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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3화

222화. 부딪쳐 보는 수밖에

 

 

 

 

강을 넘어온 북해 무인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장강 연합과 화살로 큰 피해를 줬음에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악이군이 자신을 향해 그어진 검격을 피해 창을 찔러 적을 꿰뚫었다가 문득 여전히 도하하고 있는 북해 무인들을 힐끗거렸다.

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가늠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어?”

악이군의 눈에 익숙한 모습의 무인이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치렁치렁한 머리와 검은 피풍의에 창을 든 사내의 모습.

“대, 대장……?”

그는 자신들과 헤어진 진소청이 분명했다.

“소, 소강!”

악이군이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소강을 불렀다.

“예!”

신들린 듯이 창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적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고 있던 소강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기!”

악이군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는 순간 소강은 대번에 소청이 북천대공과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분명 우측의 혁련휘와 합류하겠다 하지 않았던가?

내심 홀로 가지 않을까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 이리 무모하단 말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적진의 한가운데라니…….

소강은 형의 성격을 알면서도 예측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망할! 악 형님! 이대론 안 되겠습니다. 강을 넘어야겠습니다.”

소강의 마음이 급해졌다.

북천대공은 둘째 치더라도 소청을 둘러싸고 있는 북해의 무인들은 맡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다. 넘어오는 적이 너무 많아!”

악이군이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강을 가득 메우고 다가오는 적들.

더욱이 전장을 휘저어 놓고 다니는 나의 여인의 빙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별동대의 뒤를 이어 전투에 참가한 정사 무인들이 그녀에게 무수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태존이 직접 나서서 그녀와 어우러졌지만, 쉬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악 형님! 이곳을 맡아 주십시오. 형님 혼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소강이 간청하듯이 외쳤다.

“…….”

악이군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사이 소강을 공격하던 북해의 무인이 미간에 동전만 한 구멍이 뚫려 쓰러졌다.

“내가 엄호하겠네!”

부러질 듯이 시위를 당긴 방효곤이 나섰다.

그 순간에도 그의 활시위는 쉬지 않고 당겨졌다.

“감사합니다!”

소강은 방효곤의 도움으로 화색을 지었다.

“치잇! 어쩔 수 없지. 자네의 형은 우리의 대장이기도 하니, 미력하나마 나도 돕겠네!”

소강이 기어코 적을 뚫고 강을 넘어갈 의지를 보이자 악이군도 결심을 굳혔다.

그때.

뿌우우우!

긴 뿔피리 소리가 전장을 울리자 적진 깊숙이 파고든 소강과 별동대의 고개가 후방을 향해 돌려졌다.

퇴각 신호였다.

어째서?

하지만 그들은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우측에서 다수의 적이 정사 연합의 본진을 향해 공격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면을 공격해 온 적들과 비교해 봐도 적지 않은 수였다.

우회한 것이다.

아무리 정면을 태존과 별동대가 지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측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아…….”

소강이 다가오는 적들과 강 너머의 소청을 몇 번이고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소강은 아랫입술을 찢어질 듯이 깊이 깨물었다.

소청을 돕기에는 적이 너무 많았다. 본진이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제길…….”

결국 소강은 퇴각 신호를 따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소강!”

“물러……납니다. 본진을 지켜야 합니다.”

소강의 말에 악이군과 방효곤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강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동대는 지금 즉시 물러나 우측의 적을 상대합니다!”

소강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리자 얕은 물속에서 싸우고 있던 별동대와 정사 연합의 무인들이 적들을 밀어내며 뒷걸음쳤다.

“하압!”

쩌어엉!

퇴각을 돕기 위해 밀려드는 적들을 향해 천뢰충파가 작렬했다.

그리고 소강의 눈이 소청을 향했다.

“형님…….”

적의 검진에 휩싸였던 소청이 만들어 낸 푸른 달이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강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 * *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소청에게 아무런 피해조차 주지 못한 수하들의 모습에 백효가 얼굴을 찡그렸다.

나른했던 그의 표정이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싸늘하게 변하자 소청이 피식 웃었다.

“뭐 이따위 것들로 나를 어찌해 볼 수 있을 줄 알았나 보지?”

“적어도 힘은 빼 놓을 줄 알았지.”

“자신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자신?”

반개했던 백효의 눈이 부릅뜨이자 그의 몸에서 짙은 한기가 훅 하고 뿜어졌다.

쩌저적!

그가 밟고 선 대지가 쩍쩍 얼어붙었다.

전면에서 느낀 소청의 몸이 떨려 올 정도로 강한 한기였다. 또한, 한기에 담겨 있는 강렬한 기의 여파에 눈이 찡그려졌다.

“자신이라 했더냐?”

“…….”

“나 백효가 그리 우스워 보인단 말이지?”

백효가 차갑게 비웃었다.

“몰랐어? 너희들은 그냥 다 열심히 짖어 대는 개새끼로밖에 안 보여.”

찌익. 파학!

소청의 뒷발이 땅을 밀어내는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형섬전보.

비마 곽추의 무공이지만 소청에게서 꽃을 피운 무공.

흔적을 남기지 않는 수많은 경공이 있었지만, 속도에 있어서 단연 최고라 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무황조차도 소청에게 한 수 접어 줄 정도였다.

스가각!

어느새 등 뒤에서 나타난 소청의 창대가 백효를 허리를 향해 후려쳐졌다.

“……!”

하지만 소청은 공격을 물리고 재빨리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공격하는 순간 그의 주위에서 생겨난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측면을 노려 왔기 때문이었다.

타닥! 파파팍!

재빨리 뒤로 물러난 소청은 백효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방어하지 않는다.

공격에 대응해 곧바로 응수해 온다.

“내가 고작 그 정도에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나?”

“…….”

“네놈의 움직임은 빠르다.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저 빠르기만 한 것으로 나를 넘을 수는 없다.”

백효의 눈동자가 눈처럼 하얗게 물들고 그의 몸에서 선명할 정도로 유형화된 새하얀 한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쳐 나갔다.

쿠우우우…….

순식간에 그들이 딛고 서 있던 대지가 동토의 그것처럼 변해 버렸다.

“이곳은 나의 대지. 모든 곳이 나의 영역이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네놈은 절대 살아 나갈 수 없다.”

백효의 손이 펼쳐지자 갑자기 소청의 발밑에서 쇠꼬챙이처럼 변한 얼음이 솟구쳐 올랐다.

땅!

예기를 느낀 소청이 재빨리 그것을 때려 부수며 몸을 띄우는 순간 허공에 맺힌 얼음의 칼날이 날아왔다.

쩡! 쩌어엉!

소청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얼음 칼을 향해 쉴 새 없이 창대를 휘둘렀다.

부서져 사방에 뿌려지는 얼음 파편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합쳐지기 시작했다.

“젠장, 성가신 무공이군!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지!”

파박!

소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폭음이 사방을 울려 놓고 충격파가 대기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소청의 창대와 한기를 머금은 백효의 장력이 서로를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방어 자체를 무시하고 오직 공격에만 치중되어 있는 둘의 기세는 팽팽하게 당겨진 줄 같았다.

“합!”

빠르기만 해서는 백효가 만들어 낸 공격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소청이 발을 어지럽게 내딛자 수많은 잔상들이 생겨났다.

빗속을 거닌다는 우중거의 보법.

콱! 콰콱! 콱!

소청이 만들어 낸 잔상을 향해 얼음 조각들이 마구잡이로 꽂혔다.

“또 뒤냐!”

순간적으로 소청이 사라지는 순간 백효가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욱!

“……!”

하지만 느낌이 없었다.

주먹이 허공을 스치는 순간 소청은 백효의 가슴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후방을 노린 것은 허초였다.

소청이 노린 것은 그가 자신을 공격해 오면서 생기는 작은 틈이었다.

은신을 극도로 끌어 올려 사각으로 파고들었으니 자신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 틈에 단전의 모든 기운을 개방해 백효의 가슴을 때린다면?

그런데.

쩌저적!

백효의 발밑에서 솟구친 얼음 조각이 또다시 소청을 향해 날아왔다.

소청은 끌어 올린 기운을 풀어내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따아아앙!

“얕은 수를 쓰다니…….”

피식 웃는 백효의 시선이 어느새 소청을 바라보았고 물러난 소청을 향해 일장이 날아왔다.

쩌어엉!

양팔을 교차해서 막은 소청이 쭉 하고 뒤로 밀려났다.

쩌적!

한기를 머금은 일장을 막아 낸 팔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백효에 대한 놀람이 더했다.

분명 은신을 했음인데…….

쩌엉!

소청은 열기를 사용해 팔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를 날려 버렸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자신의 은신은 완벽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소청은 백효가 만들어 낸 동토의 영역에서 벗어나 그를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진 것과 백효가 가진 것을 알아야 했다.

마구잡이로 싸워서는 안 된다.

백효는 그와 비슷한 경지를 가지고 있었던 구자겸이나 혈승과는 또 다른 느낌의 무인이었다.

‘놈은 전투에 익숙하다.’

그가 상대해 온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소청에게 무척이나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소청이 가진 무공의 가장 강력한 기술은 ‘천뢰충파’였다.

하지만 개인을 상대할 때는 근접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또한 이전과는 단전의 내공이 달라졌다.

단전에 단중혈의 기운이 어우러져 태극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강렬한 힘을 낼 수는 있었지만 이전처럼 부딪침으로서 충격파를 만들 수가 없었다.

천뢰충파를 사용하자면 단전에 어우러진 태극에 백회혈을 밀어 넣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단전이 가진 능력을 초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길, 일단은 계속 부딪쳐서 놈이 가진 힘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나?’

소청은 재차 공격을 준비했다.

잠깐의 공방으로는 상대를 완전히 알 수가 없었다.

상대의 무공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만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으적, 으저적.

소청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백효가 가깝게 다가서고 있었다.

강변을 지나 숲의 영역으로 들어온 그의 기운에 나무들이 한겨울을 맞이한 것처럼 허연 서리와 함께 얼어붙기 시작했다.

“도망만 칠 셈인가? 그럼 내가 가지!”

파아앙!

거친 일보와 함께 백효의 신형이 쏘아져 나왔다.

‘빠, 빠르다!’

소청의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뜨였다.

일보가 내디뎌지자마자 그의 신형이 마치 흰 선이 그어지는 것처럼 늘어나 소청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만 제외하면 일보월하의 속도에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은 신법이었다.

“젠장!”

소청이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창대를 휘저었다.

전진보와 퇴보의 차이점은 속도에 있었다.

아무리 경공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는 소청이라지만 퇴보는 순식간에 따라잡히고 있었다.

“죽어라!”

백효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생성된 수십 갈래의 백색 한기가 소청을 향해 날아왔다.

쩌엉!

휘저은 창대로 부숴 낸 한기 중 하나가 소청의 한쪽 어깨를 강타했다.

“크윽!”

소청의 신형이 땅바닥에 처박혔다가 재빨리 튕겨 일어났다.

파파파팍!

빠르게 내질러진 창극이 다가오는 백효의 요혈을 향해 뱀처럼 뻗어 나갔다.

쩌엉!

“…….”

다가오던 걸음을 멈춘 백효가 소청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주륵.

그의 창백한 볼에서 흐르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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