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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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46화
운호가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급히 다가가자 그 소란 속에서도 기척을 느낀 운상의 고개가 슬그머니 들렸다.
운호를 확인한 그는 모든 행동을 정지한 채 꼼짝하지 않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도대체 어딜 쏘다닌 거야!”
정말로 화가 나지 않으면 이러지 못한다.
운상은 반가움 대신 화부터 냈는데, 어느샌가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다.
“많이 찾았어?”
“이 미친놈아, 내가 얼마나… 응,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웠는데. 내가 뭐라고 그랬어! 풍현에서 꼼짝하지 말라고 했잖아!”
“난 네가 사형들과 합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야.”
운상이 왜 화를 내는지 너무나 잘 안다.
그의 걱정이, 오랫동안 자신을 찾아 헤맸을 친구의 불안과 초조함이 느껴져 가슴이 아려왔다.
너무나 반가워 운상을 덥석 안았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풍현과 의빈에서의 시간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싸움의 연속.
이제 운상을 만났으니 외로움은 끝이다.
차돌 같은 운상의 몸을 안자 상처가 고통을 호소해 와 움찔하게 만들었다.
“왜, 어디 다쳤어?”
잠시 움찔했을 뿐인데 운상이 귀신같이 운호의 몸을 살핀다.
그리고는 겉옷을 들춰 본 후 인상을 긁었다.
“도대체 얼마나 다친 거냐? 왜 이랬어?”
“황룡단과 싸웠다.”
“언제? 어디서?”
“오늘 하루 종일 도망 다녔어. 밥도 못 먹어 배고파 죽을 지경이다.”
“미치겠네.”
“운상아, 밥부터 먹자. 그다음에 좀 씻어야겠다.”
운호가 서둘러 점소이에게 식사를 주문하고 털썩 자리에 주저앉자 운상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봐도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더군다나 다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 밥을 먹겠다며 저러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운호가 저리 천하태평이 되었단 말인가.
의빈은 칠절문의 안마당.
정말 황룡단과 시비가 붙었다면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인데 운호의 태도에서는 전혀 불안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운상은 자신을 말똥말똥 쳐다보는 운호를 향해 인상을 긁었다.
“몇 놈이었냐?”
“백 명이 훨씬 넘었다. 한 백삼십 명?”
“장난하지 말고!”
“정말이야.”
“그럼 네가 황룡단 전체하고 싸웠다는 거야?”
“맞아. 단주라는 엽문도 있었다.”
“환장하겠네.”
이 자식이 돌았나?
뭘 잘못 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미치고 펄쩍 뛸 소리만 하고 있다.
운호는 내공이 없기에 황룡단 셋이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하는 처지다.
그런 놈이 너무도 진지하게 거짓말을 해대니 운상은 입맛만 다셨다.
마침 점소이가 소면과 만두를 가져오자 운호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창피해서 그런 건가?
입안에 잔뜩 음식을 집어넣은 채 운호가 해맑은 웃음을 보내오자 운상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지랄하고, 웃긴 왜 웃어?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아마 황룡단이 의빈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중에 몇 놈하고 시비가 붙어 미친 듯 도망쳤겠지.
다행히 놈들을 떼어놓았고, 몸을 피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번화가로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휴.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열심히 먹던 운호가 입을 연 것은 운상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을 때다.
“그런데 왜 너 혼자냐? 사형들은 어쩌고?”
“사형들은 여기 없다.”
“없다고? 왜?”
“사형들은 지금 용화에 있다. 너를 찾다가 당문하고 시비가 붙어서 지금 난리가 아니야.”
“당문하고 시비가 붙어?”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너 찾느라고.”
“시비가 붙었다는 게 싸웠다는 뜻이냐?”
“그래. 꽤 많이 죽인 모양이더라. 사형들도 다치고.”
“다쳐? 얼마나?”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인마. 널 찾았으니 이제 알아봐야지.”
구룡단은 망산에서 후퇴한 후 자공에 들어와 남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전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주력전투부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칠절문의 암천 구룡단.
단주는 귀곡도(鬼哭刀) 양무기(楊無奇)로 전왕 혁기명의 수제자다.
나머지 단원들도 전왕의 적에 올리지 않았을 뿐, 어릴 때부터 직접 사사를 받았다.
제자나 다름없는 자들이기에 모두 사형제처럼 지냈다.
아홉 모두 절정을 넘어선 지 오래된 도객으로서 주력전투부대 두세 개를 합한 것과 비견될 정도로 강하다고 알려졌다.
여유롭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한 것은 양무기로 인해서였다.
양무기는 갑자기 날아온 명령서를 읽은 후 전서를 구겨서 던져 버렸는데, 전서를 읽는 순간부터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본 부단주 수진방(帥辰方)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단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총사가 우리보고 의빈으로 가라는구나.”
“감락이 아니고요?”
“정말 웃겨. 총사가 점점 날 홍어 좆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피라미나 잡으라고 심부름을 시키겠어?”
“생각보다 큰 피라미일 수 있습니다. 총사가 언제 대충 일하는 거 보셨습니까.”
“넌 나중에 출세하겠다.”
“왜요?”
“머리가 좋아서. 그렇지 않아도 전서에 그 피라미가 황룡단 반을 잡았다고 쓰여 있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피라미가 아니라 월척이군요.”
“조금 큰 피라미일 뿐이야. 툭하면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잔심부름 시키면서 부려먹는 걸 보니 총사가 우리를 청소부쯤으로 아는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몸 좀 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망산에서는 토끼몰이만 하다 끝나서 여간 찜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쯧쯧, 좋기도 하겠다. 이동할 준비나 해. 당장 움직여 달라니 시간은 맞춰줘야지.”
운호를 급속 추격하던 황룡단은 비객들의 주검을 발견하고 신법을 멈췄다.
검안은 부단주인 석송이 맡았는데, 그는 주검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세세하게 살핀 후 엽문을 향해 다가갔다.
시체는 단 일격에 목숨이 끊어졌다.
“단주님, 아무래도 놈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추적당하는 걸 눈치챘다는 말이군.”
“강호 초출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그놈은 온통 수수께끼로 가득 찬 놈이다.”
“비각이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의빈으로 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의빈으로 갈 이유도 없고요.”
“그럴 수도 있겠다.”
“병력을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눈이 가려지니 답답하구먼. 이 새끼들, 좀 조심하지 않고.”
쓰러진 비객들을 향해 엽문이 침을 뱉으며 신경질을 냈다.
어떡하든 최단 시간 내에 찾아내어 도륙해야만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데 행적을 놓쳐 버리게 되자 눈앞이 암담해졌다.
행적을 놓쳤다는 것은 훨씬 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더군다나 본단에서는 선룡단, 심지어 구룡단까지 의빈으로 파견했다고 알려왔다.
그런 마당에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행적까지 놓쳤다고 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터였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놈을 일각이라도 빨리 찾아내는 것뿐이다.
“석송, 비각에 최대한 빨리 놈을 찾아달라고 요청해. 그리고 우리도 나눠서 놈을 찾는다. 풍마대는 의빈을 뒤지고 나머지는 각기 방향을 나눠 추격하도록.”
“단주님, 선룡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도움을 청하시죠.”
“금마수 그 새끼가 지랄할 텐데 그 꼴을 어떻게 봐. 그냥 우리끼리 하는 걸로 해.”
“알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객방으로 들어선 운호는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공용욕실로 향했다.
개천에서 얼굴과 보이는 곳은 대충 씻었지만 온몸이 피로 덮여 있어 끈끈하고 비린내가 진동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자 노곤함이 몰려왔다.
정말 정신없이 보낸 하루였다.
할인고가 명약이란 건 상처를 보면 금방알 수 있었다.
제법 컸던 두 군데 빼고는 벌써 살이 엉겨 붙는 중이다.
꼼꼼히 피를 닦아내고 방으로 돌아오자 운상이 침상에서 일어났다.
운호의 전신에 상처가 너무 많기 때문인지, 그는 놀란 눈을 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의 짐에서 활인고를 꺼낸 운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운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운상아, 약 좀 발라줘.”
“도대체 이게… 잘 좀 도망치지!”
“다른 데는 괜찮은데 어깨와 허벅지가 좀 크다. 거길 중점적으로 발라.”
“이건 뭔데?”
“활인고라고, 당문에서 비전으로 만든 거래.”
“그 유명한 활인고란 말이야? 이걸 어떻게 구했어?”
“말하려면 길다.”
“길어도 해봐.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자야 될 것 같으니까.”
운호가 뒤로 빼려는 시늉을 하자 운상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까불면 한 대 맞는다는 시늉이다.
싱긋 웃은 운호의 입에서 할 수 없이 당운영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처음 객잔에서 만났을 때부터 상처를 치료해 준 이야기까지.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아련해져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자 상처에 약을 바르던 운상의 손이 매워졌다.
운호의 얼굴이 우그러들며 오만상을 했다.
“아프다, 인마.”
“아파도 싸. 누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연애질을 하라고 했어.”
“연애질은 무슨,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것뿐이야.”
“잘하는 짓이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뭐가?”
“다시 만나자거나 그런 말 안 했어?”
“사형들 찾아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네가 여자 가슴에 못을 박고 다니는구나.”
“그럼 어째야 됐는데?”
“당연히 언제 어디서 만날 건지 약속을 했어야지!”
“그만해라. 도사가 여자 사귄다는 게 말이 돼?”
“미친놈. 점창은 그런 거 구애 안 받는다. 결혼해서 하산한 선조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 우리가 뭐 스님인 줄 알아!”
“정말이야?”
“어라? 이놈, 눈 크게 뜨는 것 좀 봐? 그 아가씨가 정말 마음에 들긴 했나 보네.”
운호의 반응에 운상이 눈을 오므렸다.
지금까지 장난으로 받아들였는데 운호가 새삼 눈을 크게 뜨자 진실을 파악하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째려봤다.
그런 운상의 얼굴을 운호가 손을 들어 밀어냈다.
“약 다 발랐으면 붕대 좀 싸매. 너무 피곤해서 눈 좀 붙어야겠다.”
“운호야.”
“왜?”
“우리 친구 맞지?”
“왜 그래, 갑자기? 징그럽게.”
“너 잘되면 나도 좀 해줘라. 내가 요새 너무 외로워서 힘들어.”
“지랄한다. 붕대나 잘 싸매!”
티격태격.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때문인지 운호와 운상은 얼굴에 웃음을 매단 채 연신 장난을 쳤다.
그러던 한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방문을 쳐다봤다.
고수의 오감은 이토록 예민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운상이었다.
“볼일이 있으면 들어오시오.”
살기가 흘렀다면 먼저 검부터 집었을 테지만 밖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다가온 자가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다름 아닌 개방의 의빈분타주 황만이었던 것이다.
“잘 있었는가?”
“무슨 일이오?”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네.”
“풍운대에 관한 거라면 이미 알고 있으니 그냥 가셔도 되오.”
“아따, 그 사람. 까칠하기는.”
“당연한 거 아니오?”
“그때는 정말 몰랐다니까. 알면 왜 가르쳐 주지 않았겠나.”
“알겠소. 알았으니 이만 가보시오. 냄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소.”
“내가 그냥 가면 자네는 죽어.”
황만이 여유 있게 운상을 훑어본 후 다시 운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태도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권태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목숨은 그리 가볍지 않소.”
“자네는 철저하게 포위되었네. 여기 의빈에 자네를 잡기 위해 황룡단뿐만 아니라 선룡단까지 들어왔어.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구룡단이 오고 있으니 빨리 몸을 피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걸세. 구룡단은 정말 무서운 자들이거든.”
“구룡단이 뭐요?”
“그자들은 칠절문의 암천일세. 점창의 풍운대와 같다고 보면 되네.”
“내 위치를 칠절문이 알고 있소?”
“벌써 싸움이 끝난 지 세 시진이 지났네. 이미 그들은 자네가 의빈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아네. 아마 여기도 곧 찾아내겠지.”
“그렇구려.”
“동쪽 망월루 뒤쪽에 강이 있으니 그 강을 넘게. 선룡단과 황룡단의 포위망이 가장 엷은 곳이라네. 그 강을 넘으면 무사히 의빈을 벗어날 수 있을 걸세.”
“고마운 말씀이오.”
“그럼 나는 가보겠네. 부디 조심하시게.”
“한 가지만 물읍시다. 그렇게 쌀쌀맞게 굴더니 왜 마음이 변하셨소?”
“세상일이 원래 그렇지. 싫다가도 좋아지고 좋다가도 나빠지는 것 아닌가.”
황만은 등 뒤에 말을 흘려놓고 지체 없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한 올의 미련도 남겨놓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황당함에 운호와 운상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가 전해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정말 위험하다.
점입가경(漸入佳境).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위험이란 놈은 점점 커져 거세게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