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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50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50화

자공(自貢).

자공은 사천성의 성도인 성도(成都)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의빈보다 북쪽으로 오십 리 정도 위에 위치해 있고 인구는 오만을 헤아렸다.

‘촉(蜀)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안개가 잦은 지역으로 평야가 넓어 쌀과 보리, 옥수수 등 식량의 생산량이 많다.

식량의 생산량이 많다는 것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이 부유하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물산의 교역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 무역이 성행했다.

실제 사는 사람들보다 잠시 스쳐 지나는 상인들이 더 많다고 할 정도였으니 자공은 생산과 무역이 공존하며 날이 갈수록 번성을 거듭하는 도시였다.

도시는 활력으로 넘쳤다.

낮에는 수없이 많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북적였고, 밤에는 상인들이 그 피로를 풀기 위해 술과 여인들을 찾으니 자공의 낮과 밤은 언제나 소란스럽고 활기찼다.

사람과 돈이 넘쳐나는 도시 자공.

강력한 힘을 가진 문파라면 누구든지 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자공에는 주인이 없었다.

교묘한 지리적 위치.

청성과 당문, 그리고 칠절문의 근거지에서 정확히 삼각형의 중심에 위치한 자공은 완벽한 힘의 균형 속에 있는 태풍의 눈이었다.

먼저 선점하겠다고 덤비는 순간 나머지 문파들의 협공을 각오해야 될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기에 자공은 지금까지 실질적인 주인을 맞지 못했다.

그러나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주인이 되는 법.

거대 문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견제하는 동안 세 개의 흑사회가 지역을 나누어 주인 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오 년 전의 일이다.

청성이나 당문, 칠절문의 입장에서는 환장하고 펄쩍 뛸 일이었지만 흑사회는 교묘하고도 뻔뻔하게 자공을 장악한 채 엄청난 이득을 거둬들이며 세를 불리는 중이었다.

 

운호와 운상은 자공으로 들어와 먼저 의방을 찾았다.

자공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제세원은 이백 평 규모의 장원에 오십 개의 치료실을 만들어 운영하는 제법 커다란 의방이었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의원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운호와 운상을 처음 맞아들인 의원은 사십 줄의 중년인이었다.

온후한 인상의 그는 둘의 표정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걸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찌 왔소?”

“칼에 베였습니다.”

“얼마나?”

“꽤 깊습니다.”

“어디 봅시다.”

의원의 말에 운상이 힘겹게 옷을 벗었다.

온몸이 붕대로 감겨 옷을 한 꺼풀 더 껴입은 것으로 보였다.

옷은 벗었지만 붕대마저 풀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쩌면 좋겠냐는 듯 쳐다보자 의원은 허옇게 변한 얼굴로 슬금슬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무인.

아마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을 한 자임에 틀림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에 감긴 붕대를 푼 의원은 깊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곧추세운 채 앉아 있는 운상을 바라봤다.

무인을 치료한 적은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상처는 처음 봤고, 이런 상처를 입고도 이토록 태연하게 내색하지 않는 자도 처음이다.

누군가는 생살을 찢어 고름을 빼내는 수술 중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둑을 두었다고 하던데 눈앞에 있는 청년도 그 못지않은 심지를 지닌 자가 분명했다.

범인들은 일어서서 움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운상을 바라보는 의원의 눈은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옆의 분도 이렇게 심하오?”

“그렇습니다.”

“어디 당신도 봅시다.”

운호에게 다가간 의원이 붕대를 풀었다.

충격.

운호의 몸에 난 상처를 본 의원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는 한참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워낙 큰 상처이기에 급하다고 판단했는지 다른 의원들을 불러 두 개의 방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거의 두 시진에 가까운 치료가 끝나고 흉터가 남지 않도록 마무리를 마친 의원들은 녹초가 되어 방을 나갔다.

그들의 전신은 온통 땀으로 도배되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운호와 운상은 회복실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둘 다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첫째는 할 말이 없을 때고 또 하나는 생각을 하느라 말할 겨를이 없을 땐데, 지금의 운호와 운상은 두 번째 경우에 해당했다.

천생 무인들.

그들은 동강벌에서 있었던 싸움을 되새기면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회상에 회상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운호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좌정을 했다.

그것을 보고 운상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너 뭐 하냐?”

“운기 좀 하려고.”

“야, 내력 잘못 돌리면 상처 터져. 그냥 누워 있어.”

“괜찮아. 이전에도 해봤는데 별일 없었어.”

“치료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괜찮다니까.”

“안 아프냐?”

“아프지.”

“그럼 좀 쉬어. 넌 어떻게 산에서나 산 아래서나 사는 게 똑같냐. 무슨 놈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운기하면 상처가 빨리 낫더라. 조금 아파도 참고 견디면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그걸 모르는 놈이 어디 있냐?”

“그러니까 너도 얼른 해. 여기서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수는 없잖아. 만약 적들이 우리 위치를 알게 되면 꼼짝없이 당한다고.”

“끙!”

운호의 말에 운상이 인상을 썼다.

운상 역시 절정의 고수다.

그런 그가 진기의 흐름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를 리 없다.

특히 현천진기는 내, 외상을 치유하는 데 탁월한 요상법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웬만한 상처는 오래 걸리지 않고 완쾌된다.

그럼에도 운상이 인상을 쓴 건 금방 봉합한 상처는 몸을 움직이게 되면 엄청난 고통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도 당연히 때가 되면 운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할 생각이었지만 어느 정도 상처에서 열이 가라앉은 후 시행하려 했는데 운호 이놈은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몸부림치며 일어나는 운호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일어서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자신이 다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런데 놈은 그런 고통을 참아내고 기어코 좌정에 성공하고 말았다.

운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고난 독종이었다.

좌정을 마친 운호가 눈을 반개한 채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하는 걸 본 운상 역시 좌우로 몸을 비틀다 지렁이처럼 기어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비록 여기가 의방이지만 운호가 운기에 들어갔으니 자신은 경계를 서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때 반개했던 운호의 눈이 떠졌다.

“일어났으면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운기나 해. 호법 설 필요 없으니까.”

“뭔 소리냐?”

“천룡무상심법은 외부의 기운에 즉시 반응할 수 있어. 위험이 닥치면 금방 감지할 수 있으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미치겠네. 그거 나도 익혀야겠다.”

“너, 이 자세 얼마나 아플 것 같냐?”

“무척.”

“그러니까 그만 떠들고 얼른 시작해, 인마.”

“알았어.”

엉거주춤 일어섰던 운상이 조심스럽게 다시 바닥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온갖 인상을 쓰며 좌정했다.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얹고 운기를 시작하는 걸 보며 운호도 다시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고통 때문에 정신이 산란되었으나 심법을 운용해 단전에 있는 진기를 전신으로 퍼뜨리자 금방 무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운호의 몸에서 나오는 금빛의 안개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운호와 운상은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운기를 통해 상처를 치료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적의 추격이 걱정되었고, 곧 벌어질 칠절문과의 전면전을 생각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감락으로 서진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운호는 하루가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녔는데 그의 몸에 났던 상처는 새살이 솟아날 정도로 치료되어 있었다.

운호의 내공이 깊어지면서 천룡무상신법의 치유 능력은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어 무서운 속도로 상처를 아물게 만들었다.

그런 운호를 보며 운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호의 상처는 자신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 치료와 운기를 병행한다 해도 칠 일은 꼬박 걸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자신도 현천진기를 돌리면서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고는 있었으나 움직이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했다.

놈은 시간이 갈수록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여 자신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동강벌 싸움에서 보여준 운호의 무력은 거짓말로 치부했던 황룡단과의 전투가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다시 운기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좌정했을 때, 어딜 나가려는지 운호가 새 옷을 꺼내 주섬주섬 갈아입는 것이 보였다.

“어디 가냐?”

“시내에 나가서 소식 좀 들어보려고.”

“무슨 소식?”

“놈들이 따라왔는지 알아봐야지. 사문의 어른들이나 사형들이 어디 계신지도 알아볼 생각이다. 싸움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가자.”

“미친놈.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어딜 간다는 거야? 몸이나 빨리 추슬러. 내일까지 못 움직이면 떼놓고 갈 테니까!”

“뭐라고? 이제 보니 엄청 매정한 놈일세.”

“크크, 그러니까 열심히 치료하고 있어.”

 

자공의 밤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자공의 중심가인 천인로는 낮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오고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혼잡스러웠다.

거리 양쪽을 가득 메운 장사치들의 호객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이 섞여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웠다.

기루에서는 여인들이 손님들을 유혹하며 연신 추파를 보내오고 있었다.

운호는 그런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운 것들이다.

산에서만 살아왔고 내려온 후에도 싸우느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그런 운호였으니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할 수밖에.

처음 보는 물건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두 눈을 유혹했다.

양쪽 건물에서 연신 보내오는 기녀들의 추파와 호객하는 상인들의 고함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운호는 고수다.

앞에서 불쑥 다가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품에서 전낭을 꺼내는 사내의 손을 그냥 둘 정도면 어찌 수많은 적으로 둘러싸인 사선을 뚫고 살아나올 수 있었겠는가.

운호에게 손을 잡힌 장한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손이 잡혔어도 태연했는데,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본 모양이다.

“어떻게 알았냐?”

“솜씨가 형편없었으니까.”

“새끼, 그냥 조용히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꼭 매를 버는군.”

사내가 운호의 손을 떨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놈은 자신의 임무가 실패한 것에 대해 조금의 미련도 두지 않고 물러섰는데, 표정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놈이 물러난 대신 세 명의 사내가 다가왔다.

상의를 반쯤 풀어놓은 그들의 상체는 용과 뱀 등 살아서 금방 꿈틀거릴 것만 같은 문신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는 거리 한복판이었지만 그들은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운호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놈이 뒈질라고 감히 어디서 전낭을 훔쳐! 당장 내놓지 않으면 모가지를 따버린다!”

중앙에 있던 사내가 커다랗게 소릴 지르며 반쯤 풀어놓았던 상의를 벗어 거리에다 팽개쳤다.

과장된 행동.

사내의 행동에 거리를 가득 메우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었으니 멈춰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패거리가 일부러 만들어낸 상황 중의 일부였다.

천인로를 주름잡는 흑천방의 대표적인 편자들이 바로 이들 사인조였다.

지나가는 자들 중 어리숙한 놈을 골라 소매치기를 하거나 이처럼 위협해서 전낭을 뺏는 것이 이들의 영업 방식이었다.

놈의 몸에 새겨진 것은 오색찬란한 용 문신이었다.

문제는 운호가 그런 놈의 행동을 보며 아무런 감탄도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놈은 운호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자 입맛을 쩍쩍 다셨다.

대충 이런 상황이 되면 겁을 먹고 잽싸게 전낭을 상납하는 것이 정해진 절찬데 놈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긴 했다.

너무 놀라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놈들은 기본적인 반사 신경까지 반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럴 때는 더욱 압박해서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야, 이 쌍놈의 새끼야. 당장 전낭 안 내놓으면 배를 갈라 곱창을 씹어 먹어버릴 테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문신 안 보여? 어디 촌놈이 감히 소매치기를 하고 있어!”

문신이 소리와 함께 운호의 옷깃을 틀어쥐었다.

금방이라도 패대기칠 기세다.

운호의 표정이 변한 것은 놈의 손길이 더욱 거칠어져 숨 쉬기가 곤란해졌을 때다.

이놈들, 참 한심한 놈들이다.

아무리 내력을 갈무리해 놨다 하더라도 자신의 등 뒤에 걸린 검을 봤다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눈을 가진 놈들이 무사히 먹고사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 것은 운호가 자신의 옷깃을 틀어쥔 놈의 처리를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일로 죽일 수는 없으니 징계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어 잠시 고민하는 사이, 하나의 인영이 바람처럼 사람들 틈을 뚫고 나왔다.

그 인영은 옷깃을 틀어진 놈을 향해 일권을 터뜨린 후 곧바로 신형을 날려 나머지 두 놈마저 패대기쳐 버렸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

문신 셋은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정신을 차리고도 버둥거리기만 할 뿐 일어서지를 못했다.

너무나 허탈해서 운호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상대를 남에게 뺏긴 적이 없는데 한순간에 도둑을 맞아버렸으니 허탈해도 너무나 허탈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불청객의 한마디로 인해 허공 저편으로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괜찮아요?”

얼굴에 매달린 밝은 미소와 청아한 음성.

백의 무복을 곱게 차려입은 불청객은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선녀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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