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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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6화
공격은 쌍로와 삼검에 명자배 제자가 한 명씩 따라붙어 두 명이 한 조가 되도록 구성했다.
명자배 제자의 무력이 그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리 편성했는데 막상 정해놓고 보니 신구의 조화가 제법 적절했다. 언제든지 연수 합격이 될 수 있는 체제가 형성되었다.
청운자는 공격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며 명자배 제자들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결코 아이들이 아니다.
모두 서른에 가까운 나이이고 무림에 나가면 검에 피를 달고 살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무력을 지닌 점창의 차세대 주력들이다.
비록 이대제자이지만 점창이란 전통 명문의 그늘에서 무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수련한 자들이니 어찌 허술하겠는가.
아니, 오히려 춘경장 안에 있는 칠절문의 수뇌부를 제외한다면 벽사대나 파령대의 도객들보다 훨씬 출중한 무인들이다.
특히 이곳에 파견 나온 명자배 제자들은 삼검의 직속제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만큼 정예 중의 정예이니 결코 어린아이처럼 걱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오랜 세월 어른으로 살아온 자신의 시간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토록 만든 것이리라.
청운자의 시선이 제자들을 천천히 휘돈 후 춘경장으로 향했다.
이제 자신의 한마디면 칠절문과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가슴이 뛰었고, 그에 맞추어 점창의 산과 전각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쇄락의 길을 걸어온 사문.
천하제일문이란 영광된 역사를 지키지 못하고 몰락해 버린 사문을 바라보며 죄인이 되어 살아온 오십여 년의 세월.
점창의 무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고 슬픈 세월이었다.
분쟁이 생길 때마다 참을 수밖에 없던 사문과 자신의 무능함이 몸서리치도록 가슴을 아프게 만들어 오랜 세월 동안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다.
무인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죽고 싶을 만큼의 괴로움을 가슴속에 매단 채 살아가는 것이고, 그리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랬기에 청곡 사형이 나타났을 때 미쳐 버렸다.
어느 날 문득 분광과 회풍을 들고 나타난 청곡 사형은 점창의 영광된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늙어빠진 팔다리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이며 미친놈처럼 수련에 매진한 것은 힘이 없기에 느껴야 했던 모멸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천의 극조차 보지 못한 자신의 검기가 오 년의 수련을 통해 나눠졌고, 갈려져서 바위를 때렸다.
늙어버린 육신으로 분광의 완벽한 무리를 익히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검은 이전보다 배는 강해졌다.
검이 강해지면서 무인으로서의 심장도 커졌다.
이전에는 약한 사문 때문에 검을 숨긴 경우도 있었으나 분광과 회풍이 사문에 돌아온 이상 그의 검은 언제든 뽑혀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청운자의 검은 점창의 하늘과 땅을 밟고 선 채 한구석 미안함조차 없이 고개를 뻣뻣이 치켜세운 적들과 마주 서서 뽑히고 있었다.
청운자는 유운신법을 펼쳐 춘경장으로 날아가며 뒤를 힐끔 쳐다봤다.
명천이 묵묵히 따르고 있었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보다 냉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물여덟이라고 했던가.
점창십삼검의 수장인 운풍의 셋째 제자로 창천에 입문할 만큼 강한 무공을 소유했고, 심지가 굳고 의지가 뛰어나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제자이다.
재밌는 것은 명천의 결단력이 청운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춘경장에 가까워오자 뒤쪽에서 묵묵히 따르던 명천이 어느새 담장을 향해 뛰어올랐다. 곧바로 경계를 서고 있는 벽사대원을 공격해 청운자가 아무런 방해 없이 담장을 넘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강력한 일격.
콰앙!
갑작스러운 공격을 힘들게 막아낸 벽사대원이 주춤 뒤로 물러서자 명천의 검이 그의 후퇴 공간을 차단하며 삼검을 날렸다.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더욱 강력한 공격이 날아오자 벽사대원이 이를 악물며 칼을 뿜어냈다. 그러나 명천의 변화무쌍한 공격에 옆구리와 허벅지에서 피를 뿌리며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그사이 청운자는 담장 밑에 있던 벽사대원을 제압하고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목표한 대로 경계병들을 모조리 제압하지는 못했지만 각 방향에서 들이닥치며 일곱을 쓰러뜨린 점창 무인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 이상 기습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먹잇감이나 다름없는 경계병마저 전력에 합류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었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으나 그중 셋은 용케 뒤로 물러서서 전각을 등진 채 칼을 겨누었다.
점창 무인들이 한곳에 모인 것과 전각의 방문들이 열리며 칠절문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측대로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나타났는데 자연스럽게 반원형을 형성하며 압박을 가해왔다.
“늙은이들, 뭐 하러 또 왔나. 살려줬으면 고이 가서 남은 인생 편하게 살 것이지.”
“클클클, 철마수, 너는 어째서 갈수록 혀가 짧아지느냐.”
“내가 원래 그런 놈이야. 그런데 참 이상해. 죽으려면 낮에 오지 그랬어. 밤에 설치는 건 피곤한데 말이야.”
“피곤하지 않을 거다.”
“왜?”
“곧 죽을 테니까.”
“정말 늙은이가 주둥이질 하나는 끝내주는군.”
“점창의 밥그릇을 찾아야겠다. 더불어 숭의문의 복수도 같이 해주마.”
”흐흐, 밥그릇이라……. 그거 멋진 표현이네. 적어놨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어. 그런데 너희만으로 그게 가능할까?”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건 너희 같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고, 점창은 원래부터 이렇게 다녔다.”
“이 늙은이가 또 슬슬 열 받게 만드네.”
“푸하하하! 아주 재밌는 늙은이구만.”
철마수가 신경질적으로 마령수를 꺼내 손에 끼자 반대쪽에서 지켜보던 거구의 동마수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거대한 귀두도를 꺼내 들며 앞으로 나섰는데, 청운자에게 귀두도를 내미는 행동은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금방 피를 볼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여기 온 이유가 우리를 내쫓아서 점창의 명예를 지켜보겠다는 거잖아. 그렇지?”
“네가 동마수냐?”
“흥, 늙어서 보이는 게 없는 줄 알았더니 아직 내가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네.”
“덩치가 커다란 놈은 대부분 머리가 비었다던데 너는 조금 다르구나. 핵심을 정확하게 아는 걸 보니 말이다.”
“철마가 왜 거품을 무나 했더니 이제야 알겠군. 직접 대화를 해보니 늙은이가 은근히 사람 속을 긁는 재주가 있어. 하지만 늙은이, 이 상황은 주둥이보다 이걸로 해결해야 되니까 그만 닥치는 게 좋을 거야.”
백색 도객들을 이끌고 동마수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며 귀두도를 어깨 위로 끌어 올렸다.
어느새 백색 무복으로 통일된 파령대는 인원이 갈라져서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포위 공격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열두 명씩 무리지어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벽사대가 좌측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반원진이 움츠리듯 점창 무인들을 향해 다가왔다.
접근해 오는 도객들의 칼에서 비릿한 살기가 급속하게 뿜어져 나와 마당의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성격마저 급하군. 확실히 몸통만큼 다른 놈들과 다른 놈이로다. 청면!”
“말하시오.”
“자네가 운학과 함께 벽사대를 맡아라. 나머지는 내가 하겠다.”
“알겠소.”
다가서는 적들을 확인하고 급히 지시를 내린 청운자가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마수만 자신이 제압하면 운청과 운몽이 이끄는 제자들이 파령대를 휘저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놈들의 숫자가 다섯 배에 달하나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청운자는 검을 곧추세우며 전진하던 발걸음을 급히 멈추었다.
그들의 배후를 가로막으며 담장을 넘어오는 은색 전포의 무인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귀곡대!”
청운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놀람에 찬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은색 전포, 그리고 그들을 상징하는 쌍단창.
한눈에 봐도 선룡단의 전위부대라는 귀곡대가 틀림없었다.
담장을 찍고 넘어오는 귀곡대원들의 몸놀림은 마치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부드럽고 유연했다.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한 그들의 전면에서 은마수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운남을 종횡한다는 염라검과 뇌운검을 뵙게 되니 영광이오.”
“자네가 은마수?”
“그렇소.”
“함정을 잘 파놨군.”
“일부러 판 함정은 아니었소. 그저 은밀하게 넘어왔을 뿐인데 당신들이 걸려들었을 뿐이오. 재수가 없다고나 할까?”
“그게 그거겠지.”
“어쨌든 멋들어지게 놀아봅시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하오.”
하얗게 웃으며 말을 끝낸 은마수가 천천히 자신의 쌍단창을 꺼내 들자 청운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독문 무기인 탈명창은 그의 등 뒤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는데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창의 길이에 비해 삼분지 일도 안 될 정도로 짧은 두 자루의 단창.
사천을 종횡하며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적쌍창이라고도 불린다는 기형 병기가 은마수의 손에 들린 붉은빛 삼 척 단병이다.
은마수가 꺼내 든 탈명창에서는 횃불에서 나온 빛을 받아 붉은색 기운이 슬금슬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아지랑이가 너울대는 것 같았다.
청운자의 눈이 오므려진 것은 은마수의 행동에 맞추어 귀곡대가 자신들의 단창들을 거꾸로 쥐었을 때다.
역창.
창을 거꾸로 들어 하늘로 향하게 만든 자세.
삼십여 명의 귀곡대는 역창을 한 채 은마수의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든 명령만 내리면 공격하겠다는 투지가 줄기줄기 뿜어 나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쌍로와 삼검, 그리고 다섯의 이대제자라면 벽사대와 파령대를 합친 칠절문의 선봉과 충분히 해볼 만했으나 은마수가 이끄는 귀곡대마저 싸움에 가담한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변한다.
고전, 또는 악전.
끝까지 버틴다면 적들의 반 이상은 저승으로 끌고 갈 수 있겠지만 이곳에 온 점창의 제자들 역시 모두 죽는다.
그만큼 은마수와 귀곡대의 무력은 사천에서 정평이 날 정도로 강했다.
사천을 병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신위는 적들에게 있어 사신이라 불릴 정도로 강했으니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변수를 마련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고 봐야 했다.
그랬기에 청운자는 은마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단창을 겨누며 공격에 대한 의지를 보이자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 채 옆에 선 청면자를 불렀다.
“사제.”
“듣고 있습니다.”
“그냥 가겠는가?”
“그냥 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소. 사형 생각은 어떠시오?”
“귀곡대까지 왔을 줄은 몰랐어. 모두 내 불찰일세.”
“그게 어찌 사형 잘못이겠소.”
“그리 이해해 주니 고맙구만. 그래서 말이야.”
“뜸들이지 마시오.”
“내가 책임을 지고 싶어.”
“책임을 지다니요?”
“이제 시작인데 처음부터 꼬리를 말고 도망간다면 칠절문이 점창을 얼마나 우습게 알겠나. 놈들에게 점창을 보여주고 싶네.”
“싸우자는 말이군요. 하지만 끝까지 가면 아이들이 위험해집니다.”
“그렇겠지. 그런데도 싸우고 싶군. 꼭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가 생길 때마다 뒤로 물러서야 했지. 나는 그럴 때마다 항상 검을 물고 죽고 싶었다.”
“사형!”
“청면 자네 말대로 끝까지 하면 아이들이 위험해진다. 여기서 모두 죽을 이유는 없으니 내가 신호하면 물러서.”
“무슨 말씀이오? 그럼 사형은요?”
“어차피 시작되어야 할 싸움이라면 칠절문에게 경고를 해주고 싶어. 점창이 살아 있음을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다.”
“나는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소. 혼자 죽겠다는 거요?”
“껄껄껄, 이 사람아, 그냥 해본 소리야. 꼭 죽일 듯한 태세군. 신호를 보내고 나도 떠날 테니 그런 표정 짓지 마. 하여간 자네에겐 농담도 못하겠어.”
“지금이 농담이나 할 상황이오? 참으로 싱겁소.”
“더 말할 여유가 없겠군. 저놈의 기세가 너무나 예리해서 피부가 갈라질 것 같아.”
청면자가 눈을 찌푸리며 고함을 치자 청운자가 내렸던 검을 슬며시 치켜들며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뒤로 물러섰던 은마수의 손짓에 따라 귀곡대가 천천히 전진해 왔기 때문인데, 불과 열 걸음을 이동해 왔음에도 엄청난 압박감이 피어올랐다.
쫘아악!
일도양단.
다가온 귀곡대의 압박을 일격에 날려 버린 청운자의 검이 공간을 찢어버리며 부챗살처럼 푸른색 검기를 뿜어냈다.
일수로 귀곡대의 전진을 막은 청운자의 검이 미간을 겨누어오자 은마수의 탈명창이 천천히 가슴으로 올라왔다.
“역시 명불허전. 염라검의 참공은 실로 대단하구려.”
“흥!”
“귀곡대는 보았느냐?”
“예, 대주. 보았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칭찬에 청운자의 입에서 가벼운 코웃음이 새어 나오자 은마수의 창이 귀곡대를 불렀다.
귀곡대의 시선은 청운자의 검을 향하고 있었다.
“점창 장로의 검이 참공을 보였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점창의 힘이니 귀곡대는 사천을 종횡하던 선룡의 힘으로 전력을 기울여 점창의 전통을 꺾는다. 알겠느냐!”
“존명!”
은마수의 돌진과 더불어 귀곡대의 전진이 시작되었다.
철저한 연수 합격.
공전의 진수.
다섯이 한 조가 되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귀곡대는 마치 하나의 기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부족할지 모르나 연수 합격을 이룬 그들의 공격은 치밀하고 강력해 순식간에 점창 무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방진 사이를 누비며 공격해 오는 은마수의 탈명창이었다.
정면 대결을 피하며 기습을 해오는 그의 창은 흰색 창기를 머금은 채 독사의 이빨처럼 점창 무인들의 방어선을 찢어내고 있었다.
검을 뿌리친 은마수의 창이 기어코 후퇴하는 명인자의 옆구리를 찢으며 피를 튀게 만들었다.
귀곡대를 맞아들인 것은 청운자를 비롯해 운몽과 운학, 그리고 명인과 명무였다. 나머지가 그들과 등을 맞댄 채 벽사대와 파령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일종의 원형진.
다행스러운 것은 적의 병력이 많아도 공격해 올 수 있는 숫자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반경이 일 장에 한정되어 원형진을 구축했기 때문에 앞쪽의 귀곡대와 달리 뒤쪽의 벽사대, 파령대는 효율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하며 청면자가 이끄는 점창 무인들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귀곡대의 공격은 은마수의 활약에 의해 서서히 점창 무인들의 방어선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명인이 옆구리에 당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방어선을 지키고 있었으나 점점 한계에 몰리는 중이었다.
은마수는 피에 굶주린 승냥이가 분명했다.
그는 명인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막은 채 분전하자 집중적으로 그를 공격했다.
한곳을 파괴해서 방어선에 구멍을 뚫는 전략.
두 개 조씩 돌아가며 공격하는 귀곡대는 반드시 명인을 한 번씩 쳤고, 그 뒤를 은마수가 따라 들어가며 명인의 전신에 상처를 냈다.
“어헝!”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던 명인의 입에서 끝내 짐승처럼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섯 군데를 찔린 명인의 몸은 이미 혈인으로 변한 상태였다.
상처를 입은 채 전장에서 이탈한 귀곡대는 불과 셋.
하지만 그들도 전투력을 상실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의 공격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물러났다고 볼 만큼 경미한 상처를 입었다. 오히려 피해 면에서는 점창 쪽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원형진은 방어선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면 공격력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다.
그랬기에 청운자가 전면에 있으면서도 이각이 흐른 지금까지 귀곡대는 단 한 명의 손실도 보지 않은 채 싸움을 이끌고 있었다.
싸움의 양상이 변한 것은 명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뒤쪽으로 물러나며 무릎을 꿇었을 때다.
“이놈들!”
그동안 방어선을 지키며 공격해 오는 적들을 격퇴만 하던 청운자의 검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원형진에서의 탈피.
그의 눈에 담긴 것은 분노.
이글거리는 눈은 어느새 광기에 차 있었고, 그의 검은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자르며 창들 사이를 누볐다.
다섯씩 짝을 이룬 공전단창이 청운자의 검에 의해 튕겨져 뒤로 물러날 때 검에서 흰색 빛 무리가 주욱 뻗어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귀곡대원 두 명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비명조차 없는 죽음.
워낙 빨랐기 때문에 뒤쪽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귀곡대와 은마수는 청운자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가히 폭풍 같은 진격.
그의 진격은 마른하늘에 친 벼락처럼 갑작스러웠고, 거대한 바위마저 휩쓸어 버리는 모래폭풍처럼 거침이 없었기에 귀곡대는 공격을 당하고도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