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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18화

“철마, 네가 본 것이 저것이냐?”

“예, 형님. 그렇습니다.”

“음…….”

은마수가 뒤늦게 합류한 동마수의 상처를 힐끔 쳐다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동마 너도 저것에 당했느냐?”

“똑같군요. 청면자가 시전한 것과 똑같습니다. 다만 훨씬 강합니다. 비슷한데 위력이 월등하게 다릅니다.”

“알았다.”

청운자를 따라 춘경장의 정면을 나선 은마수가 어느새 원형진을 구축한 귀곡대를 주욱 둘러본 후 눈을 지그시 오므렸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청운자의 검에서 뿜어진 빛 무리의 실체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마수가 현란한 수신호를 보낸 후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자 귀곡대가 사공진을 구축하며 청운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귀곡대만으로 구성된 사공진은 오 인 합격술이 합쳐져 원진을 구성하는데, 강력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진이다.

은마수의 명령에 따라 발동된 사공진은 돌개바람이 불어닥치듯 청운자를 가둔 채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공격조와 방어조가 구분되었고, 쉴 새 없이 연환 공격이 이루어지도록 구성되어 청운자의 신형은 진한 구름 속에 갇힌 달처럼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곡대원들이 하나씩 전장에서 튕겨져 나오며 피를 뿜어냈다.

전장에서 튕겨져 나온 귀곡대의 육신은 최소 세 군데 이상의 검상을 당했는데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어서 목숨을 부지한 자가 드물었다.

사공진이 격파된 것은 채 이각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스물다섯으로 시작된 사공진은 열일곱이 바닥에 쓰러지자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 멈춰 섰다.

은마수와 철마수, 그리고 동마수가 한꺼번에 나선 것도 그때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어이없음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는데 병기를 꺼내 든 손이 잔뜩 굳어 있었다.

“왜 실력을 숨겼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불과 반 시진도 못 쓰는 검법이라…….”

자신의 쌍단창을 좌우측으로 나뉘어 역창시킨 은마수가 기가 막힌 얼굴로 청운자를 바라보았다.

단 이각 만에 열일곱을 주살한 청운자의 무력은 자신도 모르게 도주까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가공한 것이었다.

수하들이 죽어나가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도 전장에 가담할 생각조차 못했다.

절대고수들에게서만 나타난다는 거대한 위엄.

청운자의 검에 나타난 위엄은 그런 유의 것이었기에 두려움에 젖은 온몸이 떨려왔다.

장내에 남은 자는 삼마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귀곡대와 세 명의 파령대가 전부였다.

눈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노인에게 무정현에 들어온 전력 중 가장 강하다는 귀곡대가 무려 스물둘이나 당했다. 거의 전력의 반을 청운자에게 잃은 것이다.

점창의 장로가 이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니 진정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소문난 점창장로의 무력은 절대 자신보다 위가 아니었고, 실제로 비슷한 무력을 지닌 단천도가 십오 년 전 점창의 장로 중 하나인 청무자를 꺾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무자가 점창장로 중에서 무공이 약한 축에 속한다고는 하나 청문자를 제외한다면 점창장로 대부분이 비슷한 무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청운자를 만났어도 지금까지 조금의 두려움도 지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우뚝 서서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청운자는 몰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선보여 자신의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그가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선 것은 남은 귀곡대가 포위망을 풀고 완전하게 뒤로 물러났을 때다.

청운자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헉헉……!”

검에 의지해서 신형을 고정시킨 청운자의 숨결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청운자가 보여준 가공할 검법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한 시진 가까운 전투에서도 끄떡없던 청운자가 불과 이각 만에 내력이 고갈된 것은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위력이 강한 검법을 연이어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귀곡대원들은 청운자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으나 최소한 자신과 동마수, 철마수는 그리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공방이 펼쳐지는 순간 청운자의 목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뭐하나, 공격하지 않고!”

은마수가 뒤로 물러난 귀곡대를 향해 다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은마수를 비롯해 수뇌부가 앞으로 나서자 뒤로 물러나 관망하고 있었다. 막상 은마수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내려지자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싸움이 시작될 때마다 주저 없이 창을 뿌리던 그들이었지만 청운자의 가공할 무력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귀곡대가 움직인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록 죽음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이었음에도 그들은 은마수의 차가운 손길에 따라 단창을 꺼내 들고 청운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죽음을 넘어선 책임과 의무.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어 불나방처럼 화려하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했다.

번쩍번쩍!

거칠어진 숨결을 고르던 청운자의 몸이 유운신법을 펼치며 귀곡대 사이를 누볐다.

환상적인 빛 무리의 향연이 어둠을 밝히며 귀곡대의 창을 부쉈고, 붉은 피를 땅바닥에 뿌렸다.

하나씩 쓰러지는 귀곡대의 신형은 허수아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들은 쓰러진 후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청운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것도 그들이 쓰러진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귀곡대 사이로 움직인 삼마의 협공이 청운자의 분광을 뚫고 들어와 가슴과 옆구리, 그리고 왼쪽 팔을 반이나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으… 헉… 헉…….”

비명과 거친 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땅바닥에 검을 짚고 선 그의 눈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은마수에게 향하고 있었다.

왼쪽 팔이 고정되지 못한 채 덜렁거렸고, 가슴과 옆구리에서 새어 나온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대신 웃음을 흘려냈다.

“은마수, 내가 말했지. 너희는 내 손에 모두 죽는다.”

“이 개 같은 늙은이!”

“한 놈은 살려줄 테니 가서 전왕에게 전해라. 운남은 맛있는 먹잇감이 아니라 지옥이었음을.”

“으…….”

천천히 말을 끝낸 후 자신의 왼팔을 잘라 버리는 청운자를 향해 은마수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신음 소리를 뱉어냈다.

마지막 승부를 위해 자신의 팔을 잘라 버리는 독심.

자신도 청운자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똑같이 할 것이지만 막상 눈으로 보게 되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죽음을 담보로 한 마지막 승부를 위해 허리를 구부렸던 청운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검을 치켜들었다.

청면자에게 극심한 타격을 받은 동마수는 성치 않은 몸으로 공격하다 왼쪽 가슴을 찔려 일어서지 못했다. 은마수와 철마수만이 좌우로 갈라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금마수가 직접 이끄는 천룡대를 제외한 선룡단 전원의 몰살.

어이없는 사실에 은마수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불과 열 명의 점창 무인으로 인해 선룡단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니 살아남는다 해도 대형인 금마수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청운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선 파란 불길이 담겨 활활 타올랐다.

“너를 죽인 후 조각조각 찢어서 점창에 보내주마!”

고함과 함께 은마수가 급속 전진하며 역으로 들고 있던 탈명창을 회전시켰다.

끼익끼익!

회전된 탈명창에서 올빼미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괴음이 흘러나오며 원형 방패를 형성했다.

하얀 구체의 비상.

탈명창은 원반이 되어 청운자를 향해 폭사해 나갔는데,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왼쪽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파악!

스침과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럼에도 청운자는 그대로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따라 들어오는 철마수와 은마수를 향해 폭발적으로 쇄도하며 마주 부딪쳐 나갔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잡겠다는 심산.

청운자의 검에서 눈부신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오며 한꺼번에 철마수와 은마수의 신형을 덮었다.

철마수와 은마수도 이번에는 이전처럼 피하지 않고 내력을 극도로 끌어내어 도기와 창기를 펼쳐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동안 기습 공격을 하면서 보여주던 무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칼과 창이 청운자의 검과 수많은 불꽃을 튕기며 충돌했다. 마치 연작놀이를 보는 것처럼 화려했다.

콰직! 팍! 파앙!

무서운 속도의 충돌이 끝나고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철마수의 전신은 열두 군데에 검상을 입어 철저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숨이 끊어졌다. 은마수 또한 왼팔이 잘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는데, 구멍 난 왼쪽 옆구리에서 피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파란 눈으로 청운자를 노려보았다.

숨길 수 없는 적의.

땅에 떨어진 창을 주워 적의 심장을 쑤시고 싶어 하는 적의가 그의 새파란 눈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대신 그와 반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청운자의 입이 열렸다.

가슴을 꿰뚫은 탈명창이 앞으로 쓰러지는 것을 막았고, 오른팔에 든 검이 땅에 박혀 그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반쯤 잘린 목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목줄기를 가로막은 피로 인해 그렁대며 울려 나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전신이 피로 물든 청운자.

육신에 담긴 살이 해어질 대로 해어져 뼈가 드러났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그가 앉은 주변은 핏물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은… 마… 수, 점창을 우습게보지 마라. 운남은 점창의 땅이다. 앞으로 점창의 허락 없이 운남에 발을 딛는 놈들은 오는 족족 죽일 것이다. 백이 오면 백을 죽일 것이고, 천이 오면 천을 죽인다. 흐흐흐. 점창은 독종들이 산다는 내 말, 죽을 때까지 잊지 마라. 오늘 본 이 피는 점창의 후예들이 반드시 갚을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

“지랄하고 있네, 개새끼. 죽으면서도 끝까지… 헉헉!”

은마수가 숨을 헐떡이며 꿈틀대자 청운자의 입이 힘겹게 다시 열렸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제대로 뜨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숨결을 억누르며 끝끝내 고함을 토해냈다.

“…점창은… 점창은… 무적이다!”

청운자의 고함이 바람을 타고 춘경장을 맴돌았다.

이미 숨은 끊어졌으나 그의 음성은 한동안 춘경장에 머물며 점창을 이야기했다.

 

 

 

 

 

 

제8장 풍운대

 

 

 

 

 

 

 

 

 

 

 

 

 

 

 

 

사일검법의 초식은 모두 아홉이었으나 후삼식의 검리는 너무나 심오해 백 년 이래 익힌 자가 없었다.

심득을 얻은 조사들이 백 년 전 천왕성과의 전투에서 한꺼번에 목숨을 잃음으로써 사일검법의 후삼식은 껍데기만 남긴 채 창공으로 사라졌다.

분광추영, 회풍무류, 후예사일.

태양을 벤다는 사일은 고사하고 분광과 회풍마저 잃어버렸으니 점창 최고의 비전이라는 사일검은 반쪽짜리 검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명문이란 것은 유구히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 다른 곳과 차별화됨으로써 그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원천은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소림이나 무당, 화산이 명문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당당하게 전해 내려오는 비전이 있기 때문이고, 심득을 얻은 선조들이 비전의 전수를 면면히 이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창은 백 년 전 선조들의 명맥이 한꺼번에 끊기면서 그 힘을 잃었고, 천하제일문의 명예조차 내놓아야 했다.

강호에서 힘이 없다는 것은 설움과 멸시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수반된다. 그 숙명은 나락과 같아 목숨보다 더 소중한 무인의 명예를 철저히 짓밟는다.

점창은 그 나락 속에서 백 년을 보내야 했다.

벗어나고 싶었으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사슬은 질기고 모질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검을 빼 들 수조차 없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점창 무인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비전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사일검법의 후삼식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성역을 넘겨주지 않았다.

백 년이란 세월 속에서 흘러내린 점창인의 한이 황토가 되어 점창산을 뒤덮었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먼지가 되어 산화해 갔다.

절망, 체념, 분노, 그리고 원망.

점창인의 가슴속에 담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화입마에 걸려 폐인으로 살아온 삼십 년의 세월을 건너 불사조처럼 돌아온 청곡자는 점창의 길고 긴 잠을 깨워놓았다.

오랜 시간의 가르침은 아니었으나 그는 점창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며 분광과 회풍을 사문에 돌려줌으로써 점창산에 빛이 흩날리고 바람이 휘돌게 만들었다.

산과 들이 노래했고, 점창의 석양 속에서 무인들의 검이 춤을 추었다.

흩날리는 빛줄기가 산을 환하게 물들이고 돌풍이 하늘로 솟구치는 기이한 광경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청곡자가 숨을 거둔 후 이 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 빛줄기와 돌풍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 아홉을 헤아렸다.

 

전신에 부상을 입은 운청과 제자들이 시신들을 등에 지고 점창에 나타난 것은 해가 서산으로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수십 군데 상처 입은 몸으로 나타난 그들의 전신은 온통 피로 도배되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시신들을 옮기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산문을 지키던 제자들이 비상종을 쳤고, 청현자는 엉망으로 변해 버린 운청과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그들이 내려놓은 청운자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버선발로 달려 내려왔다.

“사형! 이게… 이게 웬일이오! 눈 좀 떠보시오! 눈을 뜨란 말이오!”

“장문인, 사숙께서는 칠절문과의 싸움에서… 크윽!”

“닥쳐라!”

피 묻은 손을 내밀지 못하고 간신히 입을 연 운청을 향해 청현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눈은 새파랗게 변해 있었는데 어떠한 이유도 듣기 싫어하는 시선이었다.

산에서 내려갈 때 신신당부를 했다.

사숙들을 잘 보필하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지체 없이 돌아오라며 몇 번이고 운청에게 귀띔을 했다.

그런데 청운자가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이렇듯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참을 수 없는 노여움이 물밀듯 솟구쳤다. 청현자는 운청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청현자의 시선에 운청이 고개를 숙이며 참았던 눈물을 흘려냈다.

죄송스러움이 담긴 그의 울음은 억눌려서 마치 동물의 울음소리와 비슷했다.

청현자의 고개가 다시 청운자에게로 돌려진 것은 운학이 나서서 비틀거리는 운청을 뒤로 물렸을 때다.

“사형, 나보고 어쩌라고 이리 돌아오셨소! 나는… 어쩌라고!”

털썩 주저앉은 청현자의 입에서 독백이 흘러나왔다.

싸움이 있을 거란 예상도 했고, 자칫 잘못하면 제자들이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다.

그러면서도 애써 걱정을 덜어낸 것은 사형들과 삼검이 함께 갔기 때문이다.

어차피 칠절문과의 관계는 단시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운남에 점창이 있음을 알려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하산의 목적이었다.

애초부터 대규모의 전투는 생각하지 않았고,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조건 돌아오라며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이렇듯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으니 너무도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멍해져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감겨진 눈과 얼굴을 바라보자 새삼 어릴 적 자신을 혼내던 청운자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의 사형은 성격이 불같아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나이도 열세 살이나 차이 났기 때문에 대든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사형의 젊었을 적 얼굴은 꽤나 잘생겼지만 지금은 온통 주름이 잡혀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버린 사형을 바라보는 청현자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청현자가 천천히 일어난 것은 운청을 비롯해서 간신히 서 있던 제자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다.

장문인 청현자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청운자의 시신에서 몸을 돌렸다.

사형의 시신을 부여잡고 마음껏 울고 싶었으나 청현자는 붉은 눈으로 청면자를 비롯한 제자들의 치료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장문인으로서 직책을 수행하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무섭게 굳어져 있었다.

 

청허자와 청문자가 상청궁의 지붕을 타고 넘어 날아온 것은 청현자가 운자배 제자들을 독려해서 부상자를 의선각으로 옮길 때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청우자를 비롯한 장로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청운아!”

마당에 내려선 청허자가 덮치듯 청운자의 몸을 끌어안으며 고함을 질렀다.

벌벌 떨리는 손길.

이젠 늙어 검버섯이 가득한 그의 손이 청운자의 전신을 어루만지며 벌벌 떨었다.

끊임없는 통곡.

청운자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토해내는 그의 음성은 날카롭고 높아 비명이 되었다.

“이놈아, 너는 다 늙어서도 사형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어찌 이럴 수 있느냐! 늙은 내가 먼저 죽어야지, 어찌 네가 먼저 갈 수 있단 말이냐! 이놈아, 눈을 뜨거라! 청운아… 크윽!”

노안에서 솟아난 눈물이 청운자의 하얗게 변해 버린 얼굴로 떨어져 두 사람이 동시에 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육십 년 가까이 함께 보낸 세월.

그 세월이 추억 속에 함께하는데 어찌 사제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랴.

청허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어 청운자를 깨우려 했다.

감정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청허자의 행동은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청문자를 비롯한 장로들이 지켜보며 눈물을 흘려냈다.

같은 감정, 같은 슬픔이 마당에 가득 찼고 비슷한 울음소리가 서로의 가슴을 적셨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형의 죽음에 그들 또한 진한 눈물을 훔치며 찢어지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있는 것은 눈물만이 아니었다.

대사형인 청허자의 몸부림과 청운자의 시신을 지켜보는 그들의 눈에는 눈물과 함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노는 점점 붉은 색깔을 띠며 강렬해져 갔다.

그것은 그들의 뒤에 선 점창십삼검의 눈에도, 명자배 제자들의 눈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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