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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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41화
운호와 운여가 지키는 지붕이나 창문과는 달리 방문으로 공격을 들어온 자들은 운상을 목표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일격에 척살이 되지 않는다.
공격해 온 자를 향해 거침없이 분광을 터뜨렸으나 거센 충돌이 생긴 후 뒤로 튕겨 나간 자들은 쓰러졌다가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팔다리가 갈라지고 가슴이 터졌음에도 목숨을 잃지 않았으니 동료들이 공격을 하는 동안 몸을 추스른 그들은 피를 뿜어내면서 운상의 요혈들을 다시 노렸다.
백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삼십팔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피부로 절감될 만큼 살귀들의 공격은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살막은 살귀들의 단계를 흑귀, 청기, 백귀로 나눈다고 했는데 지금 공격해 오는 자들은 흑귀와 청기들이었다.
가장 무섭다는 백귀들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이런 정도니 백귀들이 가세하면 얼마나 강할까. 참으로 예측이 안 되는 집단이었다.
교묘하고 악랄하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이해되었다.
소하령이 목욕을 시작하도록 기다렸다가 운호 일행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공격을 시작했다.
암습도 무서웠지만 이런 공격이 더 무섭다.
적의 발을 묶어놓고 벌이는 싸움은 살귀들에게는 익숙한 전투다.
그러나 살막은 운호 일행의 무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공청석유의 기연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겠지만 분광과 회풍을 극성으로 익혔고 내공이 삼화취정에 달했으니 운호는 물론이고 운여와 운상까지 일대종사의 기세를 뿜어냈다.
콰앙… 쾅… 쾅.
흑귀들은 단 두 번 만에 나가떨어져 일어서지 못했고 공격해 왔던 세 명의 청귀도 비틀거리며 정신없이 튕겨져 나갔다.
운상의 분광은 분산이 최대로 펼쳐지며 검을 휘두르면 검막이 생성되어 적의 공격을 일거에 무찔렀다.
일각에 가까운 공격을 멈추고 청귀들이 바람처럼 사라진 것은 가늘고 긴 호각 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아마도 그 호각 소리는 살막의 비령인 것 같았다.
피 묻은 검을 떨쳐 낸 운상은 굳건하게 방문을 지켰다.
비록 지금은 물러났으나 언제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르니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운호와 운상은 지붕과 창문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운상은 방문을 슬쩍 바라본 후 인상을 긁었다.
온몸에 피가 묻었다.
여행으로 찌든 때와 더불어 살귀들의 피가 묻었으니 그 찜찜함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여인이다.
밖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도 소하령은 물소리를 찰랑거리며 여전히 목욕을 하고 있었다.
온몸에 광채가 난다.
여행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소하령은 세심하게 옷단장과 화장까지 마친 후 방문을 빠져나왔는데, 넋을 놓고 바라보는 운상을 향해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생했죠?”
“응… 아니, 고생은 무슨.”
여간해서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운상이 말을 더듬거렸다.
싸우는 와중에도 배짱 좋게 목욕을 계속하는 소하령을 보면서 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허공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혹시 나 계속 목욕했다고 흉본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나. 우리도 할 건데, 뭐.”
“아버지가 떠날 때 나한테 그랬어요. 오라버니들 싸움하면 가급적 끼어들지 말라고요. 그래서 하던 김에 마저 한 거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지?”
“오라버니들이 달라졌대요. 처음 봤을 때보다 무서울 정도로 강해졌다고 하셨어요.”
소하령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번천검은 자신들의 변화를 알고도 모른 체했다는 뜻이다.
확실히 강호는 단순한 사실만 가지고 마음을 놓기에는 무서운 곳이었다.
운상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소하령은 즉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번 둑이 무너진 그의 입술은 예전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때요. 나 예뻐요?”
“응, 너무 예뻐.”
“호호. 고마워요. 사실은 나…….”
여기서 목욕하는 방법이 왜 나오고 물의 온도가 어떻다는 얘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덧붙여 운상이 싸우는 동안 가슴을 살짝 졸였다는 사실과 예쁘게 치장해서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하며 소하령은 중간중간 뇌쇄적인 웃음을 흘렸다.
소하령이 교태를 부리자 운상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을 반달처럼 만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소하령의 시선에 운상은 흔들거리는 마음을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운상의 인내를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운호와 운여였다.
복도 양쪽에서 나타난 운호와 운여의 몸에도 피가 잔뜩 배어 있었는데 운호는 나타나자마자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도와준 건 좋은데 운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예전에 자신이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누구는 피 터지게 싸우는데 잘하는 짓이다.”
“어머,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요. 오라버니가 보기엔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이상한가 보죠?”
“넌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경험으로 본다면 너희는 나한테 상대가 안 돼. 내가 그냥 그렇다면 그런 거야. 오리발 내밀어도 소용없어. 운상, 안 그래?”
“잘났다, 인마!”
돌아가며 목욕을 했고 순번을 정해 푹신한 이불 속에서 잠도 편하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객잔에 들이닥쳐 식사도 해결했고 건량도 충분히 준비했다.
거리에 나가 깨끗한 무복을 사서 갈아입었으며 여분으로 몇 벌씩 준비까지 했으니 여행에 대한 준비는 모두 마쳤다.
그랬기 때문에 길을 나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선계에 사는 귀공자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귀공자와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객잔에서 벌어진 전투로 살막은 열둘의 시신을 남기고 떠났다.
불과 백 명에 불과한 문파에서 열둘의 피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물론 핵심 세력인 백귀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강호를 벌벌 떨게 만드는 살귀들이 열둘이나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으니 살막주 혈염공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그러나 운호를 비롯해서 운상과 운여의 분노도 그에 못지않았다.
어제는 소하령 때문에 살막의 공격을 고스란히 얻어맞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당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점창이 자랑하는 전검이었으니 적들에 대해서는 뿌리까지 뽑아놓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선공.
자신들의 주의를 맴돌며 따르는 자들은 이제부터 무조건 죽인다.
점창의 검귀들이 얼마나 독종인지 살막에게 확실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객잔에서 나오자마자 운호의 몸이 전방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를 향해 날아갔다.
서슬 퍼런 검기가 정확하게 거지의 심장을 찔렀다.
피하고 어쩌고 할 새도 없는 급작스럽고도 거침없는 일격이었다.
운호의 검이 회전하며 반대편 노점에서 노리개를 팔고 있는 중년 사내를 겨냥한 것은 운상과 운여가 어디론가 몸을 날릴 때였다.
사내는 거지가 일검에 목숨을 잃어버리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눈은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런 사내를 향해 운호가 천천히 걸어갔다.
검은 고정되었고 검에서 나온 검사는 이미 사내의 미간을 겨냥한 채였다.
움직이면 죽는다.
운호의 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중년 사내의 표정은 운호가 다가갈수록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단한 자다. 이 정도라면 청귀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고수다.
거지를 척살하면서 느낀 미세한 기운만 아니었다면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만큼 연기도 완벽한 자였다.
웬만한 고수라면 운호의 검사를 맞으면 움직이지 못하는데 사내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 나더니 운호의 검사를 뿌리치고 마차 밑에서 두 개의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사내의 몽둥이가 보이자마자 운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진천폭뢰봉.
당문에서 개발한 근접 살상 무기로 아무런 대비가 없다면 절대고수라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알려진 암기였다.
하나의 진천폭뢰봉이면 삼 장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하니 지금 사내가 꺼낸 것이 발사되는 순간 거리는 순식간에 죽음으로 변하고 만다.
아침이지만 중심가라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운호는 발사되는 각도를 최대한 좁힌 후 비화(飛花)를 펼쳐 검막을 형성했다.
단 한 번의 방어로 강력한 암기의 공격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
작정하고 펼쳐진 비화는 거대한 방패가 되어 진천폭뢰봉에서 터져 나온 강침들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강침들은 비화에 막혀 허공에서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암기 공격이 실패하자 사내가 번개처럼 허리춤에서 협봉도를 꺼냈으나 협봉도는 반쯤 뽑혀 나온 채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했다.
숨이 끊어진 자는 더 이상 행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운호는 검극을 돌려 사내로부터 벗어난 후 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운상과 운여가 두 명의 사내를 쓰러뜨리고 소하령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운호 역시 천천히 걸어 일행 쪽으로 다가갔다.
일행을 감시하던 네 명의 살귀를 단박에 처단하자 외곽의 기운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살막의 삼중 구조 감시망은 언제나 척살 대상을 시야에서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외곽 감시망이 다가오지 못한 것은 워낙 강력한 운호 일행의 무력 때문이었다.
다가가면 죽는다.
공기의 파장은 북풍한설처럼 차가웠고 피 묻은 검을 털어내는 운호 일행은 지옥의 염왕처럼 귀기로웠다.
과연 누가 살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기세는 무서웠다.
의창을 벗어나 당양(當陽)을 지나면서 할아버지와 손자로 위장한 채 접근해 온 두 명의 살귀를 죽였고 흥산(興山)을 통과할 때 나무와 땅을 파고 잠복해 있던 다섯의 청귀를 단숨에 귀객으로 만들어 버렸다.
혈염공은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 살막 칠십이 명의 고수를 대동했다고 했으니 이제 마흔아홉만 남았을 뿐이다.
살막의 공격이 지독하게 펼쳐진 것은 보강(保康)에서부터였다.
보강을 가로지르는 장강의 지류 형탄강은 그 폭이 오십 장을 넘었고 수심도 깊었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건너기 어려웠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언제나 필요함이 있으면 해결책도 가지고 있다.
보강은 형탄강에서 나오는 잉어가 유명했고 강 너머 운보의 특산물인 월명차를 들여와야 했으니 배들을 정기적으로 운영해야 원활하게 물품 교역이 이루어진다.
형탄강에 세 군데의 선착장이 마련된 것은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운호 일행은 중류에 만들어져 있는 선착장을 바라보며 지그시 눈을 오므렸다.
선착장에 정박되어 있는 배에는 일곱 명의 여객이 탄 상태였고 다섯 명이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세가 묘하다.
살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배에 탄 자들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은 노인이 둘에 부부로 보이는 두 쌍의 중년 남녀, 친구끼리 마실 나온 것으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둘. 나머지는 장사치로 보이는 중년인들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 묘하다.
그랬기에 운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운호을 바라보았다.
“거참, 뭔가 기분이 이상해. 네 생각은 어떠냐?”
“확신하기 어려워. 청귀 이상 되면 놈들은 기세를 완벽하게 숨기잖아. 흥산에 숨어 있던 놈들도 공격하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타야 되지 않겠어. 공격해 오면 그때 대응하고.”
“너, 물질 잘하냐?”
“아니.”
“물질도 못 하는 놈이 큰소리치는 이유가 뭐냐. 일단 배에 타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탈래?”
“안 타고 강 건널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어때? 그런 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