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3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3화
한홍의 접근에 운상과 운여가 양쪽으로 벌려 섰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
상대가 비록 백대고수에 포함되는 절대고수였으나 물러설 수도 없고 물러나서도 안 된다.
쓰러진 운호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놈은 움직이지 못하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운호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일검마를 척살해야 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운상과 운여의 무력이 절정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고 수많은 전투를 통해 분광과 회풍의 경지가 구 성을 넘어섰으나 일검마는 천하를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무인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운상과 운여는 두려움을 떨쳐 내고 결연히 자신들의 검을 꺼내 들었다.
운호를 위하고 점창을 위해서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그랬기에 운상과 운여는 이를 드러낸 채 굳은 얼굴로 일검마가 검을 꺼내길 기다렸다.
일검마의 입에서 가소롭다는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은 운상과 운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을 때였다.
“기어코 죽고 싶은 게로구나.”
“죽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네가 될 것이다. 그러니 목숨이 아까우면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가라.”
“크크크…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 잘근잘근 짓밟아주마.”
일검마가 검을 뽑아 들자 새파란 검신이 드러났다.
그의 독문무기인 환청검이란 보검이다.
만년한철을 이용해서 제조된 것으로 알려진 환청검은 내력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어떤 무기라도 단숨에 박살 내버릴 만큼 강력한 무기였다.
검신이 푸르기 때문일까. 일검마가 내력을 운용하며 검을 어깨높이로 끌어올리자 단박에 푸른 검기가 일 척이나 솟구쳐 나왔다.
그저 발검만 했을 뿐인데도 검에서 솟구쳐 나온 검기는 그의 무력이 어느 정돈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것이었다.
일검마가 검을 꺼내자 운상은 운여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친구의 눈빛은 말을 하지 않았어도 최단 시간 내에 승부를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호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싸움을 마쳐야 했다.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시늉을 마친 운여가 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일검마의 좌현을 향해 날아갔다.
그냥 날아간 것이 아니라 검기의 산란, 분광의 탄자결을 뽑아내어 일검마의 좌측 옆구리와 다리를 노린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에 맞추어 운상은 잠시의 시간차를 두고 우방으로 돌아가며 회풍을 펼쳤다.
분광과 회풍의 조화.
한 번도 협공을 해보지 않았으나 그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강력한 조합을 이루며 일검마를 압박해 들어갔다.
일검마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운상과 운여의 공격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흉험하고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도사 놈들의 무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그는 급히 환청검을 휘둘러 청마십팔검의 방어 초식 수혼(搜魂)을 펼쳤다.
콰광…!
운상과 운여는 처음부터 적정의 원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랬기에 한 번의 격돌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틈을 노려 전력을 다했으니 아무리 일검마가 절대고수의 반열에 들어간 무인이라 해도 제자리에서 받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심도 했고 공격을 해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선공을 허락하도록 방치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선공으로 일검마를 세 걸음 물러나게 만든 운상과 운여는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쉴 틈 없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적이 여유를 되찾는 순간 얼마나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이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승부를 보려 했다.
분광은 직선적이고 강한 반면 회풍은 현묘한 변화가 많은 초식이었다.
일검마가 쉽게 반격에 나서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두 가지 절초들을 끊임없이 퍼붓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얼마나 빠르고 강한지 막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옷이 잘리고 피부가 찢기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으나 일검마는 쉽사리 반격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수세에 몰린다는 것은 싸움에서 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일검마는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다가 운여가 분광의 산자결을 펼치고 돌아 나가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번개같이 칠 검을 찔렀다.
뒤따라 공격해 온 운상이 펼친 회풍의 원형 검기를 향해서였다.
칠 검이되 칠 검이 아닌 푸른 검기가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내리꽂히며 원형 검기를 파괴했다.
찌익… 찍… 찌이익.
마치 비단 천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며 운상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놀라 운여가 급히 다시 공격을 취했을 때는 운상이 왼쪽 팔에 검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둘의 합공이 무너지자 일검마는 금방 수세에서 벗어나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방어에만 치중했던 것이 분했던지 그의 공격은 일 초 일 초가 치명적인 살기를 담고 있었다.
절대와 절정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운상과 운여 역시 절대의 경지를 넘볼 만큼 강했으나 여유를 회복한 절대고수 일검마의 공격은 그들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찢기고 관통된 상처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싸움은 벌써 반시진이 지나고 있었는데 여전히 운호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로 변한 운상과 운여는 일검마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서로의 눈을 다시 쳐다봤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국 이런 싸움은 그들을 죽음 속으로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일검마 역시 그들의 공격에 가슴과 옆구리 등 다섯 군데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중이었으나 운상과 운여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부상이었다.
이를 악물고 일검마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운호라도 살려야 된다는 생각.
둘의 눈에 담긴 것은 분명 그것이었다.
또다시 왼쪽 어깨를 찔린 운상이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한 것은 동귀어진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운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최후의 절초를 펼쳐 일검마를 죽이려 했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운상과 운여의 검에서 하얀 검기들이 직선과 원을 이루며 일검마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청색 검기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 나와 운상과 운여가 펼친 검기와 부딪친 것은 일검마의 잔인한 웃음소리가 길게 울려퍼질 때였다.
일검마는 동귀어진을 하겠다는 운상과 운여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 승부를 걸어왔다.
콰앙…!
운여와 운상의 신형이 충돌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일 장이나 튕겨져 나갔다.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나간 두 사람의 몸은 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했을 뿐 결국 일어서지 못했다.
일검마의 최후 공격 초식 천뢰표살(天雷剽撒)은 두 사람의 동귀어진 공격을 격퇴할 만큼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릎을 꿇으며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을 관통한 검은 자루만 남긴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심장을 정확하게 찌른 상태였다.
누구도 그렇게 심장이 찔린 상태라면 절대 살 수 없다.
새까만 검집. 용이 비상하는 문양이 검신에 새겨진 검. 바로 운호의 흑룡검이었다.
일검마가 나무토막처럼 땅바닥으로 쓰러지자 힘겨운 몸짓으로 운호가 몸을 일으켰다.
몸짓 하나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창에 관통당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친구들에게 향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위중한 부상이었다.
운상은 가슴과 옆구리가 갈라져 창자가 비집어 나오는 중이었고 운여는 팔과 다리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으나 오히려 자신의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떡하든 정신을 차려서 친구들을 치료해야 했다.
그러나 온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버린 그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지며 혼수상태로 그를 몰아갔다.
운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천룡무상심법의 무한한 공능이 스스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릴 정도로 심한 관통상을 입었기 때문에 천룡무상진기는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호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혈과 혈을 뚫고 관통되어 끊어진 핏줄들이 말라비틀어지지 못하도록 생기를 불어넣었다.
마창의 관일유성에 당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룡무상진기는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며 생기를 생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워낙 심한 부상이었기 때문에 끊어진 생기를 쉽게 재생시키지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부상을 당해왔으나 이렇게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천룡무상진기는 끊임없이 운호의 몸속을 돌아다니며 치유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릴 지 모르나 예전처럼 천룡무상진기가 가동된 이상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룡무상진기의 가동을 중단시킨 것은 다름 아닌 운호였다.
정신을 잃었던 운호는 천룡무상심법의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와 기어코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친구들에 대한 걱정.
그대로 방치하면 친구들을 죽음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걱정이 스스로 움직여 그를 치료했던 천룡무상진기의 흐름을 차단하고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눈을 뜨고 운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으나 창자가 삐져나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친구를 보자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특별히 뭘 할 수 있어서 그리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는 그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 그를 가슴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은 운상과 운여가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
그 시선을 확인하자 왈칵 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이대로 너희들을 보내야 된단 말이냐.
기어코 기어서 운상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운여보다는 그의 상태가 더 심각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피 묻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자 그 와중에도 운상은 마주 손을 잡아왔다.
“운상아… 아프지?”
“헉헉… 괜찮아, 인마.”
“조금만 참아봐. 내가 곧 치료해 줄게.”
“…그냥 있어.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무슨 치료를 한다고 그래. 어차피 치료해도 살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마.”
“운상아!”
“운호야, 널 만나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었다… 우리… 운이 좋아서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도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그렇게 될 거다.”
“…운여는 괜찮냐?”
“너보다는 덜해.”
“저놈은 아픈 거 무지 싫어하는데 걱정이네. 그런데 왜 신음 소리가 안 들리냐. 저놈보고 아프면 소리 질러도 된다고 그래라.”
“헉헉… 미친놈.”
이 와중에도 농담을 건네는 운상을 향해 운호가 고통을 참아가며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그렇게 할 것이다.
운상의 말대로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면 분명 친구로 만나 이생에서 하지 못했던 우정과 사랑을 마저 하고 싶었다.
운상의 호흡이 가파르게 급해지기 시작했다.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였다.
손을 부여잡고 견디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뒤쪽에 쓰러져 있던 운여마저 운상을 향해 죽지 말라고 소리를 쳤으나 운상의 호흡은 점점 급해져만 갔다.
운호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를 누워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운상의 옆에 앉았다.
그때 막사검이 들어 있는 비단 보자기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와 운호의 눈을 자극했다.
너무나 황홀했고 너무나 강렬한 빛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