러 간 소강조차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둘 사이의 비밀이었으나 혁련휘는 소청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허, 그런 영물이 있었단 말인가?”
혁련휘의 설명이 끝나자 무황이 감탄을 금치 못했고 진가신은 그제야 과거의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운남에 다녀온 이후 갑자기 강해졌던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그저 주웠다고 말하며 진가를 위해 꺼내 놓았던 ‘독우(毒羽)’의 정체는 짐조의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으나 섭섭하지 않았다.
“그 후에 소청은 신승으로부터 대환단을 받았고, 곤륜 장문인에게 태청신단을 얻었습니다. 산에 갇혀 있을 때 그것들의 힘을 얻었다 하더군요.”
“허! 짐조는 모르겠으나 대환단에 태청신단이라……. 좋다는 건 다 먹은 게로구나. 어쩐지…….”
무황이 어이없다는 듯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소청이 익히고 있는 내공법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희한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그에게 축과 신의 묘리를 알려 주며 단전 이외에도 내력을 모으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그가 내공법에 관해 물은 것은 소청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기이한 힘 때문이었다.
분명 의원의 말로는 단전이 부서졌다 했다.
하면 내공이 모이지 못하고 흩어져야 함인데 이상하게도 몸 안에 내공이 기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세맥의 기운들이 단전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
“지금 이 녀석의 몸에는 화기와 냉기가 가득하다.”
“그, 그런……?”
“그리고 그 두 개의 기운을 악착같이 뭉치려는 힘이 있더구나. 아마도 대환단의 기운이겠지. 하면 화기는 짐조라는 영물의 기운이겠구나.”
무황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소강이 강 의원을 다시 불러왔다.
“찾으셨습니까?”
새벽까지 치료를 마친 터라 피로에 찌든 모습 그대로였다.
“아, 쉬는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큰공자님께서는 저희에게도 가족 같은 분입니다. 사경을 헤매고 계심을 아는데 편히 쉴 수야 있겠습니까? 혹 도움이 될까 하여 의서를 살펴보고 있었던 참입니다.”
강 의원의 대답에 진가신과 소강이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 아이의 맥문을 다시 한 번 짚어 보게.”
“……?”
무황의 청이 의아했지만 머뭇거리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소청의 맥문을 잡고 기혈과 단전을 살펴보던 강 의원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자신이 처음 진맥했을 때와 다르다.
“설마 벌써 고치신 겁니까?”
그의 놀람에 무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무슨 말일까?
그 연유를 알지 못했던 진가신이 급히 물었다.
“무황 어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대체…….”
“괜한 걱정을 한 게야.”
“예?”
“굳이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던 게지.”
“…….”
“혹 자생체(自生體)라는 말을 아는가?”
무황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생체라니…… 그런 것이 실존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의술을 익힌 강 의원뿐이었다.
“나도 직접 본 것은 처음이군. 하나 이제야 이 녀석에게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는군. 자생체라면 가능한 일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혁련휘의 물음에 무황이 차근차근하게 대답했다.
“원래 모든 생명체는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한데 간혹 그 능력이 특출 나게 뛰어난 자가 있는 법이지. 아마도 이 녀석은 원래부터 그런 힘을 타고났던 게야.”
“……?”
“이상하지 않더냐? 이 녀석이 사용하는 그 천뢰충파라는 기술이?”
“뭐 그야…….”
혁련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마 자생체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거나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천뢰충파라는 무공이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었을 터인데…….”
“아…….”
맞는 말이다.
단전에서 두 개의 기운을 충돌시키자면 그 단전이 얼마나 튼튼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쓰는 인물이 소청 말고도…….
혁련휘의 시선이 소강을 향했다.
“젠장, 정말이지. 형이나 동생이나 사기꾼 같은 놈들이야.”
“……?”
혁련휘가 째려보자 소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하면?”
한참을 듣고 있던 진가신이 묻자 무황이 미소를 지었다.
“단전은 스스로 치유되고 있네.”
“아!”
무황의 말을 강 의원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확인시켜 주자 모두의 얼굴에 기쁨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니 기쁨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딜 테지. 지금 상태로는……. 조금 도움을 주는 수밖에…….”
무황이 소청의 단전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짙은 떨림과 함께 소청의 몸 안으로 무황의 희뿌연 기운이 스며들었다.
이미 소청의 몸 안에 쌓여 있는 기운들이 단전을 스스로 치유하고 있으니 따로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그저 열기와 화기를 모아 단전을 끈끈하게 만들고 있는 대환단의 기운을 좀 더 북돋워 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소청의 몸을 살피고 있던 무황이 손을 떼자 진가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끝나셨습니까?”
“그렇소. 이제 남은 건 녀석이 스스로 치유를 끝내고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헛헛, 감사랄 게 뭐가 있겠소. 내 한 것이 없는데……. 어쨌든 이 녀석을 굳이 약방에 둘 필요는 없으니 그만 제 처소로 옮기는 것이 좋겠소.”
“예!”
진가신은 소청을 조심스럽게 소진각으로 옮겼다.
“자, 이제 어찌 된 일인지 말해 보아라.”
무황의 물음에 혁련휘가 자신이 아는 바를 고했다.
“아마도 종리세가 직접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마종이?”
“예. 그의 사형이라는 두 명의 대공에 혈승 탑리극까지 죽였으니 소청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혁련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마종 종리세.
필시 다대일의 싸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소청이 목적이었으니 굳이 수하를 이용해 시험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몸에 상처가 없으니 격투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력의 겨룸.
그 대결의 패자는 소청이었던 모양이다. 종리세라는 자에게 내상을 입고 돌아왔다.
결국, 그들이 우려했던 대로 종리세는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혁련휘의 시선이 무황을 향했다.
중원 최강의 무인.
지금의 무림에 마종 종리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그뿐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때를 늦추고 있는 그.
그가 서천맹으로 온 것은 마종과 싸우기 위함이 분명했다. 스스로 죽을 자리를 서천맹으로 정한 것이다.
산공을 겪고 있는 그는 승패와는 관계없이 그 마지막 싸움이 끝나면…….
“어찌 그러느냐?”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
혁련휘의 말에 무황이 피식 웃었다.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인데.
“휘야.”
“예, 스승님.”
“그들이 올 날이 머지않았구나.”
“…….”
“서천맹으로 가자.”
“예.”
혁련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기든 지든 자신은 스승의 마지막을 지켜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무황 위도혁은 자신의 스승이자 아비였으며 형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소청, 오래 달려왔으니 잠시 쉬고 있게.’
다음 날.
무황과 혁련휘가 진가를 떠났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소강은 별동대와 함께 진무월창을 이끌고 진가를 떠났다.
진가신을 비롯해 일부만이 남아 소진각을 지키고 있었다. 소청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 * *
‘여긴……?’
작은 방.
익숙한 곳이다.
자신이 기거했던 소진각이 분명했다.
그런데, 방이 너무 작다.
열두 살 남짓의 몸으로 처음 진가에서 깨어났던 그때의 방이었다.
어째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다시 죽어서 돌아온 것인가?
그런데 방 안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누구?
소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진소청?’
그건 자신의 얼굴이었다.
약관의 진소청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병약해 보였다. 안색은 창백했고, 강인한 근육은 어디로 간 것인지 어깨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분명 같은 방 안에 있음에도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이 펼쳐진 서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꿈?’
소청은 눈앞에 마주한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쿨럭…….”
진소청은 마른기침을 했다. 그리고 손에 든 헝겊에 피가 튀었다.
병을 앓고 있는 것인가?
소청은 자신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적고 있는 서책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익숙했다.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동작을, 그리고 신체 곳곳의 움직임과 기운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 이건!’
익숙함에 놀라고 그 내용에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패월창법.
전생의 막야였던 그가 얻었던 서책이 분명했다.
해어지고 낡은 서책이 아닌 처음 만들어지고 있었던 패월창법의 비급이 눈앞에 있었다.
‘설마?’
소청은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진소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연신 밭은기침을 해 대며 피를 토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휴우…….”
한참이나 이어진 기침을 멈춘 진소청이 이전보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자신이 적은 패월창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월식을 팔괘에 담아 창법을 만들었으나…… 이 몸으로 익히지 못하니…….”
한탄이 서린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지켜보던 소청의 눈동자가 잘게 떨려 왔다.
‘아!’
그랬다.
그는 막야와 동시대를 살았던 진짜 진소청의 모습이었다.
종리세와의 싸움 이후 정신을 잃은 소청은 꿈속을 통해 원래의 진소청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지만 소청은 그보다 진소청이 패월창법을 만든 주인임을 안 것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월식창법과 비슷한 것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