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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61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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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61화

천하가 발칵 뒤집어졌다.

황수분지의 전투 결과는 직접 싸움을 지켜본 자들의 전언과 문파 간의 전서를 통해 급속도로 천하에 퍼져 나갔다.

점창의 일방적인 승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황수전투의 결과는 천하를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향후의 무림 정국 또한 예상의 범위를 확대시켜 섣불리 결과를 추측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삼십팔무맥 중 제일 끝자리에 있던 점창이 칠절문을 격파했다는 것은 세간의 평가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승부가 너무나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천하는 경악 속에서도 점창의 무력 순위를 재평가하는 작업에 열을 올려야 했다.

무림십왕에 속하는 전왕을 쓰러뜨린 것은 정풍검으로 알려진 청무자였다.

현재 강호에 알려진 점창제일고수는 청문자였다. 그런데 그가 아닌 청무자가 전왕을 쓰러뜨리자 세인들은 백대고수의 무력 서열을 재편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청무자는 전왕의 서열을 이어받는 것으로 결정 내려졌으나 문제는 청문자였다.

황수에서 청문자의 신위를 직접 목격한 군웅들은 그로 인해 전쟁의 승패가 바뀌자 그의 서열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난상토론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었다.

백대고수 중 상위에 속한 자들은 그야말로 순위가 의미 없을 만큼 막강한 무력을 지닌 무인들이었다. 세인들은 청문자의 서열을 무림십왕의 위쪽에 배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더 이상의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고민을 하게 만든 자는 다름 아닌 마검이었다.

의빈에서 황룡단의 절반을 격파했고 칠절문의 암천이라는 구룡단을 혼자 전멸시켰으며, 십오천강과 칠절 중 셋을 한꺼번에 잡아낸 무력을 두고 강호의 호사가들은 할 말을 잃은 채 평가를 유보했다.

무력은 청문자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았으나 백대고수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젊었고, 청문자와 달리 수많은 부상을 입은 채 결국 쓰러졌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족했으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찜찜함 속에서도 호사가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물론, 세인들도 조만간 그가 무섭게 성장해 강호의 무력 서열을 재편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점창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

점창에는 백대고수에 포함된 무인들을 제쳐놓고라도, 당문의 일각을 격파한 후 양문전투에서 칠절문의 단주들을 박살 낸 풍운대가 있었다. 또한 오행진을 이끌며 절정고수들의 합공을 버텨낸 심삽검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군다나 오행진을 구성한 채 다섯 배가 넘는 적과 싸운 점창무인들은 일류가 아닌 자가 없었으니 점창의 전력은 삼십팔무맥 중 중위권은 충분하다는 게 사가들의 공통적인 평가였다.

 

장문인인 청현자를 비롯해 청허자와 청우자 등 산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산문까지 나와 동문들의 귀환을 맞아들였다.

가뜩이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시신을 확인하자 더없이 어두워졌다.

사십에 달하는 시신은 운자배가 열셋이었고 명자배가 스물일곱이었다.

사문의 영광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오직 사문의 안녕을 생각하며 산화해 갔음이 분명했다.

시신을 바라보는 점창무인들의 입에서 끝없는 도호가 흘러나왔다.

그들의 뜻이 자신과 같음이니 그들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과 다름이 없다.

마중하러 나온 제자들은 귀환한 사람들로부터 하나씩 시신을 넘겨받아 상청궁으로 향했다.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인이 되어 검을 잡았으니 어찌 슬픔에만 빠져 가는 길을 배웅하지 않을 테냐.

그랬기에 성한 자나 다친 자 모두 하나가 되어 상청궁으로 향했다.

장문인의 주관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도가의 근본정신은 자연과 내가 하나 됨이니 죽음 또한 그러하다.

결코 슬퍼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상청궁은 울음바다로 변해 있었다.

추억을 같이했던 사람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형제들의 죽음은 남은 자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어 끊임없는 눈물을 흘려내게 했다.

 

청명자가 머무는 상화각.

양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청명자는 검절과 창절의 협공을 꺾으며 다섯 군데의 깊은 상처를 입었다. 적들의 수뇌부를 잡으면서 또다시 세 군데의 부상을 당했음에도 끝끝내 제자들을 지휘해 점창으로 돌아온 후에야 의식을 잃었다.

그는 장례식이 끝나고 꼬박 하루 반나절 동안 정신을 잃어 청허자를 비롯해 사형제들의 속을 새카맣게 태웠다.

상처가 큰 데다 제자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심신이 고갈된 상태에서 의식을 잃었으니 기다리는 사람들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 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은 장례를 치른 그다음 날 저녁 무렵이었다.

청명자가 의식을 찾았다는 전갈을 받은 청허자가 노구를 이끌고 상화각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급히 일어섰다.

방 안에는 이미 청현자와 청우자, 그리고 청문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청명아, 괜찮으냐?”

“사형, 소제가 부족해 너무 많은 제자가…….”

청허자의 물음에 전신을 붕대로 두른 채 누워 있던 청명자가 말을 맺지 못하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틀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어깨를 청허의 늙은 손이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게 어찌 너의 잘못이겠느냐.”

“크윽, 사형!”

“죽은 아이들은 웃으면서 갔을 것이다. 너와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그 아이들도 점창을 사랑했는데 어찌 너를 원망하겠느냐. 그러니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마라.”

면포를 손에 든 청허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울고 있는 청명자의 눈물을 닦아냈다.

주름살이 가득한 손.

그의 손은 온통 주름살이 가득해 사람의 손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 손을 들어 사제의 슬픔을 정성스레 닦아냈다.

사제의 슬픔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산으로 귀환한 지 삼 일이 지났지만 풍운대가 머무는 용호각은 약 냄새가 진동했다. 방마다 둘셋씩 누워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워낙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운곡과 운여가 전부였다.

운곡은 그 난전 속에서도 용케 중상을 면했고, 운여는 운호를 찾으러 가느라 전쟁에 가담하지 못했다.

운곡은 장문제자인 운풍이 불러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운여가 사형제들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큰 상처를 입은 자들은 누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문에서 특별히 조제된 진통제를 쓰기 때문에 쉽게 잠에 취한다.

풍운대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고 나서 온갖 심부름을 시키던 사형들이 약을 먹은 후 수면 상태로 들어가자 그때서야 여유를 얻은 운여가 슬그머니 운호와 운상이 든 방으로 들어왔다.

“자냐?”

“그러려고. 왜?”

“심심해서 그러지. 운호야, 시간도 많은데 잠은 나중에 자고 사천에서 있었던 이야기나 해줘.”

“대충 얘기해 줬잖아.”

“그거 말고 재밌는 거. 너 당가 아가씨 만났다며. 청성일미도 만났고. 그 이야기 좀 자세하게 해봐.”

“이놈이 젯밥에 관심이 있었군.”

“크크크, 원래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고 했어. 내가 봤을 때 저놈은 고양이가 분명해.”

운호가 먼저 타박을 줬고, 운상이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운여가 대뜸 손가락을 들어 운호와 운상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야, 아퍼!”

“그러니까 왜 폭력을 쓰게 하냐고.”

“알았다, 알았어. 얘기해 줄게. 그만해.”

“흐흐, 까불고 있어. 운상아, 넌 자도 돼. 다 들었다며.”

“옆에서 떠드는데 어떻게 자, 인마.”

“좋아, 대신 운호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마. 네가 끼어들면 사실성이 떨어질 것 같으니까. 입 꾹 다물고 있어. 안 그러면 이 손가락으로… 알지?”

“쳇, 이제 보니 흉악한 놈일세. 알았다. 안 끼어들게.”

운여의 협박에 운상이 입을 닫자 운호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천에서 있었던 일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신 터지는 웃음. 입을 닫고 있겠다던 운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 중간마다 끼어들었지만 운여는 타박하지 않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귀를 기울였다.

산에서만 살던 젊은 도사 운여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로부터 칠 일이 지나자 풍운대는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천기공의 요상 능력이 탁월했고 내력 또한 정심했기 때문에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귀환한 지 십 일이 지나자 풍운대는 용호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천생 무인일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누워 있으면서 하나의 생각만 하고 있었다.

칠절문과의 전투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초식의 변화와 응용, 그리고 진퇴의 묘리와 내력의 증강, 적정의 원리 등 수많은 검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경험은 사선을 넘나든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이었으니 반드시 각성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풍운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용호각을 벗어나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았다.

운각에는 운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며칠간 같이 지내던 운상과 운여마저 운호에게 집 잘 지키라는 말만 남기곤 냉큼 가출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출행이다.

상승 검로에 접어든 자들의 수련은 그 검리의 진보가 일순간이 될 수도 있고 영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 돌아온다고 약속하지 못한다.

물론 점창산 여기저기 흩어져 공간을 만들고 수련에 전념할 테니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찾을 이유도 없고 찾아서도 안 된다.

혼자 남게 된 운호는 사형제가 용호각으로 돌아오지 않자 대청소를 시작했다.

빗자루를 들어 마당 곳곳을 쓸고 걸레를 만들어 방마다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닦아냈다.

사형들이 수련을 위해 출행하면서 어지럽혀 놓은 물건들을 말끔하게 정리했고, 자신의 것도 하나씩 꺼내 묶은 후 한쪽에 몰아넣었다.

그 후 마당에 나와 용호각을 한참 바라보다 지체 없이 몸을 날려 운문으로 향했다.

운문은 그가 처음으로 청문자에게 무공을 배웠던 곳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얼마가 걸리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운문에서 내려오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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