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5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5화
거의 한 시진에 달하는 운기조식을 끝내고 눈을 뜬 운상과 운여의 눈은 끝없이 침잠되어 있는 호수를 보는 것처럼 고요했고 깊었다.
그들은 운기를 끝내고 자신의 몸을 잠시 관조한 뒤 입을 열어 그때서야 의문을 풀기 시작했다.
“운호야, 어떻게 된 일이냐?”
“어쩐 일은… 죽었다 살아난 거지.”
“장난하지 말고, 인마. 다 죽어가던 내가 이렇게 멀쩡한 이유가 뭐야. 넌 또 왜 생생하고?”
“이놈은 죽었다가 살아나도 그 성격은 똑같네. 알았어. 말해줄게…….”
운호는 운상이 주먹을 들자 가벼운 웃음을 지은 후 그동안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운상과 운여의 얼굴은 수시로 변했다.
강호에서 발생해 온 수많은 전설과 기사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없이 즐겁게 듣고 읽었지만 막상 자신들에게 그런 일이 있어났다고 하니 믿기가 어려웠다.
환골탈태. 삼화취정.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운호의 설명을 부인할 수도 없다.
당장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다른 놈들의 피부가 마치 갓 난 아이들 것처럼 매끈했고 잡티 하나 없어 천상의 귀공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운호야 원래부터 잘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운상과 운여마저 환골탈태 되면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변한 상태였다.
만약 사숙들이나 사형들이 본다면 당장 못 알아볼 만큼 그들은 엄청나게 잘생긴 얼굴로 변해 있었다.
더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외모가 아니라 지닌 내력의 변화였다.
운기조식을 끝낸 그들의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고 뜻을 세우면 곧바로 진기가 움직였는데, 그 정도가 산악처럼 장중했고 바다처럼 넓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얼굴에 새겨져 있는 것은 갑자기 생겨 버린 기연에서 생겨난 당황함이었다.
상념에서 깨어나 먼저 입을 연 것은 운여였다.
그의 얼굴은 운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간 죽다 살아난 건 축하할 일인 것 같은데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어리둥절하다. 몸 상태도 이상하고.”
“어떤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랄까. 지금 상태라면 십제와도 한판 뜰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도 할 거다. 점창의 조사분 중에서 삼화취정에 오른 분은 무진자 사조뿐이시다. 무진자께서는 백오십 년 전 천하제일에 오르신 분이야.”
“크크… 황당하군.”
운호의 대답에 운상이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내공이 삼화취정의 단계에 올랐다고 해서 천하제일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무공에 대한 이해와 터득이 선행되어야 하고 무리에 대한 깨달음이 천리에 닿았을 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적의 고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토대가 마련되었으니 그들의 무력은 절대로 들어설 것이 분명했다.
운상의 웃음을 뒤로하고 운여가 계속해서 입을 열은 것은 마창과 일검마의 죽음을 일별한 후였다.
“이젠 어쩔 생각이냐?”
“다행스럽게 마창으로부터 놈들의 근거지가 어딘지 알아냈다. 너무 급해서 어디에 있는 천왕산인지 듣지 못했지만 그 정도만 가지고도 충분하고도 남아. 이제 놈들을 찾는 건 일도 아니야.”
“그래서?”
“우리에겐 막사검이 있다. 그리고 막사검은 모든 무인들의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이 검을 처리하는 것과 천왕산을 찾는 걸 병행할 생각이다.”
“막사검을 어쩔 생각이냐?”
“청성에 돌려줘야 되지 않겠어?”
“막사검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다. 우리 점창이 가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거야?”
“없지. 하지만 이 검은 원래부터 우리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본의 아니게 막사검의 비밀을 풀었고 그 비밀은 이미 우리 배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 막사검은 보물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뜻이지. 괜한 욕심으로 사문을 위험하게 만들 필요도 없고. 그러니 막사검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청성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아.”
“흥, 한 소저 때문은 아니고?”
“이놈은 꼭 말을 해도.”
“아니면 말고.”
운호가 눈을 부릅뜨자 운상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가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비실비실 웃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이 났으나 남아 있는 친구가 슬퍼할까 봐 울지도 못했다.
하지만 운호, 이놈은 자신의 죽음을 위해 아낌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바보 같은 놈.
무력은 어마어마하게 강한 놈이 마음은 너무나 착하다. 방금도 작은 농담에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닌 걸 빤히 알고 장난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연관시켜 말하자 운호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운호의 난처함을 구해준 건 운여였다. 그는 운상의 장난을 가로막으며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는데 금방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지금 장난하고 있을 새가 없다. 다른 놈들이 올지도 몰라.”
“누구? 칠악?”
“이제 육악이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많이도 죽였다. 벌써 넷이나 죽였으니 사문에 탕마행 성과를 보고할 때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겠어.”
“기다렸다가 나머지도 모두 죽여 버릴까?”
운여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대자 기다렸다는 듯 운상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백대고수에 포함된 절대고수를 넷이나 잡았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즉시 운호에 의해 잘렸다.
“원래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리하는 게 맞겠지만 천이란 놈들을 생각하면 그럴 이유도 없다. 놈들의 차도살인 계획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꼴이 되잖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
“놈들은 나중에 분명 잡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천이란 놈들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야. 일단 이동하자. 그런 후 우린 갈 데가 있어.”
“어딜?”
“기연을 얻었으나 완전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늘이 기회를 주었으니 잡아야 되지 않겠어?”
“넌 꼭 말을 뱅뱅 돌리는 버릇이 있더라. 쉽게 말해봐.”
운상이 나서며 운호를 탓했다.
이유와 필요성부터 말해주고 결과를 도출해야 알아듣기 쉬운데 운호는 가끔가다 말을 거꾸로 하는 버릇이 있었다.
운상의 타박에 운호가 빙긋 웃었다.
그도 스스로 자신의 버릇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말은 공청석유의 효능을 우리 것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뜻이다. 환골탈태를 겪으면서 상당 부분 몸으로 흡수되었겠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섞이지 못하고 남아 있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더 중요한 건 내력이 증진되었기 때문에 우리 무공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분광과 회풍에 대한 수련을 별도로 하지 않으면 내력의 적용에 곤란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운호의 설명에 운상과 운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 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공의 급격한 증진은 검법의 운용에 많은 변화가 따르게 된다.
당장 적정의 원리가 별도로 구성되어야 하며 초식의 해석도 다시 해야 된다.
“그래서 어디로 가자는 말이냐?”
“저쪽, 저기 높은 봉우리 보이지. 그 옆에 골짜기도 있고. 저기라면 물은 충분하겠다.”
운호의 턱짓에 친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팔공산의 봉우리 중 유일하게 숲이 우거진 봉우리가 운호가 말하는 곳이었다.
하필이면 산이다.
산에서 수련을 한다는 것은 또다시 화식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랬기에 운상과 운여의 얼굴은 하필이면 저기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나 있을 건데?”
“음… 많이 걸리지는 않겠지. 보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숭산(崇山).
숭산은 하남 북부에 있는 산으로서 중원오악에 꼽힌다.
숭산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 자체로의 기경도 뛰어나지만 그곳에는 소림이 있기 때문이었다.
태산북두.
바로 소림을 일컫는 말이었다.
천 년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왔고 무림 역사상 불세출의 고수들을 수시로 배출해 온 명문 중의 명문.
와호잠룡의 본거지.
현 무림의 최강자를 일컫는 무천십제 중 불제가 바로 소림의 장경각주인 뇌광 대사였고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뇌공 대사와 뇌인 대사가 숨 쉬고 있는 곳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고수가 있는데 사대금강과 팔대호원, 십팔나한 등 기라성 같은 고수들은 절정을 뛰어넘을 정도의 강자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소실봉을 바라보는 청문자의 시선이 아련하게 젖어갔다.
불과 칠 년 전 이곳에서 점창은 개파 이래 가장 큰 모욕을 당하고 말았다.
구룡에서의 배제.
무림 역사 속에서 언제나 구대문파는 영광의 상징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구대문파의 지위에서 탈락되었다는 것은 점창에 몸담고 있는 무인들에게는 수치였고 치욕이었다.
더군다나 청문자는 더욱 그랬다.
점창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였으니 구룡에서의 탈락은 그를 분노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함부로 검을 꺼내 들지는 않았다.
명분과 힘에서 밀린 이상 헛되이 검을 꺼내 사문을 어려움에 빠지도록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화산파와 모산파가 손을 굳게 잡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점창은 그들을 이겨내야 구룡에 복원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랬기에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분광과 회풍이 사문에 돌아온 이상 예전처럼 힘없이 당하거나 겁쟁이가 되어 꼬리를 마는 짓은 절대 없을 것이다.
소림에 들어서서 신분을 밝히자 산문을 지키던 승려가 급하게 일행을 지객당으로 안내했다.
청문자는 운학과 운일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오늘 여기에 온 이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객당에 들어온 이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객당주 뇌현 대사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청문자를 보면서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뇌현 대사는 십오 년 전 청문자와 하룻밤을 같이 새운 인연을 가진 사람이었다.
단 하루의 동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인연이란 것은 재회의 반가움을 갖도록 만드는 모양이었다.
“이게 누구요. 청문자 아니시오?”
“뇌현 대사님,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절에서만 사는 스님이 무슨 일이 있었겠소.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있다오.”
“다행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자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얼핏 보니 청문자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걸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구려. 도대체 무슨 일이오?”
역시 눈치가 빠르다.
뒤쪽에 앉아 긴장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운일과 운학의 시선만 보고도 뇌현 대사는 사태의 심각함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나 청문자는 뇌현 대사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대사, 죄송하지만 방장 대사를 만나도록 해주시오. 너무 중요한 일이라 방장 대사가 있는 곳에서 말했으면 하오.”
“음…….”
청문자의 말에 뇌현 대사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객당주는 소림의 장로였다.
더군다나 소림은 무림의 태산북두였으니 다른 문파의 장로보다 절대 아래 신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청문자가 자신에게 말을 하지 못하겠다며 방장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은 들고 온 사안이 보통 중요한 게 아니란 뜻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침중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는 지금 화산에서 오신 손님을 만나고 있소. 그러니 접견이 끝나는 대로 내가 만나실 수 있도록 조치하리다.”
“화산에서 온 사람은 누굽니까?”
“추령자요.”
뇌현 대사의 대답에 청문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추령자.
점창을 구룡에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화산파의 장로가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