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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2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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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28화

풍운대는 사천의 남부를 횡단하며 기습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덕창(德昌), 목리(木里), 고현(高縣)의 칠절문 지부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의빈(宜賓)을 향해 움직였는데 그 시간이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광석화.

풍운대의 움직임은 진정 빠르고 강해 적들의 반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규모의 지부에 불과했지만 한 곳을 격파하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일각도 안 될 만큼 풍운대의 이동 속도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그들은 행적을 공공연히 노출시킨 채 전진했다.

목적은 두 가지.

무정현에 있는 비룡단을 지원하려 칠절문의 주력이 운남으로 움직이는 것을 견제하고, 주 전장을 사천에 형성시키기 위함이었다.

“사형, 의빈에 있는 천룡대는 놈들의 주력입니다.”

“안다.”

“하루를 꼬박 움직였으니 놈들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텐데 괜찮을까요?”

“아무리 빨라도 놈들의 지원군은 우리가 갈 때까지 오지 못한다. 의빈까지는 괜찮을 거야. 속전속결, 단숨에 끝내고 우린 영흥으로 이동한다.”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군요. 갈수록 위험해질 겁니다.”

“할 수 없지.”

“어디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인수(仁壽).”

“사형, 인수는 안 됩니다. 영흥도 위험한데 인수라니요. 칠절문의 본단과 불과 반 시진 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는 것이다. 인수를 치지 않으면 칠절문의 주 전력이 운남으로 가게 된다. 그건 점창이 원하는 바가 아니야.”

“음.”

운검의 입에서 깊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영흥은 사천과 운남을 잇는 직선로에서 우측으로 삼십 리 벗어나 있는 곳이다.

거기에 인수는 영흥으로부터 우측으로 오십 리를 더 가야 도착할 수 있으니 칠절문이 풍운대를 잡기 위해서는 운남과 역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다시 말해 운곡은 풍운대를 미끼로 칠절문의 주력을 인수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었다.

사문이 처한 처지를 생각한다면 반대해선 안 되는 일이었으나 풍운대가 위험해진다.

더군다나 영인과 학경에 있는 칠절문의 지부 병력이 사라졌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컸다.

그들이 자신의 퇴로를 차단해 버리면 정말 움치고 뛸 수조차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운검이 말문을 닫아버리자 대신 나선 것은 운몽이었다.

운몽은 까칠한 성격인 반면 두뇌 회전이 무척이나 빠르다.

그랬기에 풍운대의 행사는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대사형,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무정현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느라 정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잠시 멈추고 정보부터 확인해야 됩니다.”

“왜 그렇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무정현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면 학경에 진출한 청문 사숙께서 사천으로 들어오시지 못하게 됩니다. 무정현에 전력이 남아 있게 되면 우리가 인수를 쳐도 칠절문은 지원군을 보낼 테니 청문 사숙께서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사천으로 들어오기 직전 쌍로와 오군이 무정현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운몽의 말을 들은 운곡의 표정이 슬며시 어두워졌다.

청무 사숙을 믿었으나 그들이 합류한 비룡단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무정현 싸움의 결과가 미치도록 궁금했고, 그 여파에 따라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말은 우리가 고립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상태로 변하면 인수는 사지(死地)가 됩니다.”

“청명 사숙이 들어오시지 않느냐.”

“청명 사숙도 영인에서 움직이지 못하실 겁니다. 칠절문 본단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이 됩니다. 그런 상황이 오는 순간 우리는 영인으로 후퇴해서 청명 사숙과 합류해야 됩니다. 그대로 있는 순간 각개격파 당하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챙겨야 할 것들도 놓치는구나. 우리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정보부터 얻는다. 운천!”

“예, 대사형.”

“네가 운극과 함께 흥문(興文)으로 가서 정보를 확인하고 돌아오라.”

“그러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움직이도록. 우리는 너희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

 

기화요초가 피어 있는 정원.

꽃들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고, 곳곳에 세워진 수석이 정취를 더했다. 가운데 파인 조그만 연못에는 잉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정원의 기품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 것은 한쪽 편에 마련되어 있는 정자다.

정자는 바위와 바위를 연결해 교묘하게 지어졌는데 얼마나 정교한지 이음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정면에 적힌 송정이란 현판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힘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정원에 앉아 있는 세 노인.

가운데 놓인 술상에는 그윽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술병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향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형님, 한 병 더 내오시죠?”

“기둥뿌리를 뽑는구먼.”

“여아홍을 어디서 맛보겠습니까. 더군다나 형수님이 직접 만드신 여아홍은 일품 중에 일품 아닙니까. 송정에서나 마실 수 있으니 오늘 기둥뿌리 좀 뽑아야겠습니다. 막내도 한 달 만에 돌아왔는데 인심 좀 쓰시지요.”

“허허, 그 사람. 알았네.”

가운데 앉은 노인이 한껏 고무된 웃음으로 한쪽에 서 있는 시녀에게 술상을 다시 보라고 지시했다.

그는 아름다운 턱수염을 가지고 온통 하얀 백미를 지녀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송정과 백미의 노인.

만독불침이라 알려져 있고 삼양신장(三陽神掌), 금룡편법(金龍鞭法), 추혼비접(追魂飛蝶)을 대성하여 무림 십이왕 중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절대무인.

당문의 당대 가주, 독왕 당청이 바로 그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은 사람들은 친동생인 당황과 당추였다.

무림에서는 그들을 합쳐 당문삼무라 불렀는데, 당문을 대표하는 세 명의 고수라는 뜻이었다.

둘째인 당황은 내원을 책임지고 있었으나 셋째인 당추는 외원을 맡았기 때문에 본가로 돌아오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꼴이다.

형제들은 술상이 다시 차려지자 빠르게 잔을 비워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가주님, 이번에 재미난 일이 생겼습니다.”

“내원당주가 재미난 일이라고 스스로 말하다니 새삼 궁금해지는구먼. 회합날보다 오 일이나 빨리 온 게 그것 때문인가?”

당황이 단숨에 술을 마시고 은근한 어투로 말을 꺼내자 당청의 눈빛이 달라졌다.

동생들이 예정일보다 빨리 와서 이상했는데 당황의 한마디에 뭔가 있음을 금방 눈치챈 것이다.

내원당주는 당문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상업 시설을 관리하고 거대한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는 중책을 맡고 있다. 직, 방계의 대소사를 모두 챙기고 인사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실질적인 당문의 이인자는 그라고 보면 된다.

그가 관장하는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총괄이었다.

사천을 비롯해 강호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당문의 정보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점창이 드디어 어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점창이?”

“그냥 내려온 게 아니라 어제 저녁에 무정현에 진출한 비룡단을 박살 냈습니다.”

“정말인가? 도절 상후도 가 있었다면서. 그자는 뭐하고?”

“상후는 반병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네 말대로 정말 재밌는 일이 벌어졌구먼. 그런데 누가 한 거지?”

“청무자가 했답니다.”

“그럴 리가요. 청문자가 아니고요?”

반문은 당추에게서 나왔다.

그는 당문의 전투 부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척에 있는 점창의 고수들에 대해서는 남 못지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점창의 주력은 영인과 학경에 가 있다.”

“거긴 왜요?”

“차단과 소멸 작전이겠군.”

“그렇습니다. 칠절문의 지부를 격파하고 무정현의 싸움이 끝나는 대로 사천으로 진입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입니다.”

당추의 질문에 당가주인 당청이 대신 대답하자 말을 하던 당황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얘기가 통한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천을 전장으로 하겠다?”

“선공의 묘를 살려서 칠절문의 본거지인 사천에서 싸우겠다는 뜻입니다. 운남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지요.”

“불리할 텐데?”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도 됩니다.”

“껄껄껄, 전왕의 코 평수가 한참 넓어졌겠구나.”

“더 재밌는 것은 점창의 일부가 사천을 휘젓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어제 내려왔다며?”

“사천을 비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더군다나 사천으로 온 자들의 무력이 대단합니다. 벌써 칠절문의 세 개 지부를 박살 냈으니까요. 그자들은 공공연히 의빈으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는 거지요.”

“천수의 대응이 궁금하구나.”

“사천지낭이라는 천숩니다. 서전은 점창이 선공의 묘를 살려 유리하게 진행할지 모르나 사천에서 전장이 형성되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벌써 천수는 영인과 학경에 있는 지부 병력을 후퇴시켰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의 생각은?”

“기다려야죠.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당황이 모르는 체 딴소리를 하자 당가주가 백미를 찌푸렸다.

상황이 장난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칠절문은 우리에게 턱 밑을 겨눈 비수와 같았습니다. 당장 나타난 점창의 전력으로 봤을 때 칠절문이 이기더라도 꽤 큰 타격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누가 이기든 마지막에 깨끗이 정리하면 사천은 온전히 당문의 소유가 됩니다.”

“오래 살다 보니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는군.”

“당문의 번영이 시작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고생했다. 자네 눈이 왜 그런가 했더니 밤새 잠 한숨 못 잔 모양이구먼.”

“잠깐 눈은 붙였습니다.”

“이왕 차려진 밥상, 맛있게 먹자고. 철저하게 준비해 놔. 단숨에 끝낼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당황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가득 찼다.

막내인 외원당주 당추를 불러들여 가주를 일부러 찾아온 것은 이런 결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점창과 칠절문의 사천 전투는 무림의 세력 판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먼저 판단하고 먼저 움직인다.

강호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력으로 한 치의 망설임조차 가지면 안 된다.

 

대청.

용머리가 좌우로 튀어나온 태사의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탁자를 중앙에 둔 채 양옆으로 의자가 이십여 개 배열되어 있는 걸 보니 회의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태사의에 앉은 노인의 풍채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반면, 정면의 의자에 앉은 사십 대 중년인은 가냘픈 체격을 지녔다.

그럼에도 그가 왜소해 보이지 않는 것은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 때문일 것이다.

앉아 있는 자세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향을 대충은 알 수 있는데. 거기에 표정까지 가미되면 거의 칠 할 이상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체구와 완벽히 반대되는 당당한 분위기를 지닌 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은 눈을 가진 사람.

칠절문의 지낭, 정무사 천수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 당당함도 패도적인 기운을 풍겨내는 노인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전왕 혁기명.

칠절문의 문주로서 이십오 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사천의 일각을 장악하고 천무삼십팔맥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 잡은 무인.

그의 독문 무공 천뢰마검은 무림 일절로 정평이 나 있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점창이 미친 모양이로군?”

“밀검이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작정하고 준비했다는 뜻인데… 참 우습게 되어버렸어. 그까짓 것 가지고 끝장을 보자고 덤비다니.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나오는구나. 이거 잘못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키게 생겼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말해.”

“첫째는 적당히 타협해서 사과하는 것이고, 둘째는 끝장을 보는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저를 보내주시면 아주 멋있게 사과하고 오겠습니다.”

“아주 염장을 지르는구나.”

“하하하!”

“천수, 그러지 않아도 머리 아프다. 어쩔 건지 빨리 말해봐.”

“무정현 싸움에서 나타난 것처럼 점창의 힘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끝장을 본다면 볼 수 있겠지만 결국 당문에게 좋은 일만 만들어주게 될 겁니다.”

“그래서?”

“놈들이 사천에서의 싸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놈들의 의도대로 영인과 학경에 있는 지부들을 뒤로 물렸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입니다.”

“쉽게 말해봐.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어차피 전장을 운남에 만드는 것은 늦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사천에서 전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천수, 대규모 병력 싸움이 아니다. 어디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

“난전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점창의 싸움이 되면 둘 다 결국 당문에게 당합니다.”

“내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당문이 움직임을 멈추고 세가의 무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겠다는 심산이지만 그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

“당문처럼 전통의 명문세가나 점창 같은 문파들은 우리와 다르게 명분이나 명예에 무척이나 약하지요. 그 명분과 명예가 놈들을 수렁에 빠뜨리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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