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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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4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에 운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비단 보자기로 향했다.
그리고 막사검을 꺼내 들어 서기가 흘러나오는 검병을 붙잡았다.
흠칫.
서기는 검신과 검병 사이의 미세한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해 왔다.
문제는 그 향기가 자꾸 늘어지던 정신을 맑아지도록 만든다는 것이었고 더불어 온몸을 사로잡았던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손을 들어 살피다가 검병을 비틀었다.
막사검의 검병은 홈을 만들어 끼워 맞춘 구조였기 때문에 틀어서 돌리자 검병과 검신이 분리되었다.
분리된 검병의 안을 들여다보자 검신을 끼워 고정시킨 부분보다 아래쪽에서 서기와 더불어 천상에서나 맡을 법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중 구조.
뭔가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놓은 이중 구조가 분명했다.
그랬기에 운호는 검병을 살피다가 불쑥 튀어나온 돌기를 확인했다.
분명 처음 막사검을 획득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돌기였는데 갑자기 생겨났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의문을 가질 새가 없었다.
가파르게 급해지던 운상의 호흡이 막사검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향을 맡고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운호는 급히 돌기를 눌렀다.
혹시 이 안에 운상을 살릴 수 있는 영약이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운호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막사검에서 흘러나온 냄새를 맡자 그토록 육신을 괴롭히던 고통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돌기를 누르자 검병이 반으로 갈라지며 숨어 있던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는 작은 병이 숨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병을 들어 안을 채우고 있는 액체를 확인했다.
액체는 엄마의 모유처럼 회색빛을 띠고 있었는데 봉인되어 있었음에도 확인하기 위해 눈앞으로 가져오자 신비로운 향내가 더욱 진해졌다.
정신이 맑아졌고 판단력은 더욱 빨라졌다.
머리가 믿을 수 없도록 빠르게 돌아가며 기억 속에서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한 가지 영약의 이름이 떠올랐다.
천기보록에 쓰여 있던 그 이름, 바로 공청석유였다.
공청석유(空淸石乳).
천지간의 영험한 기운이 특별한 조화가 서린 지하 삼백 장 밑의 동굴에서 지정(地精)이 응집되어 백 년마다 한 방울씩 떨어지고 또다시 백 년을 지나 정제된 후에야 우윳빛 액체의 형상으로 고이게 되는데, 이를 공청석유(空淸石乳)라고 한다.
천기보록에는 공청석유를 환골탈태를 이루고 임독양맥이 타통 되어 천지간의 조화를 부릴 수 있는, 인세에 다시없는 영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공청석유가 맞는지 정말 죽었던 생명도 다시 살릴 수 있는 효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운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병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어가는 운상과 운여를 살리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했다.
급히 봉인을 풀고 우윳빛 액체를 입에 물었다.
운상은 이제 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뭔가를 혼자서 먹기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입에 액체를 물자 몽롱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환각.
액체를 입에 물자 온통 세상이 하얀 빛으로 물들며 자신도 모르게 액체가 목구멍을 통해 거짓말처럼 몸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먹으려 한 것이 아니었으나 액체는 입에 들어가자 마치 증발되듯 몸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입에 물고 조심스레 운상에게 먹이려던 그의 의도는 예상치 못한 현상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급히 정신을 차린 후 이번에는 병을 들어 운상의 입을 억지로 벌려 남아 있는 액체의 반을 먹였다.
그 와중에도 반을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뒤쪽에서 운여의 신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놈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가련하고도 슬픈 신음을 힘겹게 흘려내고 있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참고 운여 쪽으로 다가가 그의 입을 벌리고 병에 남은 액체를 먹였다.
그런 후 고개를 떨어뜨리고 정신을 잃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상처는 내장이 삐져나온 운상의 상태보다 훨씬 심한 것이었다.
정신을 잃은 세 사람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운호의 몸을 관통한 상처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아물었고 창자가 흘러나오기까지 했던 운상의 찢어진 배도 저절로 봉합되기 시작했다.
운여의 잘라졌던 팔과 다리도 원래대로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신에 나 있던 상처들도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것은 상처가 치료된 후부터였다.
모든 상처가 아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든 관절이 뒤틀렸고 뼈와 뼈가 다시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드득… 우드득…
뼈의 재조합.
완벽한 신체로 바뀌어지는 환골탈태.
천기보록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처럼 공청석유는 세 사람의 몸을 완벽한 신체로 바꾸기 시작했다.
기사였고 기연이었다.
온몸이 뒤틀리고 뼈의 위치가 재조립 된 후 안정이 되자 이번에는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몸속에 있던 노폐물들이 피부를 통해 빠져나와 악취가 진동을 하는 동안 삼십 년이 다 되도록 속살을 보호해 줬던 피부들이 계속해서 벗겨져 나갔다.
운상의 얼굴에 나 있던 곰보 자국이 사라졌고 운여의 손등에 문신처럼 새겨졌던 흉터들도 어느새 없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많은 전투를 통해 훈장처럼 깊게 새겨졌던 온몸의 흉터들이 한 겹, 두 겹 피부가 벗겨지면서 사라져 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봤다면 기절을 하고도 남을 기사가 벌어지고 나자 세 사람은 고른 숨을 쉬며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전의 거친 사내들이 아니었다.
피부는 아기의 것처럼 투명하게 변했고 잡티 하나 없는 얼굴은 천상에서 내려온 귀공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려했다.
놀랍고도 믿기지 않는 일.
막사검의 비밀이 공청석유였다는 것을 과연 누가 알기라도 했을까.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피비린내가 진동했는데 막사검에 공청석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무림에 노출되었다면 아마 천하는 살육으로 인해 공포에 젖어갔을지도 모른다.
운호의 몸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환골탈태가 끝나고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천룡무상진기의 회전.
몸속으로 이물질이 들어와 단전을 격동시키자 천룡무상진기가 저절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물밀듯 생성되고 밀려드는 천기의 힘을 천룡무상진기는 그냥 흘리지 않고 내공으로 승화했다.
공청석유의 무한한 공능이 천룡무상진기와 만나자 운호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진동하더니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섯 마리 금빛 용이 운호의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더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은 여전했으나 금룡들은 어느새 색이 바뀌어 청적흑백황으로 변해갔다.
용들의 색깔이 바뀌면서 운호의 내부는 계속해서 폭발을 이루고 있었는데 타통 되어 있던 대혈은 물론이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느다란 세혈에까지 진기가 흘러들어 갔다.
청적흑백황으로 모습을 바꾼 용들은 운호의 온몸을 감싸고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용들의 입에서 흘러나와 비로봉에 가득 찼다.
선음(仙音).
오룡봉성을 넘어선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로 들어설 때 나온다는 선음이 분명했다.
한참 동안 노닐던 용들이 한 마리 거룡으로 변해 운호의 정수리를 통해 사라지고 난 후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운호의 눈이 떠졌다.
운호는 눈을 뜬 후 한동안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 후 급히 친구들을 확인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자신의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만들었던 운상과 운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편안한 자세로 잠이 들어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상처가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사라졌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운여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황당해서 놀라지도 못했다.
자신의 몸을 확인해 보니 마창의 적룡창에 관통당한 상처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관통당한 상처 중에는 심장과 주요 장기들을 찌른 것도 있었기 때문에 천룡무상신공이 운용되어도 살아난다는 보장을 하지 못할 만큼 위중한 것들이었다.
예전의 부상을 감안한다면 최소 한 달은 치료해야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였는데 잠을 자고 일어서자 말끔히 치료가 되어 있었다.
이 말은 그가 복용한 것이 전설의 공청석유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내기를 돌려 검끝에 진기를 끌어올리자 무려 오 척이 넘는 검기가 솟아났다.
부상을 당하기 전보다 배는 더 길어진 검기였다.
그러나 길이보다 더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검기의 응축 때문이었다.
흑룡검에서 삐져나온 검기는 마치 실제처럼 유형화 되어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검강의 발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펼쳐진 이 유형의 검기가 검사들이 전설로 여기며 꿈속에서라도 진입해 보고 싶어 한다는 검강이 맞다면 자신의 무력은 또 다른 경지에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
검을 휘둘러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언제 나머지 칠악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친구들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운상과 운여는 잠에서 깬 후 영문도 모른 채 운기에 들어갔다.
운호가 그들을 깨우고 나서 무조건 몸부터 회복해야 된다며 서둘렀기 때문에 의문을 접어두고 금방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호위를 서던 운호의 눈에서 놀람이 떠오른 것은 운상과 운여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떠밀리는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좌우로 밀렸다가 앞뒤로 움직였고 연속적으로 진동을 하다가 위로 튕겨져 오르기도 했다.
그런 후 몸이 미친 듯 떨리기 시작했다.
연속적인 폭발.
그랬다. 친구들의 몸은 내부에서 무언가에 연속적인 충격을 받고 혈들이 확장되며 뚫려 나가는 관혈 현상이 이뤄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갑자기 두 사람의 신체가 스르륵 허공으로 떠오른 것은 떨림이 멈춘 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때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런 현상은 주요 혈도들이 깨져 나가면서 발생되는 일이었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나씩 깨뜨릴 수 있는 혈도들이 연속으로 깨져 나간다는 것은 분명 기사였고 기연이었다.
운호는 친구들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새삼스레 막사검에서 얻은 액체의 정체가 공청석유란 사실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관통되는 전율을 느끼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공청석유란 추측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말 공청석유란 확신을 하지 못했는데, 자신의 상태와 친구들의 상태가 천기보록에 나와 있던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자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친구들의 몸은 허공에서 내려와 고요히 좌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세 개의 연꽃이 머리에서 피어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젠 놀라는 것도 지칠 만큼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운호는 그저 멍하니 친구들의 변화를 지켜만 보았다.
친구들의 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삼화취정이 분명했다.
현천진기를 극으로 연마했을 때 나타난다는 삼화취정은 점창 역사상 단 한 명만이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바로 천룡무상신공을 익혀 천하무적이 되었던 만천자와 더불어 점창을 검가의 조종으로 만든 검제 무진자가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