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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24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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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24화

청명을 비롯한 청무와 청문자는 부대를 삼 대로 나누고 각기 하나씩 맡았다.

점창십삼검 중 운풍과 운학이 청무자에 배속되었고, 나머지는 각 대에 셋씩 배치했다.

각 부대의 인원은 오십.

각고의 노력으로 키운 명자배까지 함께하니 점창의 최정예가 모두 나서는 출전이다.

백 년 만에 나서는 산문이었으나 그들의 출전은 조용했다.

배웅도 없었고 이별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것은 오직 전의.

다시는 침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죽음이 필요하면 목숨을 내어줄지언정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진 않을 생각이다.

 

점창에서 무정현까지의 거리는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무정현은 칠절문의 최대 지부 무룡단이 위치한 학경에서 불과 한 시진 반 거리였으니 지리상으로는 분명 칠절문의 영향이 훨씬 큰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점창의 영향권 아래 무정현이 놓여 있던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점창의 검이 있고 점창의 혼이 있었기에 천하가 무정현을 점창의 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산문을 나서 신법을 펼쳐 질주하던 청무자는 남화(南華)에 도착해서야 신형을 잠시 멈추었다.

거의 두 시진 동안 달렸기 때문에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거친 호흡을 달래느라 애쓰고 있었다.

사형인 청명자와 사제인 청문자는 각기 방향을 바꿔 영인과 학경을 목표로 전진하는 중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무정과 영인, 학경에 있는 칠절문의 전력을 소멸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전력을 다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무정현에 들어온 비룡단은 오 년 전 무단으로 침입해 숭의문을 도륙했던 선룡단과 달리 패악을 부리지 않았다.

칠절문이 점창의 땅 무정현에 들어온 이유는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무정현의 상권을 하나씩 장악하며 조금씩 점창의 영향력을 깎아내리는 작전을 폈다.

점창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더욱 괴로운 행동이었다.

차라리 선룡단처럼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패악을 저질렀다면 천하는 칠절문의 행위를 질타했을 것인데, 조용히 영역만 확장하자 세상의 눈은 점창의 행동을 주목하는 데 그쳤다.

일 년 동안 점창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세상은 점창이 칠절문의 무력에 굴복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정현을 칠절문의 영역으로 선 긋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오 년 전부터 서서히 벌어진 일이었다.

오 년 전 선룡단의 패악을 끝까지 징치하지 못하고 점창이 봉문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자 무림은 무정현의 싸움에서 칠절문이 승리한 것이라 판단했다.

 

“저기구먼.”

“사숙, 지금 하시겠습니까?”

“어차피 해야 될 거라면 기다릴 필요가 있겠어?”

“그건 그렇지만 이동하느라 제자들의 기력이 많이 고갈된 상탭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맞는 말이군. 그럼 반 시진만 쉬도록 하지.”

운풍의 건의에 청무자는 두말하지 않고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본산의 대사형 운풍.

자신이 사숙의 위치에 있지만 운풍은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다.

더군다나 그의 무력은 운자배에서 가장 강력했고, 성품이 곧고 깊어 제자들의 신망이 대단했다.

청무자는 제자들이 바라보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그의 말을 존중해 주었다.

운풍의 지시에 제자들이 정연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자 청무자는 멀리 보이는 장원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대지만 족히 천 평에 가까웠다. 중심에는 삼 층짜리 전각이 있었고 그것을 둘러싸듯 세워진 건물이 다섯 채나 있었다.

환각이라 불리는 장원이다.

비룡단의 삼 대라면 거의 백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다.

그런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하려면 저 정도 규모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켜볼수록 이상했다.

지금은 오시.

한창 일할 시간이라 장원을 비웠다 해도 움직이는 무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운풍, 이상하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기습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직접 확인하고 오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하게.”

검을 비틀어 쥐는 운풍을 향해 청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다.

이렇듯 급속 이동한 것은 칠절문의 본단 전력이 무정현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게 함이었을 뿐, 비룡단을 기습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점창의 힘을 처음으로 세상에 노출하는 순간이니 오직 순순한 무력으로 당당하게 승부할 생각이었다.

사형들에게 성질이 급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성질 탓에 검조차 정풍을 닮았다며 질책을 당하기 일쑤였다.

사문이 업신여김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 젊은 시절에는 일 년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닌 청무자였으나 질책을 하면서도 사형들은 언제나 그의 편에 서서 중벌이 내려지는 것을 막았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많았던 싸움.

지고 나면 언제나 찾아오는 절망과 자괴감으로 온 밤을 하얗게 새웠다.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러나 그 절망에 지쳐 포기하기에는 그의 집념과 의지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선 그는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은둔 속에서 뼈를 깎는 수련을 했고, 분광과 회풍이 점창으로 돌아온 후에는 침식마저 잊은 채 검에 미쳤다.

그 세월이 무려 이십 년이다.

이제 그 정풍검이 드디어 오늘 세상을 향해 뽑혀 나온다.

 

한 손에 검을 든 운풍은 마치 산보라도 나온 사람처럼 천천히 걸어 호문(虎問)이라 적혀 있는 환각의 정문에 도착했다.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았다.

어차피 정문을 지키는 무인이 없었고, 안쪽으로도 사람이 보이지 않아 소리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기파를 쏘아 확인했으나 삼 장 너머까지 주변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장원이 완전히 비었다는 걸 의미한다.

정문을 통과해 한참을 들어가자 노인이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운풍이 근처까지 다가서서야 비질을 멈췄는데 굽은 등이 청허자의 것과 비슷했다.

“누구요?”

“여기에 칠절문 사람들이 묵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어디 있소?”

퉁명한 질문에, 극도로 절제된 공손한 되물음이 운풍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굵고 작았으며 부드러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노인의 목소리도 슬며시 변했다.

“떠났소. 오늘 아침에.”

“떠나다니요?”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그들을 만나기 위해 먼 곳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떠났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오. 혹시 왜 떠났는지 모르십니까?”

“난 아무것도 모르오. 잡일이나 하는 사람이 그들의 행사를 알 수가 있나. 하지만 노임까지 모두 계산해 주고 갔으니 아마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구려.”

노인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다시 비질을 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하인의 모습.

그 모습을 운풍은 한참 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호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보가 샜다.

아니, 정보가 노출됐다기보다는 칠절문의 세작들이 점창의 움직임을 미리 포착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극도로 조심했고 최대한 빨리 움직였는데도 비룡단이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버린 걸 확인한 순간 긴장감이 확 밀려들었다.

무서워서 숨은 것이 아니라 반격하기 위함이 틀림없으니 점차 마음이 빨라져 호문을 나설 때는 벌써 유운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 환각이 보이는 유능에서는 청무 사숙과 선봉대가 아무런 경계도 없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먼 길을 달려오느라 그들은 극도의 피로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기습이라도 받게 된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운풍은 급하게 신형을 날리며 내력이 담긴 휘파람을 연신 불어댔다.

그랬기에 그는 비질을 하던 노인이 호문까지 나와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도착했다고?”

“예, 방금 일대주한테서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클클. 그놈들, 꽤나 당황했겠군.”

은빛 머리칼을 곱게 빚어 넘긴 노인이 중년 사내의 보고를 받은 후 쓴웃음을 흘려냈다.

비룡단주 도절 상후.

칠절문이란 이름은 전왕 혁기명이 강호에 나와 의형제를 맺은 일곱 명의 무인을 총합하여 만든 것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도절 상후였다.

칼 하나만으로 사천과 섬서를 넘나들며 불패의 신화를 쌓아올린 절정고수.

비룡단은 칠절문 삼대전투부대 중 하나로서, 선룡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한 무력 단체였다.

“헤매고 있을 테지?”

“그럴 겁니다. 도나 닦던 자들이 언제 이런 걸 해봤겠습니까?”

도절이 불쑥 던지자 앞에 있던 전무대주 호천성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점창의 행사는 그런 웃음을 짓게 만들 만큼 허술했다.

칠절문은 일 년 전 무정현에 들어오며 제일 먼저 점창과 가장 가까운 상현과 우창에 비각의 무인들을 풀어놨다.

선룡단을 부순 점창의 저력이라면 반드시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쟁의 기본은 전력의 대등이다.

전력 차이가 별로 없다면 전술과 전략이 승패를 결정짓겠지만 압도적인 전력 차이는 무조건적인 승패를 불러온다.

따라서 칠절문은 점창을 수시로 감시하며 그들의 출전 시기를 가늠해 왔다.

아무리 비룡단이라도 점창의 주 전력과 고스란히 부딪치면 무조건 전멸한다고 봐야 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점창의 주력이 산을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환각을 비우고 복우산으로 이동한 것이다.

“비각은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나?”

“그렇습니다.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청명자와 청문자가 이끄는 부대가 영인과 학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놈들은 우리 지부를 노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그곳에도 정보가 갔겠지?”

“우리와 동시에 갔으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원군은?”

“쌍로께서 오군과 함께 오시는 중입니다. 반 시진이면 도착하실 겁니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만.”

“단주님 말씀대로 점창은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전력을 분산하다니 가소로운 짓입니다. 이곳으로 온 놈은 오십 명. 그 정도면 단숨에 도륙할 수 있습니다.”

“과신은 금물이다. 오 년 전 선룡단은 점창 무인 단 열 명에게 삼대가 박살 났다. 벌써 잊었느냐?”

“그때는 금마수 어른께서 자리에 없었잖습니까. 더군다나 쌍로와 오군께서 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 전력이면 그들을 상대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과한 걱정에 대한 반응은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법이지만 호천성은 음성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기야 그의 자신감이 과한 것은 아니었다.

점창에 당한 삼마수는 자신과 동격인 자들이었다. 그 정도의 전력으로 장로를 둘이나 소멸시켰으니, 쌍로와 오군이 가세하게 된다면 전력은 그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이 모시는 도절 상후는 은마수가 다섯은 협공해야 상대가 가능한 절정고수이고, 칠절문의 호법을 맡고 있는 쌍로나 오군 또한 사천을 들었다 놓을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비룡단주 직속 부대 혈룡이 모두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혈룡은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의 무력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강한 자들이었다.

오 년 전, 팔이 잘린 은마수가 돌아와 점창장로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고 증언했으나 칠절문이 점창을 치지 않은 것은 무력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의 이목.

명분 없이 전통의 명문 점창을 도륙해 버린다면 팽팽하게 맞선 작금의 정세에서 무림의 세력들은 칠절문을 공적으로 삼아 변화를 꾀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철마수가 점창의 속가 숭의문의 씨를 말려 버림으로써 명분에서 밀렸고, 접경지대인 마폭에서 당문과 분쟁이 생기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이 발생했다.

칠절문이 일 년 전에야 운남으로 다시 진출한 것은 그런 복합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칠절문이 일 년 동안 점창을 예의 주시하며 기다린 것은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얻기 위함이었다.

명문 점창은 세상의 이목 때문이라도 무정현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칠절문은 그것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죽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절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강호의 오래된 여우 도절.

신중한 성격으로 매사에 빈틈을 보이지 않았으며 한 번 결심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조차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우리도 그리해야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청문자도 아니고 청무자라니 조금 아쉽기는 하군요. 이왕이라면 점창 최고수라는 청문자를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자들이 나를 우습게본 게지.”

“청무자는 점창장로 중에서도 무력이 약하기로 소문난 자입니다. 단주님이 계신 걸 몰랐을 테지요. 알았다면 분명 청문자를 보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본단에서는 이번에 끝장을 볼 생각인 모양입니다. 단주님이 계신데 쌍로와 오군을 보낸 걸 보면 싸움이 끝나는 대로 곧장 점창산으로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호 대주는 머리가 좋아. 이틀 후 검절께서 십오천강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오신다고 했으니 그럴 가능성도 크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이제 슬슬 사냥 준비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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