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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41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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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41화

개방의 제자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의빈 외곽 유일천을 횡단하는 삽교 밑에 다다르자 아무렇게나 흩어져 누워 있는 거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호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중년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말 좀 묻겠소.”

“무슨 말?”

정중하게 입을 열었으나 되돌아온 대답은 삐딱했다.

삼십 대 중반의 거지는 다가온 운호를 확인했으나 여전히 반쯤 누운 채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방 제자가 맞습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소. 혹시 의빈에 있던 점창 무인들에 대해 아시오?”

“몰라.”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거지는 기다렸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춤에 채워진 매듭은 삼결.

중년 거지는 바로 의빈의 개방분타주, 무골개 황만이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은 맞았으나 황만은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면서 그는 운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정보의 생명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랬기에 황만은 운호를 스윽 살핀 후 슬그머니 인상을 찡그렸다.

‘점창!’

비록 도복은 벗었으나 점창을 상징하는 검을 지닌 이상 정체를 숨기기는 어렵다.

이자는 점창 제자가 틀림없었다.

 

운호는 황만의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그의 말대로 모를 수도 있으나 대답이 너무 단호하고 짧았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조현에 있던 점창 무인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소?”

“그건 들어봤지.”

“내가 찾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들이오.”

“그러니까, 그걸 모른다고 방금 말했잖아!”

“정말 모르오?”

“어허, 아직 젊은 친구가 못된 것만 배웠구만. 모른다는데 왜 못 믿어. 조현에서 의빈으로 향했다는 소문까지는 들었지. 하지만 그게 끝이야.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니까!”

황만은 속사포처럼 말을 끝내고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바닥에 뉘였다.

최대한 편한 자세로.

더 이상 얘기하기 싫은 듯 눈까지 감아버려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황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호는 한참을 서 있다가 천천히 뒤돌아서 삽교 위로 올라섰다.

뭔가 이상했으나 무력까지 동원할 일은 아니기 때문에 삽교로 올라서서 다시 중심지 쪽으로 향했다.

개방 제자에게 물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허탕을 친 이상 다시 객잔으로 가서 풍운대의 소식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황만이 중심지 쪽으로 걸어가는 운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거지가 삽교 위에서 깃털처럼 뛰어내려 다가왔다.

분타 주변의 경계를 맡고 있던 부분타주 왕일이다.

“분타주님, 비각이 따라붙고 있는 걸 보니 저자가 그자인 것 같습니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얼마나 붙었지?”

“셋이 붙었습니다.”

“모르던가?”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정보를 다루는 놈들은 철저하게 기세를 숨겨서 아무리 고수라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저자는 강호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너도 그렇게 보였어?”

“우리가 저런 애들 한두 번 봅니까.”

“그것참, 보고도 못 믿겠구먼. 저런 애송이에게 유령단이 박살 나다니. 칠절문은?”

“황룡단 전체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끝장을 볼 생각인 모양입니다.”

“일이 점점 재밌어지는군.”

“그런데 저자가 뭘 물었습니까?”

“풍운대의 위치.”

“이상하군요. 풍운대의 위치를 왜 우리에게 물었을까요. 벌써 사천뿐만 아니라 감숙에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데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모른다고 했다.”

“왜요?”

“궁금해서.”

“궁금하다니요?”

“저자의 행동으로 봤을 때 풍운대의 소식을 모르는 한 의빈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황룡단하고 부딪친다는 얘긴데, 자네는 유령단을 박살 냈다는 저자의 실력이 궁금하지 않아?”

 

황룡단주 엽문은 병력을 도열시킨 채 의빈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비록 놈이 유령이대를 전멸시켰다고는 하나 엽문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유령이대와 황룡단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유령단주가 포함된 전체라면 모를까, 유령이대 정도면 자신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히 요리할 수 있었다.

“어디에 있나?”

“춘래객잔에 있습니다.”

“객잔이라……. 아직 식사할 시간도 아닌데 객잔에 있다니. 쯧쯧.”

석송의 대답에 엽문이 혀를 찼다.

다른 데라면 몰라도 객잔이라면 무턱대고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이른 시간이지만 객잔에는 분명 손님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단주님, 놈이 도주라도 하게 된다면 일이 어렵게 됩니다. 노출되었을 때 잡아야 합니다. 일단 포위하고 놈만 남기시죠.”

“그렇게 해.”

성격이 진중한 부단주 석송의 제안에 엽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는 않으나 어차피 해야 한다.

새파랗게 어린놈을 잡기 위해 황룡단 전체가 움직인 사실이 그의 마음을 찜찜하게 만들었지만 어쨌든 놈을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운호는 이른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직 때가 일러서 그런지 객잔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귀를 세워봤지만 맞은편에 앉은 장사꾼들은 감숙에서 가져온 용정차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좌측 건너편에 있는 패거리는 도박과 여자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뿐, 풍운대에 관한 말은 어디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결국 저녁때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저녁 시간이 되면 무인들도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르기 때문에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이 컸다.

정문으로 열 명의 적의인이 들어선 것은 옆쪽 사내들의 음담패설에 얼굴이 슬며시 붉어질 때였다.

들어선 적객들은 모두 쇄겸도(鎖鎌刀)를 꺼내 들고 있었는데 그중 구레나룻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칠절문의 황룡단이다! 객잔에 있는 자들은 모두 나가라!”

사내의 고함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급히 객잔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의빈에서 칠절문은 지옥사자나 다름없기에 그들은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객잔에는 오직 운호만 남았다.

적객들은 들어온 이후 계속해서 그를 주시했기에, 운호는 남아 있는 차를 모두 마시고 천천히 객잔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의 시선은 운호가 목표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의빈이 칠절문의 앞마당이라더니 정보의 흐름이 정말 빠르다.

유령이대를 해치우고 삽교를 거쳐 객잔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칠절문은 어느새 그의 행적을 알아내고 포위망을 구축해 왔다.

서늘한 한기.

객잔뿐만 아니라 주변의 공기가 온통 살기로 가득 찼다.

오감의 느낌은 이 일대가 온통 칠절문의 무인들로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긴장은 되었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풍운대의 임무는 의빈에서 적과 교전하는 것이다.

지금 사형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운호는 자신이 풍운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내력이 회복된 이상 풍운대의 임무를 충실히 시행할 생각이었다.

 

엽문은 수룡대주가 수하들을 이끌고 객잔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도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곧 교전이 시작될 것이지만 어떠한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놈은 죽는다.

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황룡단 전체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춘래객잔.

봄이 오는 객잔이란 뜻이지만 지금은 봄이 한참 지나갔으니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이 층으로 지어진 춘래객잔은 거의 이백 평에 달할 만큼 커다란 건물이었으나 백이십의 황룡단 무인이 둘러싸자 꼭 벌집처럼 보였다.

황룡단 무인들은 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창가와 지붕, 그리고 담장까지 빼곡히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적들의 공격은 처음부터 필사적이었다.

유령이대가 당했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선발대로 들어선 적객들은 좌우로 흩어지며 지체 없이 공격해 왔다. 구레나룻 사내 수룡대주 여범(呂範)의 쇄겸도가 가장 마지막으로 날아왔다.

피잉!

여범의 쇄겸도는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며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를 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

운호는 적객들의 칼은 빗겨내고 여범의 쇄겸도와 부딪쳐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너무 치명적인 공격이었기에 저절로 검에 힘이 들어갔다.

유령이대와의 싸움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적객들의 공격은 단 한 번이었음에도 전신을 싸늘하게 만드는 흉험함이 올올히 살아나왔다.

준비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였다.

유령이대는 그를 눈 아래로 보며 경시했기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수룡대는 그를 강적으로 인식하고 칼을 꺼냈다.

무력이 비슷하다 해도 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전투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무인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 된다.

수룡대의 공격이 그랬다.

전력을 다하면서도 교묘하게 편차를 둔다.

단숨의 공격이 아니라 시간차를 둔 합격술이었다.

더군다나 여범의 쇄겸도는 불쑥불쑥 파고들어 적객들의 위험을 상쇄시키며 운호의 검을 흐려놓았다.

창문을 부수고 수룡대의 나머지가 들어온 것은 삼 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적객의 숫자는 금방 서른으로 늘어났는데, 그들은 사방을 점유한 채 뇌정추를 돌리기 시작했다.

뇌정추는 검병에 줄이 달려 있고 그 끝에는 쇠공을 매단 무기로서, 강호의 오문 중 가장 악독한 무기로 꼽힌다.

윙, 윙!

뇌정추가 돌아가는 소음이 귀를 자극해서 자꾸 신경을 분산시켰다.

언제든지 기습이 가능한 상황.

이런 상태에서의 싸움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운호는 검에 내력을 끌어 올렸다.

유령이대와의 싸움 이후 적정의 원리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왔기에 수룡대와의 싸움에서는 내력을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이 점차 흉험하게 변했기 때문에 그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태산에서 창천으로 검을 변화시켰다.

일거에 뚫고 나가지 않으면 곧 뇌정추의 공격이 시작된다.

 

엽문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어깨를 좌우로 돌렸다.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뜻.

직접 싸움에 가담할 일은 없겠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본능적으로 몸이 꿈틀거렸다.

기분 좋은 가벼운 흥분.

놈의 무력이 의외로 강해 자신이 나서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흥분은 훨씬 커지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니 그저 수하들 모르게 근육을 이완시킬 뿐이다.

상황이 변한 것은 창문으로 수룡대의 나머지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콰앙!

정문이 부서지며 하나의 신형이 폭사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부대주 석송이 이끄는 풍멸대가 급히 놈을 향해 날아갔으나 중앙이 뚫리며 신형이 자신 쪽으로 다가왔다.

사람 사는 일이 항상 이렇다.

상상한 일이 현실이 되는 경우를 보고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하는데 엽문의 마음이 딱 그랬다.

섬뜩한 미소를 피워 올린 그의 몸이 앉은 자세 그대로 말에서 솟구치며 운호를 향해 날아갔다.

휘익, 쐐액!

그의 손에 들린 자웅검(雌雄劍)은 어느새 운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한꺼번에 터진 칠검이 사방을 완벽하게 점유해 운호의 진격을 차단해 버렸다.

철벽의 방어선.

갑작스런 엽문의 공격에 운호의 신형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운호가 내려서자 엽문의 몸도 깃털처럼 전면을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에 피었던 섬뜩한 미소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아직 어린놈이로구나.”

“누구시오?”

“날 죽이러 온 놈이 날 모른단 말이냐?”

운호의 반문에 엽문의 얼굴이 슬쩍 변했다.

비각삼대주의 보고대로라면 놈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왔을 텐데 모른다고 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비각 이 새끼들 하는 짓거리 하고는, 쯧쯧. 그래, 여긴 뭐 하러 왔지?”

“싸우러.”

“싸워? 누구하고?”

“누구긴, 칠절문이지. 점창과 싸우려는 자들이 칠절문 말고 또 있소?”

“그러니까 네 말은 너 혼자 여기서 칠절문 전체와 싸우겠다는 소리냐?”

“그렇소.”

“미친놈이군.”

내려뜨렸던 흑룡검을 끌어 올린 운호가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엽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쳤다고 말은 했지만 놈의 눈만 봐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놀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는 것 또한 놈의 진중한 태도로 알 수 있기에 엽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칠검을 뿌리친 놈의 무력이 만만치 않았으나, 그렇다고 죽는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샌가 수하들이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구축해 놓은 것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날 방법은 없다.

놈은 함정에 빠진 승냥이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울부짖다가 결국은 처참하게 도륙될 것이다.

어차피 죽일 거라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 편이 훨씬 모양새가 좋았다.

그랬기에 그는 손을 저어 수하들을 뒤로 물렸다.

“어린아이를 다수가 핍박해서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싸우러 왔다니 내가 상대해 주마.”

“다시 묻겠소. 그대는 누구요?”

“황룡단주 엽문.”

“그렇구려. 어쩐지 대단했소.”

“짧은 인생이 아쉽겠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무인의 인생이 그런 것을. 마지막으로 이름이나 밝히고 가라.”

엽문의 말에 운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수많은 적에 둘러싸였으나 그는 한 올의 두려움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손에 들린 흑룡검.

사부님이 남겨주신 흑룡검이 손에 들려 있으니 당당하게 싸울 생각이다.

그랬기에 그는 엽문을 바라보며 어깨를 끌어올렸다.

“나는 점창의 풍운대 운호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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