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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16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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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16화

운호는 거친 숨을 가다듬은 후 다가오는 윤환을 향해 검을 끌어올렸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투 불능 상태까지 몰린 것은 아니었다.

놈에게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가슴과 옆구리의 상처가 치명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전장의 치열함을 겪어보지 않는 자의 착각에 불과했다.

동갈벌전투를 비롯해서 황수전투, 태강전투뿐만 아니라 패천일도와의 싸움에서 이보다 더 한 부상을 입었었다.

그때마다 운호는 불사조처럼 싸웠고 끝끝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

두려움을 벗겨내고 다가오는 윤환이 가상했으나 자신의 상태를 오판하고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이라면 이번 격돌로 확실히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청마대를 단숨에 격파하며 날아온 사람들로 인해 지워져 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쌍악은 후방에서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전투부대의 일각을 부수며 운호 일행에게 빠져나오라는 신호를 연신 보내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상태에서 예상치 못하게 생긴 기회가 운호의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뒤쪽에서 방어에 치중하던 운상과 운여도 그 모습을 본 모양인지 검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운상, 운여. 내가 돌파하겠다. 가자!”

앞에서 윤환이 가로막았으나 운호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며 오 검을 퍼부었다.

죽일 생각이 아니라 돌파를 위함이었으니 막강한 위력을 지닌 섬전(閃電)을 펼쳤다.

단순한 내력의 충돌이라면 분광이나 회풍보다 섬전이 더 위력적이었다.

콰앙!

윤환이 막아섰다가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때를 이용해서 무당의 쌍악이 벌려놓은 틈으로 운호가 진입했다.

그런 후 몸을 뒤집으며 운상과 운여를 공격하는 삼로와 십팔영을 향해 회풍을 날렸다.

운호가 펼친 무적의 검초, 회풍의 윤(輪)자결이 막강한 검기와 함께 적들의 머리 위로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삼로와 십팔영이 갑작스러운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 운상과 운여 역시 몸을 뒤집어 뒤따라오는 사형들을 향해 다시 날아갔다.

운호가 자신들의 상대였던 삼로와 십팔영을 견제할 동안 운상과 운여는 사형들과 오검이 몸을 뺄 수 있도록 오륜과 칠현을 막아섰던 것이다.

방어선을 풀고 전력으로 이동하면서 운곡과 운검, 그리고 오검은 그 짧은 순간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단 한 번의 탈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치명적인 공격을 감내하며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격렬한 충돌의 여파가 벌판을 휩쓸며 지나갔다.

천지사방이 운호와 운상, 운여가 전력으로 펼친 회풍으로 인해 회오리로 변했다.

그 사이 운곡과 운검이 오검을 데리고 능선을 넘었지만 운상과 운여는 그 충돌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가뜩이나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사형들을 구하느라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튕겨져 나갔다.

격돌의 여파로 운상과 운여가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자 쌍악이 그들의 신형을 받아들고 능선 쪽으로 신법을 펼쳤다.

그들은 운호의 상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후퇴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지 바람처럼 능선을 넘었다.

모두 빠져나간 자리를 운호는 삼로와 십팔영을 동시에 상대하며 굳건하게 후퇴로에서 적들의 추적을 차단했다.

잠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또다시 포위망에 갇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친구들을 추적하려는 적을 요격하기 위함이었다.

운호는 뒤로 움직이며 자신을 통과해서 능선 쪽으로 다가서려는 자에게 무자비한 살검을 펼쳐 내고 있었다.

먼저 나오는 자, 반드시 죽는다.

죽고 싶다면 나서라. 내 기필코 죽여주겠다.

운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운호는 혈귀가 되어 적들의 움직임을 차단하며 천천히 능선 쪽으로 후퇴했다.

그 누구도 운호보다 먼저 능선에 도착하지 못했다.

일격필살.

나오는 족족 죽여 버리는 운호의 살검에 천검회의 고수들은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운호의 뒤를 따랐다.

삼로가 공격을 했었고 십팔영이 뒤를 따랐으나 그들은 상처를 입은 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륜과 칠현의 공격도 있었으나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격돌할 때마다 운호의 몸에도 깊은 상처가 새겨졌지만 그는 오로지 적들이 친구들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길을 틀어막았다.

한 사람의 절대고수는 한 방파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는데, 운호는 홀로 무호계에서 그 말을 입증하고 있었다.

능선을 장악한 운호는 흘끔 시선을 뒤로 돌려 친구들과 사형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들은 천일평으로 들어섰지만 워낙 커다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이동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랬기에 운호는 이를 악물고 검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방어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버틴다.

강간을 깬 운호의 내력은 끊임없이 돌고 돌아 막강한 위력을 지속시켜 주었다.

초절정에 근접한 자들의 연환공격에도 그의 검은 완강하게 버티며 오히려 그들의 몸에 상처를 새겨놓고 있었다.

강간이 깨지기 전이었다면 벌써 검하의 고혼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신은 새파랗게 살아 있었고 적의 공격도 느린 화면처럼 눈으로 들어왔다.

혼자서 천검회 고수들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능선이란 특수 조건을 배경 삼아 버티는 운호를 그들은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운호의 신위가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합격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더군다나 특수한 지형으로 인해 쟁쟁한 명성을 떨치게 만든 독문검진을 사용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운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피로 젖었고 검을 든 오른팔을 제외한다면 전신이 상처로 뒤덮였다.

내력은 버텨주고 있었으나 몸이 흔들렸다.

천검회의 인물들은 야차 같은 운호의 검에 질렸는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운호라는 한 인간에 대한 경외감이 자신들도 모르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 누가 있어 천검회의 삼 할 전력을 홀로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 이곳 무호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윤환은 공격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삼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삼로의 옷은 마치 걸레처럼 변해 있었는데 저마다 서너 군데씩 상처를 입어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격퇴되어 돌아온 칠현 대신 다시 능선으로 향했다.

사제들인 비령과 사영은 급히 후송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워낙 엄중한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였다.

하긴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의 부상을 당한 것은 사제들뿐만이 아니었다.

수뇌부 중에서도 일곱이나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으니 마검의 무력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봐야 했다.

특이한 지형 때문에 포위 공격을 할 수 없었고 놈을 그냥 지나쳐 다른 자들을 공격하려 해도 악귀같이 덤벼들어 진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이 많은 인원이 능선을 넘지 못하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운호는 먼 옛날 백만 대군을 홀로 무찔렀던 전신처럼 막강한 신위를 내보였다.

깊게 한숨을 내리쉰 윤환이 불편한 왼팔을 슬며시 내려뜨렸다.

반 치 가까이 잘린 왼팔은 아직도 슬금슬금 피가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하긴 왼팔만이 아니다. 가만히 눈을 내려 쳐다보니 전신이 상처로 벌집처럼 변해 있었다.

삼로가 공간을 뛰어넘어 운호를 공격할 때 뒤이어 오륜이 신법을 펼쳐 좌측으로 날아갔다.

오륜은 한 명이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어 네 명만이 합격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 역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일 각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전부 몇 군데씩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놈이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나 싸움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운호의 상태는 이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지금까지는 기회를 보며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때였다.

이때를 기다리며 지금까지 힘을 모았다.

삼로와 칠현, 오륜 등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들이 와 있었으나 누가 뭐라 해도 이곳에 온 천검회의 수장은 자신이었다.

마검만 때려잡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랬기에 마검을 때려잡는 건 반드시 자신이어야 했다.

 

운호는 삼방을 장악하고 날아온 삼로의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고 급하게 유운신법을 펼쳐 좌측을 넘으려는 오륜을 향해 날아갔다.

백색 투명한 검기가 산란하며 오륜을 덮쳤다.

삼로가 급히 방향을 틀어 재차 운호를 공격해 왔을 때는 이미 분광이 오륜과 충돌한 후 되돌아 왔다.

팡… 파팍… 쾅!

오륜은 운호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었음에도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격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상대를 포위한 상태에서 벌이는 연수합격에는 막강한 위력을 나타냈으나 각개전투가 벌어지자 계속 피해를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운호는 휘청하며 세 발자국 물러났을 뿐이었지만 오륜은 둘이나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갔다.

전면에서 운호의 공격을 받아낸 자들이었다.

그러나 오륜과의 충돌 여파는 후속 공격을 감행한 삼로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고수들은 찰나의 시간만 주어져도 수십 번의 검을 날릴 수 있다.

삼로는 운호가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순간을 이용해서 삼방으로 뛰어올라 그동안 시전하지 못했던 환사진을 펼쳤다.

돌풍이 먼저 일어났고 세 사람의 내력이 담긴 검기가 하나가 되어 운호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들의 눈이 붉어지며 번들거렸다.

이 공격으로 마검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그들의 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순간에 불과했고 그들 눈에 들어 있던 확신은 곧 불신으로 변했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던 운호의 검에서 백색 구체가 생성되더니 그들이 펼친 검기를 향해 마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콰아… 앙!

삼로는 폭발력을 견디지 못하고 일 장이나 튕겨 나간 후 널브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그들의 전신은 수많은 검 자국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 중로의 왼팔은 잘려져 나간 채 땅바닥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튕겨져 나가 나동그라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운호 역시 일 장을 튕겨 나가 바닥에 쓰러진 후 검을 의지해서 일어섰는데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검회 무인들은 함부로 그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심지어 끝장을 보기 위해 기회를 보던 윤환마저 입을 벌린 채 주춤하며 멈춰 섰다.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 게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수많은 부상으로 비틀거리며 버틴 이 각 동안 운호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는 불사신이 되어 공격해 온 적을 향해 귀신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때마다 목숨을 잃고 나가떨어진 건 운호가 아니라 공격하던 천검회 무인들이었다.

붉게 물든 땅.

눈을 감지 못하고 쓰러져 간 사내들.

무호계의 가을은 나무에서 떨어져 날아온 낙엽과 사내들의 피가 범벅이 되어 스산하고 슬픈 광경을 펼쳐 내고 있었다.

한 편의 지옥도.

검을 의지한 채 무릎을 꿇고 있던 운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가오는 윤환과 십팔영을 노려봤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내상으로 인해 내력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옛날, 자신의 고사리손을 붙잡고 산을 오르던 스승님이 생각났다.

스승님은 돌아가시기 전 그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이성으로 불꽃처럼 살라 하시며 점창의 별이 되기를 원하셨다.

당신이 원하신 삶을 살고자 이를 악물고 번민의 세월을 보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이겨냈고 숱한 외로움과 슬픔도 이겨냈다.

그러나…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점창의 별이 되어 천하를 질주하고 사문을 영광스럽게 만들어달라는 사부님의 명은 이제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사부님이 원하신 삶은 아니었을 테지만 후회되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랑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나누었던 즐거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으나 운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사랑했던 그녀의 눈물이 떠올랐고, 사랑하고 싶었던 그녀의 웃음도 생각났다.

이제… 이제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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