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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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30화
운호 일행은 행동을 결정한 이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미천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이왕 결정된 이상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요마왕을 잡아야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요마왕 정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운호 일행의 결정은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무척이나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요마왕은 혼자 다니는 자가 아니었다.
백대고수 중 구십 위에 해당하는 절대고수였으며 휘하에 광천오마를 대동하고 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문파는 여인과 아이까지 씨를 말려 버리는 살인귀였다.
광천오마는 요마왕의 제자들로 스승의 잔인한 성격을 빼다 박아 살인을 밥 먹 듯 즐기는 자들이었다.
무공도 뛰어나 모두 절정을 넘어섰고 요마왕의 독문도법인 천잔도법을 팔 성 이상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자들을 향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운호 일행의 패기가 너무 당당하다.
두려움도 없었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삼 일을 전력으로 달려와 와양에 도착한 일행은 즉시 미천으로 향했다.
생각 같아서는 따스한 물에 목욕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었으나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대신 죽림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걸음을 멈추고 운기를 시작했다.
강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최적의 상태로 몸을 회복시켜야 된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요마왕 같은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그만 허점이나 약점을 지니고 있어도 안 된다.
두 명씩 돌아가며 운기를 마친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세 시진이 지난 후였다.
충분한 휴식은 되지 못했지만 그 정도만 가지고도 일행의 기력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소하령의 회복 속도는 운상과 운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빨랐는데, 그만큼 그녀의 무력이 강하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였다.
미천은 사방 백 장에 불과한 죽림이었기 때문에 요마왕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죽림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죽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마왕은 죽옥 앞 공터에 놓여진 의자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는데 운호 일행이 나타나자 일어서지도 않은 채 슬쩍 눈만 들어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담긴 권태로움은 마치 동냥 온 걸인들을 보는 것처럼 시들했다.
“나를 찾아왔느냐?”
“그대가 요마왕이라면 맞을 것이오.”
“그렇다면 나를 찾아온 게 맞구나. 그래, 왜 왔느냐?”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가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막사검, 그리고 당신의 어깨 위에 있는 것. 둘 다.”
“크하하하…….”
운호의 대답에 요마왕이 커다란 웃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크지 않은 키. 하지만 너무 단단해서 작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다.
나이는 오십에 가까운 것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보다 많은 것 같기도 했다.
요마왕이 일어서서 자신의 독문병기인 염왕도를 주섬주섬 챙기는 걸 보면서도 운호는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칼을 들고 일어서는 요마왕의 모습은 마치 농부가 밭을 갈기 위해 나서는 것과 비슷했다.
다섯의 사내가 막사의 뒤편에서 나타나 반원 형태를 이루며 운호 일행을 향해 다가온 것은 요마왕이 염왕도를 완전히 가슴에 품었을 때였다.
병기는 대도(大刀).
일반적인 칼보다 도신이 훨씬 넓고 길이도 컸는데 사내들은 대도를 어깨에 걸친 채 다가와 대도를 땅에 내려놓았다.
오연한 시선. 강력한 기세.
얼굴에 나타난 징그러운 표정을 보니 이자들이 광천오마로 불리는 요마왕의 제자들인 것 같았는데 그 기세가 사뭇 강렬했다.
요마왕이 걸음을 멈추자 광천오마는 그를 보호하는 형태로 진형을 구축했다.
요마왕은 가슴에 염왕도를 품은 채 운호의 대답을 듣고 흘렸던 웃음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나를 찾아올 정도면 간덩이가 크다는 얘긴데 어디 네 정체가 뭔지 들어나 보자.”
“마검.”
“마검이라… 네가 점창마검이란 말이냐?”
운호의 대답에 그동안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요마왕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마검이라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자이기 때문이었다.
중천에 떠오르는 해처럼 찬란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마검은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지옥귀왕과 패천일도까지 패퇴시킨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지그시 오므린 채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마검이든 뭐든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궁금함마저 참지는 못했다.
황창으로 이동하면서 칠십에 달하는 자를 무참히 죽여 버렸기 때문에 안휘에 몰려든 자들은 물론이고 막사검에 관심을 가진 자라면 모두 자신이 호북으로 이동한다고 예측해야 정상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낮에는 묘를 파서 은닉했고 밤에만 이동하며 은밀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이곳 미천으로 왔다.
미천에서 삼 일간 머문 이유는 칠십을 죽이면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죽인 칠십 명의 무인 중에는 고강한 무공을 지닌 마두들이 있었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나선 정파의 명사들도 다수 들어 있었다.
놈들은 절대 혼자 덤비지 않고 떼로 덤벼들었기 때문에 자신과 제자들은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더군다나 황창에서 이곳까지 이십 일에 걸쳐서 이동하느라 심신이 고갈될 대로 고갈되어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휴식을 취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 번도 죽림을 나간 적이 없었다.
상처가 대충 치료되었으니 내일이면 산동으로 빠져나가 호북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거기서 눌러앉아 막사검의 비밀을 풀고자 했다.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막사검의 비밀만 풀 수 있다면 마지막 인생을 개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사마외도로 분류되며 십악에 포함되어 경원시 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호북까지만 간다면 그런 꿈은 현실이 되어 남은 그의 생을 환희 속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삼 일 만에 운호 일행이 찾아왔으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이지. 바람이 가르쳐 주더구나. 살인귀가 죽림에 있으니 가서 잡으라고.”
“어린놈의 입이 참으로 걸다. 도사가 도사 같지 않으니 너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점창의 도사들은 살인귀들에게는 원래 그렇게 대해. 그러니까 그런 것 가지고 시비 걸지 마라.”
“가소로운 놈. 죽여주마!”
“막사검은 어디 있나?”
“죽을 놈은 그런 것을 알 필요 없다.”
품속에 안고 있던 염왕도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허공을 맴돌더니 요마왕의 손에 의해 도신이 나타났다.
여인의 속살처럼 뽀얀 염왕도의 도신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도첨은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기병임이 분명했다.
그저 세상에 나왔을 뿐인데도 염왕도는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며 운호를 올가미처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운호는 천천히 흑룡검을 꺼내 들어 요마왕의 미간을 겨냥했다.
천룡무상심법이 운용되면서 단전에 머물고 있던 내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산재한 신경을 하나씩 올올히 깨워 나갔다.
요마왕.
무림 서열 구십 위.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든 살인귀.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는 그의 살인 행각은 그를 탕마행 명부 상위에 올려놓았다.
세상을 좀먹는 벌레 같은 인간을 나는 오늘 이 순간 저승으로 보낸다.
오룡봉성에 도달하면서 운호의 사일검은 완벽한 위력을 발휘했다.
요마왕의 천잔도법이 무림의 일절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운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섬전(閃電)을 요마왕의 미간을 향해 쏘아냈다.
적정의 원리가 튀어나왔다.
절대고수 간의 대결은 시간이 없다고 해서 일격에 승부를 볼 수 없다.
자칫 양패구상이 될 수 있었고 이긴다 해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의 무력을 하나씩 감당하며 부딪치고 부수는 것, 그것이 바로 적정의 원리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의 치열함이 덜하거나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일수 일수가 천지를 개벽시킬 만큼 위력적이다.
그들의 일격 일격에 죽림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워낙 강력한 싸움이었기에 운상을 비롯한 일행과 광천오마는 아예 한참 뒤쪽으로 물러나 싸움의 결과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운상이나 운여는 운호의 싸움을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충격이 덜했지만 소하령은 아예 넋을 놓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녀 역시 절정의 끝을 달려갈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절대고수들의 대결은 개안을 시킬 만큼 대단해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마검의 위력.
그리고 절대고수들만이 이름을 올린다는 백대고수의 무력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싸움은 점점 지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도 굉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고 병기들이 충돌할 때마다 화탄이 터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드디어 운호의 검에서 검기가 분산되었다.
지금까지 자제하고 있던 분광이 운호의 검에서 시전 되며 아름답도록 시린 검기의 물결들이 요마왕의 전신을 덮기 시작했다.
지옥귀왕과 상대했을 때보다 운호의 검기는 훨씬 투명해져 있었다.
위험함을 느낀 요마왕도 천잔도법의 최후 초식을 꺼내 들며 반격을 시도했다.
크르릉… 쿵… 쿵!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염왕도는 요마왕의 손을 벗어난 채 운호의 전신을 노렸다.
무섭다. 그리고 잔인하다.
천잔도법은 도법의 이름답게 사람의 전신을 잘게 쓸어버릴 정도로 잔인한 도법임이 분명했다.
기병에서 뿜어지는 도기가 하늘을 가득 덮은 채 쏟아져 들어올 때 운호의 검에서 산란되어 파도처럼 밀려 나가던 검기가 바람으로 변했다.
죽음의 바람. 바로 회풍이었다.
끝장을 보겠다는 듯 요마왕이 하늘로 도약하며 도기가 가득 서린 염왕도를 던져 낼 때 흑룡검에서 빠져나온 회전 검기가 천지사방에서 다가오는 도기를 잘게 부수기 시작했다.
자르고 또 자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도기를 뿜어내는 염왕도마저 잘라 버렸다.
콰앙!
염왕도가 잘리면서 마지막 폭음 소리가 들렸다.
그런 후 요마왕의 신형이 스르륵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머리가 잘린 요마왕의 눈은 믿기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부릅떠졌는데 실핏줄이 터졌는지 핏물이 배어나고 있었다.
운호는 요마왕이 쓰러지자 곧장 광천오마를 향해 튀어나갔다.
눈을 없앤다. 그래야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만약에 놈들이 도주라도 하게 된다면 일이 어렵게 꼬일 수도 있기에 운호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광천오마를 향해 검을 날렸다.
운상과 운여, 그리고 소하령이 움직인 것도 운호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그들 역시 광천오마를 제압해야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감행했다.
광천오마의 반응 역시 눈부시게 빨랐으나 맨 앞에 있던 둘이 운호의 일격에 박살이 나며 튕겨 나가자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불과 반각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그들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대나무 사이에 덧없이 쓰러졌다.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악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거침없는 행동.
요마왕을 잡느라 한 시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운호 일행의 행동은 무척이나 빨라졌다.
언제 마창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막사검을 찾기 위해 일행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막사검이 발견된 곳은 요마왕이 머물고 있던 죽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구릉지였다.
요마왕은 제자들을 믿지 못하고 몰래 이곳에 검을 묻은 게 분명했다.
일행은 검을 찾지 못한 채 한참을 헤매다가 뜻밖에도 죽옥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지에서 오색찬란한 서기가 뿜어져 나오는 막사검을 발견했다.
검이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운호는 죽림 속을 헤매며 오랜 시간을 헛되이 보내야 했을지 몰랐다.
막사검.
검갑에 숨겨져 있던 막사검을 뽑자 오색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 광채는 검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검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