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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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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8화

227화. 잠시 동안의 여유

 

 

 

 

푸드득!

북해와의 전쟁이 끝난 지 열흘.

마궁에서 날아온 한 통의 전서구는 무한의 정사 무림 연맹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이런!”

전령이 달려와 전한 전서에 제갈휘문은 급히 무황의 거처를 향해 달렸다.

 

@마종, 출관.

@토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

 

전서구의 내용은 여유를 부릴 수 없게 했다.

“연맹주님!”

제갈휘문은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고 의자에 몸을 누운 채 쉬고 있는 무황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표정에 서린 다급함에 혈랑대의 만중은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마천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번의 모든 세력들이 마궁으로 몰려갔다고 합니다.”

“…….”

제갈휘문과는 달리 전서구를 받아 든 무황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래. 드디어 그가 오는 것인가.”

무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걸이를 잡고 일어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만중.”

“예! 주군!”

“참작을 가져오라.”

나지막한 한마디에 만중이 벽에 걸려 있는 붉은 도갑을 가져와 두 손으로 무황에게 건네었다.

“…….”

자신이 혁련휘를 제자로 맞이하며 주었던 붉은 도 ‘참작’.

요대에 걸쳐지는 도갑이 쇳소리를 내었고 만중에 의해 무황의 등 어림에 피풍의가 둘러졌다.

“연맹주……님?”

제갈휘문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군사, 그동안 수고 많았네. 자네가 있어서 그간 평안하였어.”

“…….”

자신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는 무황의 모습에 제갈휘문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어울리지 않는다.

분명 서천맹으로 향하는 걸음일 것인데 어째서 그의 미소에서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인가?

이럴 때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인가?

마종이 온다는 연락이 닿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무황이 움직인단 말인가?

더욱이 목숨을 걸고 배수의 진을 친 사람처럼 말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예전엔 참 자네에게 많이도 당했지.”

“…….”

“정사가 대립할 당시에는 자네로 인해 번번이 패배하는 수하들을 보면서 어찌나 화가 났던지.”

마천이 발호하기 이전의 무림.

정사가 대립하며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연일 싸워 대었다.

그 사이에서 제갈휘문은 정천을 지켜 왔다.

하지만 그것은 무황이 나서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가 나섰다면 아무리 제갈휘문이 뛰어난 계책을 썼다고 해도 일찌감치 무림은 통일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선만을 지켜 왔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정사 연합이나 휘를 잘 부탁함세.”

“…….”

“심성이 바른 아이일세. 사도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이 많은 녀석이야. 혹여 다시 적이 될지 모르나 그때까지는 잘 이끌어 주리라 믿겠네.”

무황이 뜬금없이 자신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연맹주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갈휘문이 다시 불러 보지만 무황은 미소만 지었다.

“만중, 혈랑들을 소집하라. 서천맹으로 간다.”

“예…… 주군.”

무거움이 느껴지는 대답과 함께 만중이 제갈휘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무황의 거처를 빠져나갔다.

“연맹주님, 설마 직접 나서시려는 겁니까?”

“…….”

“안 됩니다. 무황께서는 중원 무림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진소청도 있고 혁련 소련주도 있습니다. 서천맹에 이미 중원의 모든 전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두고 어찌 무황께서 직접 나선단 말입니까?”

무황은 무림의 정점에 있는 무인이었다.

소청과 혁련휘가 나서는 것과 무황이 직접 나서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어찌 선봉과 대장이 가진 무게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원 최강의 무인.

그는 존재만으로도 사기(士氣)가 되는 자였다. 그렇기에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에 모습을 보여야 했다.

대장을 잃은 부대가 승리할 확률은 삼 할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장에서도 함부로 대장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물론 무황이 전투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대장을 잃는다는 것은 곧 패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무인들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무인대를 준비하자면…….”

“이보게, 휘문.”

“…….”

“나는 위도혁이라네.”

“…….”

“내가 곧 사도련이고 내가 곧 무림이었던 사람이네.”

광오한 말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는 홀로 만인(萬人)의 무인이었고 홀로 가장 거대한 세력이었다.

혈랑과 함께하는 그는 무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내가 싸울 곳은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다네.”

“무황!”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백여 명에 달하는 혈랑들이 말을 타고 모였고 무황이 타고 갈 마차가 준비되었다.

“갈 시간이로군.”

툭, 툭툭.

무황은 제갈휘문을 지나치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

무황 위도혁은 그렇게 서쪽을 향해 떠났다. 마치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제길!”

떠나는 무황의 행렬을 보며 제갈휘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전력이었지만 무황이 떠났으니 서둘러 무인대를 정비해 곧바로 서천맹으로 보내야만 했다.

 

* * *

 

제갈휘문이 받은 전서구의 내용은 서천맹에도 동일하게 전해졌다.

가장 먼저 전서구를 받은 것은 흑비나 청초각과 긴밀한 연락선을 유지하고 있는 우진혜였다.

하지만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던 서천맹이었기에 큰 동요는 없었다.

멸마대의 무인 수천이 토번과 사천의 경계에 진을 치고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이를 증원할 사도련의 무인들이 서천맹 주위에 빼곡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대군사께서는 뭐라 하던가?”

검후의 대답에 우진혜가 힐끗 쳐다보자 제갈상아가 거대한 지형도가 놓인 탁자 앞에서 대답했다.

“무황께서 서천맹으로 출발하셨다 합니다. 전서구를 보낸 시간이 있었으니 지금쯤 의창(宜昌)을 지나셨을 겁니다.”

“흐흠, 무황께서 직접 움직이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군.”

“아마도 마지막 전투라 생각하셨을 터이니까요.”

제갈상아의 말에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어찌 되고 있는가?”

“일단은 기존에 준비한 두 개의 경로에 균등하게 나누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

마궁을 압박한 그들은 북해가 무너짐과 동시에 병력을 물려 사천성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미 나선 걸음이니 서천맹까지 후퇴하지는 않았다.

사천과 토번의 경계를 드나드는 두 곳의 길목.

필시 마천은 대거의 병력을 동원해 올 것이니 두 곳 중 하나의 길을 택해 움직일 것이 틀림없었다.

멸마대의 대부분 전력이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 있음에도 이리 불안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검후의 불안감에는 마종이라는 무인이 있었다.

경천동지할 무위를 가진 두 명의 대공과 이제껏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외의 삼세를 발아래 둔 그.

무황 위도혁마저 인정했다는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북해와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서천맹을 떠났던 모자겸 대족장께서도 부족원들과 함께 무한을 떠났다고 합니다. 추가로 각 문파의 원로들이 오고 있다 하니 그리 심려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운남 대족장이 고생이 많군. 중원의 일 때문에…….”

옳은 말이다.

운남은 중원이 아닌 새외였다.

동맹을 하고 있는 터였지만 지난 서천맹 전투 때에도 그렇고 이번 북해와의 전투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마천에 대한 모든 일이 끝나면 그들의 공을 치하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그저 새외의 인물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들과의 연이 진소청 그 아이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했던가?”

“예. 알아본 바에 의하면 대족장이 진 공자를 은공으로 대한다 하더군요. 대함에 있어서 공손하기가 주종 관계로 보일 정도라 합니다.”

“허 참,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한 자일세. 이제껏 그만한 자가 무림에 또 있었는가 싶어.”

검후가 진소청을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진소청이 대단한 전공을 세웠다지?”

“예. 북해를 이끌고 온 북천대공을 그가 죽였다고 하더군요.”

“북천대공…….”

신승을 죽였다는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소청과 별동대도 오고 있다 하지 않았던가?”

“예.”

제갈상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우진혜를 바라보았다.

“무한을 떠난 지 열흘 가까이 되어 가니 지금쯤 간양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렇군. 그쪽에는 마천의 움직임을 알렸나?”

“아직…….”

“일단은 연락하지 말고 그대로 두게. 꽤 긴 전투를 치르고 돌아오고 있으니 피로할 테지. 저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는 그대로 두게.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야.”

“예. 그리하겠습니다.”

검후의 말에 제갈상아와 우진혜가 생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그들이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다.

지금의 서천맹은 중원의 모든 전력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이 북해가 무너지고 중원의 모든 세력이 계속해서 서천맹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무황을 비롯해 중원의 최고수라 불렸던 정천오존의 생존자와 사도삼위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무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언제가 될지 모르나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 되겠군. 마천에도 우리 중원에도…….”

“예.”

 

* * *

 

서천맹이 위치한 사천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었으나 진가가 위치한 간양은 모처럼 잔칫집처럼 소란스러웠다.

호북성에서 간양으로 오는 관도를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소청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목을 쭉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 대공자다! 대공자께서 오신다!”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고개를 말처럼 길게 내밀었다.

“와아아아!”

멀리 관도의 입구로 말을 몰아 들어서는 소청 일행의 모습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러 대었다.

진가 두 형제, 소청과 소강의 귀환.

이제는 치기 어린 소년들이 아니라 중원을 가득히 울리고 있는 무림의 영웅이 되어서 돌아오는 그들을 맞이하는 함성이 간양을 떠나갈 듯 울려 놓았다.

“이곳은 정말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무슨 무림 대영웅의 귀환도 아니고…….”

“와! 권왕이다! 권왕 황보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툴툴거리던 황보인이 자신을 향한 외침에 귀를 쫑긋이 세웠다.

“핫핫핫! 역시 간양이야! 나를 알아본다니까!”

금세 표정을 바꾸며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흔들어 대는 황보인의 모습에 소청 일행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눈 그들이 관도에 깊숙하게 들어서자 멀리 소박한 편액을 건 진가의 정문이 보였다.

그 앞에는 소청 일행이 간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온 진가의 수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

소청이 말에서 내리자 진가신이 달려가 그를 덥석 안았다.

“고생하였다, 고생하였어.”

“예.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헛헛. 이놈아, 아니 다행이로구나. 네 어미는 전투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물을 떠 놓고 비느라 손금이 사라질 지경이니라.”

진가신의 말에 소청이 어머니인 섭약란을 바라보았다.

“어머님도 잘 계셨지요.”

“어서 오렴.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눈앞에 두고도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어미의 모습에 소청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상공!”

그 사이로 은소혜가 옷자락을 날리며 말에서 내리는 소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아, 그……. 어른들도 계신데…….”

사람들이 쳐다보자 얼굴이 붉게 물든 소강이 난감해하며 눈치를 보았고 혁련휘가 그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이거 나도 빨리 장가를 가든지 해야지. 눈꼴셔서 원.”

“아, 형님. 그게…….”

소강이 울상이 되자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모처럼 가족이 상봉한 평화로운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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