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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42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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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42화

운호의 뻔뻔스러운 대답에 운여의 입에서 여우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뭐라 퉁방이라도 주고 싶은데 막상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할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박에 반박을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 해도 운호의 생각이 무모하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하류 쪽으로 가보는 건 어때?”

“거긴 무방비로 내버려 두었을까 봐?”

날카로운 반문에 또다시 답이 궁해졌다.

하긴 살막이란 놈들이 어떤 자들인데 그냥 방치해 놨겠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운호, 이놈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지?

워낙 정곡을 찌르니까 자꾸 말문이 턱턱 막혔다.

그랬기에 운여는 눈을 돌려 물 위에 떠 있는 여선(旅船)을 바라보았다.

이제 배는 다섯 명이 더 타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럼에도 여유가 많았다.

대충 봐도 서른 명은 넘게 태울 수 있는 규모의 여선이었지만 오늘따라 손님이 적었던 것인지 자리가 많이 남았다.

불쑥 대화가 끊긴 운호와 운여 사이를 끼어든 것은 운상이었다.

운상은 끊임없이 떠드는 소하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지체 없이 끼어들었는데 그 말이 가관이었다.

“야, 대충 정해졌으면 타자. 배 떠나면 최소 한 시진 더 기다려야 해.”

여선에 다가가 뱃전으로 오르자 선주로 보이는 사람이 길을 가로막듯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중년 사내였다.

“한 사람당 은화 한 냥이오. 네 사람이니 네 냥을 주시오.”

“강을 건널 뿐인데 한 냥이라. 너무 비싸군.”

“안 타실 거요?”

불퉁거리는 운상의 말에 앞으로 내밀어졌던 선주의 손이 뒤로 물러났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는 태도다.

더군다나 성격마저 급했던지 그는 선원들에게 소리를 질러 출발 신호를 보낸 후 닻을 끌어올렸다.

이대로라면 살막이고 나발이고 성격 급한 선주 때문에 배를 놓칠 판이었다.

아무리 무림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점창의 전검들이었지만 무턱대고 검을 뽑을 수는 없으니 선주의 강력한 반응에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벙긋댔다.

퉁명한 표정과 말하는 솜씨로써 강호의 서열을 정한다면 아마 선주는 백대고수 이내에 충분히 들 만큼 싸가지가 없는 사내였다.

그만큼 선주의 말투는 단호했다.

괜히 나섰다가 본전도 못 뽑은 운상을 뒤로 물리며 소하령이 나선 것은 배가 기우뚱거리며 출발하려 할 때였다.

“여기 돈 받아요. 그리고 괜한 일 가지고 목숨 걸지 않는 게 좋아요. 당신이 누구든 말이에요.”

어느새 품에서 은자를 꺼낸 소하령이 선주에게 돈을 건네준 후 여유 있게 배에 올랐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가 너무 묘해 선주는 물론이고 운호 일행도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어찌 보면 선주의 퉁명스런 성격을 탓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운상을 편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쪽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쪽은 선주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이기도 했다.

운상이 입은 연 것은 선상의 빈 공간을 일행이 차지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배는 운호 일행이 타자마자 선착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령아, 설마 선주까지 의심한 거냐?”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어째서?”

“뱃사람 손에 굳은살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 당연히 의심해야죠.”

“허어!”

눈썰미가 좋은 건지, 아니면 세심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쪽에서는 소하령이 운호 일행보다 앞서는 게 분명했다.

강호의 경험이다.

아무리 무력이 뛰어나다 해도 강호의 경험이 일천하면 언제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랬기에 운상은 소하령의 말을 듣고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직 어린앤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필요할 때 튀어나오는 강호의 경험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났다.

운호가 입을 연 것은 운상의 탄식이 끝나기 전이었다.

“하령이의 눈이 좋구나. 맞는 말이고 당연히 의심을 해야 한다. 배에 오른 이상 우리 말고는 어떤 놈도 그냥 치나지면 안 돼. 이제 배가 떠났으니 저놈들이 살막이라면 곧 공격을 해오겠지. 아마 공격은 배가 중앙에 가까워졌을 때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준비하고 있어.”

그저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여선이 고요하게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파동도 없었고 배에 탄 사람들도 침묵을 지킨 채 뱃전에서 스쳐 지나가는 강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선은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흘러 내려가 하류의 선착장에 정박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십 장이 넘는 형탄강의 강심까지는 거의 이각이 지나서 도착했다.

배에 탔던 여객들과 선원들이 강으로 뛰어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물에 빠진 줄 알고 몸을 벌떡 일으켜 구하려 했다.

하지만 다른 자들도 연이어 물속으로 사라지자 운호 일행은 얼굴이 굳어져 갔다.

배에 탄 여객들이 살막의 고수들이라면 강심에 도착한 후 즉시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예상치 못한 일은 연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여객과 선주를 포함한 선원들이 모두 강으로 뛰어들자 배의 저판에 구멍이 뚫리며 물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놈들은 그냥 탈출한 것이 아니라 수공을 하기 위해 배를 이곳까지 끌고 온 모양이었다.

물질을 못 하니 배가 침몰하면 벗어날 길이 없다.

놈들은 분명 물속에서 그들이 빠져들길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눈을 돌려 강을 보자 살귀들이 벗은 것으로 보이는 옷들이 지천으로 널려 흘러가고 있었다.

살귀들은 물속으로 들어가며 행동에 지장을 주는 옷들을 처리하고 어느새 수달피로 만들어진 잠수복을 입고 있었는데, 발쪽에 갈퀴가 달려 자유자재로 물질이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였다.

물속에서 고개만 내민 살귀들은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는 상어 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보다 보니 한숨만 나왔다.

놈들은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공격을 하지 않고 연신 저판에 구멍만 뚫고 있었다.

운호가 검을 빼 들어 돛대를 자른 것은 물이 반쯤 발바닥을 적셨을 때였다.

돛대는 삼각형 천이 삼 장에 걸쳐 펼쳐져 있다가 검으로 자르자 접혀지며 좌측으로 쓰러졌다.

운호의 신형이 날아간 것은 돛대가 물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둘레가 한 자 가까운 돛대는 운호의 손에 의해 잡히자 활짝 펴지며 대가리만 내밀고 있던 살귀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돛대가 날았고 운호가 그 뒤를 따라 신법을 펼쳐 날아갔다.

돛대를 발판 삼은 운호는 물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세 명의 살귀를 향해 회풍을 쏘아냈다.

무적의 검초를 일개 흑귀들을 향해 쏘았으니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강물은 금방 피로 물들었고 멀찍이 떨어져 동료들의 죽음을 확인한 살귀들의 손에서 탈수표와 수리검이 운호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왔다.

맹렬하되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한 공격은 아니었다.

물속에서 균형조차 잡지 못하고 던진 암기 정도는 내력조차 쓸 필요가 없었다.

운호가 돛대를 밟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운호가 물속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면 천하를 떨게 만드는 무력을 지녔어도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셋을 한꺼번에 처단한 운호는 진각을 펼쳐 돛대의 방향을 바꿨다.

돛대는 운호의 강한 진각에 수직으로 솟구치더니 발길질에 의해 서쪽으로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그곳에는 암기 공격이 실패하자 세 명의 살귀가 급히 물속으로 잠행하기 위해 몸을 트는 중이었다.

워낙 빠르게 이동하니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돛대의 극과 극을 이동한 운호의 신형은 번개가 무색하게 빨랐다.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상인으로 변장했던 세 명의 살귀를 척살한 운호가 흔들리는 돛대 위에서 나머지 자들을 찾았다.

좌방에 남은 자들은 셋.

선주를 포함해서 상인 하나와 이제 갓 스물이 넘었을 정도의 아직 새파란 여자였다.

문제는 그들이 운호가 여섯의 살귀를 처단할 동안 빠르게 잠행을 해서 돛대의 이동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물속에서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는 건 전문적인 수공을 익힌 자들이란 걸 의미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어느샌가 쇄겸자를 들고 있었는데, 삼 방으로 펼쳐진 채 서서히 머리를 물속으로 숨기는 중이었다.

금방 그들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무력으로 안 되니 배를 공격하던 자들과 합류할 생각이 분명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놈들은 물속 깊이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자 뱃머리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운호는 다시 진각을 펼쳐 돛대를 일으켰다.

그런 후 선풍각으로 돛대의 방향을 배 쪽으로 돌린 후 신형을 날려 돌아왔다.

배는 이제 거의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물이 차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쇄겸과 철삭조로 무장한 놈들이 배 저판을 뚫고 연신 공격을 해왔는데, 그때마다 저판이 한 자씩 뚫어져 나갔다.

운상과 운여는 물론이고 적들의 공격에 소하령까지 펄쩍펄쩍대며 피했지만 반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반격하는 순간 배의 파괴 속도는 훨씬 빨라질 테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저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운호의 입이 떨어진 것은 뱃머리로 쇄겸이 솟구치며 소하령을 공격할 때였다.

“운상, 운여, 비화(飛花)를 날려!”

“무슨 뜻이야?”

“이대로 있다가는 당해. 그러니까 비화로 배를 움직이란 말이다.”

운호는 말을 끝내자마자 돛대를 우방으로 떨어뜨렸다.

아직 놈들은 좌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듯 머리를 내밀고 배가 좌초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호가 돛대를 이용해서 세 명의 적을 척살하고 배로 돌아오는 동안 무슨 뜻인지 알아챈 운상과 운여가 좌우로 나뉘며 강물을 향해 비화를 펼쳤다.

비화는 검막을 이루며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사일검법의 유일한 방어 초식이었다.

강물을 향해 방패처럼 변한 검기가 동시에 쏘아지자 배가 순식간에 일 장이나 주욱 밀려 내려갔다.

물론 물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으나 강한 충격을 받은 배는 순식간에 일 장을 이동하더니 탄력을 받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운상과 운여가 강물에 비화를 때리자 탄력을 받은 배는 화살처럼 움직여 불과 반각도 되지 않아 강을 건너 버렸다.

사람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으면 말도 안 나오는 법이다.

선주로 위장해서 흑귀들을 이끌던 칠청귀 이소는 배 저판을 연속으로 파괴하다가 공격 목표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황당한 표정으로 닭 쫓던 개처럼 대가리만 내민 채 멍하게 서 있었다.

흑귀가 아홉이나 당했으나 다섯의 청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물속에 빠지는 순간 물고기 밥으로 변한다.

물속에서는 수로연맹의 미친놈들 빼고는 자신들을 당할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력이 강해도 죽음 앞에서 미친 듯 전력으로 비화를 펼쳤기 때문에 강가에 도착하자 운상과 운여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배는 강가에 도착하기 전에 버리고 마지막 순간은 신법을 펼쳐 육지로 내려왔다.

완전히 파괴된 배는 이미 물이 차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조금만 늦게 움직였다면 물속에 빠져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참으로 열 받는 일이었다.

물속에 빠져 죽으면 물귀신하고 친구가 된다고 하는데 도사가 귀천을 하지 못하고 죽을 뻔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운호가 형탄강과 이어진 산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린 건 자신들을 공격했던 살귀들이 물가로 다가와 붉은 눈으로 노려볼 때였다.

“혈염공!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해. 어차피 흑귀나 청귀 정도는 아무리 암습을 하더라도 덤비는 즉시 다 죽는다. 욕심 때문에 수족 같은 수하들을 다 죽이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냐. 그러니 백귀들과 수호에서 기다려라. 거기에서 기다리면 우리가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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