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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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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6화

225화. 마종, 중원 정벌을 선포하다

 

 

 

부글, 부글, 부글…….

용왕담(龍王潭)의 물이 화탕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허연 증기가 피어올라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마궁을 뒤덮었다.

뒤를 이어 중심에서 시작된 검은 기운은 변화는 용왕담을 흑수(黑水)로 만들었고 마궁을 감춘 안개를 검게 물들였다.

검은 마기가 마궁의 전체에 휘몰아쳤다.

그리고 다시 잔잔해진 수면은 쩍쩍 얼어붙었다.

물결의 모양 하나하나를 그대로 드러내며 얼어 버린 용왕담은 북쪽 동토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빙하 지대처럼 변했다.

쩌저적!

얼음이 갈라지고 다시 끓어올라 검게 변하고 다시 얼음이 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종 종리세가 어깨 윗부분만을 드러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무려 나흘 밤낮 동안 이어진 변화는 점점 더 빨라졌다가 평온함으로 돌아왔다.

“후우…….”

낮고 느리게 뱉어진 호흡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끓어오르기를 반복하며 증기로 변한 물이 사라져 용왕담이 바닥을 보이자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종리세의 완벽한 나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느릿하게 뛰던 심장이 정상의 맥을 찾아가고 호흡이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또 한 번의 낮과 밤이 지나 해가 떠오를 때까지 마궁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변화의 시간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침묵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의 정점을 찍은 사내가 깨어나기를 숨소리조차 집어삼킬 정도로 긴장하며…….

스륵.

깊고 깊었던 용왕담이 가뭄을 맞은 논바닥처럼 말라 종리세의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때, 길고 긴 속눈썹이 작은 떨림을 보였다.

그리고 뜨였다.

번쩍.

개안(開眼), 두 글자의 말로 표현되는 단순한 눈의 뜨임은 세상을 짙은 마기로 가득 채울 만큼의 신광을 뿜어내었다.

빛을 반사하며 색을 드러내었던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해 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제 모습들을 찾아갈 때 종리세의 눈동자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신이 조각한 듯 완벽하리만치 아름다운 근육 외에는 그 어떤 곳에서도 변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안겨 주던 때보다 훨씬 평범하게 변해 있었다.

저벅, 저벅…….

너무도 고요한 분위기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컸다.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종리세는 잠깐의 걸음에도 굳은 허리를 늘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마궁의 정수를 몸 안에 담으며 굳어 있던 관절과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인간이 가지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세 가지의 힘.

그 모두를 자신의 몸에 담아 수없이 정련했고 드디어 그 결실을 보았다.

북해의 빙정에 담긴 냉기.

혈궁의 화산에 담긴 화기.

그리고 마궁의 잠자고 있었던 마기.

아직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종리세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이 강림한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좋군…….”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그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용왕담에서 빠져나온 마종의 눈동자에서는 작은 빛조차 흐르지 않았고 윤기 나던 피부는 제 나이대의 청년처럼 변해 있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히려 약간 푸석푸석해진 느낌이었다.

“마종.”

작은 부름에 종리세는 반쯤 뜬 눈으로 천천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색의 장포를 걸친 열두 명의 무인.

십이마령(十二魔靈).

역천을 통해 과거로 돌아왔던 종리세가 처음부터 만들어 낸 순수한 마인들이었다.

종리세가 삼궁의 정수를 모두 얻을 때까지 마천의 인물들에게조차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었던 자들.

종리세의 눈이 그들을 향하자 사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대성을 경하드립니다!”

마치 연습을 한 듯한 외침이 한목소리처럼 용왕담을 울렸다.

종리세는 그들이 만들어 낸 외침의 메아리를 음미하듯이 다시 한 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묵룡이 수놓인 무복을 걸치고 허리 옆으로 백색의 검, ‘역천’을 길게 늘어뜨렸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죽음, 그리고 회귀.

모든 것에 중심에 역천검이 있었다.

종리세는 검집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역천의 손잡이를 슬며시 잡았다.

지이잉-!

강하지는 않으나 진한 떨림이 손안에 가득히 느껴져 왔다.

펄럭!

그가 의관을 정제할 때까지 기다렸던 십이마령의 수좌, 흑묘가 검은 윤기가 흐르는 피풍의를 종리세의 등에 걸쳐 주었다.

“지옥혈잠의 실 중 최상질의 것만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흑묘가 물러나자 피풍의의 질감을 느끼듯이 어루만진 종리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주들은?”

“밖에서 마종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 보지.”

나지막한 명령에 십이마령의 ‘운’이 급히 뛰어가 외부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종리세는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고 십이마령들이 줄지어 그들을 뒤따랐다.

문을 지난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천둥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마종! 대성을 경하드립니다!”

수천, 아니 수만에 달하는 목소리에 마궁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마궁이 자리 잡은 산 아래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무인들.

마천의 십이세, 마궁 예하의 천룡사와 살막을 비롯한 열두 개 거파.

그들 모두가 마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문 아래 단을 만들고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의 세주들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종의 뒤에 선 자들.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떤 자는 전령이기도 했고 어떤 자들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무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종리세의 뒤를 지키고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들은 십이마령들을 처음 보겠군.”

그 와중에 종리세가 느긋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자 파군이 급히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실수였다.

당황한 나머지 마종을 향해 대성을 축하하기 위한 예를 다하지 못했다.

“마, 마종! 경하드립니다.”

파군 용유명을 비롯한 괴마, 요마, 수마가 뒤늦게 고개를 조아렸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던 종리세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전과 달리 그의 걸음에는 대기를 짓누르는 압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파군은 숨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십이마령 중 하나인 ‘백척(白戚)’이 준비한 의자에 앉은 종리세는 파군을 불렀다.

“용유명.”

“하명하십시오!”

파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황을 보고하라.”

“……!”

혼잣말처럼 뱉어졌으나 파군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고 잔인하게 들려왔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마종은 분명 북해를 대막혈궁에 대기시키라 했다.

분명 그리 전달했음도 북천대공은 북해를 움직여 곧장 중원을 공격했다.

결과는 패배.

중원에 숨어 있던 세작들이 죽은 뒤였고 마궁을 공격한 서천맹의 무인들이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또한, 마궁을 공격했던 중원의 무인들이 마종에 의해 변화가 찾아오기 얼마 전 일시에 토번을 빠져나갔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은 뒤였기에 그들을 쫓지 못했다.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파군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할 말을 찾았다.

도무지 입이 떼어지지를 않았다.

“파군…….”

재촉하는 종리세의 목소리에 파군은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부, 북해가 패배했습니다.”

“…….”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 시간이 파군에게는 영겁보다 길게만 느껴졌고 이마에 맺힌 땀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 놓았다.

“그렇군.”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종리세는 마치 그까짓 일이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파군.”

“예, 마종!”

“서천맹을 쳐야겠다.”

“……!”

“내달 초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서천맹을 시작으로 중원을 정벌할 것이다. 준비하라.”

“……!”

담담하게 내뱉은 종리세의 한마디가 그들의 긴장을 희열로 바꾸어 놓았다.

중원 정벌.

그 한마디가 주는 벅찬 느낌이 그들의 몸에 전율이 일게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파군이 바닥에 거세게 이마를 찍으며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괴마와 요마, 수마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내달 초.

앞으로 보름여의 시간이 남았다.

오랫동안 그들의 목표였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마천의 모든 병력이 중원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펄럭!

피풍의를 휘날리며 돌아선 마종의 뒤로 파군이 격정적인 표정으로 일어났다.

“중원을 정벌한다!”

“와아아아!”

“중원 정벌! 마천혈세!”

파군의 외침에 무인들의 함성이 토번을 뒤흔들었다.

 

* * *

 

승전(勝戰).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중원의 그 어느 곳에서도 풍악은 울리지 않았다.

북해를 막고 단강구를 피로 물들였지만, 그 안에서 죽어 간 중원 무인의 시신들이 강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각 무림 문파들은 전투에서 희생된 원로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림은 그 어떤 때보다 엄숙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수많은 무인들이 줄지어 한곳을 향했다.

산서성 북쪽 검곡.

파리한 머리의 소림승들이 예식을 위해 황색 가사를 걸치고 줄을 지어 검곡의 내부를 채웠다.

신승 일해의 다비식(茶毘式)을 치르기 위함이었다.

그 안에는 소림승뿐만 아니라 북해와 싸웠던 정사의 무인 모두가 함께하고 있었다.

무황을 비롯해 섬뢰, 혜어화, 혁련휘에 이르기까지 사도련의 주축 무인들이 참석했고, 태존을 비롯해 정천의 원로들도 줄을 지어 앉았다.

하지만 신승이 시신을 남기지 않아 그 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소림승들은 너무도 당연한 모습으로 검곡 내부의 시신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중원 무림인이든 북해의 무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으고 쌓았다.

산처럼 쌓인 시신들 주위에 나무가 쌓이고 불이 오르자 소림승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불호와 함께 경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행복한 죽음이군.”

중얼거리는 듯이 내뱉는 무황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사가 오랫동안 반목하며 어떤 한 사람의 죽음에 함께 슬퍼한 것이 언제였던가?

다비식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이어졌다.

“흑비에게서 연락은 없었어?”

일행과 멀찍하게 떨어진 채 다비식을 바라보고 있던 소청이 제갈휘문을 향해 물었다.

“아직…….”

“의외로군. 아무리 세작들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쯤이면 그쪽에서도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연락이 오는 대로 곧바로 알리도록 하겠네.”

“그래.”

“자네는 어찌할 생각인가?”

“다비식이 끝나는 대로 일단은 진가로 돌아가야지.”

“흠. 그게 나을 듯하군. 어차피 남은 건 마궁과의 전쟁일 테니…….”

제갈휘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황께서도 서천맹으로 가실 모양이더군.”

“무황께서?”

“음.”

제갈휘문의 말에 소청이 미간을 좁히고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황 위도혁.

산공의 때를 맞이한 그는 최후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군.”

북해와의 전쟁을 치른 이후 중원 무림은 전력의 태반을 잃어버린 뒤였다.

남아 있는 싸움은 서천맹과 마궁의 전투뿐이었다. 그 마지막 전투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무황은 자신의 최후를 그곳으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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