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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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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9화

228화. 땀 때문에……

 

 

 

 

향이 피워졌다.

제 살을 태우며 오른 연기가 사당 처마에 닿아 아스라이 흩어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술잔을 올리는 소청의 손에 경건함이 가득했다.

장례가 치러진 지 한참이 지났건만 슬픔은 여전했다.

위패를 모신 사당.

진가를 이끌어 온 조상들의 사당과는 별도로 소진각의 후원에 지어진 곳이었다.

일찍이 당가에서 죽어 간 진무월창의 무인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에는 또 다른 이들의 위패가 놓였다.

 

@진가 무한 표국 분점

@대표두 포정

 

위패에 쓰인 글씨.

그곳에는 마승들로 인해 죽어 갔던 당시의 진가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졌다.

사건이 있고 얼마 안 되어 진가에서 장례가 치러졌지만, 한참 뒤에야 소청은 그들의 위패에 술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늦었습니다. 대표두, 그리고 모두들…….”

잔잔하게 뱉어지는 소청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늦었다는 한마디에 유족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벅찬 감동이 있었다.

직계들만이 참석한 자리였기에 멀리서 지켜보던 혁련휘와 별동대, 비마대 무인들의 분위기가 먹먹하게 변했다.

“진가는…… 어떤 이의 죽음도 잊지 않는 모양이군.”

혁련휘의 한마디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무릇 한 가문에는 수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이다.

작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또 어떻게 죽는지 세세하게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 어떤 가문도 죽어 간 이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었다. 죽어 간 이들의 유족을 따로 챙기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저 무림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에 불과했다.

대부분 그러했다.

하지만 진가는 달랐다.

습격당했던 무한 표국에 있던 모두의 위패가 빠짐없이 사당에 모셔졌다.

그리고 가주가 직접 나서서 죽은 이의 유족을 모시고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위패에 슬픔을 토하며 아파했다.

중원의 어느 가문도 하지 않는 일이었으나 진가에서는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별동대를 구성하는 무가의 자손들은 그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일전에도 그러했고 이전에도 그러했다.

진가를 끈끈하게 이어 주는, 간양의 사람들이 진가를 우러러보게 하는 힘이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군. 그때도 그랬지.’

옥명자는 처음 진가를 방문했을 때를 잊지 못했다.

산에 갇혔던 진소청이 죽었다 알려졌을 때, 간양의 시정잡배조차도 그 사실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고 어떤 이는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내었었다.

‘천하제일가라……. 그렇군. 진소청, 진소강 형제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야. 그들의 가문은…….’

옥명자는 흐뭇해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보인, 서문중걸, 팽천기, 악이군…….

장강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중원 무림을 이끌어 가야 할 새로운 인재들이었다.

마천과의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들이 무가의 주인이 될 이름이었다.

진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어리는 짙은 열망과 감동이 그들의 가문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정천의 무가들은 더욱 발전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소청으로 인해, 그들의 가문으로 인해서…….

“이거 참, 큰일이네. 사도련에는 나뿐인데…….”

혁련휘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옥명자가 빙긋이 웃었다.

‘스승님, 화산도 뒤지지 않으려면 꽤나 열심히 해야 할 모양입니다.’

옥명자는 검존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 * *

 

잠시간의 여유를 가지는 동안 소청은 진가신에게 청해 진가의 수뇌들을 소집했다.

가주인 진가신.

진가 무관주 진가성을 비롯해 진가 표국의 총표두 안방걸, 진무월창의 대장인 이태석 등…….

열이 넘는 사람들이 소청의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문의 식솔 모두를 피난 보내란 말이냐?”

“예. 무한이든 사돈댁이 있는 절강이든 최대한 먼 곳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소청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 소청은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허투루 말한 적이 없었다.

마천과의 마지막 전투.

그것을 앞두고 있음을 모인 사람들 중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사천은 격전지가 됩니다.”

“그렇겠지.”

“사천에 적을 둔 무가는 틀림없이 저들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전쟁에 참여한 가문을 마천이 그대로 둘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찌 식솔들이 가문을 버리고 피난을 간단 말인가?

“마천은 여느 세력들과는 다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들은 무인이든 일반 식솔들이든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 표적이 된 가문의 씨를 말리려 할 것입니다.”

“음…….”

“불필요한 희생은 없어야 합니다. 칼을 든 자들은 어차피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지만 다른 이들마저 목숨을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가문에 사람이 있으면 필시 간양의 사람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입니다.”

말을 이어 가는 소청의 표정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진가신은 소청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진가의 식솔뿐만이 아니라 가문에 속한 무인들의 가족들과 일꾼들까지 떠나야 한다.

수백은 족히 넘을 인원이었다.

“음…….”

진가신은 한참을 고민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내 다른 가문의 가주들을 소집해 상의해 보도록 하마.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최대한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저들이 움직일 날이 머지않은 듯하니…….”

“후유……. 알겠다. 그리하마.”

자신의 뜻을 전달한 소청은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가주전에서 물러났다.

사천에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 결과가 승전이든 패전이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야만 했다.

가주전을 나온 소청은 곧바로 소진각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대연무장에서는 별동대의 무인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최선을 다해 가다듬고 있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소청이 해 줄 것은 없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근래 팔괘의 힘을 넷으로 뭉치고 있는 소강의 수련을 봐주는 것이었다.

“회의는 잘 끝났나?”

“그래.”

소청이 돌아오자 언제나처럼 연무장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혁련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강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던 소혜가 함께 있었다.

“꽤나 오래 걸린 모양이군.”

“그래. 생각보다 대규모의 인원이 피난을 떠나야 할 테니까.”

“흠…….”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청의 말에 동조했다.

무림의 전쟁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이 죽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저 상태인 거야?”

“그래.”

소청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연무장의 중앙에 좌정한 소강이었다.

내공의 수련과 더불어 그에게 가르친 것은 스스로를 관조하는 방법이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빠져든 소강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더욱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새롭게 가르친 내공법에 대해 깨닫는 바가 다를 것이었다.

‘역시…….’

무한에서 간양까지 오는 열흘.

그 짧은 시간 동안 소강이 얻어 낸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더욱이 관조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소강의 성취는 물꼬가 트인 것처럼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소청과 혁련휘가 옆에서 자신들이 깨닫고 있는 것을 모두 알려 주었지만 그 속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름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을 보니 혀를 내두르게 되는군. 벌써 관조의 경지에 다다른 것도 놀라운데 벌써 두 시진째 유지하고 있어.”

동생에 대한 칭찬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내 동생이니까.”

“…….”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입을 삐죽거렸다.

“우쭐거리기는…….”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소강은 이미 혁련휘에게도 소중한 동생이 된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찌해야 하나? 마천이 오기를 기다릴 건가?”

“음……. 저들도 총력을 기할 테니 허투루 움직일 수는 없지. 일단은 내일쯤 서천맹에 들러 볼 생각이네.”

“그렇군.”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면 시간도 때울 겸 어떤가?”

“…….”

흑룡아의 손잡이를 잡은 것을 보니 비무를 하자는 뜻이었다.

“상대가 안 될 텐데?”

“누가 할 소릴…….”

지지 않고 대답해 오는 혁련휘의 반응에 소청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단창을 쥐었다.

차자작!

쇳소리와 함께 늘어난 창대를 양손으로 잡은 소청이 혁련휘와 거리를 벌렸다.

“자네와 비무를 하는 건 꽤 오랜만이군.”

“그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

“잊고 싶은 건 아니고?”

“…….”

“내가 분명히 이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청이 창을 비틀어 잡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혁련휘의 이마에 작은 힘줄이 돋아 올랐다.

“이거 오늘은 힘 조절이 안 될 것 같은데?”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혹시나 귀한 집 자식의 몸에 상처를 입힐까 봐서 말이야.”

“누가 할 소릴. 소련주씩이나 되는 친구가 지고 나서 울지나 말게.”

소청과 혁련휘는 서로를 노려보며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일 합이면 충분하겠지?”

“그럼! 당연하지. 우리 사이에 굳이 많은 초식은 필요 없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하세.”

움직임도 투기도 없는 싸움이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눈빛은 치열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굉장하군. 그새 이렇게나…….’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소청은 혁련휘를 향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소강이 만들어지고 있는 천재라면 혁련휘는 완성형에 가까운 천재였다.

분명 그와 소청 자신의 차이는 확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간격이 눈에 띄게 좁혀져 있었다.

‘이거 삐끗하기라도 하면 따라잡히겠군.’

소청은 천천히 호흡하며 비틀어 잡은 창대의 끝을 자신의 앞으로 천천히 늘어뜨렸다.

‘젠장, 괴물 같으니……. 하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사기인 친구이니…….’

소청의 감탄보다 혁련휘가 느끼는 중압감이 더 컸다.

도무지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기세를 끌어 올리지 않고 있음에도 거대한 산악처럼 단단해 보였다.

어떤 공격을 한다 해도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간격을 좁힐 수는 없는 건가? 아니…… 어느 정도의 틈만 있다면…….’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동안 시간이 끝도 없이 흘렀다.

주륵.

어느 순간 혁련휘의 이마에서 배어 나온 땀이 미끄러지듯 흘러 그의 한쪽 눈을 파고들었다.

‘젠장!’

혁련휘의 눈이 살짝 찡그려지는 순간.

파학!

소청의 발이 떼어졌고.

혁련휘가 흑룡아를 빠르게 뽑아 올렸다.

 

“으음…….”

관조의 세계에 빠져 있던 소강이 세 시진이나 지난 뒤에야 깨어났다.

“후우…….”

깊은숨을 내쉬는 소강을 향해 은소혜가 다가왔다.

“상공.”

“아.”

“시장하시죠?”

“그러고 보니 허기가 지긴 하네요.”

소강이 소혜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소강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혁련휘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버님께…… 졌어요.”

“예?”

소혜가 귓가에 대고 조용하게 소곤거렸다.

그리고 바람결에 혁련휘의 허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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