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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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69화
명부에 적혀 있는 사천의 마두는 모두 넷.
귀영신마 우쟁휘(宇爭輝),
금마혈번 모사충(毛巳沖),
능외쌍마 손칠(孫七), 손평(孫平) 형제가 그들이다.
사천무인들을 이들을 모두 합해 사천사흉이라 불렀다.
무림인은 언제나 피를 손에 묻히고 사는 존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마두로 불리는 건 아니었다.
아니, 많은 사람의 목숨을 취해도 어떤 사람은 대협, 혹은 협객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면 협객과 마두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득을 위해 살인을 한 자는 마두라 불리고 명예를 위해 칼을 잡은 자는 협객이라 불리니 무척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위의 네 명은 바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서 마두로 분류된 자들이었다.
수많은 무림인이 그들을 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들의 강력한 무력과 치밀한 두뇌 덕분이었다.
신출귀몰(神出鬼沒).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며 움직이는 그들은 설혹 행적이 노출되더라도 강력한 무력으로 오히려 추격하던 무인들을 도륙하고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특히 이들 넷 중 금마혈번 모사충(毛巳沖)은 강북십마에 포함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무력을 지닌 자였다.
다음 날 아침, 운호 일행은 의빈을 떠나 간양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무작정 움직이지 않았다.
도시가 나타날 때마다 사천사흉에 대한 탐문을 계속하며, 행적이 발견될 때마다 방향을 틀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운여의 닦달로 인해 주변 유람지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문파들도 방문하지 못한 채 움직였다. 때문에 사천사흉에 대한 조사마저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이틀 이내에 간양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사 활동을 펼치며 움직였기 때문에 간양에 도착한 것은 당운영의 혼인 삼 일 전이었다.
간양은 당문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나 다름없었다.
당문의 내, 외가가 머무는 마을을 한꺼번에 지칭해서 당가타라 부르는데 간양 동쪽에 형성된 당가타는 가구 수가 천 호에 이르렀다.
당문 내가의 주력 무인만 해도 오백에 달했고 외가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천오백에 육박하니 사천의 남부를 장악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세력이었다.
더군다나 점창으로부터 칠절문의 영역까지 모두 넘겨받아 흡수했기 때문에 당문은 요즘 욱일승천의 기세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따라서 간양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영향력이 커지면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 있다.
콩고물도 생기고 팥고물도 생기고 가끔 가다 떡도 하늘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이었으니 당운영의 혼인 소식은 사천을 들썩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당문에서 초청한 무림 명사들 이외에도 수많은 문, 무객들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상인들마저 몰려 간양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운호 일행이 객잔을 잡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날은 어두워지지 않았으나 이대로 있다가는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야 될지도 몰랐기에 운상의 입은 한 말이나 나와 있었다.
사천은 운남과 달라 바깥에서 자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가끔 가다 지금처럼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운호 일행 앞에 척하니 나타난 여인은 의빈에서 당운영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황보혜였다.
“어머, 안녕하세요?”
“황보 소저 아니시오?”
“성은 맞았고, 이름도 알고 있나요?”
“제 기억엔 혜 자로 남아 있는데, 솔직히 맞을지는 자신이 없소.”
“기억해 줘서 고맙군요, 임호 공자님!”
“소저의 기억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 하나 그것은 세속에 있을 때의 이름이오. 정식으로 소개하리다. 나는 점창의 운호요. 여기는 내 동문인 운상과 운여입니다.”
“이제 보니 점창 분들이셨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처음 뵙겠습니다.”
운호의 소개에 운상과 운여가 정중히 인사를 하자 황보혜가 마주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전혀 놀람이 들어 있지 않았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운호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사문의 일로 왔습니다.”
“운영이를 보러 온 게 아니고요?”
“…….”
“겸사겸사 왔습니다. 운호는…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장안평에서 당 소저를 만났습니다.”
운호가 말을 하지 못하자 운상이 대신 나섰다.
당운영을 처음 만난 당시의 이야기를 운호에게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황보혜란 이름이 나오자 금방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질문하면서 슬쩍 굳어졌던 그녀의 표정이 운상의 말에 슬그머니 풀어졌다.
질책을 할 처지도 안 되고 그런 자격이 있다 해도 질책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잠시 화가 난 것은 친구인 당운영을 가슴 아프게 한 당사자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나 그것은 잠시뿐.
황보혜는 장안평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동안 운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신을 피로 물들인 채 하염없이 서 있더라는 운호의 이야기를 당운영에게 들으며 그녀 역시 울어야 했다.
이 사람도 사랑의 피해자일 뿐이다.
“지금 떠나시는 건가요?”
“아니오. 우리는 방금 도착했소.”
“그렇다면 숙소는 잡았나요?”
“그게… 사람이 워낙 많아 잡지를 못했소.”
“그랬을 거예요. 요즘 들어 간양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거든요. 그럼 어쩌죠?”
“더 찾아보고 정 안 되면 외곽으로 나가 관제묘에서 노숙을 할까 하오.”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요.”
“우리는 아무 데서나 자도 괜찮은 사람들이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장원이 커서 남는 방이 있어요.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요.”
운명이 이끄는 대로 왔으나 어쩌자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가 가는 마지막 모습을 숨어서라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친우인 황보혜를 만나게 되었으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정중하게 초대하고 있어 운호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쉽게 대답할 사안이 아니었다. 만약, 아주 만약이라도 당운영과 얽히게 된다면 자신은 그녀의 혼인조차 보지 못하고 간양을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망설임은 가차 없는 운상의 답변으로 인해 순식간에 소멸되고 말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숙여 황보혜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황보혜가 살고 있는 월운장(月雲莊)은 간양 시내에서 서쪽으로 불과 오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운호 일행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중앙의 삼 층 전각을 건물들이 반경 오십 장에 달하는 크기로 빙 둘러 세워져 있었다. 마치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요새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고 행동마저 절제와 절도가 몸에 배어 월운장의 품격을 높였다. 그랬기에 운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황보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소저, 장원이 너무 크오. 그냥 집으로는 보이지 않는구려.”
“월운장을 모르시는군요. 하기야 산에서만 사셨을 테니 모를 수도 있겠네요. 월운장은…….”
황보혜는 객방으로 운호 일행을 안내하면서 월운장의 연혁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했다고 월운장의 정체가 간단해지는 건 아니었다.
월운장은 당문의 상권을 도맡아서 운영하는 전진기지였다.
월운장의 장주 황보단천은 당문의 세력권에 있는 전장 및 주루와 기루 등을 관리했고, 천하표국의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표국을 운영하는 실력자였다.
당문은 무가이지 상가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당문은 선대로부터 월운장과 손을 잡고 사천을 운영해 왔다.
당문은 사업 수단에 독보적 경륜을 가진 월운장을 통해 상권을 확대하고 수익을 분배 받아 재정을 늘려 나가는 효율적인 체제를 구축해 놓았던 것이다.
어쩐지 수문무사의 수준이 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보니 그들은 당문에서 파견 나온 무사들인 모양이었다.
객방은 예상한 것처럼 가장 외측에 설치된 건물이었는데 대충 세어도 방의 숫자는 서른 칸이 넘어 보였다.
문제는 그 많은 방이 모두 찼다는 것이다.
객방에 짐을 푼 운호 일행은 편하게 앉아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당운영의 친군 줄 알고 따라왔는데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방마다 들어찬 선객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무인들이었다.
눈썰미가 뛰어난 운여는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했는데 그 논리가 그럴듯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아무래도 당 소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사람들 같아. 내원당주 당황은 당문의 실세 중 실세니 하객이 많을 수밖에. 또한 당 소저는 최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출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당문은 데릴사위를 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가법을 가지고 있는데도 출가를 결행한 것은 상대가 풍검문의 장자이기 때문이다.”
“풍검문이 신주십강 중의 하나라서 데릴사위를 포기했다는 뜻이야?”
“그랬을 거다.”
“뭐야, 그럼 이 혼인이 당운영 소저의 뜻에 의한 게 아니라 정략결혼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조용히 해. 여기는 점창이 아니다.”
“황당해서 그렇지.”
“당문의 객방 수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손님을 받을 수는 없었을 거다. 더군다나 신랑 측 하객을 아무 데나 받을 수 없으니 월운장에 부탁한 것 같다. 아까 오다 보니 본채 쪽에 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왼쪽 어깨에 달린 오성견장은 풍검문의 독문 표기다.”
“그건 또 언제 봤대?”
“하여간 여기에 온 자들은 전부 만만치 않은 자다. 시비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운여가 말을 마치며 주의를 주자 운상이 입맛을 다셨다.
반박하기도 뭣하고 수긍하기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운호의 입이 열린 것은 잠시 침묵이 흐른 후였다.
“운여야, 데릴사위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정략결혼을 의미하는 게 맞아?”
“그건 확신하지 못한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친구로서 묻자. 당 소저의 뜻에 의한 게 아니라 정략결혼일 가능성은 얼마나 되냐?”
“정말 어려운 질문을 하는구나.”
“말해줘. 부탁한다.”
“…오 할은 될 것 같다. 풍검문은 안휘에 있는 문파다. 사천에서 안휘는 직선으로 따져도 칠천 리. 더군다나 풍검문주의 장자인 석천은 무공에 미쳐 안휘를 떠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 자다. 그러니 그자가 당 소저의 마음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고맙다. 말해줘서.”
“내가 너에게 이 말을 괜히 했는지 모르겠다.”
운호의 반응에 운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막상 말해놓고 나니 운호가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자칫 판을 벌리게 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당문은 물론이고 십주십강에 포함되는 풍검문까지 관여되어 있다. 만약 운호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어디까지 그 여파가 미칠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운여는 팔짱을 낀 채 뭔가를 생각하는 운호의 어깨를 두들겼다.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언제나 운호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