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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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63화
황수전투가 끝나고 숙소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풍운대뿐만이 아니었다.
운자배와 명자배를 합해서 거의 오십에 달하던 인원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점창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럼에도 사람을 풀어 그들을 찾지는 않았다.
왜 사라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장문인의 명으로 그들을 찾지 않았다.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복귀한 것은 여섯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련에 지쳐서가 아니라 각자 맡은 바 임무가 있기 때문이었다.
운자배는 명자배에게 십삼검을 물려주고 청자배 대신 중요 보직들을 물려받느라 수련 장소에서 불려 나왔고, 명자배 역시 새롭게 입산한 제자들과 몰려드는 속가제자들로 인해 훈육에 참여하느라 수련을 멈춰야 했다.
그랬기에 아직까지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은 풍운대뿐이었다.
비 갠 오후.
운호는 산 아래를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이 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는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상처의 흔적은 억지로 찾아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진 상태였다.
그가 시선을 둔 곳에는 운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의 바다.
점창산의 허리를 두른 채 펼쳐진 운해는 마치 비단 이불처럼 포근하게 펼쳐져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
운호의 입이 열리며 감탄사가 터진 것은 운해가 반으로 쪼개지며 밝은 햇빛이 세상으로 쏟아져 들어갈 때였다.
충격적인 광경.
산 전체를 감싸고 있던 구름의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며 햇빛이 세상을 비추는 것은 이십 년을 산에서 살았어도 처음 보는 기경이었다.
아름다웠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기에 운호는 갈라지는 구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세속의 추악한 욕심도, 질투도, 미움도 그 속에는 없었다.
오직 아름다운 순수만이 남아 운호를 넋 놓게 만들고 있었다.
한동안 세상을 바라보던 운호의 눈이 슬그머니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세상과 겹쳐지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운영.
세상에 나가 처음으로 만난 여인.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여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헤어지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기약도 하지 않았고, 가슴속에 있는 감정도 꺼내어 보여주지 못했다.
헤어지면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고인 것은 아마도 눈물이었을 것이다.
붉어진 그녀의 눈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기다려 달라는 말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황수전투가 끝난 지 벌써 이 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던가.
운호는 산에 들어와 일 년 동안 후발선지의 묘리를 집중적으로 수련했다.
의빈전투와 황수전투에서 그는 온몸에 수없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무력이 부족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상처를 입은 것은 결국 후발선지의 묘리를 검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늦게 빼고 먼저 벤다.
이것이 후발선지의 검리다.
일면 단순한 것 같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은 상승의 검리가 담겨 있기에 운호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속도와 힘의 균형.
빠른 속도와 적은 힘의 균형, 느린 속도와 강한 힘의 조화.
목숨을 건 전장에서 순식간에 판단하고 펼쳐야 되는 투검에 그런 검리를 장착시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운호는 해내고 말았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고 말기에 일 년이 지나자 적정의 원리와 후발선지의 검리가 그의 검에 완벽하게 담겼다.
운문에 사람이 오기 시작한 것은 운호가 모습을 감춘 지 꼭 보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장문인을 비롯해 청자배 사숙들이 모두 한 번씩 찾아왔다. 주요 보직을 맡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운자배 사형들도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핑계와 함께 운문을 찾았다.
그만큼 운호의 성장이 기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수전투에서 전율적인 무력을 선보이며 전세를 완벽하게 점창 쪽으로 끌고 온 운호는 점창의 미래임이 분명했다.
청문자가 운문을 찾은 것은 꼭 일 년 만이었다.
그는 운문에 도착하자마자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는 대책 없이 무조건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유운서부터 사일까지 옛날 운호를 가르치던 때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들의 대결은 운문에서 시작해서 점창산의 봉우리 중 가장 높다는 천왕봉을 거쳐 사람이 가지 못한다는 불귀곡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운문을 중심으로 거의 십 리를 움직이며 싸웠기 때문에 유운보법과 신법이 동시에 운용되어 그 속도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청문자가 내력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대뜸 검에 삼성의 내력을 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운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팔성의 내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운문이 들썩일 수밖에.
그들의 검은 격돌할 때마다 천둥이 치는 소리를 내며 지축을 울려 새들을 하늘로 날아오도록 만들었다.
장관이다. 산에 내려앉아 쉬고 있던 새들이 전부 비상해서 날아오르니 하늘이 온통 검은 그림자로 가득했다.
새들은 한동안 나무에 내려앉지 못했다. 워낙 흉험한 격전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청문자의 검이 멈춘 것은 운문에 도착한 후 일각이 더 지난 후였다.
“좋구나, 좋아. 운호 이놈, 훌륭하다.”
“과찬이십니다.”
“껄껄껄!”
운호가 검을 놓고 허리를 숙이자 청문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는 대견함과 놀람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나 이 정도만 가지고도 충분했다.
운호의 검은 황수전투 때보다 훨씬 무겁고 깊어져 한 올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문자는 그 대결이 있은 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운문을 찾았다.
후예사일.
점창의 마지막 비기 후예사일을 운호의 검에 장착시키기 위함이었다.
천룡무상심법을 근간에 두고도 깨달음이 있어야 진정한 위력을 나타내는 절대비학이 바로 후예사일이다.
청문자는 선조들의 말을 믿지 않고 후예사일을 익히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은 채 십 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했다.
초식에 대한 해석이 상당 부분 가능했지만 그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십 년이 지난 후에야 탄식에 탄식을 터뜨리며 검을 꺾고 말았다.
현천기공으로는 후예사일을 익히지 못한다는 선조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십 년의 세월을 허비했으니 어리석어도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천룡무상심법을 익힌 운호가 나타남으로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후예사일의 초식을 분해하고 해석하는 데 많은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운호는 그의 강론을 충분히 받은 후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달마다 찾은 청문자는 운호가 펼치는 후예사일을 지켜본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비록 직접 시전하지는 못하나 절대고수의 눈은 운호가 펼친 후예사일의 문제점과 미비점을 정확히 짚어내서 옳은 방향으로 검로가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일 년이 또 지났다.
낮에는 후예사일을 익히고 밤에는 천룡무상심법을 수련했다.
후예사일은 아직도 그 현묘함을 숨긴 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검을 통해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걸 운호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가을 어느 날.
대붕처럼 바위와 바위를 찍으며 한 사람이 운문으로 날아왔다.
그는 다름 아닌 운상이었다.
“운호야, 가자. 장문인께서 부르신다.”
상청궁에 도착하자 운곡을 포함해서 풍운대 전체가 마당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도착한 운호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 년 동안 꽤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사형들을 뵙니다.”
“운호, 잘 지냈어?”
“그럼요. 운몽 사형께서는 몸이 좋아지셨습니다.”
“살 좀 찌웠다. 바짝 말라서 보기 싫었거든.”
“그러셨군요. 어쩐지 달라 보인다 했습니다.”
운호의 대답에 운몽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름대로의 변화를 알아보는 사제가 대견한 모양이다.
그 모습에 풍운대 전체가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운몽의 몸집은 대꼬챙이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일행의 대화를 중단한 것은 대사형 운곡이었다.
“자, 모두 왔으니 들어가자. 장문인께서 기다리신다.”
방장실로 들어서자 청현자와 청문자가 상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풍운대는 모두 하나가 되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 모습을 청현자와 청문자는 넉넉한 웃음으로 바라보았다.
“어서들 오너라.”
청현자가 손을 들어 자리를 가리키자 운곡을 필두로 모두 앉았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닙니다. 사문의 배려로 수련에 전념할 수 있어 작지만 소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허허, 그랬다니 다행이다.”
맨 앞에 앉아 있던 운곡이 겸양을 말을 하자 청현자가 기꺼운 웃음을 지었다.
그런 후 풍운대 전체의 얼굴을 천천히 휘둘러 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를 내가 왜 불렀는지 혹시 아느냐?”
“모르옵니다.”
“껄껄, 그럴 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테니.”
청현자가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앉아 있는 청문자를 일별했으나 그는 여전히 앞만 보았다.
그 모습에 청현자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장문인이지만 사형인 청문자에게 명을 내리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풍운대가 걱정이 되었어도 사형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앉아 있어도 점창산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알 수 있다.
점창에는 점창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자신은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장문인이기 때문이다.
청문자가 풍운대가 머무는 곳을 수시로 방문하는 것을 안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체했다.
고맙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건 청문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가슴과 가슴으로 서로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청문자도 마찬가지다.
분명 청문자는 장문인을 배려해서 탕마행에 대해 입 밖으로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너희는 탕마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들어본 적 없사옵니다.”
“백 년 전 천왕성의 공격으로 사문이 쇠퇴하기 전까지 점창은 문의 주력을 내려 보내 천하에 존재하는 마두들을 처단하는 탕마행을 시행했다. 탕마행을 시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마두를 처단함으로써 세상을 평안케 함과 동시에 사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고, 둘째는 문의 주력이 세상에 나가 천하 무림인들과 인맥을 쌓고 실전을 경험함으로써 무력 증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알아들었사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너희를 부른 것도 알겠느냐?”
“그렇습니다.”
“껄껄, 영명한지고.”
“하면 저희만 내려가는 것입니까?”
“아니다. 점창십삼검이 같이 간다.”
청현자의 대답에 운곡을 비롯해서 풍운대의 안색이 금방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현 십삼검의 무력은 전대에 비해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
같이 움직이게 된다면 강적과 마주쳤을 때 곤란한 경우가 발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운곡은 금방 얼굴색을 고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경로가 어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사천까지 같이 간다. 거기서 당문과의 일을 해결한 후 오 로로 나뉘어 탕마행을 시행하면 된다.”
“오 로라면…….”
“운극까지 다섯 명이 점창십삼검을 맡아서 강남 이축, 강북 삼축으로 움직인다. 운곡과 운검이 둘씩 맡고 나머지가 셋씩 맡으면 될 것이다.”
“운호, 운상, 운여 사제가 남습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너희를 부르기 전 청문 사형과 상의한 것이 있다. 저 아이들에게는 별도의 명부가 주어질 것이다. 십삼검을 붙이지 않은 것은 명부에 담긴 자들이 강한 무력을 지닌 마두기 때문이다. 어차피 탕마행을 시행하기 위한 하산이니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두들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사제들이 힘들겠군요.”
“당연하다. 그러니 너희는 유기적으로 움직여 저 아이들을 도와줘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칠 일 후 출발이다. 그동안 수련하느라 고생했으니 푸욱 쉬었다가 출발하도록 하라. 시작이 좋아야 하느니, 나는 너희가 당문의 칠비쯤은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문과 만나기로 한 장안평까지는 청문 사형께서 동행하실 것이다. 그 후부터는 너희 손에 점창의 명예가 결정되어진다. 신중하게 움직여 사문의 명예를 천하에 빛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