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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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34화
뇌호혈의 타통.
그동안 그를 괴롭혀 오던 끔찍한 고통은 뇌호혈이 타통되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풍부혈을 깰 때처럼 고통 속에서 이를 악물며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고 기절조차 하지 않았는데 뇌호혈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타통되어 진기를 강간까지 밀어올리고 있었다.
뇌호혈을 지나 강간까지 진입한 진기는 그 끝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유영하다 단전으로 되돌아갔다.
내력의 크기가 혈의 범위를 채우지 못해서 벌어진 현상.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뇌호혈까지 진행하던 진기는 마치 폭포수 같았으나, 타통이 되어 강간으로 진입한 내력은 마치 고요한 호수처럼 회전되며 신체를 극도의 균형 상태로 이끌었다. 날뛰던 진기가 가라앉으니 끔찍하게 그를 괴롭히던 고통도 사라져 버렸다.
청문 사숙은 내공편을 가르치면서 이러한 현상을 회수(回水)의 경지라 말씀하셨다. 내력의 사용이 마음에 따라 움직이고 물이 회전하는 것처럼 온몸을 돌아 재생산되는 단계.
즉, 내공의 소모와 보충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경지였다.
이 단계에서 더욱 정진하면 강간의 그릇이 채워지고, 만수가 되었을 때 강간이 깨진다고 배웠다.
십제(十帝)의 경지.
현 무림에서 강간을 깨고 일월합벽(日月合闢)의 경지에 오른 것은 절대고수라 불리는 십제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으니 뇌호혈을 깬 것은 대단한 성과임이 틀림없다.
운호는 조용히 앉아 몸의 변화를 관조하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삼성이 넘으면 끔찍한 고통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단전에서 내공을 흘려냈다.
아!
몸이 삼성을 넘겼는데도 견뎌내며 고통이 없자 운호는 예전 기억을 되살려 극도로 조금씩 내공을 올렸다.
언제 생겨날지 모르는 고통은 너무나 끔찍해서 조짐이라도 보이면 내공의 운영을 즉각 중지할 생각이다.
그러나 사성이 넘고 오성이 넘어도 육체는 끄덕하지 않았다.
뛸 듯이 기뻐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운호는 그 기쁨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내공을 뿜어냈다.
단전에서 흘러나온 진기는 칠성이 넘어서자 온몸을 휘감으며 도도히 흐르기 시작했다.
날아갈 것 같은 쾌감.
그리고 십성에 달하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일검에 산이라도 가를 것 같은 내력이 전신에 가득 차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끌어 올린 내공을 단전으로 회수한 운호는 자신도 모르게 솟아난 눈물을 닦으며 팔로 바닥을 짚었다.
너무나 기쁘면 사람은 눈물이 나오는 모양이다.
한동안 그 자세로 있던 운호는 뒤늦게 생각에 잠겼다.
이런 기연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한 것이라고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두 시진 동안 신법을 펼친 것밖에 없고, 결국 견디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심법을 운용했을 뿐이다.
무력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득의를 통한 각성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각성은 무공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진다는 것을 뜻하고, 그에 따른 활용이 훨씬 능숙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랬기에 운호는 뇌호혈을 타통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고자 했다.
원인을 알아야만 심법 운용의 묘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고, 다음 단계에 대한 준비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운호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애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었다. 또한 무념에서 깨어나자 옆구리와 어깨에서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
천룡무상심법이 상처를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해도 한 치가 벌어질 정도의 중상을 금방 완쾌시키지는 못한다.
오랫동안의 좌정은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기에 그는 바닥에 누우며 저절로 신음을 뱉어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유운과 사일검법을 시전해 보고 싶었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었다.
당운영은 방문을 열다가 운호가 신음을 지르는 소리에 급히 다가왔다.
원인 모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녀는 옆에 앉으며 급히 물었다.
“왜 그래요?”
“아파서 그러오.”
“어디가요?”
“잠시 일어났는데 검에 당한 상처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다른 데가 아픈 건 아니고요?”
“다른 데라면 어디?”
운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당운영이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혼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인 것이 계면쩍었는지 새초롬히 입술을 내민 채다.
밤새도록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가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서도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찾기 위해 여러 군데에서 전서가 날아오른 상태였다.
급히 돌아가야 했지만 밤새 고민한 끝에 당분간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운호의 상처는 작은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
이유를 말하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붕대를 완전히 끌러낸 당운영의 눈이 밝아졌다.
상처는 하루 만에 상당히 호전되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도 못 믿을 지경이었다.
“소협, 이거 봐요.”
“뭘 말이오?”
“상처의 홍반이 가라앉은 거 안 보여요?”
“이게 가라앉은 거요?”
“어제는 이렇게 부어 있었다고요!”
당운영이 과장되게 두 손으로 원을 그렸다.
그녀가 그린 원은 거의 호박만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운호는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 옆구리에 호박이 달렸던 모양이오.”
“호호, 너무 컸나요? 그럼 이 정도?”
두 손을 조금 작게 다시 그린 당운영이 특유의 봄꽃 웃음을 지으며 운호의 눈을 바라봤다.
장난기가 섞여 있는 그녀의 행동에 운호는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많이 부풀었던 모양이군요.”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가라앉았으니 놀랄 수밖에요. 봤죠? 우리 가문의 비약이 얼마나 효과가 뛰어난지.”
“내 몸에 바른 게 당문의 비약이오?”
“활인고라는 요상비약이죠. 웬만한 상처는 깨끗이 치료된답니다.”
“그리 귀한 것을 나한테 쓰다니, 고맙소.”
“어때요? 신세 갚을 게 또 하나 생겼죠?”
“그렇군요. 신세를 갚으려면 또 검이나 칼에 맞아야 될 텐데 걱정이요. 검에 맞는다는 게 생각보다 아프다오.”
“키킥, 이제 농담도 하시네요?”
당운영이 쾌활하게 웃자 운호가 따라 웃었다.
별것 아닌 농담에 당운영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소?”
“최소 칠 일은 지나야 해요. 그것도 이 비싼 활인고를 엄청나게 써야 가능하답니다.”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걱정이오.”
“강호에 처음 나온 거죠?”
“그걸 어찌…….”
“척 보면 알죠. 그나저나 나오자마자 이렇게 큰 상처를 입다니 운이 좋지 않네요.”
“다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요.”
“소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한 사람한테 떼거리로 덤볐으니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당해낼 수 없었을 걸요.”
운호가 슬쩍 웃음을 지우고 자신을 탓하자 당운영이 급히 위로의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에 운호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어떻게 봤소?”
“그게… 지나다가…….”
당운영이 당황하며 얼버무렸으나 운호는 입을 굳게 닫고 다시는 열지 않았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유령단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추격이 가능했을 텐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추적을 멈췄다.
아니, 멈췄다기보다 애초부터 추적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그리 되었을 소지가 다분했다.
그들을 전부 감당할 만한 고수가 추적을 차단했다면 의문은 깔끔하게 정리된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르나 지금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누군가의 개입이었다.
그랬기에 운호는 천천히 당운영을 살폈다.
만약 그 누군가가 당운영이 맞다면 그녀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당운영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예뻐요?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부끄럽게?”
화원을 천천히 걷던 천수가 급히 다가오는 비각주를 확인하고 걸음을 멈췄다.
비각주는 점창이 산을 내려온 후 수시로 천수의 처소에 드나드는 중이다.
“어서 와. 확인해 봤나?”
“예, 총사. 놈들은 급히 남하하고 있습니다.”
“남하를 해? 이유는?”
“그것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동이 트자마자 풍현 쪽을 향해 전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애들은?”
“따라붙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번 작전을 위해 문주님께서 특별히 수룡대(九龍隊)를 움직이셨다.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라고 전해.”
“그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제물은 준비해 놨겠지?”
“그렇습니다. 걸리면 빼도 박도 못할 겁니다.”
“당문의 혈련각 지부가 미추에 있다고 했나?”
“예, 총사.”
“미추로 놈들을 몰아. 거기서 끝장을 내!”
사천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칠절문의 총사, 천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치켜 올라갔다.
그가 꾸미는 계책은 알고도 당할 만큼 신기묘묘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의 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간을 넘어 미추로 향하고 있었다.
과연 그가 꾸민 계책은 무엇이란 말인가?
급히 운호를 찾으라는 명령에 운곡은 풍운대를 이끌고 풍현을 향해 움직였다.
이런 거대한 싸움에서 제자 하나 실종되었다고 작전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청문자는 지급으로 운호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도 반드시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할 만큼 청문자의 의지는 강력했다.
적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은 미고(美姑)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워낙 급히 움직이느라 아침도 걸렀기 때문에 미고에 들러 배를 채울 생각이었는데, 적들은 폭멸궁을 쏟아부으며 풍운대를 압박해 들어왔다.
부지불식간의 공격이었음에도 운곡을 비롯한 풍운대는 적들의 포위를 허용치 않고 한쪽 방향을 열어놓았다.
적의 인원은 거의 백 명에 육박했고, 선두에 선 중년도객들의 무력이 워낙 뛰어나 포위망에 갇히면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때문에 운검과 운극이 후미를 맡아 필사적으로 퇴로를 확보했다.
중년도객들의 칼이 허공에서 번개처럼 떨어져 내리며 풍운대를 위협했다.
그들의 칼은 마령단 무인의 등 뒤에서 나왔기 때문에 대응이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했다.
등 뒤에서 나온 칼이었지만 그 강력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틈을 노리는 기습 작전.
풍운대는 제대로 검을 찔러내지 못하고 연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정체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점창에서 하산하기 전 칠절문의 전력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했기 때문에 주력 무인에 대한 정보가 운곡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상태이다.
도법과 용모로 봤을 때 그들은 무풍칠사임이 틀림없었다.
전왕 혁기명은 두 개의 친위대를 두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무풍칠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전왕의 신변을 지켜야 하는 무풍칠사가 특급타격대라는 마룡단과 함께 이곳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운곡은 순식간에 삼검을 찔러내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더군다나 놈들의 공격이 이상했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무조건적인 돌진을 해왔기 때문에 풍운대는 공격 대신 방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공격 사이로 기습을 해오는 무풍칠사의 공격은 징그러울 만큼 독해 벌써 두 군데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중이다.
이가 악물려졌으나 운곡은 표정을 풀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고 한다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고유의 임무가 있었고 지금은 무엇보다 운호를 찾는 일이 급했다.
그랬기에 그는 사제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마주치지 말고 물러서라! 신법으로 뿌리치고 미고를 넘어간다!”
운곡이 먼저 신형을 날리자 운몽을 비롯한 사제들이 열려진 퇴로를 따라 번개처럼 움직였다.
내공이 동반된 유운신법의 효용은 단거리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에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 마룡단과의 거리는 삼십 장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무풍칠사의 신법은 마룡단을 훨씬 뛰어넘어 불과 십 장의 거리에서 풍운대를 쫓고 있었다.
무인에게 삼십 장은 짧은 거리.
불과 숨 몇 번 흘릴 시간이면 충분히 도달되는 거리에 불과했다.
운곡은 신법을 날리면서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마룡단과 십 장 뒤에서 따라오는 무풍칠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미고를 넘어 마룡단만 완전히 뿌리칠 수 있다면 이 기회에 무풍칠사를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번뜩였다.
무풍칠사를 잡는 건 뜻밖의 수확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정면을 가로막은 채 서 있는 아홉 명의 검객을 발견한 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보검처럼 뻗어 나오는 무서운 예기.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몸을 따끔거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기에 검을 쥔 손이 저절로 굳어졌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했다.
여기서 저들과 충돌하면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결론을 내리면 망설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망산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