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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93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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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93화

태강은 동에서 서로 흐르는 귀주의 주강으로서 넓이는 칠십 장에 달하고 수심도 가장 깊은 곳은 오 장이 넘을 만큼 큰 강이다.

강을 끼고 나타난 파혼당은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였고, 어느새 나타난 세 명의 괴인이 그들의 퇴로를 가로막은 채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병력으로 나타난 파혼당 못지않게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

결코 눈앞에서 빙글거리는 막여보다 하수일 리 없었다.

고립무원(孤立無援).

앞뒤로 적에 의해 막혔으니 진퇴가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이빨을 드러낸 운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발걸음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운호는 막여의 삼 장 앞에 다가간 후 등에 메어두었던 흑룡검을 꺼내 들었다.

“내가 중앙이다. 운상은 왼쪽, 운여가 오른쪽, 한 소저는 내 뒤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도망은 생각하지 않았으니 알아서들 해. 강을 배후에 두고 싸울 거니까 정 힘들면 물에 빠져 죽어.”

“난 수영 잘하니까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을 거다.”

운호의 설명에 운상이 슬쩍 웃었다.

이백이란 숫자가 부담되었으나 그는 황수에서 천여 명과 싸운 전력이 있기 때문인지 얼굴에 전혀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았다.

자신의 무력을 믿었고 친구들의 무력을 알고 있으니 힘들지는 모르나 이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

그의 웃음에 담긴 것은 철혈의 의지와 믿음.

절정을 넘어 절대의 경지로 나아가는 운상과 운여는 바라보는 운호를 향해 걱정 말라는 시선을 보냈다.

운호가 먼저 중앙을 점유하자 미리 약속한 대로 운상과 운여가 자리를 잡았고 한설아가 그들 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이 막여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지금 운호 일행의 진형은 파혼당과 정면으로 붙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황수에서 마검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고 들었지만 파혼당은 칠절문과 근본적으로 다른 무력을 지닌 무인들이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포위를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나 놈들은 스스로 포위망에 갇힌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단한 자신감인지 천하에 둘도 없을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결론은 오직 하나, 포위된 이상 놈들은 죽는다는 것이다.

막여의 손짓 하나에 파혼당의 검객들은 일제히 검을 빼 들고 천천히 걸어 운호 일행에게 다가온 후 반원을 형성했다.

적들이 뒤쪽에 강을 둔 배수진을 치고 기다렸음에도 그들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막여처럼 그들 역시 운호 일행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싸움이 벌어진 후 불과 반각도 지나지 않아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중앙에 선 운호의 방어 범위와 전권은 오 장을 휩쓸었고, 운상과 운여 역시 그에 못지않게 범위를 확장시키며 공격해 온 파혼당의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다.

강변에 쌓인 모래밭이 파혼당 무인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일각이 지났을 때 벌써 삼십여 명이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에 운호 일행 앞은 시신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방어막이 쳐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지켜보던 막여와 세 명의 괴인이 앞으로 나선 것은 그로부터 열 명이 더 쓰러진 후였다.

막여의 눈은 번들거리고 있었다.

수하라고 불렸지만 형제처럼 지냈던 사람들이다.

저 앞에 눈을 감지 못하고 쓰러진 삼수는 어제 저녁만 해도 자신에게 숨겨두었던 술을 따라주며 활짝 웃던 놈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놈도, 그 뒤에 있는 놈들도 전부 마찬가지로 아주 가까운 기억 속에서 웃고 있던 자들이다.

그런 수하들의 죽음에 막여는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일검일검에 산악과 같은 기세를 내보이는 운호의 무력이 입을 떠억 벌리게 만들었으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하들을 뛰어넘어 운호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촤르르륵!

그의 검에서 솟구친 검기가 마치 망망대해에서 생성된 파도의 흐름처럼 운호에게 밀려들었다.

설명조차 필요 없는 강력함.

중첩된 검기는 도도하게 흘러 순식간에 운호에게 도착했다.

 

운호는 막여가 앞으로 나서서 도약하는 것을 보며 지체 없이 비화(飛花)를 뿌렸다.

막강한 검기의 물결이다.

비화를 뿌리며 전진하던 신형을 삼 장이나 뒤로 물리고 뒤이어 분광을 꺼내 들어 잔력을 해소한 후에야 바로 설 수 있을 만큼, 막여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운호는 곧 후퇴한 신형을 다시 전진시켰다.

방어선을 후퇴시킨다는 것은 일행의 움직임을 위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선을 고착해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막여의 쉴 새 없는 공격을 분광으로 밀어내며 전진하던 운호에게 혈패가 협공을 해왔다.

친구인 막여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백야검이 절정을 넘어선 것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이지만 그런 막여의 검으로도 어쩌지 못할 만큼 운호의 검은 거대했다.

 

고수들의 대결이 시작되자 파혼당 무인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귀주무림에서 한다 하는 자들로 채워져 있었으나 지금 눈앞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무인들은 다른 세계 사람으로 보일 만큼 무시무시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끼어들지 못할 전장.

전의를 앞세워 참여한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인생과 마찬가지다.

가진 자, 힘 있는 자는 없는 자의 인생에 관여해서 자기 뜻대로 하지만 없는 자는 절대 있는 자의 인생에 참견하지 못한다.

그런 것처럼 파혼당 무인들은 분노에 젖은 눈으로 고수들의 싸움을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못했다.

 

운호는 두 사람의 협공을 방어하며 좌우를 확인했다.

운상과 운여는 벽안의 사내와 홍의를 입은 자를 상대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큰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전력을 기울인다면 밀리지 않는 싸움이란 뜻이다.

문제는 자신이었다.

뒤쪽에 한설아란 제약을 달고 있기 때문에 조금의 틈조차 용납할 수 없었으니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했다.

공격을 하지 못하는 고수는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의 운호처럼.

놈들을 죽이기 위해 전진하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하여 한설아가 공격당한다면 구해줄 방법이 없기에 운호는 자리를 지키며 방어에 주력했다.

위험이 없어지면 더욱 강력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걸 막여와 혈패는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운호가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음에도 뒤쪽에 있는 한설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눈치챈 그들은 허수를 섞어 한설아를 위협하며 풍차처럼 운호를 공격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속되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놈들의 추가 병력이라도 오게 된다면 빠져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운호는 버럭 소리를 질러 운상과 운여를 불렀다.

“뭐해, 빨리 끝내지 않고! 다른 놈들 오면 어쩌려고 그래! 얼른 끝내고 가자!”

“네 눈엔 우리가 노는 걸로 보이냐?”

“죽는다!”

“어씨, 저놈 지랄하는 거 보니까 몇 군데 찢어져야 되겠네. 하여간 저놈 따라다니면 꼭 피를 본다니까.”

운상이 투덜거리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고수 간의 대결에서 이토록 공방이 계속되는 것은 무력의 차이가 현격하지 않은 이상 단판의 승부를 벌일 경우 부상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고수가 고수로 불리는 이유는 필살 초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칠 능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고수들이 조금씩 상대의 전신을 갉아먹는 방법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은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무인들은 시신의 상태만 봐도 대충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게 된다. 무력의 격차가 큰 경우는 단숨에 양단되는 경우가 많았고, 비슷한 무력을 지닌 자에게 죽임을 당한 시신은 수많은 상처를 지닌다.

한 치, 한 치 파고들어 적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수들은 그렇게 싸운다.

 

운호의 외침에 운상과 운여가 분광을 꺼내 들고 적들을 공격하는 동안 운호는 착실하게 두 사람의 공격을 방어하며 시간을 끌었다.

둘 중 하나만 싸움을 끝내고 후방을 지켜준다면 십 초 이내에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부상당할 우려는 크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싸움을 먼저 끝낸 것은 운상이었다.

운상은 분광과 회풍을 번갈아가며 전력으로 펼쳤고, 삼십여 초를 더 겨룬 후에야 혈룡을 쓰러뜨렸다.

싸움을 끝낸 그는 즉시 운호의 뒤로 다가와 한설아를 호위했는데 스스로 예상한 것처럼 세 군데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운상이 뒤를 맡아주자 방어에 치중하던 운호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주욱 늘어나며 막여의 정면으로 다가섰다.

후방의 안전을 확보한 이상 싸움은 이제부터가 진짜다.

 

운호의 검이 팽이처럼 돌며 막여와 혈패의 전신을 노렸다.

검에서 솟구친 검기는 수십 갈래로 쪼개져 화살처럼 날아갔는데 그 하나하나에는 막강한 검력이 담겨 있어 적들의 검을 튕겨냈다.

콰앙! 쾅! 콰광!

굉렬한 충돌의 연속.

운호의 전진에 이를 악문 막여와 혈패가 전력을 다해 반격을 해왔으나 그들의 검은 결국 양쪽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합공으로 막으려던 그들의 시도는 운호의 일직선 전진을 깨지 못하고 결국 분산되고 말았다.

그것이 그들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렸다.

운호는 막여와 혈패가 좌우로 분산된 것을 확인하자 곧장 회풍을 꺼내 들고 십이검을 날렸다.

분광조차 막기 어렵던 그들은 천지를 뒤덮는 회풍이 전신을 노리고 날아오자 숨겨놓았던 자신들의 비기를 꺼내어 마지막 승부를 걸어왔다.

이십 년간 무적으로 지내왔다던 천검회 파혼당주 막여와 강남삼십이절에 속하는 혈패의 합공은 지축을 가르고 허공을 잘라내는 가공할 위력이 있었다. 하지만 절대의 경지에 오른 운호의 회풍을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혈패의 잘라진 왼팔이 모래밭 사이를 헤집을 동안 막여는 가슴과 옆구리에 이검을 맞은 채 입으로 선혈을 쏟아내고 있었다.

막여가 겨우겨우 신형을 일으키자 파혼당 무인들이 급하게 다가와 그와 혈패를 부축해서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운호는 그런 그들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

연민이 생겼거나 동정이 발동된 것은 아니었다.

무인의 죽음은 언제나 삶과 같이하는 것이니 동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가 추적하지 않은 이유는 파혼당 무인들이 양쪽에서 불나방처럼 운상과 한설아를 향해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위험도,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랬기에 그는 추적 대신 전권을 물려 방어선을 확인한 후 파혼당 무인들을 맞아들였다.

아직 남아 있는 적의 숫자는 백오십이 넘었다. 얼마나 독한 훈련과 전쟁을 겪었던지 그들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도 끊임없이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진정 치열한 공격이었다.

무섭도록 가라앉은 운호의 눈은 미친 듯 공격해 오는 파혼당 무인들을 냉정하게 응시하며 사일의 전삼식과 중삼식을 끊임없이 연환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샌가 회색의 눈동자를 가진 검귀 무정검을 해치운 운여마저 방어선에 합류하자 파혼당 무인들의 시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되는 전장.

그 처참함이 서럽고 서글프다.

반 시진이 지나자 백으로 줄어든 파혼당은 한 시진이 지나자 이제 오십만이 남아 숨을 헐떡거렸다.

운호를 비롯한 일행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혈인이 된 지 오래였다. 운상과 운여는 부상을 치료하지 못한 채 계속 싸웠기 때문에 기력의 고갈되어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멈춰라!”

그동안 쓰지 않던 분광을 터뜨려 순식간에 셋을 베어버린 운호의 입에서 사자후가 흘러나왔다.

가공할 위력에 파혼당 무인들이 주춤 물러서자 운호의 검이 직선으로 뻗어 나왔고, 그 검에서 수십 갈래의 검기가 파생되며 창처럼 일어섰다.

운호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파혼당 뒤쪽에 쓰러져 있던 막야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일어설 때였다.

“돌아가라. 만약 돌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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