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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57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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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57화

청안사를 떠나 삼 일이 지나서야 소림이 버티고 있는 하남으로 들어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상흔에서 예외 된 몇 안 되는 지역답게 하남은 평온함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과 평안함은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오는 내내 들려온 소문은 전쟁의 양상이 급변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동안의 공방전은 완벽한 전면전으로 바뀌어 수많은 무인들의 죽음을 양산했으며 천하는 피가 강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한곳이 아니라 천하북동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랬기에 소하령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들려온 소문에 따르면 안휘전은 팔황문, 무풍사의 연합에 신주십강 중의 하나인 풍검문이 참여하면서 치열한 접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벌써 여덟 개의 문파가 가담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더 많은 문파가 가세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삼십팔세 중 여덟 문파가 안휘전에 가담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안휘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지역의 패주가 전쟁에 참여했기에 패주와 연관을 맺고 있는 수많은 문파들도 자연스럽게 가담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무림 강자들의 숫자만 따져도 수천에 달할 텐데 중소 문파까지 가담하게 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전쟁의 양상이 극으로 치달아 간다는 게 알려진 것은 서협(西峽)을 넘어 남소(南召)에 도착했을 때였다.

오랜 시간 밀리던 접전을 펼치며 국지전을 계속해 오다가 공방전으로 변한 게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싸움은 급격하게 전면전으로 치닫더니 마치 끝장을 보기라도 하듯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으며 진행이 되었다.

이런 양상으로 싸움이 계속 진행된다면 천하는 얼마 못 가서 무인들의 주검으로 시뻘겋게 도배 될 것이 분명했다.

“오라버니, 저는 여기서 헤어져야 될 것 같아요.”

계속 망설이면서도 따라왔던 소하령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운호 일행과 더 동행하면 할수록 안휘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운상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 많던 소하령도 침묵을 지키며 따라왔었다.

올 게 왔으니 운호와 운여는 소하령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잠시 자리를 피해줬다.

그녀와의 이별은 운상이 모두 끝낸 후 나중에 해도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지자 운상이 안타까움이 가득 들어 있는 얼굴로 소하령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 후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잘 갈 수 있겠어?”

“나, 어린애 아니에요.”

“내 눈에는 유리그릇처럼 보여. 잘못하면 금방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오라버니가 나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래요…….”

대답하면서 그녀는 얼굴을 감싼 운상의 손에 뺨을 비볐다.

운상의 손은 열기로 인해 따뜻하고 부드러워 그녀의 차가워진 얼굴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하령아, 집에 돌아가더라도 싸우는 곳에는 가지 마. 알았지?”

“가문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래도 안 돼. 내가 지켜줄 수 없잖아.”

“걱정하지 마요. 안 다치게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닐게요.”

“…그래.”

“뭐 해요. 사랑하는 여자가 떠난다는 데 남자가 진하게 작별 인사해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의외의 질문에 반문을 하던 운상이 말을 멈췄다.

운호와 운여가 자리를 피해줬다고는 하나 이쪽이 훤히 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그런 데도 소하령은 과감하게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쏘옥 내민 채 기다렸다.

여인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소하령은 주먹을 꼭 쥔 채 파르르 떨리는 눈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해내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지체 없이 다가갔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하지 못하는 이별이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만큼 여유도 없다.

그랬기에 운상은 그녀의 입술을 향해 과감하게 고개를 숙였다.

깊고 깊은 입맞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입맞춤이었으나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그러한 감촉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첫 입맞춤의 설렘보다 이별에 대한 슬픔이 훨씬 컸던 모양이었다.

 

소하령은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서로 간의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나자 불과 일각도 되지 않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한동안 멍하니 있던 운상은 미친놈처럼 소하령이 사라진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짧았던 이별이 너무 아쉬워 그냥 보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운상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이 훌쩍 지난 후였다.

돌아온 후부터 운상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행들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길을 가며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기 때문이다.

운여가 먼저 나서서 운상을 향해 시비를 걸었고 둘이 투닥거리다가 한 놈이 삐져서 앞으로 도망갔다.

앞으로 도망간 놈은 운여였고 뒤에 남은 놈은 운상이었다.

곧이어 운호가 운상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아프냐?”

“아프다.”

“원래 이별은 그런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

운호가 아는 척을 했어도 운상은 그저 고개만 끄덕인 후 앞을 쳐다봤다.

다른 때 같았으면 수긍하지 않고 반박을 했을 텐데 이별이 아프긴 아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랑 놀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소림까지는 삼 일 거리로 들어왔고 점창의 염원이 눈앞에 있으니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장문인을 포함한 본진이 어제 저녁 무강(舞鋼)을 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무강이라면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반나절 늦은 거리에 있다는 뜻이다.

운호 일행은 소림이 있는 숭산과 지척에 있는 등봉(登封)에서 본진을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둘 필요성이 있었다.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한다.

멀고 먼 길을 오신 장문인과 사숙들을 정중하게 마중해야 하는 것은 제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커다란 예의였다.

 

점창에서 중원을 종단하며 하남까지 올라온 청현자 일행은 등봉을 하루 거리 남긴 여양(汝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거의 이십 일 동안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의 외유에서 오는 낯설음은 둘째치고 워낙 급하게 길을 서두르다 보니 모든 것에 여유를 두지 못했다.

오는 길에 천하의 정세가 급격하게 바뀌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

귀주는 거의 폐허 상태였고 호남도 나을 게 없었다.

상황이 바뀐 배경에는 운호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전서를 통해 운호가 천왕성의 근거지를 알아낸 이후부터 천하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근거지가 발각된 암계의 주인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하가 불쌍하다.

운호로 인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점창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 않았으나 구룡의 일각과 칠대세가의 일부를 제외한 천하의 나머지 세력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퍼렇게 갈린 검을 휘두르며 상대의 목숨을 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막아야 했다.

어떡하든 소림을 위시한 구룡이 나서서 적들의 야욕을 분쇄해야만 천하를 구할 수 있다.

정세가 급변하는 것을 보면서 적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정체가 노출되었다면 천왕성이 구룡이 소림으로 모이는 것을 간과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천왕성을 알아낸 운호 일행이 사천을 벗어나기 전에 이미 암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전력으로 움직인 이유는 구룡회의 소집일에 늦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적들의 추적을 뿌리치려는 것도 큰 이유였다.

그러나 끝내 천왕성은 그들이 하남으로 들어올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격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뭔지 궁금하군요. 사형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청무자가 너털웃음과 함께 가벼운 음성으로 대답하자 청현자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하남까지 들어온 이상 적들의 기습은 없다고 단언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남은 구룡의 심장이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면 천왕성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후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리면 얼굴의 표정도 편안해지는 법이다.

“장문인께서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구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소.”

“그게 무엇입니까?”

“집중이오. 그자들의 전략은 각개격파와 이이제이(以夷制夷)였소. 그런 그들이 본진을 움직여 구룡을 친다면 본연의 전략인 집중이 흩어지게 되오. 아마 그들은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을 것이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사형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들은 삼십팔세의 세력을 약화시킬 대로 약화시킨 후 나타날 것입니다. 괜히 먼저 나서게 되면 천하가 하나로 뭉치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절대 먼저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청무자에 이어 청문자까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자 청현자의 밝아졌던 얼굴이 순식간에 그늘졌다.

오히려 공격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몰라서 한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예상했던 것들이었으나 사형들의 의견을 물은 것은 의견의 교환을 통해서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알고자 함이었다.

전력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일거에 천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현재 천하를 공략하는 예하 세력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은데 본진의 힘은 또 얼마나 대단할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선조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과거 백이십 년 전 천왕성이 침공했을 때 중원의 외곽 세력들은 그들의 막강한 힘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고 들었다.

그 당시 천왕성의 공격 병력이 삼천을 넘었다고 하니 천하에서 가장 강력했던 점창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중원은 피로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때를 앞당기기 위함입니다. 이대로라면 보름을 넘기지 못할 테니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구룡회가 개최되어 천하가 하나로 뭉친다면 그자들의 야욕을 충분히 꺾을 수 있을 테니 장문인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세요.”

 

운호 일행이 등봉에 도착한 것은 오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들은 늦지 않기 위해 밤을 낮 삼아 달려와 온몸이 먼지로 가득 덮여 있었다.

본진은 등봉에 도착하려면 두 시진은 더 걸릴 거란 전갈을 받았기 때문에 객잔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었다.

사문의 어른들을 뵙는 마당에 거지꼴을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점창을 떠난 지 벌써 일 년하고도 사 개월이 훌쩍 지났다.

풍운대의 운곡과 운검 사형은 무호계에서 봤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등봉은 소림의 속가들이 자리를 튼 곳으로, 하남의 성도인 정주와 불과 삼백 리 길이었고 물산이 풍부해서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운 곳이었다.

민초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로 충분하다.

하나는 외압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먹을 것이 풍족해서 가족들을 건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도시로 들어오는 초입까지 본진을 마중 나간 운호 일행은 어느새 점창의 상징인 흑색 전도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위풍당당했다.

장문인을 비롯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청문자가 일행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이각이 흘렀을 때였다.

“장문인을 뵈옵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이 더러워짐에도 운호를 비롯해서 운상과 운여는 땅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오랜만에 뵙는 존장에게 그들은 투체를 통해 최상의 예를 표했다.

청현자가 말에서 뛰어내려 제자들을 향해 다가온 것은 그들이 입고 있는 흑색 전도복이 먼지에 날려 뿌옇게 더러워질 때였다.

“일어서라.”

손수 한 명씩 몸을 일으켜 세운 청현자가 기꺼운 얼굴로 눈앞에 선 제자들을 하나씩 살폈다.

무림의 전설이 되어 천하를 질주한 점창의 신성들.

천하인들은 눈앞의 제자들을 점창삼신룡이라 부르며 절대고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사문을 빛낸 제자들의 얼굴을 보자 새삼 감격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노안이 흔들렸다.

진정 자랑스럽고 대견한 제자들이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있었느냐?”

“예, 장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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