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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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40화
몸이 하늘을 난다.
유운신법에 내력이 운용되자 마치 비행하는 것처럼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그토록 부럽던 사숙과 사형들의 신법이 한낱 꿈으로 여겨질 만큼 운호의 신형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삼 장을 건너뛰었다.
그가 몸을 치료한 서곡에서 의빈까지의 거리는 이백 리.
다치기 전이었다면 신법을 펼쳐도 하루가 꼬박 걸릴 거리였으나 운호는 불과 세 시진 만에 의빈에 도착했다.
의빈은 인구 만오천을 넘고 칠절문의 영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도시였지만 사형들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풍운대의 임무는 적진 교란이었으니 이곳 의빈에서도 분명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운호는 우선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정보의 보고였기 때문에 배도 채우고 풍운대에 대한 정보도 알아보려 했다.
“저놈이 안 죽고 여기까지 오다니 어떻게 된 거냐?”
“분명 유령이대가 쫓아갔습니다.”
“뭔가 잘못됐군.”
비각 삼대주 정풍은 끝 쪽 자리에 앉아 귀를 열어놓고 있는 운호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뭔가 생각할 때 늘 하는 습관이다.
정보를 줄 뿐 결과를 확인하진 않는다.
워낙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그들의 속성상 일일이 결과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었어야 할 자가 눈앞에 다시 나타나자 정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령이대는 풍현에서 본단 쪽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신응들을 죽였기 때문에 놈이 살아 있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디 한 군데 다친 곳도 없어 보였다.
“저놈 지금 뭐 하는 것처럼 보이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정보가 필요한 모양인데, 뭘 찾는 걸까?”
“그것보다 저자가 여기에 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죽을 자리를 왜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령이대의 위치는?”
“창천각입니다.”
“일부러 놔줬을 리는 없고, 놓친 모양이군.”
“천하의 유령단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연락해. 와서 처리하라고.”
“알겠습니다.”
“심심한데 잘됐어.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어찌 되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정풍은 뱁새 사내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천천히 소면을 먹기 시작했다.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자는 언제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점창의 운자배라면 점창의 신응 몇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척살해야 할 대상이다.
화수로 이동해야 했지만 그는 식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왜 유령이대가 저자를 죽이지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호는 귀를 기울여 사형들의 소식을 듣고자 했으나 객잔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풍운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지금 사천은 칠절문과 점창의 전쟁이 온통 화두였기 때문에 풍운대의 이야기가 나올 만도 했지만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허탕만 치고 말았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점소이의 눈치도 보였기에 운호는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할 수 없이 개천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도시가 있는 개천에는 항상 주인이 있다고 들었다.
바로 개방 사람들.
개방의 정보망은 천하제일이라고 했으니 개천으로 나가 사형들의 위치와 지금의 상황이 어쩐지 알아보려 했다.
개천은 중심가를 건너야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에 운호는 시가지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마음은 바빴으나 서두르지 않았다.
여기는 적진 한복판.
그가 걷고 있는 시가지에도 칠절문 무인이 여럿 보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 늦더라도 적들의 시선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중심가를 벗어나자 곧 바뀔 수밖에 없었다.
미행이 붙었다.
예전 같았으면 몰랐겠지만 상시 내력이 흐르는 지금은 오감이 확연하게 기척을 감지해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었다.
일각이나 지났을까.
중심가를 벗어나 인적이 뜸한 곳에 다다르자 적들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본 자들이다.
풍현 근처 황성산에서 만났던 유령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꼭 그 짝이다.
신비고수에게 막혀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하고 도주했던 유령이대주 정철은 운호가 공터에서 멈추자 빙글거리는 얼굴로 다가왔다.
“반갑다, 애송이.”
“내가 반갑다니 다행이구려.”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 이렇게 만나는 걸 보면 우리가 인연이 있는 모양이구나.”
“인연은 무슨, 악연이겠지.”
“인연이든 악연이든 무슨 상관이겠느냐. 우리는 네 목만 가져가면 된다.”
“자신 있으면 가져가 봐.”
운호의 대답에 정철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놈이 예전처럼 격장지계를 쓰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네 목은 호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는 것처럼 언제든 끊어낼 수 있지. 자신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다.”
“그 정도로 내가 너희한테 우습게보였단 말이지?”
“똥개처럼 도망이나 치는 놈은 그렇게 본다.”
“혹시 내가 전에 한 말 기억해?”
“무슨 말?”
“독종들만 모인 점창에서도 내가 제일가는 독종이라고 했잖아.”
“죽을 때가 되니 별소릴 다하는구나. 독종 타령은 저승에나 가서 떠들어. 어차피 그 실력 가지고는 금방 죽을 테니까. 뭐해? 시간 없다! 빨리 해치우고 가자!”
정철의 말에 여덟 명의 유령대원이 좌우를 좁히며 운호를 감싸듯 다가왔다.
그들의 표정은 여유가 가득했다.
이전의 경험으로 봤을 때 포위망을 뚫지 못하게 만든다면 운호의 목숨을 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운호가 오히려 한 걸음 다가선 것은 그들이 병기를 뽑아 들었을 때다.
“그때는 못했지만 여기서 증명해 주지. 내가 정말로 독종 중의 독종이란 사실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호의 검이 날아갔다.
그 공격은 빛살처럼 빨라 순식간에 넷을 훑고 돌아왔다. 공격을 당한 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우지도 못한 채 거짓말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황당한 것은 서 있는 자들이 더한 모양이다.
아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 그리고 공포가 함께 피어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들 역시 공격을 받는다면 죽는다는 걸 단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만큼 운호의 검은 빠르고 강력했다.
그들은 공격해야 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만큼 충격에 젖었다.
운호의 검은 그런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섬전이 불을 뿜었다.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
내력이 완벽하게 발현된 운호의 검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합공해 오는 그들의 검을 산산이 부숴 버려 대항이 불가하도록 만들었다.
설명은 길었으나 결과로 나타난 것은 불과 숨 몇 번 들이켤 사이에 불과했다.
정철은 수하들이 도륙되는 것은 그저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풍현에서 본 운호의 무력은 수하들만 가지고도 충분한 것이었기에 그저 즐거운 구경을 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여덟이나 되는 수하가 목숨을 잃자 정신이 멍해졌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이 나오지 않고 신체도 기능을 멈추는데, 정철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은 그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운호는 쓰러진 자들을 일별하고 자신의 검을 보았다.
의빈으로 급히 오면서도 잠시 쉴 때마다 검에 내력을 주입하고 유운과 사일검법을 펼쳤다.
너무나 쉽게 발현되는 검기의 물결은 그에게 감동을 넘어 슬픔을 주었다.
감정의 끝은 언제나 슬픔이다.
유연하게 펼쳐지던 사일은 분광을 넘어 회풍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검은 거의 십여 장을 초토화시켜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럼에도 운호는 아직도 가슴속에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이 내력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줄까 하는 의구심.
유령대를 이토록 급작스럽게 공격한 이유도 그런 의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정(適正).
알맞고 바른 정도를 적정이라 하는데, 적의 수준과 나의 수준을 알지 못하면 적정한 공격과 방어가 어렵다.
그것이 지금 결과로 나타나 있다.
운호는 자신의 수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정도의 부상까지 입었기에 운호의 검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땅에 쓰러져 있는 유령대원들은 마치 화탄에 공격당한 것처럼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비각삼대주 정풍은 능선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야말로 기절할 정도로 놀라 고개를 바짝 수그리고 말았다.
걸리면 죽는다.
그의 머릿속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일방적인 도륙.
유령이대주의 무력은 칠절문에서도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강했는데 일검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마치 그냥 목을 내밀고 죽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철의 몸은 충격으로 인해 마비되고, 운호에게서 나오는 기세에 완벽하게 눌렸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저절로 두려움이 솟구칠 정도로 강한 자였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수그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서 지켜봤다는 걸 저놈이 안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한동안 꼼짝하지 않던 그의 고개가 슬그머니 들렸다.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으나 고개를 든 그의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는 풍현과 의빈, 인수를 잇는 정보 책임자다.
저 정도의 무력을 지닌 자가 의빈까지 들어왔다는 것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뇌부 암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황상으로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고현까지 온 놈들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후퇴하더니 미고에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듣기로는 문의 정예가 공격했다는데 그 결과는 아직 알지 못했다.
어쨌든 고현까지 들어와 기습 작전을 벌이던 놈들마저 후퇴했으니 지금 이곳에 들어온 점창의 병력은 놈이 유일하다.
중요한 것은 기습 작전을 벌이던 자들과 다르게 놈이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으나 결론은 오직 하나.
놈의 목적은 수뇌부의 암살밖에 없었다.
“야, 도대체 이 정보는 어떤 놈이 보낸 거야?”
“비각삼대주가 직접 수결해서 보내온 겁니다.”
“완전히 돌아버리겠네. 기껏 한 놈이 들어와서 수뇌부를 암살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황룡단주 엽문이 전서를 손에 든 채 기가 막힌다는 웃음을 지었다.
의빈은 칠절문의 앞마당과 거의 붙어 있는 곳이다.
더군다나 의빈과 고현을 맡고 있는 것은 황룡단이었다. 비각삼대주의 보고대로라면 놈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전서에 버젓이 쓰여 있으니, 물어보는 엽문이나 대답하는 부단주 석송이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단주님, 일단 가봐야 되겠습니다. 뭐든 눈으로 확인해 보면 간단해지게 마련이죠.”
“할 수 없지. 그놈이 우리한테만 정보를 보냈을 리 없으니 괜히 무시했다가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거기가 어디라고?”
“여기서 반 시진만 가면 됩니다.”
“놈은?”
“비각 애들이 미행하고 있답니다. 놈은 아직 의빈에 있습니다.”
“좋아, 애들 대기시켜. 이것 참, 별일이 다 생기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