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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21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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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21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가슴이 아픈 법이다.

친구와의 이별도,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도 그래서 어떨 때는 눈물이 난다.

그녀의 돌아서는 등을 보며 잡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는 애써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선 순간부터 하염없이 떨렸다.

누가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고 했던가.

아마도 그것은 이별의 아픔을 참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억측일 것이다.

한설아와 운호의 이별은 말처럼 그렇게 짧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웃었으나 가슴은 울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운호의 손은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오히려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저 눈과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감정만 느꼈을 뿐이다.

인사를 하고 돌아선 그녀의 등을 보며 운호는 하염없이 서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완전히 눈에서 사라졌을 때는 거의 일다경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 시간 동안 운호는 그녀와 있었던 추억들을 되새기며 그녀의 걸음이 멈춰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수줍은 얼굴로 자신에게 몸을 맡긴 채 떨고 있던 그녀의 눈이 떠올랐고 어느 이름 모를 언덕에서 가슴으로 안겨들던 모습도 눈에 선했다.

별이 아름답게 빛나던 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용기로 그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었다.

따뜻한 체온을 느꼈고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도 느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먼저 사랑을 고백했으나 자신은 떠나는 순간에서야 뒤늦게 그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고 위해주는 것인데 자신은 체면을 중시하며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고지식했고 여전히 멍청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고 후회되는 행동이었지만 이젠 너무 늦어버려 되돌릴 수도 없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정강을 향해 일행은 길을 떠났다.

정강은 호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했는데, 거기서부터도 목적지인 안휘까지는 직선으로 육천 리가 넘는 거리였다.

운호는 걸으면서 그녀와의 추억에 젖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이 아니라 선녀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나선 그녀의 행동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고 기특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가슴으로 들어온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랑이 식어 떠나는 이별은 아니었으나 운호는 두려웠다.

당운영을 보냈던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곁을 떠날까 봐 보고 싶을 테니 빨리 오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냥 이대로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기에 더욱 두려웠는지 모른다.

사랑보다 더 한 사명이 있으니 어찌 그리움만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아갈 것이다.

그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슴에 들어온 이상 절대 다시는 아프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운호가 침묵을 지키며 걷자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르던 운상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주 죽을상을 하고 있군. 그렇게 아프면 따라가든가. 벌써 그러고 있는 게 한 시진도 넘었다, 인마!”

“그만해. 운호 입장도 이해해 줘야지.”

“숨 막혀서 그래. 저놈은 한 번 입을 닫으면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니까.”

운여가 말렸으나 운상은 도끼눈을 부릅뜨고 거품을 물었다.

워낙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운호 때문에 한 시진이 넘도록 죄인처럼 걸은 것이 분한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는 운여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는 운호 편을 드는 것 같았지만 표정과 행동은 운상과 비슷했다.

운호가 입을 연 것은 두 놈이 서로 번갈아가며 연애하는 도사는 자질에 문제가 있다면서 떠들 때였다.

“거 조용히 좀 해라, 이놈들아. 생각을 못 하겠잖아.”

“무슨 생각. 네가 하는 생각이 뻔하지. 한 소저 생각밖에 더 하겠어?”

“아니다.”

“흥.”

운호가 부인하자 단박에 두 놈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운호는 두 놈의 반응에 그저 어이없는 헛웃음만 흘려냈다.

그들은 지금까지 운호가 침묵을 지킨 것이 여자 때문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그의 행동은 충분히 그런 오해를 만들 만했으니 친구들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는 친구들이 이러는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아예 대놓고 놀려서 운호가 느끼는 이별의 아픔을 상쇄시켜 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친구들의 반응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운호는 화를 꾹 참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설아 생각은 이따가 밤에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농담은 그만하고 내 말 들어봐.”

“어쭈, 제법인데. 금방 죽을 것 같더니 그새 회복된 모양이네. 좋아. 무슨 말인지 말해봐.”

“우리는 안휘로 가야 하잖아.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가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 일단 이동 경로부터 결정해야 되겠다.”

“생각한 거 있어?”

“지금 혈검쟁패의 주 무대는 우리가 이동하고 있는 호남이다. 안휘를 가려면 호남을 거쳐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만 거긴 전쟁터기 때문에 시비가 걸릴 소지가 다분하다. 더군다나 우릴 잡으려고 날뛰던 천검회가 직선로에 떡 버티고 있어.”

“그래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첫 번째는 혈검쟁투의 양상을 지켜보면서 호남을 관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회해서 중경 쪽으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호남에는 천검회의 전 병력이 몰려 있는데 괜찮을까?”

“괜찮을 리 없겠지. 놈들은 이미 우리의 용모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니 발견이 되면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야.”

“그럼 중경 쪽으로 가자. 싸움의 양상은 소문으로 들어도 충분하잖아.”

“맞아. 괜히 일부러 싸울 필요는 없다.”

운상이 의견을 개진하자 옆에 있던 운여가 맞장구를 쳤다.

워낙 무호계전투에서 커다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전쟁터를 피하고 싶어 했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목적과 가야 할 곳을 내버려 두고 조금 가깝다는 이유로 거대 문파의 연합들이 백척간두에 서서 일검쟁투를 벌이는 지옥을 횡단할 이유는 없다.

그랬기에 운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후 그들의 말에 동조했다.

“좋아. 그렇다면 호남을 피해서 중경으로 넘어가자. 호북을 거쳐서 안휘로 넘어간다면 두 달이면 충분할 거다.”

“멀긴 엄청 머네. 고생 꽤나 하겠어.”

“그사이에 막사검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시작된 거라면 절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사랑하는 사람하고 이별을 겪더니 아주 통이 커졌군. 웬만한 건 걱정도 안 되는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다.”

운호가 여유 있게 말하자 운상이 가자미눈을 한 채 곧바로 퉁방을 줬다.

그러자 운여가 즉시 맞장구를 치며 운호를 노려봤다.

계속 죽을상을 하고 있던 놈이 갑자기 여유를 부리자 괜히 심술이 난 모양이었다.

 

점창이 연락망으로 사용하는 운남 송골매는 성질이 사납고 발톱과 부리가 날카로워 속도가 빠른 반면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뛰어나고 정해진 장소와 사람에게 서신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장점을 가겼다.

점창에서는 현재 서른 마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전서구가 도착한 것은 운호 일행이 중경 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향으로 향할 때였다.

전서에는 장문의 글의 담겨져 있었고 서신을 돌려 읽은 일행의 얼굴은 금방 심각하게 변했다.

서신에는 현재의 무림 정세를 분석한 내용과 구룡회에 관한 일들이 적혀 있었고 운호 일행이 안휘로 가서 해야 할 일들도 적혀 있었다.

본산에서는 운호 일행이 막사검을 추적하는 동시에 천(天)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떡할까?”

“뭘?”

“구룡회에서 큰소리를 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어야 된다잖아.”

“그렇게 직접적으로 쓰여 있지는 않지만 결국은 그런 뜻으로 보이네.”

“이거 큰일이네. 쉽지 않은 일이다.”

운상이 먼저 답답한 듯 말을 꺼내자 운호와 운여가 번갈아 입을 열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기에 전부 금방 입을 닫아버렸다.

막사검을 쫓으면서 천(天)이란 조직의 행방을 우연이라도 찾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적었다.

더군다나 안휘는 무림의 난다 긴다 하는 무인들이 모두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난장판으로 변할 가능성이 컸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누가 아군인지 적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대놓고 천을 추적한다면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침묵을 지키던 일행 중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운호였다.

“지금까지 노출된 바로는 천검회가 천의 전위 조직이다. 내 생각에는 천문과 수라맹 역시 놈들과 같은 패거리로 보여.”

“단순한 협력 관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그렇지 않아. 놈들은 철저히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해오다가 갑자기 동맹을 맺었어. 전쟁에서 동맹을 맺을 정도면 오랜 기간 교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면 공통된 목적이 있어야 되지. 철혈문 쪽은 모두 그런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천문과 수라맹에는 그런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강남 삼십팔세 중 세 개의 거대 세력이 그들의 전위 조직이라면 과연 천(天)의 조직은 그것뿐일까?”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냐?”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조직은 지금 태풍이 불고 있는 안휘 쪽에도 있을 거란 판단이 들어.”

운호의 말에 운상과 운여가 눈을 부딪쳤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천(天)에서 탈취해 간 막사검이 불쑥 나타났다는 것은 운호의 말처럼 안휘 쪽에 그들의 전위부대가 있을 거란 추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운호의 머리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운호는 지금처럼 똑똑하지 않았었는데 근래 들어 상황 판단 능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하지만 상황 판단이 민활하다고 해서 해결책까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들은 답답함을 풀어내지 못했다.

“설사 그렇다 쳐도 놈들이 누군지 모르잖아. 뭘 알아야 정보를 캐든 말든 할 거 아냐.”

“한 놈만 잡으면 된다.”

“누구?”

“마창.”

운상의 물음에 운호의 입에서 태연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대답을 들은 운상과 운여는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운호의 말은 천하백대고수의 일인이자 천강십오성에 포함되는 절대고수 마창을 잡자는 것이었다.

마창은 삼대마두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로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지닌 자였다.

혹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제정신이 아니란 소리도 있었는데, 워낙 광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그런 소문이 떠도는 것 같았다.

마창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다.

물론 운호가 백대고수 중 둘을 잡았고 수많은 집단전을 통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특수부대들마저 격파해 왔지만 아직 마창과의 대결은 무리가 따른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랬기에 운상과 운여는 동시에 고개를 흔들어댔다.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상처 꿰매고 치료한 게 며칠이나 됐다고 그런 소릴 해. 정신 차려, 인마.”

“마창이 강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지금은 그자가 유일한 대안이다. 그자만 잡는다면 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어쩌자고!”

“강서로 가자. 강서는 안휘와 붙어 있으니까 놈을 잡고 안휘로 들어가면 된다.”

“아이고, 미치겠네.”

“너희들, 사문의 염원을 생각해 봐. 위험하겠지만 우리가 어떤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구룡의 복원이 앞당겨질 수 있어. 그래도 안 갈 거냐?”

“몰라, 인마.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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