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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27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27화

도절 상후의 광무십삼도는 팔십 년 전 사천과 감숙을 종횡하며 활약하던 마도(魔刀) 석문의 독문 무공이었다.

그 당시 석문은 칼 한 자루만을 들고 일인문파의 위력을 발휘하며 사천과 감숙을 지배했다 전해진다.

광무십삼도의 믿을 수 없는 파괴력에 사천과 감숙의 절정고수들이 모두 패했다고 하니 석문의 위상이 어느 정돈지 알 만하다.

그러나 상후는 마도의 직전을 이어받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광무십삼도가 상후에게 전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나 직전이 아님에도 상후는 도절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사천에서 무적으로 군림했다.

만약 그가 마도의 직전을 이어받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렇다면 사천이 아니라 전 무림을 아우르는 절대고수가 되어 찬란한 명성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광무십삼도의 패도적인 파괴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상후는 왼손을 들어 혈룡들을 물러나게 만든 후 천천히 청무자의 전면에 섰다.

혈룡과 합격을 하면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는 자신의 싸움에 누구의 도움도 받아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청무자에게 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에 혈룡들을 선뜻 뒤로 물렸다.

무인(武人).

진정한 무인은 승패를 떠나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슴속 깊숙이 간직한 신념이다.

삼 보 앞에서 멈춘 그는 자신의 애병 탈명도를 도갑에서 꺼내 들고 청무자를 지그시 쳐다봤다.

“네 말대로 칼 뽑았다. 그러니 시작해 봐.”

오연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도절 상후를 향해 청무자는 스산한 눈빛을 던졌다.

안다. 저자의 눈에 들어 있는 질시와 조소의 의미를.

그랬기에 검을 든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광무십삼도의 파괴력은 귀가 따갑게 들었다.

사천을 종횡하며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도법이라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 상후 너의 자존심과 칼은 나 미친개 청무자에 의해 산산이 깨진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구름처럼 청무자의 신형이 상후의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며 삼검을 쳐냈다.

번쩍!

검에서 빛이 흘렀고, 곧이어 파공성이 뒤따랐다.

섬전(閃電)이되 섬전이 아니다.

혈룡들에게 보여준 섬전에서는 방금 펼친 것과 같은 빛 무리가 생성되지 않았고 위력 면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도절을 맞이한 청무자의 의지가 첫 공격에서부터 파괴적인 검초를 구사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일검의 전삼식 태산을 연환시키며 상후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고수는 적의 움직임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상후는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막아냈다.

그가 펼쳐낸 광무십삼도의 방어 초식 유성간월(遊星杆月)은 청무자의 강력한 초식을 하나씩 비틀어내며 유연하게 흘려냈다.

방어에 따른 공수 전환.

상후의 몸이 교묘하게 회전하며 후퇴하는 청무자를 따라잡았다.

“그 정도 가지고 큰소리를 치니까 똥개 소리를 듣는 거야!”

상후의 저음이 도명 사이로 울려나왔다.

그가 펼친 다섯 번의 칼질에서 칼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같았다.

쐐액!

역시 도절.

단숨에 공수를 전환한 도절의 탈명도가 청무자의 온몸으로 내리꽂혔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살기는 살을 엘 듯 시리게 차가웠다.

다가오는 칼을 맞이하는 청무자의 눈이 번질거렸다.

칼보다 더 심장을 긁은 것은 상후의 입에서 흘러나온 도발적인 언사였다.

그 입, 찢어버린다.

붉은 꽃잎 비화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상후의 칼과 부딪쳤다.

검과 칼이 부딪쳤는데 바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흐른 오십 초.

태산에서 창천으로 연환되는 사일검이 공간을 장악하며 압박했으나 상후는 교묘하게 방어와 공격을 전환하며 오히려 청무자를 몰아세웠다.

쾅!

사일의 월파를 피하지 않고 상후가 광무십삼도의 칠초식 수혼(搜魂)으로 곧장 맞받아쳤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폭음이 터지며 두 사람이 동시에 물러섰다.

상대의 공격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내력을 집중함으로써 생긴 결과였다.

상후는 뒤로 물러나 일 장 앞에 선 청무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많이 늘었다만 그거 가지고는 안 된다. 왜 나왔냐, 그 실력으로? 죽을 걸 뻔히 알면서.”

“네 도법에 광풍무가 있다고 들었다. 그게 가장 강하다면서? 그걸 꺼내라.”

“왜, 빨리 죽고 싶어?”

“오랜만에 나온 기념으로 놀아봤을 뿐이다. 하지만 여흥은 여기까지. 이제 승부를 보자.”

“흐흥, 여전히 웃긴 놈일세. 똥개 주제에 어디서 승부 타령을 해? 목이나 늘어뜨려라. 단숨에 목을 쳐주마.”

“약속하지. 그 입, 반드시 내가 찢는다!”

청무자가 검을 앞으로 들어 진격세를 만들어내자 슬그머니 검첨을 타고 빛 무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오색찬란한 검기가 분명했다.

그것을 본 상후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검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진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절정에 들어선 고수도 이런 집단전 속에서는 검기를 가급적 꺼내지 않는 게 상식이다.

검기를 시전하게 되면 내력의 소모가 심해지기 때문에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상후는 칼을 들어 올려 내력을 집중했다.

상대가 검기를 꺼낸 이상 도기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예전에 본 그 청무자가 아니다.

오색찬란한 검기를 꺼내 들 정도면 내력 면에서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 수련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여유를 갖는 것은 광무십삼도를 믿기 때문이다.

청무자의 말처럼 광풍무는 점창의 어떤 초식도 일거에 박살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 끌면 안 되는 승부다.

주변을 힐긋 바라보니 여전히 전투는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삼대가 공격을 맡은 쪽에서는 점창의 연환오행진에 밀려 비룡단 무인들의 피해가 발생하는 중이었다.

최단 시간 내에 청무자를 격살하고 나머지를 처리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칼을 치켜세우고 후삼식의 기수식을 잡았다.

광풍무가 불면 청무자의 검은 단숨에 꺾을 수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좌로 신형을 이동시키며 적의 흐름을 살폈다.

그때,

공격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는 순간, 청무자의 검이 산형을 만들며 정확한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신형이 스르륵 멈춰졌다.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섬뜩한 내용.

점창에 밀검(密劍)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은마수에 의하면 죽은 점창장로가 처음 보는 검법을 펼쳤는데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밀검이라 부르며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품을 문 적이 있지만 마침 당문과의 마찰로 인해 흐지부지됐다.

고수의 몸에 흐르는 특별한 감각이 전신을 훑으며 최고조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상후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지그시 자신을 쳐다보는 청무자의 시선은 완벽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 시선은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 자의 것이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는 전왕이 싸움에 나설 때마다 적을 향해 보여준 시선이 저랬다.

혀로 축인 입술이 촉촉해졌다가 금방 다시 갈라졌다.

청무자의 검에서 발생한 검기의 산란은 마치 뱀의 혓바닥처럼 징그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건너 여기에 왔다.

점창의 진정한 참검이 시공을 건너뛰어 무림에 선보여지는 순간이었다.

새삼 가슴이 뛴다.

청무자는 검첨에서 뻗어 나와 산란하는 검기의 흐름을 관조하면서 적을 응시했다.

상후 역시 고수. 자신의 검이 변했다는 걸 눈치채고 어느새 일 장이나 뒤로 물러서 있다. 기습적으로 분광을 펼쳐 단숨에 격살할 수도 있었으나 청무자는 그러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사문의 비기를 내보이고 싶었고, 강력한 도법이라고 알려진 광무십삼도의 최후 비기 광풍무를 맞상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을 들어 상후의 눈을 겨냥했다.

이제 곧 공격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후의 도(刀)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광풍무의 기수식이 틀림없었다.

패도적인 도법이라 알려진 광무십삼도 중 가장 막강한 위력을 가진 초식.

상후는 선공의 묘를 살리려는 듯 삼 장을 순식간에 단축하며 칼을 치켜 올렸다.

천단세에서 도끼로 내려 패듯 일직선으로 칼을 내리찍자 강력한 도기가 청무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섬뜩한 감각.

소리는 없고 오직 거대한 빛 무리만 뭉치가 되어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번개가 치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금방이라도 신형이 두 쪽으로 갈라질 것만 같은 위기.

그러나 청무자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줄기를 향해 연속으로 칠검을 쏘아내며 회전했다.

쾅, 쾅, 쾅!

연속되는 충돌음.

충돌이 계속될수록 상후가 펼쳐낸 거대한 도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마지막 충돌을 끝으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청무자는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십이검을 퍼붓고 있었다.

상후는 자신을 향해 부챗살처럼 다가오는 검기를 피하지 않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정한 광풍무의 시전.

그의 춤에 맞춰 바람이 춤을 추고 노래했다.

부드러운 노래와 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미친 노래와 미친바람이었다.

누구도 견딜 수 없는 도풍이 공간을 장악한 채 청무자의 검을 향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칼바람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만큼 상후의 광풍무는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

거의 일각이 지날 동안 광풍무의 묘한 힘은 청무자의 반격을 허락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검기의 물결 분파가 발생한 것은 광풍무에 의해 공간이 응축해지기 시작했을 때다.

공간이 응축된다는 것은 광풍무의 위력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것을 의미했는데, 분파의 생성은 정점 직전에 발생되었다.

처음에는 하나씩 나타나던 검기의 물결이 공간을 장악한 광풍무를 향해 끊임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반으로 가르고 또 반으로 가르더니 계속해서 가르고 또 갈랐다.

청무자의 검에서 발생한 검기의 물결은 도도한 흐름을 타고 미친바람을 자르며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회오리의 중심을 때리자 공간의 응축이 한꺼번에 터지며 상후가 뒤로 튕겨 나갔다.

그의 몸에는 세 군데의 검상이 생겨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을 뿐 거의 반이나 잘려, 서 있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으, 이런 개 같은!”

칼을 땅에 짚고 선 상후의 얼굴은 악귀처럼 변했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며 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치켜세웠는데, 고통에 겨워 움직임이 원활치 못하자 몸부림을 쳤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대신해 전장으로 나서려는 혈룡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멈춰라! 이 싸움은 내 것이다!”

한쪽 다리를 다쳐서 온전히 걷기가 힘들었으나 상후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청무자의 앞에 간신히 다시 섰다.

“아직 한 초식이 남았다.”

“그래서 그 정도만 한 거야. 그것도 마저 보려고.”

“흐흐, 은마수가 점창에 밀검이 있다고 하더니 그것인 모양이구나. 그 검의 정체가 뭐냐?”

“사일검!”

“개소리! 사일검에는 그런 검법이 없다!”

“마음대로 생각해.”

“좋다, 그게 뭐든 무슨 상관일까. 이제 끝내자. 오랜만에 다쳤더니 너무 아프다.”

왼팔에서 흐르는 피가 거추장스러운지 옷을 찢어 대충 싸맨 상후가 칼을 치켜세웠다.

사람은 사지에 문제가 생기면 저절로 표정이 일그러지게 된다.

고통이란 것은 사람의 육신을 원활치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후는 얼굴에서 고통을 지워내고 냉막한 표정으로 청무자를 노려보며 마지막 승부를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마지막 충돌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간단하게 끝이 났다.

상후는 내력을 모두 짜내어 광풍무의 마지막 초식을 펼쳐냈으나 청무자의 일검에 의해 단숨에 파훼되어 버렸다.

육신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펼친 광풍무는 광풍무가 아니었다.

청무자는 상후가 쓰러지자마자 곧바로 남은 혈룡들을 제압했다.

혈룡들은 즉각 반격을 해왔으나 절정에 오른 분광은 그들의 반격을 허락지 않았다.

불과 십여 초 만에 셋을 죽이고 넷을 무력화시킨 청무자는 역검을 한 채 시선을 돌려 전장을 확인했다.

이미 싸움은 점창의 승리로 끝나 있었다.

운학은 옆구리와 어깨 등에서 피를 흘리는 중이고 운풍은 허리를 짚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다.

그들의 앞에는 쌍로와 금륜오군의 시신이 널브러진 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무수한 시신.

점창 무인들의 것도 보였지만 대부분 비룡단원의 것이었다.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비룡단원은 검을 버린 채 허망하게 서 있었는데,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칼에 의지해서 간신히 무릎을 세운 상후는 남아 있는 비룡단원들을 확인하고 피 묻은 얼굴로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하!”

허탈을 넘어선 자조.

그의 웃음소리는 높고 길었으나 슬픔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청무자, 나를 죽여라!”

“죽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무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명예라…….”

청무자의 검이 번쩍이며 움직였다.

어느새 상후는 입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새끼야, 명예는 아무나 떠드는 단어가 아니야. 너같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산 놈들은 자격이 없단 말이다. 이 정도에서 보내줄 테니 나머지 놈들 데리고 돌아가라. 그리고 똑똑히 구경해. 네가 그토록 무시했던 미친개가 어떻게 칠절문을 때려잡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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