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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62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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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62화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칠절문을 격파한 황수전투가 끝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어느덧 다시 찾아온 가을.

상청궁의 방장실에 청 자 항렬의 장로들이 모여든 것은 햇빛이 나른하게 변하던 따뜻한 오후였다.

오늘은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장로회의가 있는 날이다.

방에 모인 사람은 청면자를 뺀 일곱.

청면자는 예전 춘경장에서 다친 상처가 다시 도지면서 근래 일어서지 못할 만큼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빠졌다.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참석했고, 장문제자인 운풍까지 자리를 같이했다.

그만큼 오늘 회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점창은 검문이었으나 선도사상을 근간에 둔 도문이기도 했다. 장문인을 뺀 나머지 장로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수행에 매진하거나 후학들을 돌보았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들의 처소는 적게는 일 리부터 많게는 오 리까지 떨어져 있어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사형제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일부러 찾기는 어려워도 이런 기회가 되어 만나면 언제나 한창때의 감정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 사형들을 바라보며 중앙에 앉은 장문인 청현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따뜻하군요.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천천히 걸어왔소. 가을날의 산보가 참으로 즐겁더구려.”

“정정하신 모습을 보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앉아 있어도 허리를 펴지 못하는 청허자의 대답에 청현자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

청허자는 그사이에 더욱 늙어 이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 만큼 기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청허자가 밝은 모습을 보이자 장로들은 장문인의 덕담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진정으로 청허자의 노쇠함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욕심에 불과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조차도 청무와 청문, 청현을 빼면 전부 칠십이 넘은 고령이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손은 기름기가 빠져나가 살이 접힐 대로 접혀 있었다. 누가 봐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만나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기 때문에 청현자는 한동안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중지시키는 건 항상 청허자의 몫이었다.

“됐으니 그만 조용히 해. 늙으니까 전부 입으로 양기가 올라왔나, 왜들 그리 말이 많은 게야!”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단순하게 바닥을 몇 번 쳤을 뿐인데도 좌중은 단박에 대화를 멈추고 멀뚱멀뚱 장문인을 쳐다봤다.

그들이 청허자가 아니라 장문인을 쳐다본 것은 대사형이 그를 위해 나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허허, 그럼 지금부터 장로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사형들께 몇 가지 사문의 일에 대해서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들어봅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래 장문인의 얼굴이 그리 밝은 게요?”

“지난 일 년 동안 본산 제자가 서른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속가제자는 백을 받았고요.”

“정말이오?”

빙그레 웃은 장문인이 기꺼운 목소리로 말을 하자 좌중에 있던 장로들이 동시에 반문을 해왔다.

믿겨지지 않은 사실.

그들이 산에 들어온 이래로 일 년 동안 받은 제자의 수는 기껏해야 열이 채 안 되었고 그마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더군다나 속가제자는 근래 몇 년 동안 받아본 적이 없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청현자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겠는지 잘게 떨려 나왔다.

“그렇습니다. 칠절문을 꺾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점창을 다시 보게 된 모양입니다. 사형들의 노고에 의해 사문이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게 어찌 우리 힘 때문이겠소. 장문인께서 덕으로 점창을 이끌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 아니겠소. 겸양의 말씀이시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제자들의 수가 계속 늘지 않겠소? 그동안 입산하는 제자들이 적어 도관을 짓지 않았는데 어찌할 생각이시오?”

“아시다시피 정식으로 도명을 받기 위해서는 일 년 동안 기본 수양을 쌓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속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수련관을 새로 손봐서 쓸 생각입니다.”

“너무 낡지 않았소?”

“그렇지요. 하지만 새로 짓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음, 장문인께서 고민을 많이 하셨겠지요. 알아서 하시구려.”

청현자가 말을 끊어버리자 장로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닫았다.

백 년 동안 쇠퇴의 길을 걸어온 사문이다.

이제 기지개를 켰을 뿐 바닥난 재정이 단숨에 바뀌는 것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그들은 장문인의 결정에 토를 달지 못하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청현자가 맨 끝 자리에 앉은 운풍을 부른 것은 어색함을 떨쳐 버리고 장로들의 고개가 다시 돌아왔을 때다.

“이제 다른 사항은 그동안 실무를 맡아 처리한 운풍이 보고 드리겠습니다.”

청현자의 말이 끝나자 운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언제나 정중함을 잃지 않는다.

“먼저 말씀드릴 내용은 점창십삼검의 승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장문인의 명을 받아 제가 명자배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선발해서 승계를 끝냈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사문의 주력이 될 터이니 사숙들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속가에 관한 부분입니다.”

운풍의 보고는 거의 일각 동안 이어졌다.

속가와 본산 간의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방안들이 이어졌고, 조직의 재편과 수련 등급 심사 등에 관한 내용들이 보고되었다.

운풍이 보고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다시 청현자가 입을 열었다.

“자, 보고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인 장로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토의할 안건은 탕마행의 복원과 사 년 후에 있을 구룡회에 관한 것입니다.”

“탕마행을 다시 한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암, 당연히 복원해야 될 일이야. 탕마행은 내가 장문인께 건의한 것일세. 선조들께서는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제마멸사를 통해 점창의 명예를 드높이셨지. 이제 잃어버린 사문의 비기들이 돌아왔으니 어찌 사문의 전통을 이어나가지 않을 텐가.”

장로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청허가 나서서 청현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냥 안 놔둘 기세였다.

그랬기 때문인지 장로들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 침묵을 깬 것은 청우자였다.

“탕마행은 사문의 오래된 전통이니 당연히 해야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황수전투의 손실을 미처 만회하지 못한 상태요. 서두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오.”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탕마행의 복원 여부와 시기를 논의하려 한 것이지요. 그러니 사형들께서는 그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다면 탕마행은 구룡회와 연관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구룡회가 사 년 남았으니 탕마행을 삼 년으로 잡으면 내년 가을이 적합할 것 같소.”

“내 생각도 그러하오.”

청문자가 말을 받자 청무자가 동의했다. 나머지 장로들도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룡회를 생각한다면 청문자의 제안은 가장 합리적인 것이었다.

구룡회. 구대문파가 십 년마다 한 번씩 갖는 회합을 말한다.

무림에 중요 환란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유기적인 연계 체제를 형성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백 년 전 천왕성의 난 이후로 지금까지는 서로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로 변질되어 있었다. 문파 간의 이합집산을 통해 이득을 노리는 자리로 변했다는 뜻이다.

오 년 전 화산이 주축이 되어 점창을 밀어내고 자신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산파를 구대문파의 자리에 올린 것도 그런 맥락 중의 하나였다.

구대문파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명예 이외에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때문에 오 년 전 회의를 주제한 화산은 점창에 연통을 넣지 않은 채 형제의 연을 맺은 모산파에게 구룡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억울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칠절문에 의해 청운자가 죽고 청면자가 반신불수가 되었던 시기에 벌어졌던 일이다.

아니,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화산으로 가지 못했을 것이다.

화산과 아미, 그리고 모산파의 연합을 향해 검을 뽑는다는 건 자멸하고 말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힘이 없었기에 당한 일이다. 그랬기에 점창은 다음 구룡회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반드시 구룡의 자리를 되찾는다. 그 누가 되더라도 점창의 의지를 막는 자는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장로들, 그리고 모든 점창무인들의 공통적인 의지였다.

청문의 의견에 모든 장로들이 동의를 표하자 청현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탕마행은 일 년 후인 내년 가을에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동의하시지요?”

“동의하오.”

“그렇다면 이젠 누가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되는데 그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지요.”

“당연히 점창십삼검이 가야 하지 않겠소. 전통에 의하면 탕마행은 언제나 점창십삼검이 나섰소.”

“그건 불가합니다.”

청문의 반대에 청명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연한 것을 반대한 청문자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하지만 청문자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운풍이 보고한 대로 점창십삼검이 명자배로 넘어갔습니다. 불과 석 달밖에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의 무력이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일 년이란 시간이 있다 해도 탕마행을 나서게 된다면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음!”

“사실 소제는 어제 미리 도착해서 운풍으로부터 탕마행에 관한 보고를 먼저 들었습니다. 현 무림에는 극악한 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이 유독 많은데 백대고수에 포함된 자만 해도 열이 넘습니다.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각 지역마다 패주에 가까운 무력을 지닌 채 활보하는 악인들이 부지기숩니다. 이런 마당에 무력이 떨어지는 현 십삼검이 나서게 되면 사문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까운 제자들만 잃을지도 모릅니다.”

“어허, 이런. 쯧쯧.”

청문자의 설명을 들은 청명자가 먼저 혀를 찼고, 나머지 장로들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점창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탕마행인데 청명자의 의견에 따른다면 오히려 생목숨만 잃을 판이었다.

더군다나 백대고수에 포함된 절대고수들도 있다고 하니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탕마행을 나선다 해도 그런 자들까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명자배로 구성된 십삼검이 나선다면 얼마나 많은 자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랬기에 청허자가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야. 나도 청문의 뜻과 같으이. 그렇다면 누굴 보내는 게 좋겠는가?”

“제 생각에는 풍운대와 십삼검을 묶어서 내려 보냈으면 합니다. 십삼검은 풍운대와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풍운대와 십삼검을 묶는다. 괜찮은 생각이구먼. 장문인 생각은 어떠시오?”

“풍운대가 내려간다면 점창의 명성을 빛낼 수 있겠지요. 소제도 청문 사형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자네들은?”

“저희도 좋은 의견이라 생각합니다.”

청문자의 의견에 장문인을 비롯한 모든 이가 찬성하자 청허자가 늙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매달았다.

“그럼 됐구먼. 그리하는 것으로 하지. 그나저나 청문, 풍운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용호각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아이들은 이번 겨울마저 넘길 생각인 모양입니다.”

“기대가 크네, 기대가 커. 칠절문과의 전쟁에서 풍운대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그토록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구먼. 점창의 앞날이 이리 밝으니 나는 금방 죽어도 여한이 없으이.”

“사형, 무슨 그런 말씀을…….”

“들으시게. 사문의 위상이 우리 대에 이르러 똥통에 빠졌네. 사 년 후에 있을 구룡회에서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지 못한다면 내가 먼저 죽을 테니 자네들도 따라 죽게. 우리가 잃어버린 점창의 명예를 우리 손으로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더 살 의미가 뭐가 있겠어!”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그 속에 담긴 뜻이 워낙 강해 순식간에 좌중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칠절문을 꺾어 점창의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했으나 과거의 성세를 되찾기에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것을 청허자는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좌중은 한동안 침묵 속에 잠겼다.

청허자의 말이 장로들의 가슴에 파고들어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한(恨).

점창의 대사형으로 살아온 청허자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으니 그 누구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어 청현자가 헛기침을 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정리를 하지요. 제가 알기로는 청문 사형이 당문과 약속한 게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탕마행은 내년 가을, 풍운대와 십삼검이 시행하되 시작점을 사천으로 결정하겠습니다.”

“탁월한 결정이오.”

“그리고 사형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구룡회까지 장문직을 맡지요. 사형들의 마음처럼 저 역시 점창의 명예를 제 손으로 찾고 싶습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오겠습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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