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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70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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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70화

무갑을 착용한 무인들의 전신에서 슬금슬금 뿜어져 나온 기세가 대청을 무거운 기운으로 가득 덮었다.

십여 장이 훌쩍 넘는 대청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모두 합해 스물둘.

무갑에 전포를 차려입은 모습은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답게 위용이 넘쳤고 대단한 압박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탁자 중앙에 앉아 있던 요홍의 표정도 양쪽으로 도열해서 앉아 있는 전투부대의 수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압도적이었던 남부 전선의 전투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보름 전부터였다.

천문과 천검회가 맡고 있던 최남단 남악 전선은 천왕성 직속의 일운강이 지원에 나서면서 금방이라도 함락시킬 정도로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풍운대가 성산전투에 참전함으로써 끝내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후퇴를 했다.

문제는 남악 전선뿐만 아니라 소하강변에 뿌려진 방어진지 등 세 개의 전선에서 천왕성이 패퇴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뒤로 밀려난 네 개의 전선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을 집중해서 일직선 강행 돌파를 시도하려던 곳이었다.

전쟁에서 시간적 여유를 얻는다라는 것은 찢어졌던 방어선을 다시 봉합시킬 수 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었고 부족한 부분의 보완이 가능하다는 걸 의미했다.

전장에서의 한 시진은 삶과 죽음을 수천 번도 넘게 결정지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으니 천왕성의 후퇴는 무림맹의 숨통을 트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간을 번 남부 무림맹은 전열을 가다듬고 병력을 보충하면서 방어선을 다시 구축했기 때문에 전투는 소강상태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요홍의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부의 총지휘권을 넘겨주며 성주 대행을 맡고 있는 큰형, 요문은 그에게 최단 시간 내에 강서의 남창을 점령해서 중부 전선을 압박해 달라는 주문을 했었다.

비록 나중에 모산파가 중부 전선에서 떨어져 나와 남부 전선에 가담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밀어붙일 수 있는 전력을 구축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들어 호남에 설치해 놓았던 무림맹의 일차 방어선 신녕(新寧)을 십 일 만에 깨버렸고 이차 방어선 소양(邵陽)도 불과 칠 일 만에 깨버려 호남 정복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그런 우세가 일곱에 불과한 풍운대로 인해 정체되고 있었으니 요홍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놈들의 행적은?”

“악록산(岳麓山)을 넘은 것 같습니다.”

“왜지?”

“우리의 전진을 방해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꼭 그 짝이군.”

풍운대가 악록산을 넘은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다.

악록산은 현재 천왕성의 남부 병력이 치열한 접전 끝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정상을 정복하기 일보 직전인 곳이었다.

남악의 성산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남부 전선의 요충지가 바로 악록산이었다.

악록산을 넘으면 호남의 성도 장사(長沙)를 함락하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무림맹에서도 전력을 다해 방어하는 중이었지만 교두보를 확보한 이상 돌파는 어렵지 않게 여겨졌다.

문제는 천왕성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 중에 점창의 풍운대가 끼어 있다는 것이었다.

점창삼신룡이 포함되어 있는 풍운대의 전력은 그들이 참전한 전선의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전쟁의 승패마저 결정짓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악록산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때려잡을 전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병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들을 상대할 고수들이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절대고수와 다섯 명의 초절정고수를 단숨에 처단한다는 건 천왕이십오성 중 몇이 협력을 하거나 성주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있는 삼공 또는 오패가 나서야 된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들은 만 리 너머 청해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이대로 풍운대를 해결하지 못하면 싸움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떡을 먹다가 목에 걸린 느낌.

물론 그들을 상대할 무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남부군 내에서도 천왕이십오성에 포함된 무인이 아홉이나 있었고 천왕칠십이기에 이름을 올린 초절정의 무인들도 스물이나 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투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머지 전선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빼게 되면 자칫 반격을 당해서 지금까지 뺏은 거점들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남부 무림맹이 지금은 밀리고 있으나 작은 틈만 생겨도 반격의 빌미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다.

요홍의 한숨에 제장들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천검회의 총사 천기수사 화문탁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는 대청의 앞까지 걸어 들어와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한 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요홍을 바라보았다.

요홍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이곳이 그가 올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천왕성 삼뇌 중 하나이며 천뇌 설운호의 막내 사제였지만 요홍은 그가 절실히 필요했음에도 결국 남부군 본진으로 불러올리지 못했다.

바로 화검제 때문이었다.

화문탁은 화검제가 분신처럼 아끼는 사람으로 언제나 그의 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그가 총사령의 임무를 띠고 이곳에 와 있었지만 천검회의 화검제와 무풍사의 창제에게만큼은 직접적인 지시를 피했다.

천왕성 내에서의 위치로 봤을 때 그들의 입지는 그보다 훨씬 강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랬으니 화문탁은 그에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머리였다.

“그대가 어쩐 일인가?”

“화검제께서 보내셨습니다.”

“무슨 일로?”

“사령께서 고민하고 있을 거라면서 저한테 풀어주라 하더이다.”

“허어…….”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며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해결 방법이 없다면 자신이 직접 친위대를 이끌고 안록산을 넘고자 했다.

총사령이 할 일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만큼 풍운대의 존재는 가시처럼 목구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화문탁의 입이 느리게 열린 것은 그가 뒤로 물렸던 상체를 다시 앞으로 숙일 때였다.

“화검제께서는 총사령께 삼공이 길수(吉首)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뭐라! 삼공이 길수에 있어!”

“그렇사옵니다.”

“그들이 어째서 그곳에 와 있단 말인가?”

“성주님의 명으로 모종의 임무를 띠고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푸하하… 그렇단 말이지.”

화문탁의 말을 들은 요홍의 입에서 통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삼공은 천왕성 중에서도 내성에 머물며 거의 이십 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천왕성주의 최측근이었다.

천왕이십오성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그들의 무력을 본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에 칩거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들이 검을 뽑는 걸 봤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홍은 그들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무인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안고 왔다는 모종의 임무가 궁금했으나 그런 의문은 금방 뒤로 넘겨 버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삼공이 길수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삼공이 길수에 와 있다면 그의 고민은 말끔하게 해결될 수 있었기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갑자기 속이 시원해졌다.

안록산을 공격하는 주공(主攻)부대 황무전을 이끄는 양전과 신기전의 마황은 천왕오검 중의 일인이었고 천왕이십오성에 포함된 강자 중의 강자였다.

그들이 삼공의 뒤를 받쳐 주고 초절정고수들인 천왕칠십이기 중 다섯을 지원해 준다면 놈들을 잡는 건 이제 일도 아니게 된다.

 

악록산(岳麓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는다는 동정호를 횡으로 가로막듯 서서 오연하게 하늘로 치솟은 호남의 험산이다.

높이는 삼백 장에 달했고 주봉을 포함해서 다섯 개의 봉우리를 가졌으며 총길이는 칠 리에 달했다.

장사로 들어가는 최단 거리에 위치했기에 이곳은 파한문과 패천방이 산하 일곱 개의 문파들과 함께 방어선을 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는 모산파와 쾌활림이 우회하는 적을 막아내기 위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악록산을 중심으로 인근에 모인 병력은 거의 삼천에 달했다.

그러나 그토록 촘촘하게 짜놓았던 방어선도 천왕성 주력 병력의 끊임없는 공격에 조금씩 밀려 이미 다섯 개의 봉우리 중 세 개를 뺏긴 상태였다.

풍운대가 진입한 곳은 주봉인 용화봉을 연결하는 전곡이었는데, 세 개의 봉우리를 뺏겨 방어선이 허물어지자 파한문의 병력이 후퇴해서 다시 방어선을 친 곳이었다.

폭 삼십 장의 진입로에 양쪽으로 백여 장의 절벽이 가로막은 지형.

전곡은 신이 빚어놓은 천혜의 방어진지이자 철옹의 요새이기도 했다.

전곡을 막고 버티면 천왕성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후퇴하는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패천방이 후위를 기습할 경우 그들은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전곡이 무너지는 순간 남부 무림맹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리는 것이다.

전곡이 뚫리면 남는 것은 오직 모산파가 지키는 익양(益陽) 방어선이 전부였다.

그 말은 전곡에서 최대한 버텨주지 못한다면 무림 남부가 천왕성의 수중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한문에 몸을 의탁한 풍운대는 그들이 내준 전막에서 휴식을 취하며 공격에 대비했다.

네 개의 전장에 참여해서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안록산 방어가 다른 어디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창에서 내려온 후 한 달도 안 된 시간 동안 천오백 리를 가로지르며 네 번의 전투를 치렀으니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운몽과 운천, 운극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이곳저곳에 피 묻은 붕대가 매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온 지 벌써 삼 일.

아직까지 천왕성의 공격은 시작되지 않았으나 전쟁의 기운은 어둠 속의 안개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온다. 그동안 우리한테 당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도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사형, 전곡에서 얼마나 버티실 요량이십니까?”

전막에 둘러앉은 풍운대를 보며 운곡이 입을 열자 지낭 소리를 듣는 운몽이 불쑥 나섰다.

그의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무척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풍운대 모두가 궁금해하는 내용이었다.

“최대한 버텨야겠지.”

“후퇴로를 확인해야 됩니다. 전곡은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안다. 나도 끝장을 볼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나 사문의 명은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사문의 명은 위험한 곳을 도와주라는 것이었지,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지켜주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림맹에 가입해서 싸우지 말라는 명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니겠습니까?”

“운몽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 전투는 너무 위험해서 후퇴의 시기를 결정해 놔야 합니다.”

이번에는 운검까지 나섰다.

싸우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그가 운몽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서자 운곡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사제들을 보다가 운호에게 멈춰진 것은 운몽의 입이 다시 열리려 할 때였다.

“너희들은 점창을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으냐?”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직 본진이 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풍운대가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너의 말이 옳다. 하나 나는 쉽게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최선을 다해 싸운다, 누가 봐도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인정할 때까지. 나는 점창의 명예를 걸고 그때까지는 싸울 생각이다.”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인이 되어 전쟁에 참여한 이상 어찌 위험하다고 싸우지 않겠느냐. 풍운대는 점창의 상징이다. 우리 때문에 점창의 명예에 손상이 간다면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단 말이냐.”

“…소제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다. 너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운극!”

“예, 사형.”

“너는 지금 운천과 같이 나가 후퇴로를 살피고 와라. 적의 공격이 언제 올지 모르니 최대한 서두르도록.”

“알겠습니다.”

“나 역시 이 싸움에 풍운대의 생사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겁한 모습 역시 보이지 않을 생각이니 너희들은 내 뜻을 따라 움직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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