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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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7화
일 개 조 다섯 명을 쓰러뜨린 청운자의 검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귀곡대의 후속 공격을 단신으로 부딪치며 또다시 전진을 거듭했다.
명인의 부상이 그의 불같은 성격을 일깨워 이성을 잃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귀곡대의 창은 처음처럼 당황하지 않았고, 청운자의 검과 당당하게 맞섰다.
때맞춰 은마수의 탈명창이 공간을 넘어 빛살 같은 속도로 다가왔기 때문에 청운자의 검은 귀곡대를 끝까지 쫓지 못하고 수시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청운자가 방진을 벗어나고 명인이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하자, 그동안 견고하게 버티던 방어선이 깨지며 싸움은 금방 난전으로 빠져들었다.
악화.
난전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점창 무인들의 위험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싸움이 그만큼 더 흉폭하고 치열해진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원형진의 효율성으로 인해 싸움에 가담하지 못하던 벽사대와 파령대원들이 속속들이 전장에 가담했다. 연환 공격을 펼치던 귀곡대가 한꺼번에 전장에 가담하며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공격력을 제어하던 원형진이 깨어지자 점창의 무인들도 검기를 꺼내 들며 맹렬한 살기를 드러냈다.
치열한 접전.
병기와 병기의 충돌, 음과 비명 소리만 끝없이 생겨났을 뿐 장내에 사람의 말소리는 한마디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점창 무인들의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칠절문이 자랑하는 삼마수의 가담 때문이었다.
난전으로 빠져들자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삼마수는 쌍로나 삼검과 부딪치는 대신 철저하게 이대제자들을 노리며 기습 공격을 가해왔다.
정면으로 부딪쳐도 무력에 격차가 있는 마당에 기습을 가해오니 명자배 제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숫자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적들의 수를 줄여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심산.
쌍로와 삼검의 공격에 선룡단원들의 피해가 속속 발생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명자배 제자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기어코 명천의 가슴에 칼을 꽃아 넣었다.
잔인한 미소.
명천의 가슴에 칼을 꽃아 넣은 동마수의 얼굴에서 피어난 잔인한 미소가 청면자의 신형을 허공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동, 마, 수!”
콰앙!
포위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신형을 공중으로 띄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아는 청면자가 삼장을 격하고 달려와 동마수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동마수를 부르는 청면자의 음성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검과 도가 만났는데 폭발음이 들렸다.
강력한 충격.
동마수가 충돌의 여파로 뒤로 세 걸음 물러날 동안 청면자의 검이 연환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검은 백색 도객들의 방어에 막혔고, 동마수는 유유히 신형을 빼내어 좌측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명공 쪽으로 향했다.
그 행동에 청면자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앞을 막아온 두 명의 파령대를 베어 넘기고 그를 추격하려 했으나 백색 도객들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끝없이 그를 막아왔다.
“흐으……!”
억눌린 신음 소리.
이대로 동마수를 놓치게 되면 또다시 사랑하는 제자들의 목숨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다.
초전에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명인이 난전과 함께 목숨을 잃었고, 명천마저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명승과 명선이 철마수와 은마수의 공격에 피를 흘리는 중이고, 명공은 동마수의 살수에 노출된 상태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삼검이 선룡단 사이를 누비며 적들을 주살하고 있었으나 결코 상황은 유리하지 않았다.
이대로 싸움이 지속되면 처음의 예상대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밀듯 밀려오는 파령대의 파상공격이 전진을 가로막자 청면자가 이를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강행 돌파가 필요했다.
포위된 상황에서 불리한 싸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었다. 죽음을 무릅쓴 강행 돌파가 바로 그것이다.
청면자의 검이 앞을 막아온 파령대의 칼을 쓸어내고 칠검을 퍼부었다.
강행 돌파를 하기로 작정한 이상, 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목숨에 위협을 받지 않는 공격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의 목숨을 취하는 것이 강행 돌파의 원칙이다.
극에 달하지 못한 창천으로는 파령대의 칼을 일격에 무너뜨리기 어렵다.
둘, 셋은 어떨지 모르나 이렇듯 십여 명이 방진을 펼친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랬기에 청면자는 분연히 분광을 꺼내 들었다.
분광.
검기가 나뉘어 허공을 덮어버리는 사일검법의 후삼식 중 첫 번째 절초.
정확한 초식명은 분광추영.
그림자를 쫓아 빛이 나뉜다는 뜻을 가졌고, 그만큼 빠르며 강력하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효율적이어서 완벽한 분광을 익히면 일곱 명을 한꺼번에 벨 수 있다.
그러나 분광은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펼치게 되면 엄청난 내공을 소모하게 만드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청면자가 지금에서야 분광을 꺼내 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제는 목숨을 도외시했으니 꺼릴 것이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청면자는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분광을 펼치며 강행 돌파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퍽! 퍽! 채앵!
분광의 위력이 파령대 속에서 석양처럼 붉게 피어올랐다.
솟아오른 피가 마치 안개처럼 마당에 펼쳐졌고, 청면자를 막았던 파령대원들이 짚단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 열둘을 베어버린 청면자가 동마수의 등을 따라잡고 일격을 펼쳤다.
콰앙!
명공의 왼팔을 자르고 뒤로 물러나던 동마수의 칼이 청면자의 검과 부딪치면서 커다란 충돌음을 냈다.
처음 부딪쳤을 때와는 다르게 동마수는 여덞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물러섰는데,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이런 개 같은 늙은이가!”
간신히 신형을 고정시킨 동마수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목숨을 위협받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욕설이다. 하지만 곧 입을 닫아버리고 피에 젖은 청면자의 육신을 향해 의문에 찬 시선을 던졌다.
일격에 자신의 내장을 건드릴 만큼 강력한 무력을 선보인 청면자가 똑바로 서지 못한 채 비틀거렸기 때문이다.
‘뭐지, 이건?’
처음에는 죽어 나자빠진 수하들의 피가 청면자의 몸에 묻은 것으로 착각했으나 자세히 확인하자 늙은이의 몸통 여러 곳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청면자는 방어를 도외시하고 저 젊은 놈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뜻이 된다.
“호오, 이제 보니 점창의 장로가 미쳤구만. 죽을 줄도 모르고 날뛰니 말이다.”
“크크, 진짜 미친 게 뭔지 가르쳐 주마. 함부로 운남에 온 것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그 몸으로 말이지?”
“헉헉! 충분하다!”
비틀거리던 몸을 추스르며 청면자가 검을 치켜 올렸다.
삼검도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졌는지 어느새 명자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 역시 강행 돌파로 인해 여기저기 상처를 입어 혈인이 된 상태였다.
집중 공격을 받은 명공과 명승, 명선은 이미 전투 불능의 상태이고 삼검 또한 오랜 전투로 인해 숨결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삼검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들에 의해 벽사대는 일곱만이 살아남았고, 파령대도 절반이 바닥에 쓰러졌으니 점창을 상징한다는 삼검의 위력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뒤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아직 삼검의 검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철마수와 선룡단의 공격을 막아낼 여력이 있다.
반대쪽에서는 사형인 청운자가 은마수와 귀곡대를 붙잡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여기서 자신이 동마수를 죽일 수만 있다면 반전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런 마음으로 내력을 끌어 올렸는데 단전을 휘돈 내력이 이어지지 않았다.
내력이 고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분광을 펼친 것이 원인이다.
더군다나 동마수를 일거에 죽이기 위해 마지막에 펼친 일격은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었기 때문에 내력이 끊기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동마수는 둘째치고 파령대원도 상대하기 힘들다.
당황한 마음이 들었으나 동마수를 노려보던 눈을 그대로 두고 청면자는 숨을 고르며 내력을 집중시켰다.
어렵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다.
역시 동마수는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내력이 불완전하게 되면 기세가 바뀌는데 동마수는 청면자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확인하고 즉시 다가와 공격 범위를 확보했다.
“어이, 늙은이. 힘들지?”
“가소로운 놈.”
“피가 많이 흐르는군. 고통스럽겠어.”
“크흐…….”
“살 만큼 살았잖아. 이제 내가 죽여주지.”
귀두도를 천단세로 바꾼 채 일 장 앞까지 다가온 동마수의 거대한 몸이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도풍이 먼저였고, 그 뒤를 따라 도기가 밀려들었다.
막강한 도력.
거구에서 터져 나온 도력은 산악처럼 장중했고, 왜 그가 사천에서 위명이 쟁쟁한 오극수에 포함되는지 알려줄 만큼 강력했다.
내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회피한 후 반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에 청면자는 유운신법을 펼쳐 좌측으로 돌아나가며 동마수의 칼을 흘려냈다.
오직 한 수.
폭풍과 같은 적의 공격을 뚫어내어 치명상을 입혀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분광을 펼칠 수만 있다면 동마수의 패도적인 공격을 파괴할 수 있겠지만 내력이 고갈된 지금은 불가능에 가깝다.
동마수의 거대한 몸 구석 어디에서라도 작은 약점이 눈에 들어오면 마지막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마수는 곰 같은 덩치를 가졌음에도 여우와 같은 머리를 지닌 자였다.
청면자가 신법을 피하기만 하자 조금의 허점도 내비치지 않고 오직 정면 승부를 걸어왔다.
계속 말을 꺼내 자극한 것은 오히려 청면자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함인 것으로 보였다.
“도망 다니는 거 힘들지 않아? 늙어서 다리 움직이기도 힘들 텐데 그냥 모가지를 내려뜨리는 게 어때?”
“…….”
“왜 대답이 없어? 대답할 힘도 없나 보지? 이봐, 늙은이,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자고.”
“곰 같은 놈. 내 너의 목을 끊어놓겠다.”
지속적인 조롱 속에서도 피하기만 하던 청면자의 입에서 창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노에 겨운 음성.
결연한 의지를 담은 눈이 동마수를 노려보았고, 가슴으로 끌어들인 검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끊어졌던 내력이 힘들게 이어지면서 마지막 힘을 모아 분광을 펼쳐 냈다.
동마수의 공세가 피하기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결국 청면자는 어쩔 수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귀두도를 향해 빛살 같은 검기를 뿜어냈다.
하늘이 환해지며 아름다운 검기의 물결이 솟구쳤다.
모아진 내력을 한꺼번에 터뜨린 분광.
그 분광의 찬연한 빛살에 동마수의 귀두도가 점점 속도를 잃다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윽!”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청면자는 무릎을 꿇은 채 입에서 시커먼 피를 흘리며 일어서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동마수는 한참이 지난 후 간신히 일어나 청면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 나타난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일격에 당했다는 두려움 대신 분노를 나타내며 귀두도를 치켜들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무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자.
하지만 그는 가슴과 옆구리에서 샘솟듯 솟구치는 피를 손으로 막기만 할 뿐 청면자를 향해 다가서지 못했다.
명자배 제자들을 보호하던 운청이 어느새 앞으로 튀어나와 청면자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삐익!
긴 휘파람 소리.
동마수를 견제하며 운청이 청면자를 뒤로 이끄는 사이 반대쪽에 있던 청운자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났다.
청운자는 온몸에 피가 튀어 검은색 옷에서 빤작이는 윤기가 날 정도였는데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점창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오며 세 명의 파령대를 일거에 무찔렀다. 오검을 찔러내어 공격해 온 귀곡대를 튕겨낸 후 뒤쪽에서 방어망을 형성하고 있는 운청을 불렀다.
“운청!”
“예, 사숙.”
“후퇴하자! 청면과 제자들을 챙겨서 정면으로 간다! 내가 엄호할 테니 서두르거라!”
다섯이 하나가 된 귀곡대의 쌍단창을 검으로 막으며 청운자가 고함을 질렀다.
급박한 상황.
이제 정상적으로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청운자가 유일한 상황에서 후퇴라는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으나, 삼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운청은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벽사대와 파령대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 명승이 숨을 거둠으로써 이대제자 중 셋이나 목숨을 잃었고, 운학과 자신만이 경상을 입었을 뿐 나머지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진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걸음을 떼지 못한 것은 적들에게 안방을 내주고 물러서야 하는 신세가 너무나 억울했기 때문이다.
점창의 하늘과 땅에서 젊은 제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내버려 두고 떠나야 함은 죽는 한이 있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칼을 날려오는 두 명의 벽사대를 튕겨낸 운청이 고통에 겨워하는 명선과 명공의 얼굴을 힐끔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청면 사숙은 커다란 내상을 입었는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허옇게 변해 금방이라도 숨을 멈출 것만 같았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옆에서는 운학과 운몽이 공격해 오는 벽사대와 파령대를 막아내고 있었는데, 운몽은 오른쪽 옆구리와 허벅지에 입은 도상으로 인해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피를 흘리는 사제들과 사숙의 모습을 보는 운청의 눈이 눈물로 젖어갔다.
억울하고 분했으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억지로 걸음을 내디뎠다.
청운자는 뒤로 물러나는 제자들에게 귀곡대가 따라붙지 못하도록 검을 날리며 엄호에 주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주춤거리며 움직이지 않던 운청이 부상자들을 옆구리에 낀 채 느린 속도로 정문 쪽을 향해 움직였다.
철마수와 은마수의 집요한 공격에 운청과 운학이 몇 군데씩 다시 상처를 입었으나 전면에서 가공할 무력으로 그들을 엄호한 청운자의 활약으로 정문을 넘을 수 있었다.
청운자는 귀곡대뿐만 아니라 파령대의 공격까지 차단했고, 은마수의 기습 공격까지 따라붙어 무산시켰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폭풍과 같았다.
명천과 명인, 그리고 명승의 시신이 춘경장의 마당에 방치되어 있었다. 점창 무인들은 핏발 선 눈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춘경장의 정문을 넘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떠나는 삼검의 목소리가 아련했다.
자신을 부르며 빨리 오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마치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처럼 희미했다.
제자인 명천의 시신을 남겨두고 떠나는 운청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청운자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십에 달하는 적과 마주 선 청운자는 일격에 십삼검을 날려 귀곡대를 튕겨냈다. 그리고 뒤에서 빠져나온 은마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의 단정하던 머리칼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고 전신이 피로 젖어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은마수, 어떠냐?”
“무슨 개소리냐!”
“우리 아이들도 다쳤지만 너희 꼴도 말이 아니구나. 그런 실력으로 운남을 차지하겠다고 왔다니 진정 가소롭다.”
“흥, 웃기는 소리. 당신을 비롯해 나머지도 모두 죽을 테니 우리는 손해 보지 않았다.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다.”
은마수가 탈명창으로 사라진 점창 무인들을 가리키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후퇴한 여섯은 모두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추적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벽사대와 파령대가 거의 전멸 지경이었고, 귀곡대 일부도 피해를 본 상태지만 첫 전투에서 점창의 장로 둘과 십삼검 중 셋을 잡았다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은마수는 자신의 앞을 청운자가 가로막아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청운자는 은마수의 웃음을 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너희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점창의 땅에 들어와 피를 봤으니 한 놈도 살아나가지 못하리라.”
“푸하하! 늙으면 노망이 난다더니 벌써 그리 된 모양이군.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수작인 것 같은데 그래 봤자 소용없어. 당신이나 도망친 놈들이나 살아남지 못한다고 했잖아.”
“크크크, 와라. 내가 증명해 주마.”
“쯧쯧쯧.”
검을 내미는 청운자의 모습에 은마수가 혀를 차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두 개 조 열 명의 귀곡대가 정문을 막고 선 청운자를 향해 날아왔고, 나머지 삼 개 조가 후퇴한 점창 무인들을 추적하기 위해 담을 넘었다.
손짓 하나에 동시에 벌어진 일.
귀곡대의 무력이 사천에서 진동하는 것은 이렇듯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청운자가 정문을 타넘고 뒤로 날아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면에서 덮쳐오는 자들을 피해 뒤로 날아간 청운자가 점창 무인을 추적하기 위해 담을 넘은 귀곡대를 덮쳐갔다.
독수리가 먹이를 덮치는 것과 같은 형상.
청운자의 검에서 발현된 빛 무리가 왼쪽 담장을 넘은 다섯의 귀곡대를 쓸어갔다.
이전 같았으면 튕겨나고 말았을 귀곡대의 신형이, 튕겨나는 대신 부서져 나갔다.
쌍단창이 먼저 부서졌고, 곧바로 육신이 쪼개졌다.
단 일격에 다섯을 말살시킨 청운자의 가공할 검법.
찬연하게 허공을 갈라 버린 빛 무리.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오던 자들이 멈춰 섰고, 곧이어 우측 담장을 넘어 추적하려던 열 명의 귀곡대가 방향을 돌려 청운자를 향했다.
은마수와 철마수가 그 전면에 나섰는데, 그들 모두 놀람으로 인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