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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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2화
운호의 음성에 운상과 운여도 금방 반응했다.
산 아래부터 몰려오는 검은 기운은 패도적이었고 칙칙해서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바람을 타고 기세가 먼저 육박했고 뒤이어 핏빛보다 더 붉은 적룡창의 주인이 나타났다.
표홀함을 넘어 형체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출현.
노인의 머리는 산발이었고 두 눈 중 하나는 검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는데, 나머지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대뜸 고함을 질렀다.
“요마왕을 죽인 놈들이 너희냐?”
“그렇소.”
“크크크… 놈에게는 내 물건이 있었다. 보았느냐?”
“그게 무엇이오?”
“검이다.”
“혹시 이것을 말하는 것이오?”
운호가 비단보를 슬쩍 들어 보이자 마창의 눈이 번뜩였다.
막사검을 확인한 그의 눈은 금방 탐욕으로 간절하게 변했다.
“내놓아라.”
“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이것의 주인이 당신이란 걸 우리가 어찌 믿을 수 있겠소.”
“말장난을 하고 싶은 거냐. 순순히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줄 수 있다. 물론 그냥은 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냥 못 가면?”
“내가 원하던 것을 주었으니 팔다리 중 하나씩만 잘라주마.”
“당신 눈에는 우리가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구려.”
“네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어차피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일 테니까.”
“점창마검은 마창을 두려워하지 않소.”
“흐으… 어쩐지 주둥이가 미련하다 했다. 그깟 허명을 가지고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하다니 진정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이다. 어쩌겠느냐. 검을 내놓겠느냐, 아니면 죽겠느냐?”
“검을 내놓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죽지도 않을 생각이오.”
“뭐라!”
“나는 당신을 제압해서 알아낼 것이 있소. 그러니 순순히 창을 내려놓으시오.”
“죽여주마. 네 몸에 정확히 아흔아홉 개의 구멍을 뚫어놓겠다. 구멍이 뚫린 네 몸속에 한 방울의 피도 남지 않게 만들어주마.”
광폭(狂暴).
성격이 급하고 잔인한 자의 성정을 말하는 단어다.
까마귀가 우는 것 같은 마창의 괴소는 듣기 싫은 정도를 넘어서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천천히 적룡창을 들어 자신을 겨냥하는 마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보시오, 마창.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이야기나 좀 나눕시다.”
“나는… 너와 할 말이 없다.”
“당신이 천이란 놈들의 말을 듣는 이유가 뭐요. 막사검을 찾는 이유가 혹시 놈들에게 약점을 잡혀서 그런 거요?”
“크크크…….”
눈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광기에 젖을 정도로 자존자애가 강한 마창은 운호의 질문에 누런 이를 드러내며 목구멍에서 나오는 이상한 웃음을 흘렸다.
그랬기에 운호는 천천히 흑룡검을 꺼내 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천하의 마창을 꼭두각시로 만들다니 그자들의 힘이 참으로 대단한 모양이오. 그런데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소.”
“뭐가 말이냐!”
“막사검을 가져다준다고 그들이 당신의 약점을 해소시켜 줄 것 같소?”
“그릉그릉…….”
이번에는 괴소와 다른 괴음이 흘러나왔다.
광기와 공포.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분노와는 다르게 뭔가에 쫓기는 것과 같은 그의 행동은 이지적이지 못했고 불안하기까지 보였다.
그의 이성이 결정적으로 흔들린 것은 운호가 비밀로 숨겨놓은 약점을 흔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크크크… 왜 그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단 말이냐?”
“당신을 죽이려 했으니까.”
“나를 죽인다고… 막사검만 가져다주면 내 손자를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고 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모두 찢어 죽일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요마왕을 비롯한 나머지 칠악이 당신을 척살하게끔 추적 정보를 주고 있었소. 일종의 차도살인지계요. 어쩌면 지금쯤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 모르오.”
“와도 상관없다. 다 죽이면 되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이오. 내가 어떻게 요마왕이 있는 곳을 알았겠소? 나는 팔황문의 총사가 당신을 비롯해서 칠악 모두를 죽이려는 계획을 두 귀로 분명히 들었소.”
“흐흐… 흐흐흐.”
운호의 말에 뭔가를 생각하던 마창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심경의 변화.
운호의 설명에 침중하게 변했던 그의 얼굴이 다시 괴소와 함께 광기로 젖어갔다.
무심코 내뱉었던 손자라는 단어가 그를 잠시 정신 차리게 만들었을 뿐 시간이 지나자 그는 곧 원래대로 붉은 눈의 괴물로 돌아갔다.
강호의 소문에 의하면 마창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인을 한다고 했는데 직접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지를 상실한 붉은 눈.
그의 눈에 들어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손자를 찾아야 된다는 일념뿐인 것 같았다.
원래의 정신착란에 손자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더해지면서 그의 가슴속에 남은 것은 오직 분노뿐이었다.
그의 적룡창에서 붉은 창기가 주욱 피어오른 것은 괴소가 채 끝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내 검을 내놓아라!”
천이란 조직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마창은 적룡창을 앞으로 내밀어 운호의 입을 막아버렸다.
하긴 저런 정신 상태라면 물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운호는 유운신법을 펼쳐 뒤로 물러나며 흑룡검을 꺼내 들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해서 그가 십오천강에 포함되는 절대고수란 사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위험했고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적정의 원리를 무시한 그의 적룡창은 처음부터 절초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는데, 온 하늘이 온통 창기로 덮일 지경이었다.
광룡십일격.
말 그대로 미친 용이 하늘을 휘젓는 것과 같은 위력을 지닌 절세의 창술이었다.
그의 독문창법인 광룡십일격은 무천십제의 일인인 창제 화걸륜의 천지구황과 쌍벽을 이룰 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흔아홉 개의 구멍을 내겠다는 마창의 말은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다.
광룡십일격의 최후 초식 관일유성은 순식간에 아흔아홉 번의 창을 찔러내어 상대의 온몸을 파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절초였다.
창으로 뒤덮인 하늘.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창의 그림자가 독사의 혀처럼 낼름거리며 끝없이 밀려들었다.
터질 것 같은 기세의 응축은 미증유의 거력이 되어 운호를 압박해 왔다.
십오천강에 포함되는 절대 강자 마창의 위용은 요마왕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고 다른 고수들과 달리 적정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운호는 온 힘을 기울여 전력으로 분광과 회풍을 펼쳐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격돌할 때마다 연신 피부가 갈라져 나갔다.
충격의 여파에서 오는 창의 잔기는 운호의 피부를 찢어내며 귀신의 울음소리를 흘려내고 있었다.
헉헉……!
한 시진에 걸친 마창과의 접전은 오룡봉성에 도달되어 내력이 급증하고 있는 운호의 입에서 단내가 풀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공격과 반격의 연속이었다.
백대고수에 포함된 고수들과 세 번에 걸친 대결을 했으나 불과 한 시진 만에 이 정도로 기력이 고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마창의 내력은 엄청나기도 했거니와 적정의 원리가 무시된 전력의 돌진이었다.
마창 역시 지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토록 내리꽂히던 유성들이 어느 순간 점점 줄어들더니 일거에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큰 위험의 시작임을 운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음에도 마창은 마지막 승부의 순간이 오자 그동안의 공격을 멈추고 남아 있는 모든 내력을 적룡창에 끌어올렸다.
그랬기에 운호 역시 흑룡검에 남은 내력을 모두 담아 앞으로 내밀었다.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피가 말라 버릴 것 같은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온몸은 피로 물들었고 옷은 이미 걸레처럼 찢겨져 의복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치명상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운호에 비해 마창의 상태는 훨씬 좋았다.
그럼에도 그가 멀쩡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마창의 몸 역시 운호가 펼쳐 낸 검기에 당해 십여 군데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운여는 두 사람의 신형이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멈추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사를 건 마지막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지기 직전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불리해지면 도와달라는 운호의 말은 처음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싸움이 시작될 때부터 참전했다면 모를까 절대고수들이 생사를 건 격돌을 하고 있는 와중에서는 두 사람의 무력을 감당할 만한 무위를 지니고 있지 않은 한 중간에 끼어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죽음으로 막는다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이기에 두 사람의 신형이 멈추었어도 운여는 움직이지 못했다.
신형이 멈추었다고 싸움마저 멈춘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은 두 명의 절대고수가 뿜어낸 기세로 인해 완벽한 진공상태로 변해 있을 게 뻔했고 지금 상태는 접근하는 순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운여와 운상은 오룡봉성을 보고 난 후 운호의 무력이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마창과의 대결은 어려울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기에 두 주먹을 꽉 쥔 채 공전절후의 결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개안.
무인으로서 이런 대결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고 무력을 진일보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절대고수들 간의 대결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무리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멈추어 섰던 두 사람이 서로의 병기를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긴장으로 인해 입이 말라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이겨야 한다.
이왕 시작한 것 반드시 이겨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운호의 검이 먼저 날았다.
마창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이번 격돌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남아 있는 내력을 모두 끌어올려 회풍의 최후 절기 멸(滅)자결을 뿜어냈다.
흑룡검에서 원형의 검기가 생성되더니 마창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원형의 검기는 처음에는 작았으나 점점 커지더니 마창에게 근접되었을 때는 지름이 반장 가까이로 커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현상.
마창은 대결이 진행되면서 완전히 이지를 상실한 듯 한쪽 남은 눈이 금방이라도 피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혈안으로 변해 있었는데, 원형의 검기가 다가오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공중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런 후 적룡창의 중간을 잡은 후 운호를 겨냥한 채 던지는 시늉을 했다.
아니다. 시늉이 아니라 던진 것이다.
다만 창이 날아온 것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의 창기가 빛살처럼 날아왔다.
눈이 부셔 바라보지 못할 만큼 화려하고 밝은 창기의 물결은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초식 중 하나로 손꼽히는 관일유성이 분명했다.
마창의 움직임에 운호의 흑룡검이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원형 검기 역시 방향을 틀며 무섭게 날아오는 창기들을 향해 마주 날아갔다.
원형 검기가 분산을 시작한 것은 유성처럼 날아온 창기들과 접촉하는 순간부터였다.
콰광… 콰르릉… 쾅쾅.
땅이 뒤집히고 바위가 부서지며 돌덩이가 사방으로 비산해 나갔다.
두 사람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 것도 바로 그때였다.
마창은 쓰러졌지만 비틀거리며 창을 붙잡고 일어섰으나 운호는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창의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반쯤 잘려 나간 왼팔, 그리고 귀와 목이 한꺼번에 잘려 목이 뒤집혀졌고 다리 한쪽은 완벽하게 잘려 나갔다.
살아도 살았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운호가 서서히 꿈틀거리다가 몸을 뒤집은 것은 마창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운호가 몸을 뒤집자 부상당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창은 검에 당했기 때문에 부상의 정도를 금방 알 수 있었으나 운호는 몸을 뒤집고 한참이 지나서야 열두 군데에 달하는 관통상을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피로 도배된 상태였으나 관통당한 곳에서는 피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중상이다. 아니, 목숨이 위험하다.
마창도 목숨이 위험했으나 운호의 상태도 그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운호는 끝내 몸을 뒤집더니 손을 들어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운상이 다가가 급히 부축하자 운호가 겨우 팔을 들어 마창을 가리켰다.
데려다달라는 뜻이다.
그랬기에 운상은 운호를 안아들고 마창에게 다가갔다.
운호의 입이 간신히 열린 것은 마창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을 때였다.
“마… 창… 천은 어디 있소? 내가 당신의 손자를… 찾아주리다. 그러니 천이 있는 곳을 말해주시오. 부탁하오.”
“크크크… 끅끅. 어허헝.”
운호의 말을 들은 마창의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변했다.
반쯤 잘린 목에서 핏물이 계속해서 새어 나왔고 울음소리도 같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눈은 점점 붉은 색이 엷어졌고 결국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완전하게 선명한 빛으로 변했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혈안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눈물이 흘러나올 때였다.
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고 이어질 듯 끊어졌으며 너무 가늘어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놈들은… 천왕산에 있다… 마검… 쉽지는 않겠지만 내 손자를 꼭 구해다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죽어서라도 그 은혜를 잊지 않으마.”
“고맙소… 최선을 다해 당신의 손자를 구하리다… 잘… 가시오.”
마창이 창을 부여잡은 채 완전히 고개를 떨구며 죽음을 맞이하자 그에 맞춰 운호도 숨을 헐떡이다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한번 토해지기 시작한 피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운상과 운여는 운호의 몸을 부여잡고 어쩔 줄을 몰랐다.
마창 못지않은 중상.
이대로 있다가는 운호의 목숨을 장담을 하지 못한다.
그랬기에 운상은 운호의 몸을 급히 등에 업으려 했다.
어떡하든 빠른 시간 내에 치료할 곳을 찾아 운호가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하지만 운상은 운호를 업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어느 순간 서쪽 바위를 등지고 한 명의 괴인이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마창의 뒤를 쫓아왔더니 이런 행운이 다 오는구나. 너희들의 목숨만 취하면 막사검은 이제 내 것이 되겠다.”
“당신은 누구요?”
“일검마.”
괴인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자 운상과 운여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일검마 한홍.
백대고수 중 칠십이 위에 올라 있는 절대고수이며 남아 있는 칠악의 일인이 바로 한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