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9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9화
청허자는 청운이 가는 마지막 날 기어코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영원한 헤어짐.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가사상의 근본이니 아쉬워할 것도 없으련만 청허자는 방 안에 틀어박혀 청운의 마지막을 쉽게 보내지 못한 채 억눌린 울음만 지었다.
수십 년을 함께한 사제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이틀째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침묵에 잠긴 채 식사마저 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점창을 이끄는 최고 배분의 존재이기에, 이틀이 지나자 장로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사형, 들어가도 되오?”
“사제, 혼자 있고 싶네.”
“들어가겠습니다.”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방문이 열리며 청명자가 불쑥 들어섰다.
자신마저 그냥 돌아서면 더 이상 청허자를 밖으로 나오게 만들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들어선 후 책상 맡에 멍하니 앉아 있는 청허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힘드신 모양입니다.”
“끄응.”
청허자의 앓는 소리에 청명자가 슬픈 눈을 만들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은 눈에서 나타난 연민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마음을 왜 소제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사형께서는 점창의 최고 어른이십니다. 제자들이 모두 사형을 바라보고 있는데 식사마저 안 하시고 이 좁은 방에 틀어박혀 계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네.”
“안 됩니다.”
“사제!”
“돌아가신 청운 사형의 눈을 보시지 못했습니까. 그 눈에 담긴 것 말입니다.”
“……보았지.”
“봤다면 이러실 수 없습니다. 청운 사형의 눈에 담긴 것은 오직 하나, 분노였습니다. 점창을 이리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 그런데도 사형께서 이리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벌써 일흔여덟이야.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될 나인데 이리 멀쩡하게 살아 있고 대신 청곡과 청운을 보냈네. 사제, 내가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압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지켜만 보았잖습니까. 하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모든 제자가 사형을 지켜보고 있단 말입니다. 이젠 나가셔야 할 때입니다.”
“조금만 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나?”
“안 됩니다!”
청허자가 처연한 눈으로 바라봤음에도 청명자는 칼같이 말을 끊어버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앞으로 다가가 청허자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정검 청무자.
점창십장로 중 여덟째로서 청운자의 시신이 점창에 왔을 때 나타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선유각에 모습을 보인 것은 그로부터 오 일이 지난 후였다.
젊은 시절 사문의 몰락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던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점창을 얕보는 자에게 가차 없이 검을 빼 들곤 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기백을 보였다.
그랬기에 그는 여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이해야 했다.
진산절기를 잃어버린 사문의 절기만 가지고는 무림을 종횡하는 강자들을 꺾을 수 없었으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의지와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숙들을 비롯해 사형들의 무서운 질책과 전대 장문인들의 문책 속에 수많은 고립과 외로움을 맞이했어도 점창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호탕해서 놀기 좋아하고 사형들과 달리 게을러 수련하는 걸 싫어해 청자배 중 가장 무력이 약한 청무자였으나 점창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컸다.
하지만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의지만으로는 결과를 바꿀 수 없고, 그런 행동이 점창을 더욱 위축시킨다는 걸 안 순간 그는 구름에 닿는다는 점창산의 끄트머리 무영동에 처박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강해지고 싶었다.
비록 진산절예를 잃어버렸다 해도 남아 있는 비기를 완벽하게 구사해 다시는 사문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갈았다.
그것이 청곡자가 나타나기 오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청곡자에 의해 사일의 정수가 전해진 순간부터 다시 오 년 동안 무영동에서조차 사라져 분광과 회풍에 목숨을 걸었다.
그의 검은 점창에서 피어난 아홉 개의 빛 중 하나였고, 그 빛은 청문자에 이어 가장 강력했다.
선유각에는 장문인 청현자와 청허자, 그리고 청우자가 앉아 있었는데 청무자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자 침중해진 시선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은 곤혹스러움.
청무자는 사형들의 시선을 차갑게 뿌리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부터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없는데도 장례를 치렀던 말이오?”
“그럼 어떡하나, 이 사람아. 연락이 안 되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리 야박하단 말이오?”
청우자의 대답에 청무자의 입에서 원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떨리는 음성.
그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장문인, 나를 보내주시오.”
“사형, 고정하시지요.”
“이번 일에 나설 사람은 내가 적격이란 걸 장문인도 아시지 않소.”
청무자가 청현자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던졌다.
나이는 불과 네 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청현자는 언제나 청무자를 어렵게 대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현자는 점창을 책임지고 있는 장문인이기에 청무자의 불같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마주 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사형의 검이 얼마나 무섭게 변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분광을 넘어 회풍을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사문을 위해 정말 잘된 일입니다.”
청현자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점창에 날개를 달아 창천을 달려가는데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청문자였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무서운 진전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청무자였다.
그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청현자는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사형,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뭐가 아니란 말이오?”
“칠절문은 그 일이 있은 후 무정현에서 사라졌습니다. 사형이 가셔도 이제 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소. 직접 사천으로 가겠소.”
“더더욱 안 될 말씀입니다. 무정현에 들어온 칠절문의 전력은 일 할도 안 되는 것이었어요. 사천으로 간다는 것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럼 장문인께서는 이대로 덮자는 말씀이오?”
“사형, 어릴 적에는 제가 무척이나 유약해서 걱정을 많이 끼쳐 드렸지요?”
“험!”
부드러운 말투로 청현자가 입을 열었다.
질책 어린 호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응.
하지만 그것이 청무자의 입을 더 이상 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점창산에 빛이 물들고 돌풍이 솟구치기 시작한 지 벌써 삼 년이 지났군요. 그 숫자가 하나씩 늘어 아홉이 되는 순간 장문직을 맡은 소제는 진정 감격에 겨워 몸을 바로 하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문의 영광이 목전으로 다가온 것만 같아 밤잠을 설치면서 기뻐하고 즐거이 산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중 청운 사형이 유명을 달리하셨고, 청면 사형께서는 기식이 엄엄하게 되었어요. 저는 가슴이 아파 사형이 오시기 전까지 이 방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겠다는 것 아니오. 가서 점창을 건드린 대가를 열 배, 스무 배로 받아오겠소.”
“사형의 마음을 소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나 지금 칠절문과 승부를 본다면 사문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이긴다는 보장을 못합니다. 점창이 날개를 펴려는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끙!”
“그러니 사형, 소제에게 맡겨주세요!”
“어쩌실 생각이시오?”
“점창의 새로운 역사는 오 년 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오 년이라면 점창은 창천으로 비상하게 될 겁니다. 오 년 후 반드시 칠절문을 사천에서 사라지게 만들 테니 저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정말이오?”
“저 역시 점창의 영광이 한낱 쥐새끼들에게 짓밟히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동안 사형께서는 제자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점창의 누구 하나라도 강호인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강하게 키워주십시오.”
“사형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사형들 생각도 장문인과 같습니까?”
청무자가 좌중에 앉아 있는 장로들을 쓸어보며 묻자 청현자의 얼굴에서 쓸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모두 같은 생각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그리하리다. 사십 년을 참아왔는데 그까짓 오 년을 못 참겠소.”
옷을 털고 일어나는 청무자가 눈에 담고 있던 분노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장문인의 복수에 대한 의지는 눈에서 읽을 수 있었기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분노를 숨겨야만 했다.
장문인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 칠절문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된다면 점창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청현자의 말.
분광과 회풍이 돌아온 이상 점창이 아끼고 아껴야 할 최대 무기는 시간임이 분명했기에 그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의 분노, 그의 의지.
그는 장문인이 약속했던 오 년 동안 점창에 비수를 꽂은 칠절문을 생각하며 회풍의 정수를 터득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황계.
풍운대를 수련시키기 위해 장문인의 영에 따라 점창의 비처가 된 곳이었다. 아름다운 계곡과 연이어 펼쳐진 바위군 넘어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가을이 되면 온통 노랗게 변한다 해서 황계라 불린다.
그 황계에 청문자가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에 뜬 축시 무렵이었다.
먼저 연락을 받았는지 맏이인 운곡을 비롯해서 풍운대 전원이 둥그렇게 둘러싼 형태로 서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서는 슬금슬금 긴장감이 새어 나왔다.
청운자와 제자들의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진 이상 점창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인내의 한계점.
사문의 모멸은 약함으로 인해 생긴 것이나 지금의 점창은 다르다.
그랬기에 그들은 청문자의 출현이 그들의 하산을 말하려 함인 줄로 짐작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풍운대의 앞에 선 청문자는 그들을 한동안 매섭게 노려보다가 풍운대의 대사형인 운곡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성은 건조하고 냉랭해서 찬바람이 불 정도였다.
“운곡, 지금의 점창을 말해보라.”
“무슨 말씀이신지…….”
“칠절문에 당한 지금의 점창을 말해보란 말이다!”
사숙의 질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때서야 알아들은 운곡의 얼굴에서 곤혹스러움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곤혹스러움은 금방 가라앉았고, 대신 청문자를 향해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끄러움과 분함이 있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부끄럽고 분하느냐?”
“그렇습니다.”
“나 또한 그러하다.”
운곡을 바라보던 시선이 돌고 돌아 풍운대 전체를 휘돈 후 청문자의 입에서 가볍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는 금방 자세를 가다듬고 시선을 운곡에게 주었다.
“장문인께서는 금일부로 제자들의 하산을 막는다는 영을 내리셨다.”
“그게 무슨 뜻인지요? 칠절문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점창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산을 막으십니까? 저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직 사문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곡이 금방이라도 반박하려는 듯 입을 열려 하자 청문자의 말끝이 올라갔다.
“그래서 장문인께서 하산을 막으신 것이다. 점창은 향후 오 년 동안 전력으로 힘을 키운 후 칠절문을 칠 것이다. 장로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니 이의를 달지 말라.”
“으…….”
풍운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나왔다.
당장이라도 복수를 하기 위해 점창 전체가 움직일 것이라 판단했는데 그리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들어섰다.
장로들과 다른 젊은 무인들.
그들은 사문의 모욕을 참아내며 시간을 벌겠다는 장로들의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곧 자세를 추스르고 청문자의 입을 주시했다.
하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풍운대 전체를 모이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청문자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풍운대의 표정에서 일그러짐이 어느 정도 펴졌을 때다.
“하지만 오 년 후에도 너희가 그 싸움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나선 것은 운검이었다.
운검의 나이 스물여섯.
분광십팔수검의 경지가 절정을 넘었고, 벌써 사일검이 창천을 바라보고 있어 점창십삼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성장한 상태였다. 그 무력의 진전은 가히 폭발적이라 볼 정도이다.
운호는 그를 황계에 와서 처음 만났다.
오 년 만에 처음 봤기 때문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먼저 다가와 운호의 어깨를 다정스럽게 두드려 줘서 그가 둘째 사형임을 알 수 있었다.
운여의 말로는 무공에 미쳐서 그런지 말수가 극도로 적고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 자신도 한 달 만에 본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청문자의 말에 대뜸 나서며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문의 싸움에 가담하지 못한다는 청문자의 말은 그의 과묵함을 깰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청문자는 싸늘한 안색으로 운검을 쳐다볼 뿐이다.
“운검 너는 사숙들이 죽고 다친 이유를 아느냐?”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가르쳐 주마. 네 사숙들의 분광은 완벽하지 못했다. 분광은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면 내공의 소모가 극심해서 강자와 싸울 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랬기에 청운 사형이 목숨을 잃고 청면 사형이 다친 것이다.”
“사숙, 점창의 싸움에서 저희가 빠지는 것과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너희를 위해 사문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느냐? 너희는 분광과 회풍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이곳 황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두 번 다시는 점창의 어깨에 오욕을 올려놓지 않게 만드는 것이 너희의 사명이란 말이다. 그래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느냐?”
“사숙!”
“더 이상 말하지 말라. 풍운대는 내일부터 분광과 회풍에 진입한다. 회풍을 볼 때까지 너희는 여기 황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죽기를 각오하고 수련해야 할 것이다. 점창의 일원으로서 오늘 우리가 당한 수치를 갚고 싶다면 오 년 내에 파천을 얻어라!”
사일검법.
점창의 최후 비전으로 모두 아홉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초식이 경지에 달할 때마다 전삼식을 태산, 중삼식을 창천, 후삼식을 파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파천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점창의 역사상 단 한 명, 만천자가 유일했다.
그는 사일검의 최후 초식 후예사일로 무림에 태양을 베는 검을 선보였고, 천왕성의 무림 정복 야욕을 꺾으면서 천하제일인으로 우뚝 섰다.
사일검의 요체는 쾌(快), 변(變), 역(力).
전삼식인 섬전(閃電), 풍영(風影), 월파(月破)는 속도를 근간으로 하는 극쾌가 중심이었고, 중삼식인 낙영(落英), 비화(飛花), 무영(無影)은 수많은 변화를 나타내는 초식이었다. 반면 사일검의 정화로 꼽히는 후삼식 분광, 회풍, 사일은 검신일체의 힘을 원천으로 삼는데,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익히기가 까다롭고 경지에 도달하기가 극히 난해했다.
청운자와 청면자가 분광을 시전하면서 내공이 급격히 소모된 것은 검과 몸이 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신일체의 기본은 원천지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자연의 섭리를 어길 수는 없는 법. 칠십에 가까운 그들의 몸은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천의 수많은 둔덕 사이를 헤매다가 이슬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청문자는 후예사일을 보고 말겠다는 의지를 접고 풍운대와 같이 생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보다는 점창이 우선이었고, 풍운대가 반석에 올랐을 때 점창은 무림의 역사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이 사문의 결정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밤잠을 잊어가며 풍운대를 가르쳤다.
운호를 제외한 일곱의 풍운대는 모두 창천의 경지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분광과 회풍을 가르치는 데 큰 어려움은 따르지 않았다.
오성이 뛰어난 기재들을 선별했고, 사문의 기보인 태청단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완벽한 체질로 변한 풍운대는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파천을 향해 나아갔다.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점창제일검이며 분광과 회풍이 절정에 오른 청문자가 아닌가.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더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 숙수가 있어야 황홀한 음식이 나오듯 무예 또한 그러하다.
청문자는 자신이 익히면서 거친 시행착오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풍운대가 만들어낸 오류들을 금방 제어했고, 내공의 흐름과 초식의 변환을 상세히 설명해 지름길로 안내했다.
분광과 회풍의 심오한 무리를, 강론서부터 시전까지 일일이 몸소 보여주며 풍운대를 이끌었기에 삼 년이 지나면서부터 황계에 빛이 흘러나왔다. 오 년이 지나자 완벽하게 변한 일곱 개의 빛 무리가 황량한 암석군을 물들이며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