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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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49화
구룡단은 양무기를 치료하기 위해 남은 하나를 빼고 일곱이 전장으로 들어와 운호와 운상을 향해 다가왔다.
운호는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급히 품에서 활인고를 꺼내 상처에다 바른 후 빈 통을 뒤로 던져 버렸다.
당운영에게 받은 두 통의 활인고를 벌써 다 써버렸다.
그동안 상처가 덧칠할 정도로 많이 생겨 온몸에 바르다시피 했기 때문에 활인고가 남아나질 못했다.
가슴에 당한 상처는 허리가 저절로 숙여질 만큼 컸다. 더군다나 이전의 상처까지 다시 벌어져 온몸이 고통을 하소연해 왔다.
저절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손아귀가 떨려왔다.
“운호야, 괜찮냐?”
“네 눈에는 괜찮아 보이냐? 죽을 지경이다.”
“이 새끼들, 끝장 보려고 하겠지?”
“쟤들 눈 봐라. 눈빛에 살기가 장난이 아니야.”
“너도 다쳤고 숫자에서도 밀린다. 정면대결은 아무래도 우리가 불리한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저기 갈대밭이 좋겠어. 쪽수에서 밀리니 어쩌겠냐. 지형 덕이라도 봐야지.”
“대단한 놈. 끝까지 도망치자는 소린 안 하는군. 호전적인 건 내가 아니고 너다, 인마!”
“지랄,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어서 그러는 거잖아. 호전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말은 똑바로 해.”
구룡단이 엄청난 살기를 뿜으며 접근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조금도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고련을 통해 만들어진 무력은 두려움을 모르게 그들을 성장시켰다.
적이 이 장 앞으로 다가섰을 때 운상이 검을 꺼냈다.
“내가 먼저 치고 나갈 테니 너는 너대로 움직여. 아파도 참고. 알겠지?”
“알았다.”
대답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운상은 유운신법을 펼쳐 좌측으로 튕겨지듯 쏘아져 나가며 삼검을 날렸다.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공작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공터를 제외한다면 동강벌은 온통 갈대숲이었기에 운상의 신형은 막아온 두 명의 구룡단을 제쳐내고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운호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운호는 운상과 반대 방향으로 치고 나갔다.
정면대결을 하지 않겠다는 전략.
정상적인 몸 상태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는 절정도객들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무모한 짓이다.
그랬기에 그들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갈대의 크기는 사람의 키와 비슷했기 때문에 허리를 약간만 숙여도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구룡단은 운상보다 운호를 더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운상을 따라붙은 것은 셋인 반면 운호에게는 부단주 수진방을 포함한 넷이 추격해 왔다.
운호는 유운신법을 낮게 펼치며 갈지자로 움직이다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부터는 속도와 은밀함의 싸움이다.
적의 전열을 흩뜨리고 일대일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 이 싸움의 관건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포위되는 순간 결과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구룡단이 그들을 공터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당당하게 싸움에 임하던 운호가 설마 자리를 피할 것이란 생각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방심이 불러온 결과지, 그들이 약해서 발생한 일은 아니란 뜻이다.
그것은 곧 다시 포위망에 갇히면 두 번 다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운상은 반대쪽으로 갔기에 운호는 최대한 전권을 넓히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전권을 넓혀놓지 않으면 자칫 상충이 발생할 수 있고,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또 다른 포위망이 구축될 수 있었다.
운호는 좌측으로 움직이던 신형을 틀어, 왔던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적을 혼란스럽게 만들 의도다.
어느 순간 숨을 멈추고 신형을 정지시킨 채 적을 기다렸다.
덫에 걸리는 순간 일격에 끝내기 위해 그는 내력을 검에 주입한 후 조용히 기다렸다.
움직일 때는 몰랐던 고통이 극렬하게 피어났다.
지그시 이를 악물고 참았으나 한 번 피어난 고통은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 갈대 사이로 은밀하게 접근하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런 갈대밭에서 쫓고 쫓긴다는 것은 다수에게 극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자칫 아군을 공격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는 기척을 발견해도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못하지만 혼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운상은 반대쪽에 있으니 이쪽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이었다.
운호는 내력이 담긴 검을 끌어 올린 후 감지된 기운을 덮쳤다.
삼 장을 순식간에 좁힌 운호의 검이 칠검을 퍼부었다.
검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추적자의 전신을 장악했다.
그러나 상대 역시 구룡단의 일원.
기습이 온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적은 기다렸다는 듯 같은 칠도를 펼쳐 대응을 해왔다.
적은 그만큼 강한 고수였다.
그럼에도 손해를 본 것은 구룡단원이었다.
한 번의 충돌로 그는 옆구리에 두 뼘 가까운 검상을 입은 채 급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더 이상 싸움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켜야 했기에 운호는 두려운 눈으로 물러서는 적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분광의 정식 명칭은 분광추영이다.
말 그대로 검기가 쪼개지며 적을 그림자처럼 쫓는다는 뜻이다.
운호의 검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직 눈부시도록 시린 검기의 물결뿐.
구룡단원은 다가오는 검기를 향해 마주 뛰어들었다.
처음 보이던 두려움은 이미 사라졌고, 대신 불같은 투지가 눈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승부는 투지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장렬하게 십삼도를 펼치고 뒤로 튕겨난 후 움직이지 못했다.
뇌진도법의 최후 초식 금마사풍(金馬社風)이었으나 양무기에 비해 그 성취도는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운호는 왼쪽 팔에 또다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상처는 상처를 부른다고 하더니, 적과 충돌할 때마다 상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었다.
감각이 무뎌지고 내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양무기와의 싸움에서 얻은 가슴 상처와 사문둔저진에 당한 어깨, 허벅지의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새로 얻은 상처는 고통조차 하소연하지 못했다.
적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운호는 급히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신법을 펼쳤다.
싸웠던 곳으로 다가오는 강력한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수는 멈췄을 때 완벽하게 기세를 숨길 수 있으나 움직일 때는 그렇지 못하다.
신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내기가 가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호는 십 장 정도 우측으로 진행하던 신형을 다시 남쪽을 향해 날렸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고 일각 정도 움직이자 뒤를 쫓던 기운들이 희미해졌다.
천천히 운상이 간 남쪽으로 신형을 이동시켰다.
아주 은밀하게.
하나가 당했기 때문에 놈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 하나, 혼자 움직이면 당한다는 걸 알았으니 분산해서 추적한다는 생각마저 접었을 가능성이 컸다.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분산조차 하지 않는다면 놈들의 수색 범위는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운호는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운상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룡단 정도의 절정고수라면 운상 혼자 셋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벌써 운상 쪽에서 두 번의 충돌이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운상이 당할 수도 있었다.
신형을 비조처럼 날려 남쪽 갈대숲으로 향했다.
백 장이 넘는 거리였으나 유운신법을 극으로 펼치자 불과 반의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검을 들고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환한 달빛이라도 밤은 이기지 못하는 법.
여전히 갈대는 사람의 눈을 혼란시켜 삼 장 앞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병기의 충돌음이 들린 것은 운호가 남쪽 갈대숲의 중간 지점을 걷고 있을 때였다.
좌측으로 백 보 지점.
순식간에 공간과 공간을 건너 전권으로 뛰어든 운호는 막 운상의 옆구리를 공격하던 구룡단원의 등을 향해 삼검을 날렸다.
맞상대해도 부족할 판에 기습을 당했으니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
공격을 당한 구룡단원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칠비칠 뒷걸음치다 결국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하여간 강한 자들이다.
기습을 했음에도 어느 틈에 돌아서서 반격까지 해오니 말이다.
운상은 그사이 벌써 다섯 군데에 도상을 입어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셋을 혼자 상대한다는 건 무리가 따랐던 모양이다.
“괜찮냐?”
“응. 놈들은 어쩌고?”
“슬쩍 이쪽으로 왔다. 아마 놈들은 내가 여기로 온 줄 모르고 있을 거다.”
“너 정말 머리 좋다. 왜 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제 두 놈 남았지?”
“아니, 하나. 한 놈은 내가 잡았다. 운호야.”
“응?”
“여기 있는 놈만 잡고 떠나자. 정말 세다. 이 상처 봐라. 아파서 환장하겠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너 내 앞에서 엄살 부리지 마. 네가 그 정도면 난 금방 쓰러져 죽어.”
“알았다, 알았어. 어쨌든 넌 저쪽으로 가. 난 이쪽으로 갈 테니까.”
“그럴 필요 없어.”
운호가 검을 들고 운상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운상이 따라서 검을 들자 공격하라는 손가락질을 한다.
쨍! 쨍! 쨍!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며 어둠을 뚫고 퍼져 나갔다.
처음엔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에 의아해하던 운상이 잠깐 사이에 뜻을 눈치채고 감탄스러운 눈으로 운호를 바라봤다.
이놈, 정말 갈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유인(誘引).
찾지 말고 적을 유인해서 해치우자는 뜻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 갈대숲을 헤치며 급히 다가오는 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과 눈으로 이야기를 마친 운호와 운상은 기척이 가까워오자 즉시 양쪽으로 나뉘며 적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전혀 뜻밖의 기습.
더군다나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전력을 다해 막았으나 워낙 강한 공격에 구룡단원의 신형이 주욱 밀려났다.
운호와 운상은 적이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게 단숨에 따라붙으며 분광을 펼쳤다.
소리쳐 구원을 보낼 여유가 없다.
두 사람의 공격은 너무나 강해 잠시도 한눈팔 새가 없었기 때문에 구룡단원은 뇌진검법을 미친 듯이 펼치며 후퇴했을 뿐이다.
사람의 본능은 사는 것이 먼저지, 죽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뻔히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지금의 구룡단원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결국 그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부르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운호와 운상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웠지만 구룡단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운호와 운상은 뒤도 안 돌아보고 자공을 향해 신법을 날렸다.
힘들어서 곧 쓰러질 만큼 지쳤으나 적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단 자공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원문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물론 적들이 추격을 시작하겠지만 비객들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구룡단은 수장이 중상을 입었고 넷이나 죽었으니 추격 대열에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선룡단과 황룡단은 의빈으로 집결했고,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는 무려 일곱 가지나 되기 때문에 그들이 전부 나선다 해도 행로를 파악하는 데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운호와 운상은 반 시진 정도 달린 후에야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야, 이제 좀 천천히 가자. 아이고, 죽겠다.”
“이놈이 계속 엄살을 부리네.”
“정말 아프다니까. 그 활인고 좀 줘봐. 아직 피가 흐르나 봐.”
“다 썼다.”
“그 귀한 걸 벌써 다 써?”
“내 몸 보고 말해.”
“할 수 없네. 이거라도 발라야지.”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뚱이를 조심스럽게 비탈면에 내려놓은 운상이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더니 옷을 벗었다.
옷은 넝마처럼 여기저기 찢어졌고 피로 도배되어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작지 않은 상처가 다섯 군데였다.
엄살을 부린다고 타박을 줬지만 운상의 상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기에 운호는 인상을 잔뜩 쓰며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이리 와서 옷 벗어!”
“왜?”
“왜긴. 내가 네 알몸 보고 싶어서 옷 벗으랄까 봐?”
“아까 약 다 발랐어.”
“이쪽 팔 남았잖아. 빨리 와. 팔 아파.”
운상이 금창약을 건네받으며 소릴 지르자 운호가 슬그머니 옷을 벗고 왼팔을 내밀었다.
인간의 몸이 아니다.
벗은 상체가 온통 상처로 도배되어 있고, 어떤 상처는 다시 상처로 입혀져 본래의 상처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기에 이 모양이란 말인가.
왼팔을 내밀고 있는 운호의 얼굴은 서서히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채 굉렬한 전투를 계속했고, 잠시도 쉬지 못해 내력이 고갈될 대로 고갈된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만큼 운호의 상태는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