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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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7화
236화. 북소리를 울리다
마천이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에 서천맹의 천추관에 중원의 수뇌들이 모조리 모였다.
무황을 비롯해 사도 삼위, 태존과 검후, 운남의 대족장 모자겸까지…….
어중간한 문파의 수뇌들은 끼지도 못할 만큼 대단한 자들이었다.
그들 외에도 마천과의 마지막 결전을 위해 지난 열흘 동안 중원의 이름난 무인들이 서천맹에 집결했다.
쾅!
제갈상아는 중원 최고의 어른들이 모여 있음에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칠게 탁자를 때렸다.
전선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적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알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이 자식들이…….’
전선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병력을 따로 나누지 않고 횡진을 이룬 채 그저 진격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대규모의 진격을 할 때는 병력을 구분하여야 하는 법이다.
전황을 살피기 위해 척후를 두고, 적의 방어를 깨기 위해 선봉대를 만든다.
선봉대가 적의 전선을 무너뜨리면 중군이 움직이고, 이를 증원하기 위해 좌군과 우군을 두는 법이다.
또한 혹여 모를 패배에 대비해 후군을 두어 도주로를 만들기 마련인데, 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가히 일거(一去)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체가 단번에 움직인다.
그 말은 그들이 중원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뜻이리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고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음이었다.
또한 그녀가 적들을 막기 위해 세워두었던 진법이며 함정들은 애초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이들이 선두에서 모조리 때려 부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전략이고 전술이고 아무것도 필요 없겠군.’
제갈상아가 아랫입술을 씹어 물었다.
“마종. 대단한 자신감이군.”
지도 위에 붉게 표시된 지역을 바라보던 검후 이옥상의 미간이 깊이 찌푸렸다.
“저들이 이리 나온다면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검후의 말에도 제갈상아는 쉬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적이 움직임을 보였으니 마땅히 계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군사 된 그녀의 역할이었다.
우회함으로써 적의 후미를 칠 것인지, 아니면 중앙을 막고 좌우를 공격할 것인지.
다양한 계책을 만들어야 했으나 적의 기세가 너무도 강하다.
어떤 계책을 준비한다고 해도 문제는 결국 본진이었다.
저들에 의해 중심이 꿰뚫리고 본진을 잃어버린다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들은 전면전을 원하고 있어. 응하자면 서천맹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저들을 맞이해야 해. 하지만 그리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인데…….’
아랫입술을 깨문 제갈상아의 시선이 지도를 향했다.
대규모의 혈전이 벌어질 만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저들의 진격로 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군사는 뭘 고민하는가?”
“……!”
회의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모두의 고민을 훑어내 버렸다.
무황 위도혁.
회의장의 상석에 앉아 침묵하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모두 불러들이게.”
“예? 하지만…….”
“쯧쯧, 이미 알고 있음일 텐데?”
“…….”
무황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말했다.
“저들이 병력을 나누어 다른 곳을 공격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게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옳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고려되지 않은 선택은 무수한 피해를 낳을 것이 틀림없었다.
“저들의 주인이 나선 싸움이네. 곧장 이곳으로 올 것이야. 어쭙잖게 병력을 보내 간 보려는 짓은 하지 말게. 섶을 지고 불길 속에 뛰어들게 하는 것일 뿐. 굳이 쓸데없이 무인들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지.”
무황의 말이 옳았다.
또한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무릇 절대자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내린 결정은 반박을 불허한다.
군사된 입장에서 여러 가지 계책을 내놓기 마련이지만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때 회의장 문을 열고 학사 차림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숙부님!”
그는 뒤늦게 도착한 제갈휘문이었다.
제갈상아를 향해 가볍게 웃어준 그는 곧바로 무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는 무황이 출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인들을 끌어모아 서천맹으로 보내고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자라면 삼류 낭인의 손까지 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막바지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서천맹으로 온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그가 제갈상아를 향해 물었고,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전.
그것을 묻고 있음이다.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피해가 추산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미 슬픔을 경험해 본 뒤였다.
책사의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 싸움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어떤 방도를 세운다 해도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제갈휘문이 제갈상아를 향해 말하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 싸움은 전면전입니다. 해서 우리는 서천맹에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뭐라? 하면 맞이하겠단 말인가?”
“예. 저들의 움직임을 보면 전면전을 원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검후의 말에 제갈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 마천의 위협은 서쪽뿐입니다. 대막이 쳐들어 왔을 때는 서천맹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중원의 명운이 걸려 있는 싸움입니다.”
제갈휘문의 말이 모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대규모 전투가 될 것이고, 이 작은 성에 갇혀서는 제대로 된 전투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갈휘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나 전면전이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인데?”
태존의 말에 제갈휘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맞습니다. 모두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
“하나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싸움입니다.”
“음…….”
짙은 신음이 사방을 채운다.
제갈상아는 그런 자신의 숙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원래 숙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전의 그는 자신과 달리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그 많은 피해가 예상됨에도 전면전을 주장하는 것인가?
“하지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이?”
“저들의 수뇌를 죽여 사기를 꺾는 것.”
“수뇌를 죽인다고?”
“예. 마천은 중원과 다릅니다.”
“…….”
“마천의 무인들은 그저 장기판의 말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마종이라는 자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마종과 세주들이 죽으면 알아서 무너질 것입니다. 과거 진소청 공자가 환마 방유현을 잡았을 때 중원에 잠입해 있던 환영곡의 세작들은 마천을 버렸습니다. 저는 그 나머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천과 중원은 달랐다.
중원은 정천이든 사도련이든 서로 다른 가문의 연합체였다.
그렇기에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가주가 죽으면 소가주가 남고, 소가주가 죽으면 어떻게든 혈족을 살리려 한다.
하지만 마천은 달랐다.
구심점이 되는 존재 아래 뭉쳐 있기에 그 힘의 집중력은 그 무엇보다 강했다.
하지만 모두를 결속하는 구심점이 무너지면 쉽게 와해되어 제 살길을 찾아간다.
“마종 종리세. 그리고 그의 휘하에 네 명의 세주가 있습니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그들을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것입니다.”
“음…….”
“각 세주들의 무위는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사도삼위와 생존해 계시는 오존 어른들보다 강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특히나 태존은 전대 맹주이자 환마라 불렸던 방유현을 잊지 못했다.
그는 신승, 태존, 검존이 함께 싸워야 겨우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했다.
제갈휘문은 무황을 슬쩍 바라보았다.
“마종은 내가 맡도록 하지.”
무황이 종리세를 지목했으니 남은 것은 세주들뿐이었다.
“무황께서 나서주셨으니 이곳에 계신 분들이 나머지 네 명의 세주들을 막는다면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찌할 생각인가?”
검후의 물음에 제갈상아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협공…….”
너무도 조용했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회의장 전체에 전달되었다.
“맞습니다. 협공입니다.”
그의 말은 이제껏 스스로 강하다 생각했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 충분했으나, 어느 누구도 노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검후, 하오문주, 섬뢰, 운남 대족장. 네 분께서는 진소청 공자가 이끌던 별동대의 무인들과 조를 이루어 주십시오.”
“조를 이룬다고?”
“예. 그들을 잡기 위한 창이 되셔야 합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나서지 마시고 저들의 세주만 찾으십시오.”
제갈휘문의 말에 호명된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군사는 어찌하여 나를 제외하는가!”
태존이 짐짓 노기를 품고 외치자 제갈휘문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태존 어른.”
“…….”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습니다만 이번 전투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됩니다.”
“허니 더더욱…….”
“태존 어른!”
제갈휘문이 태존을 지그시 응시했다.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음…….”
제갈휘문의 말에 태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북해빙궁주와의 싸움에서 허용했던 현음신장(玄陰神掌)의 독기를 아직 온전히 몰아내지 못했다.
싸우고자 하는 마음은 다른 이들과 진배없었으나 여건이 되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태존 어른, 이번 싸움은 세주들과의 싸움이 핵심이기는 하나 전부는 아닙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나머지 무인들의 전면전입니다. 그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알겠네.”
태존이 굳은 얼굴로 대답하자 제갈휘문이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소련주.”
“예, 대군사.”
“오면서 진 공자가 병상에 있다 들었소.”
“예.”
“소련주께서는 태존 어른을 도와 무인들의 선봉장이 되어주시오.”
“알겠습니다.”
혁련휘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불협화음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명이 떨어졌으니 응당 따라야 할 일이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동해 저들을 맞이합니다.”
제갈휘문은 지도 위에 한 곳을 찍었었고, 모두가 그곳을 바라보았다.
명산평(名山平).
사천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 * *
둥, 둥, 둥!
북소리가 명산평을 진동시켰다.
횡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섰다.
중원의 모든 문파가 비워졌고 역사상 가장 많은 무인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고 명산평을 울리던 북소리가 그쳤다.
마천.
산과 들을 뒤덮으며 나타난 그들은 중원 무인들과 대칭을 이루듯이 백 장여의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마종.”
마부를 자청한 흑묘의 부름에 사두마차(四頭馬車)에 타고 있던 마종이 휘장을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중원과 마천.
길게 늘어선 무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
마종 종리세의 느릿한 시선이 중원 무인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위도혁.’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흑색 장포를 두른 한 명의 노인.
멀리 있어도 그 힘이 여실히 느껴지는 오만한 무인.
무황 위도혁.
그의 관심사는 오직 ‘그’뿐이었다. 그를 넘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늘을 거슬러 되돌아온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중원정벌이…….
‘많이 늙었군.’
십 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과거 넘지 못했던 그의 강대함을 생각하자 전신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것 같았다.
종리세와 마찬가지로 무황 역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크크크…….”
종리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
“흑묘.”
“예, 마종!”
“뭘 하고 있지?”
“…….”
“적이 앞에 있지 않느냐.”
“……!”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명을 받듭니다!”
흑묘의 외침과 함께 북소리가 다시금 전장을 가득 채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