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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54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54화

당운영은 점창무인들이 사라진 언덕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녀의 뒤쪽에는 당문에서 비밀병기로 키워진 칠비가 모두 서 있었는데 그들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당문의 구성원은 한 다리만 건너면 형동생이 된다.

풍운대에 당한 사람 중에 그들과 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당연히 복수를 해야 했지만 어른들은 점창이 떠나는 것을 막지 말라고 했다.

결국 막지 못한 채 그들이 떠나는 장면을 지켜보자니 열불이 솟구쳐 몸이 움찔거려 온전하게 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들이 칠절문의 계책에 의한 것이란 걸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벌어진 혈육의 죽음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복을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은 게 그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당운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호면을 쓴 사내의 옆으로 다가간 것은 점창무인들의 신형이 완전히 능선을 넘어 보이지 않을 때였다.

“오라버니! 저들을 그냥 보내주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청문자가 신검합일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백대고수에도 포함되지 못하던 청문자가 신검합일의 경지를 내보이다니 진정으로 놀라운 일이다. 점창을 보내준 것은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청문자의 무력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는 뜻이에요?”

“아니지. 그건 아니다. 점창의 무력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청문자의 신위가 절정의 끝을 보였으나 당문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가동하면 능히 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당문도 엄청난 피를 봐야겠지. 그래서 문주께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신 끝에 피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결정을 내리셨을 거다.”

“어떤 결정?”

“청문자가 내민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신 게지.”

“오라버니는 그 협상 조건이 뭔지 알아요?”

“사천 양도.”

“설마요. 점창이 목숨 걸고 얻은 것을 두고 그냥 물러설까요?”

“그런 조건이 아니면 협상이 되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면 운남까지 잃게 될 테니 점창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당문혁의 대답에 그녀가 코끝을 가볍게 찡그렸다가 폈다.

잠깐의 판단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그녀는 곧바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점창도 떠났고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이제 우리도 떠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겠지.”

“황수 싸움 말이에요. 이번엔 정말 끝장을 보는 싸움이 벌어질 텐데 정말 으슬으슬 떨릴 정도로 긴장되지 않아요?”

“문파의 멸망을 두고 전면전을 쉽게 벌일 수는 없는 법. 아마 적당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문주님께서도 적당한 선의 이득을 생각하셨을 거야.”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원인을 제공한 칠절문이에요. 그들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면전이 벌어지게 될 거에요.”

“그리 되면 황수에 피가 흘러넘치겠지. 우리가 얻는 것도 많아질 테고.”

“그러니까요.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엄청난 격돌이 벌어질 텐데, 오라버니는 궁금하지 않아요? 천뢰삼십이수를 단숨에 격파한 풍운대. 그들이 어느 정돈지 눈으로 보고 싶어 나는 미칠 지경이에요.”

“고민하게 만들지 마라.”

“고민은 무슨. 점창과 칠절문이 생사를 건 격돌을 벌일 수도 있는데 망설인다는 게 말이나 돼요? 억만금을 주고도 못 볼 구경이잖아요.”

“어르신들이 알면 분명 화내실 거다. 자칫 잘못 끼어들게 된다면 일이 복잡해져.”

“그러니까 모르게 가야죠. 다른 오라버니들은 빼고 우리 둘만 가면 괜찮을 거예요. 나중에 걸려도 말하기 좋고. 정찰하러 갔다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운영아, 너 뭐 나한테 숨기는 거 있냐?”

“숨기긴 뭘 숨겨요?”

“아무래도 너 하는 행동이 수상해서 그래. 그냥 단순하게 싸움 구경 가자는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거 없어요.”

단호한 부정.

그녀는 당문혁의 눈빛을 버텨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꽤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냈으나 그녀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것은 오직 운호뿐이었다.

유령단의 공격에도 치명상을 입어야 했던 운호의 존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면전의 한가운데 있다면 도와주기 어렵다.

자칫 싸움에 말려들게 되면 가문 어른들의 걱정처럼 불씨가 엉뚱하게 당문으로 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그녀는 가고 싶었다.

한 가닥 희망의 끝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그를 구하고 싶었다.

 

전왕 혁기명은 천수와 함께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황수의 들판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로는 황룡단과 선룡단이 따랐고, 이백에 달하는 감락지단이 권절의 지휘 하에 황수를 봉쇄했다.

인원으로 따지면 사백에 달했고, 전왕과 권절을 비롯해 금마수와 자웅검 엽문까지 참전했으며 살아남은 구룡단도 보였다.

전서에 의하면 운호를 찾지 못한 삼절과 십오천강까지 이곳 황수로 오고 있다 하니 청무자의 일군을 잡기 위해 가동된 칠절문의 전력은 육 할이 넘는다.

황수의 지형은 앞으로는 지천강이 흐르고 뒤로는 인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강과 인추산 사이에는 삼백여 장에 달하는 분지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점창의 무인들이 군막을 친 곳이 바로 그 분지이기 때문에 전왕은 서서히 고삐에 힘을 가해 말을 멈추었다.

“천수.”

“예, 문주님.”

“자네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구나.”

“그래 보이는군요.”

전왕의 시선을 따라 점창무인들을 확인한 천수의 입에서 덤덤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정면에 보이는 점창무인의 숫자는 백에 달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음에도 그의 음성은 평상시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왕도 마찬가지였다.

“청문자도 왔을까?”

“용화의 삼군이 이곳으로 왔다면 우리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니 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문하고도 협의가 되었겠지요.”

“새끼들, 머리가 꽤 돌아가네.”

“우리가 문을 나서 이곳에 오기까지 불과 한 시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출발을 신응들이 안 후에 연락을 취했다면 용화에 있던 병력은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마 청문자가 여우의 잔꾀를 지닌 모양입니다.”

“하긴, 오래된 생강이 매운 법이지.”

“어쩌실 생각이신지요? 청무자와 청문자가 합쳤으니 계책은 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공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푸하하! 천수, 돌아가잔 말이냐?”

“점창의 무력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강합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문의 피해가 엄청날 겁니다. 자칫 양패구상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천수,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자식이 없다. 나이도 육십이 넘어 이제 슬슬 기력도 떨어진다. 그런 내가 왜 운남을 먹겠다고 설친 줄 알아?”

“그거야… 제 생각이 틀린 모양이군요. 문주님의 의중이 뭔지 모르고 있었으니 저도 죽을 때가 된 모양입니다.”

대답하려던 천수가 깊숙이 가라앉은 전왕의 눈을 확인하고 천천히 웃음을 피워 올렸다.

자신은 운남 공략을 통해 칠절문의 위세를 키우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왕의 눈을 확인하자 그의 진정한 목적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조금 후 그 목적을 찾아낸 천수는 웃음을 담은 채 입을 닫아버렸다.

그런 천수를 바라보며 전왕 역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역시 사천의 여우라 불리는 천수다.

여기에 와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보였는데 금방 알아채고 입을 닫으니 천수의 머리는 정말 뚜껑을 열어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

“한평생 무인으로 살아왔으나 결국 사천의 일각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자네 말대로 여기서 돌아서면 칠절문은 살릴 수 있겠지. 제자들의 목숨을 태반은 잃게 되는 이 싸움을 점창 역시 원하지는 않을 테니 적당히 명분만 만들어주면 저들은 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분명 그럴 겁니다.”

“그래, 그런데 내가 싫어. 마지막 용기를 내어 꺼낸 칼이다. 그런데 어찌 그냥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저들과 끝장을 보겠다. 여기서 물러나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구나.”

“이길 수 있겠습니까?”

“반의 확률이다. 점창의 힘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지만 결국 저들은 여기서 죽는다.”

“지면 끝이지만 이겨도 앞날은 험난해질 겁니다.”

“당문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가 이렇게 끝장을 본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여튼 제가 문주님께 밉보였던 모양입니다.”

“무슨 소리야?”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로 데려오셨으니 말입니다. 적당히 아부도 하고 그랬다면 무공이 없는 저를 여기에 데려오진 않으셨겠지요.”

“쯧쯧, 그럼 지금이라도 가든가.”

“그럴 수는 없지요. 분명 죽으면 저승에서 다시 만날 텐데 그 원망을 듣긴 싫습니다. 문주님 성격상 한 번 하고 끝내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푸하하하!”

천수의 대답에 전왕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십여 년간 자신의 머리가 되어 함께 살아온 천수.

그의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많이도 왔구나.”

“전왕의 독문 표식이 보입니다. 대충 훑어보니 선룡단과 황룡단, 그리고 칠절문 세력 중 가장 강하다는 감락지단이 왔군요.”

청무자가 앞을 길게 가로막은 채 멈춰 선 칠절문의 병력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말로 입을 열자 뒤에 서 있던 운풍이 지체 없이 적진을 분석해 왔다.

청무자의 뒤에는 점창십삼검 중 여섯이 서 있었는데 용화에 있던 운청과 운일, 운보의 모습도 보였다.

운청은 삼군을 이끌고 전력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온몸이 뽀얗게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청문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지금 오고 계시는 중일 겁니다.”

“당문을 잘 해결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어려웠을 텐데.”

“사숙께서 직접 검을 빼셨습니다. 그들은 사숙의 신위에 눌려 협상에 응했습니다.”

“클클, 그랬을 테지.”

운청의 대답에 청무자는 기분 좋은 웃음을 얼굴에 매달았다.

천하의 당문이라도 극성에 달한 회풍을 본 이상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웃음을 지우고 머리를 좌우로 꺾으며 칠절문의 병력을 살폈다.

간격은 백오십 장.

적들은 무슨 생각인지 거리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운풍이 대답하지 않았어도 이곳에 온 칠절문의 병력은 한눈에 알아봤다.

대충 계산해도 전왕까지 왔으니 칠절문 전력의 육 할은 훨씬 넘는다고 봐야 했다.

문제는 살아남은 칠절의 행방인데 만약 권절을 제외한 나머지가 이군 쪽으로 갔다면 사형인 청명자는 험악한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우려를 덜어준 것은 용화에서 달려온 운청이었다.

그는 적진을 살피는 청무자의 등 뒤에서 슬그머니 입을 열었는데 뭔가 불안한 모습이었다.

“사숙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제가 황수로 오기 전 풍운대를 양문으로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불안해서 제 독단으로 그리 했습니다.”

“정말이냐? 잘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청무자가 반색하며 칭찬하자 불안하게 입을 열었던 운청의 얼굴이 그때서야 펴졌다.

풍운대의 양문행을 결정하면서 꽤나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부 가지는 못했습니다. 풍운대 중 셋이 빠졌고 다섯만 양문으로 갔습니다.”

“운호를 찾으러 갔느냐?”

“예, 그렇습니다. 의빈에서 사라졌다고 했으니 운여보고 그쪽을 확인하라 시켰습니다.”

“그것도 잘한 일이다. 네가 청문 사제가 없는 동안 일 처리를 잘했구나. 고맙다.”

“아닙니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운청을 기꺼운 얼굴로 지켜보던 청무자는 서서히 진형을 변화시키는 적 진형을 확인하고는 급격히 안색을 굳혔다.

적의 진형이 공격 대형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정녕 끝을 볼 생각인 모양이군.”

“아직도 점창의 힘을 얕보는 것 같습니다.”

“잘못한 놈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끝장을 볼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전왕과 천수의 생각이 읽혀지지 않는구나. 예전의 점창이라도 전면전을 벌인다면 칠절문은 온전하지 못했을 텐데 하물며 지금의 점창과 끝장을 보려 하다니 진정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놈들의 운남 공략은 그런 배경에서 생겼으니 아직도 그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정녕 그렇다면 이곳 황수가 칠절문의 무덤이 될 것이다. 적들이 움직였으니 우리도 준비하도록.”

“예, 사숙.”

시퍼렇게 변한 눈빛.

적들을 노려보는 청무자의 눈은 어느새 시퍼렇게 변해 번질거리고 있었다.

청무자의 지시에 운풍이 머리를 숙이자 나머지 십삼검이 동시에 예를 표한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공중에서 두 개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떨어져 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숙,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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