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1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19화
218화. 나는 운남의 대족장 모자겸이다
“적의 규모는 어찌 되나?”
“소규모의 적들이 함정과 진법을 발동시켰을 뿐 대규모 적이 발견된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군.”
전령의 말에 백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어찌 그러십니까?”
미여령이 의문을 드러내며 물었다.
신승이 공격해 온 우측 천빙궁은 백효가 직접 나선 덕분에 더 이상 습격이 없었지만, 좌측의 한음곡이 적의 별동대의 습격에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선두로 나선 무인들이 적의 계략에 당하고 있으니 미여령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령, 내가 잘못 생각을 했구나. 당연히 무황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미여령은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백효를 바라보았다.
“여령, 눈앞에 있는 적들의 수장이 누구인 것 같으냐?”
“그야 당연히 무황……. 혹시 그가 아니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여령의 말에 백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그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이미 벌써 우리의 앞을 홀로 막았을 것이다.”
“예? 그럴 리가?”
“그는 그만한 사람이다. 마종께 유일하게 패배를 안긴 사람이니까. 그가 직접 나섰다면 이런 번잡스러운 일을 꾸미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면?”
“제갈휘문이겠지.”
제갈휘문?
그에 대한 이름은 미여령도 수없이 들었다. 마종이 직접 죽이라 명령했던 중원의 지략가.
“쯧, 이럴 줄 알았으면 한음곡을 기습했다는 녀석을 찾아가는 것이 덜 심심할 뻔했구나. 곧 무황을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참고 있었는데…….”
백효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미여령은 여전히 백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을 막은 것이 무황인 것과 제갈휘문인 것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
“여령. 지략을 쓴다는 족속들은 말이다. 모든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치 장기판에 말들을 놓듯이 전장을 생각해.”
“…….”
“놈이 이곳저곳에 함정을 파고 진법을 설치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유인입니까?”
“그래. 놈은 제 놈이 준비한 전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거야.”
“하면 이대로 진격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따라가 줘야지.”
“예?”
“대부분의 무인이 서천맹으로 이동한 중원은 이만한 준비를 해 놓을 만큼 여유롭지 못할 거야.”
“…….”
“필시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거야.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마지막 격전지인 셈이지.”
“하면?”
“이곳을 부수면 중원은 침몰한다.”
“아!”
미여령은 그제야 백효가 지은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마 그가 준비한 경로상에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게야.”
“그렇겠군요.”
“하나 궁금하지 않은가? 놈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모조리 무너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야.”
백효가 음산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피해가 있었지?”
“현재 연락이 되지 않는 설영궁과 중앙의 본궁을 제외하고 이궁 일곡에 사천여 명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렇군. 하면 설영궁을 빼고 남은 것은 만오천쯤 되는 것인가?”
“예!”
“여령!”
“예, 대공.”
“계속해서 진격시켜라! 함정에 의한 자잘한 피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놈들이 이끌어 주는 대로 곧장 이동해서 적의 방어막을 부순다!”
“예! 대공!”
그의 명령에 북해의 행동은 결정되었다.
“후후, 또 어떤 놈이 나타나서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인가? 무황이 아니라면 구 사형을 쓰러뜨렸다는 진소청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 *
북해의 진격이 이어지는 사이 좌측 천음곡을 공격한 혁련휘와 별동대 그리고 철혈군은 단강구에 근접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 넘는 인원으로 이루어진 십여 차례의 기습으로 일천 이상의 적을 죽인 뒤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듯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소련주님, 곧 단강구입니다.”
“음.”
혁련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격돌을 시작한 듯 폭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찌할까요? 더 이상 기습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래. 본진끼리 부딪쳤으니 기습은 의미가 없다. 이제부터는 전면전 일 테니까.”
혁련휘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적의 수가 아직도 너무 많다.
제갈휘문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함정과 계략만으로 넘을 수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신승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미 그도 전서구를 통해 받은 뒤였다.
정사의 구분이 있었기에 신승과 그리 큰 친분이 없었던 혁련휘는 딱히 슬픔을 느끼지 않았으나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해 온 고수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아깝군. 고수의 존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인데…….’
혁련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뒤를 바라보았다. 별동대도 철혈군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쉬어야 했다.
“황보 공자, 백강.”
“예!”
“반나절을 쉽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기습이 아닌 전면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대로 이동하지 않고 곧바로 측면을 칩니다. 앞으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쉴 틈이 없을지도 모르니 충분히 휴식을 취해 두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황보인과 백강이 휴식이라는 말에 잠시 긴장감이 풀어진 듯이 화색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들의 모습에 혁련휘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긴 전쟁이다. 급할 것 없지.’
* * *
모자겸은 운남의 무인 이천과 함께 단강구가 시작되는 곳에서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배수의 진을 흉내 낸 것처럼 강을 등지고 선 그는 수하들과 함께 횡진을 치고 있었다.
둥, 둥, 둥…….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이 두들겨지는 거대한 북소리.
뿌우우…….
길게 울려 퍼지는 뿔피리의 메아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멀리 탁 트인 숲의 경계에서 북해의 선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갈휘문의 예상대로 적은 사방에 설치된 진법과 함정을 피해 그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과연 군사는 대단하군. 적들이 의심을 하든 하지 않든 이곳으로 온다 했던가?”
모자겸은 자신들을 보고 진형 따위는 무시한 채 질주해 오는 적들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일만을 넘는 북해의 무인들이 물결 같다면 이천의 운남은 그저 작은 둑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의 얼굴에도 두려움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운남은 들어라! 지금부터 적을 섬멸한다!”
“와아아아!”
모자겸의 외침에 운남의 무인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가자! 적을 죽여라!”
쿵!
외침과 동시에 쏘아져 나간 모자겸을 따라 횡진을 이룬 운남의 무인들이 질주했다.
훌쩍 뛰어올라 선두의 머리를 넘은 모자겸이 양손을 갈고리처럼 세워 교차시켰다.
그의 손가락에서 이어진 열 가닥의 기운이 그물을 만들며 발아래 무인들을 강타했다.
쫘악악!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
운남 고강족의 족장들에게 전해져 온 무공이 모자겸의 손을 통해 펼쳐져 북해의 무인들을 모조리 찢어 놓았다.
“하압!”
쩌어어엉!
날아올랐던 모자겸이 떨어지는 속도 그대로 지면을 찍어 누르자 거친 진동과 함께 지면이 폭발해 올랐다.
그 뒤를 이어 운남의 무인들이 북해의 선두를 맡고 있던 설련궁(雪蓮宮)의 무인들과 충돌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양쪽의 무인들이 부딪혔고 사방에서 난전이 일어났다.
병장기가 부딪히고 피가 튀어 올랐다.
“밀리지 마라! 놈들을 죽여라!”
설련궁주의 외침이 전장을 가득히 울렸다.
하지만 정천오존, 사도삼위에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강자인 모자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범처럼 날뛰며 포악하게 손을 휘두르는 그의 주위가 공터처럼 휑하니 변해 버렸다.
모자겸이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 육편들이 흩날리고 핏물이 가득히 뿌려졌다.
“저놈이 수장이다! 잡아라!”
설련궁주 냉추는 자신의 수하들을 학살하고 있는 모자겸을 향해 공격을 집중시켰다.
까아앙!
수십 개의 검이 날아왔고 모자겸의 손에 부딪혀 흉하게 꺾여 버렸다.
“흥! 고작 이따위더냐! 나는 운남의 대족장 모자겸이다!”
콰아앙!
집중 공격 따위는 모자겸을 상대하는 데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공격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모자겸은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대족장님! 적들의 좌우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수하의 외침에 모자겸이 황급히 주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전투를 이어 가는 사이 또 다른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러날 시점이었다.
“백 보 뒤로 물러나라!”
모자겸의 신호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운남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 후퇴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상대를 잃어버린 설련궁의 무인들이 멈칫했다가 곧장 뒤를 쫓아왔다.
“백 보입니다!”
“독을 살포하라!”
운남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공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독이었다.
모자겸의 외침에 횡진을 이룬 운남의 무인들이 품에서 독약 병을 꺼내 흩뿌렸다.
강바람을 등지고 있었기에 그들의 독공은 더없이 좋은 전술이었다.
“끄아아악!”
아무것도 모른 채 질주해 오던 설련궁 무인들의 선두가 독에 노출됨과 동시에 제 얼굴과 목을 잡고 비명을 질렀다.
서천맹의 전투 당시에는 사용하지 못했던 그들의 독공이 빛을 발하는 시점이었다.
“다시 백 보를 물러나라!”
하독과 동시에 이어진 퇴각.
운남의 무인들이 사용한 것은 천독곡에서 만든 장독(瘴毒)이었다.
독물들의 사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독인 만큼 그 효과는 탁월했다.
독이 뿌려진 이상 설련궁의 무인들은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장독의 해약은 오직 운남의 무인들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자겸은 무리하게 싸우지 않았다. 퇴각과 하독을 반복하며 적이 자신들을 쫓아오게끔 만들었다.
부딪칠 때는 적에게 확실한 죽음을 안겨 주었고 퇴각한 뒤에는 독을 뿌리며 자신들을 쫓는 적을 계속해서 괴롭혀 대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늘한 한기가 적의 뒤편에서부터 느껴져 왔다.
“……!”
그리고 적의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공격을 해 오기보다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걸어오는 것은 하늘빛 장삼을 걸친 사내와 하늘거리는 나의를 걸친 미부였다.
북천대공 백효와 빙궁주 미여령.
나른한 표정으로 산보하듯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모자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북천대공?’
신승을 죽였다는 그였다.
마음속에서는 호승심이 마구 끓어올랐지만 제갈휘문의 말이 떠올랐다.
북천대공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쓸데없는 피해만 볼 뿐이었다.
“모두 강을 건너 물러난다!”
모자겸의 외침에 운남의 무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모자겸은 그들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사이 백효가 천천히 북해의 선두에 섰다.
“운남이라……. 그대가 운남의 대족장인가?”
백효의 목소리는 그 표정만큼이나 나른했지만 눈빛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운남의 대족장 모자겸이다.”
“이거 반갑군……. 자네도 신승만큼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즐거움이라고?”
“그래. 강한 무인들과의 승부는 무척이나 즐거운 나의 유희이지.”
“지랄하고 있네. 전쟁에서 듣기에는 무척이나 거지 같은 개소리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