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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5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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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58화

청현자가 슬쩍 물러서 주자 운호 일행은 청문자와 청무자를 알현했고 운풍과 운학, 운곡과 운검을 향해 차례대로 인사를 마쳤다.

운호 일행을 바라보는 사숙들과 사형들의 눈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동시에 들어 있었는데, 청현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행적을 치하하는 걸 잊지 않았다.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객잔을 예약했고 음식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운호 일행은 걸음을 먼저 옮겨 등봉으로 본진을 안내했다.

구룡회가 열리는 날은 이틀 후였기 때문에 점창뿐만 아니라 소림을 제외한 구룡은 이곳 등봉이나 숭산 반대쪽에 있는 언사(偃師), 신밀(新密)에서 머물러야 한다.

회합 당일 날 모이기로 한 것은 당초 구룡회를 조직하면서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이었다.

개최하는 문파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문파 간의 알력이나 다툼을 사전에 막고자 하는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진도 때를 놓쳤기 때문에 점창 사람들은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었음에도 청현자를 비롯한 사문의 어른들은 운호 일행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가벼운 이야기만 하며 식사를 했다.

 

중요한 보고는 식사를 마치고 객방으로 들어갔을 때 이루어졌다.

운상이 복도를 틀어막았고 운여가 어느새 지붕으로 올라가 접근하는 자들을 감시했기 때문에 방에 남아 보고를 한 것은 운호였다.

거의 한 시진에 달하는 보고.

그동안 수시로 전서를 보내서 보고를 했었지만 직접 듣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사문의 어른들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청현자의 입이 열린 것은 보고의 마지막에 나온 천왕산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였다.

“네가 봤을 때 천왕산에 있던 전각의 숫자는 얼마나 되더냐?”

“셀 수 없을 정도라서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오나 천왕산의 후면 분지가 모두 그들의 전각으로 덮여 있었으니 대단한 숫자인 것만큼은 사실이옵니다.”

“허어!”

운호의 대답에 청현자가 탄식을 터뜨리며 입을 닫았다.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보고도 셀 수가 없을 정도란 표현을 썼다는 것은 몇 백 채 단위가 아니란 뜻이기 때문이었다.

청문자가 다른 질문을 해온 것도 그러한 맥락과 괘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정상에서 너희들이 공격받았을 때 올라온 숫자는 얼마였느냐?”

“족히 백은 넘어 보였습니다.”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왜 그런 것 같았느냐?”

“그것은 제자도 모르옵니다.”

“경계 병력이 백이라… 단순히 정상을 지키는 경계 병력인지, 아니면 너희들의 행적을 미리 알고 덮친 병력인지 알 수 없으니 참으로 상황이 모호하구나.”

“아마 미리 알았을 것이옵니다. 다만 저희가 너무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계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다 치고, 천검회가 천왕성의 예하 세력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전력이 칠절문과 비교했을 때 어떠했느냐?”

“제자가 직접 부딪친 무인들만 해도 칠절문보다 훨씬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천검회에는 세 명의 절대고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지기수의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칠절문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너는 혈검쟁투에 포함되어 있는 천문과 수라맹, 그리고 안휘전에 가담한 팔황문과 무풍사가 천왕성의 예하 세력이라고 추측했다. 혹시 그 외에 의심 가는 다른 세력이 있었느냐?”

“이것은 추측이옵니다만 당문을 부추긴 풍검문과 청당전이 벌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가담한 대도문도 의심스럽사옵니다.”

“개방이 그들 편에 섰다면 혹시 당문도 그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대한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방은 천왕성에 붙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나 당문은 그럴 이유가 없다는 차이가 있사옵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당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천왕성의 주구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 판단됩니다.”

“음…….”

질문을 했던 청문자가 운호의 대답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막상 싸움이 벌어졌을 때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청문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의 말이 맞다. 그리 의심의 폭을 넓혀가면 구룡은 물론이고 나머지 칠대세가도 마찬가지가 되겠구나. 하면 혹여 너는 적들의 예하 세력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느냐?”

“제자의 생각에는 구룡이 천하에 포고령을 내려 천왕성의 음모를 노출시켰을 때 스스로 싸움을 그치고 물러서는 자들은 아군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느냐?”

“자신들의 의지와 이익을 위해 하는 전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으나 누군가의 음모에 말려들어 하게 된 전쟁은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후퇴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테니 후퇴하는 자들은 적들이 아닐 것입니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포고령이 내려진 후 즉시 후퇴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단 말이냐?”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눈이 있습니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니 결국은 알려지게 된다는 걸 그들도 잘 알 것입니다. 포고령에 이어 천왕성의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무림 통첩이 떨어지면 후퇴했던 세력들은 자연스럽게 구룡을 중심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때 모인 자들을 위주로 포고령 전후의 행적을 추적하면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되옵니다.”

“참으로 훌륭하다.”

청문자가 운호의 대답을 들은 후 청현자와 청무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의견을 통일시켰다.

점창이 구룡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두 가지.

그 하나는 사문의 염원인 구룡 회복이요, 또 다른 하나는 천왕성의 야욕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장문인인 청현자와 청문자, 청무자는 그간의 강호 경험을 통틀어 향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수시로 의견을 나누었다.

운호의 대답은 그들이 생각한 것과 대동소이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훨씬 깊기도 했다.

그랬기에 청문자는 기꺼운 눈으로 운호를 바라보았다.

백대고수 중 여섯을 해치웠고 그중 십오천강에 드는 자들을 둘이나 꺾었으니 천하인들은 운호를 십제의 반열에까지 올려놓고 있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제자인가.

새삼 처음 점창에 찾아왔던 때의 운호가 생각났다.

운호는 너무 못 먹고 자라 또래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체력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독종, 운호.

버리려는 생각도 가졌었고 파문시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만들 생각도 했었다.

가당치 않은 항렬을 가졌으나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운호가 점창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라 판단했었다.

그런 놈이 이렇게 자라 점창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스럽단 말인가.

정말 언제까지라도 업고 돌아다닐 만큼 자랑스럽고 기꺼운 제자였다.

 

객잔에서 하루를 더 묵은 점창 무인들이 숭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진시 초였다.

구룡회는 미시에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등봉에서 숭산까지의 거리는 오십 리에 불과해서 숭산에 도착했을 때는 사시 무렵이었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그때서야 숭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숭산.

숭산은 소림사가 위치하고 있는 소실봉을 비롯해서 저마다의 위용을 자랑하며 솟아오른 칠십이 봉을 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의 거리가 백오십 리에 달했고 높이는 오백 장에 이르렀다.

광대하고 웅장한 산의 기운을 바라보며 청현자를 비롯한 점창 무인들이 깊은 감탄을 터뜨렸다.

점창산에 비해 결코 넓거나 높은 건 아니었지만 산 자체에서 뿜어내는 영험한 신비로움은 저절로 경외심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과연 숭산이로다!”

“정명하고 광대한 소림의 기풍이 여기서 나온 모양이오.”

청현자가 입을 열어 탄성을 터뜨리자 옆에 서 있던 청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문자는 이미 몇 번 소림사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들은 숭산을 처음 봤으니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운풍을 비롯해서 운자 항렬의 제자들은 소림사를 처음 방문했기 때문에 청현자처럼 숭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탄성을 금치 못했다.

바람처럼 산을 오르자 주변의 산세들이 휙휙 지나갔다.

점창을 대표해서 숭산을 오르는 점창 무인들은 모두 유운신법을 펼치고 있었는데, 거대한 대붕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유연하고도 쾌속했다.

“멈추시오!”

소실봉의 산문까지 접근하자 기다렸다는 듯 소림의 인물들이 도열했다가 점창 무인들을 가로막았다.

산문에는 열여덟 명의 승려들이 지객당주인 뇌현 대사의 뒤쪽에서 도열하고 있었는데, 묵직한 기운이 흘러나와 사위를 압도했다.

사십 중반으로 보이는 승려들의 위엄.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도와 기세는 소림이 자랑하는 십팔 나한임이 분명했다.

십팔 나한을 산문에 배치해서 올라오는 손님들을 맞이한다는 건 그만큼 소림이 이번 구룡회의 개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선두에 섰던 청현자가 먼저 멈추자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사람들이 깃털이 내려앉듯 부드럽게 착지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점창 무인들은 청현자의 뒤쪽에 그림처럼 도열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뇌현 대사의 눈이 번쩍하며 빛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수들은 상대의 움직임 하나만 보고도 무력의 수준을 추측할 수 있었으니 뇌현 대사는 간신히 놀람을 숨기고 호흡을 골랐다.

나타난 점창 무인 중 자신보다 하수는 한 명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소승은 지객당주 뇌현이올시다.”

“대사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빈도는 점창을 맡고 있는 청현이라 하오.”

청현자는 자신을 먼저 소개한 후 뒤쪽에 도열하고 있는 사람들을 항렬대로 한 명씩 소개했다.

뇌현 대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 것은 청현자의 입에서 모든 사람의 소개가 끝나고 운호와 운상, 운여의 이름이 흘러나왔을 때였다.

“점창삼신룡!”

말로만 듣던 점창삼신룡을 직접 본 뇌현 대사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채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이립에도 이르지 않을 만큼 젊은 나이에 무림 창천에 올랐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을 텐가.

더군다나 그중 마검은 십제의 반열에까지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뇌현 대사의 눈은 결국 운호에게서 멈추었다.

그저 강호의 뜬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마검이 걸어온 피의 역사가 너무 선명했고 확실했다.

혼자서 백대고수에 포함된 사마의 지존들을 물리쳤고 천검회를 비롯한 강력한 세력의 협공을 돌파하며 천하를 종주했으니 마검의 명성은 중천의 태양처럼 뜨겁다.

뇌현 대사의 안내로 청현자를 비롯한 장로들은 소림 방장인 뇌인 대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대웅전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지객승의 안내에 따라 객당으로 걸어갔다.

객당은 경내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문과 가까웠고 소림의 주요 건물들을 볼 수 없는 곳에 지어져 있었다.

역시 명문은 객당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위기를 당하지 않았던 소림의 객당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정갈하게 지어져 있었고 그 숫자도 백여 실에 달해 십여 실에 불과한 점창의 낡은 객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지객승을 따라 객당의 마당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구룡에서 온 사람들로 객당은 가득했는데, 점창 무인들이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점창에 배정된 객방은 가장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운호는 운상과 운여와 함께 일행의 끝 쪽에서 걸으며 다른 문파 무인들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구룡회에 참여하기 위해 왔으니 어찌 보통 무인들이겠는가.

기세를 일부러 뿜어내지 않았음에도 시선 하나하나가 송곳으로 찌를 듯 날카로웠고 각기 다른 특성을 지녀 구분이 명확했다.

점창이 구룡 회복을 목적으로 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더군다나 워낙 오랫동안 교류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그랬기에 구룡에서 제외된 문파를 바라보는 구룡 무인들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중 운호 일행의 감각을 기분 나쁘게 자극한 것은 백의 전도복을 입은 자들의 시선이었다.

붉은 매화를 옷깃에 매단 무인들.

바로 화산의 인물들이었다.

맨 앞에서 일행을 이끌던 운풍과 운학은 적의에 찬 화산 무인들의 시선을 받고도 꿈쩍하지 않았으나 운곡을 비롯한 풍운대는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화산에서 온 무인들도 장로급 이상은 대웅전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운풍과 비슷했는데 운호 또래도 몇 보였다.

똑같은 시선, 똑같은 적의.

화산의 무인들은 점창 무인들이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적의를 나타냈는데, 그중 하나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조소까지 흘려냈다.

운곡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 것은 놈의 중얼거림이 끝났을 때였다.

어떤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느낌과 표정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조소를 흘리고 있는 무인은 기껏해야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자였다.

“개 같은 놈, 혀를 뽑아놓겠다.”

“사형, 참으세요. 구룡 복원을 위해 온 자립니다.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운호, 너는 저자들의 행동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

“제가 가서 좋게 타이르겠습니다. 풍운대의 수장이 함부로 움직인 걸 존장들께서 아시면 노여워하실 겁니다. 그러니 사형께서는 그만하고 가시지요. 대사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으…….”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분노를 풀어내지 못한 데서 울려 나오는 고통이 담긴 신음이었다.

그러면서도 운곡은 운호의 제지를 받아들이고 멀리서 기다리는 운풍을 향해 걸어갔다.

운호가 방향을 틀어 화산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것은 운상과 운여까지 모두 운곡을 따라 배정된 객방 쪽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뚜벅뚜벅.

운호가 다가가자 적의를 보내오던 화산 무인들의 시선이 의아함으로 변해갔다.

시비를 걸기 위함이라면 전부 왔어야 정상인데 모두 객방으로 가버리고 하나만 다가왔으니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직진.

처음부터 운호는 조소를 흘리고 있던 젊은 무인이 목표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어도 불과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사내에게 도착한 운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운곡에게는 좋게 타이르겠다며 말했으나 막상 화산 무인 앞에 선 운호의 얼굴은 북풍한설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왜 웃었느냐!”

“뭐… 뭐라!”

“다시 한 번 묻겠다. 왜 웃었느냐!”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얼굴 가지고 웃었다. 그게 시비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넌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구나. 내가 누군지 모르고 한 짓 같으니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 그러니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화산 무인이 기세를 풀어놓자 사방이 경기에 의해 압축되며 돌개바람이 날아올랐다.

검을 잡지도 않았는데 이미 검을 뽑은 것처럼 시퍼런 기운이 운호를 압박해 왔다.

운호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온 것은 화산 무인의 기세로 인해 자신의 옷깃이 흔들릴 때였다.

“크크크… 물론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지. 지금… 당장 눈깔을 바닥으로 깔지 않으면 네 목이 잘린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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