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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67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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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67화

풍운대가 모두 상청궁으로 들어서자 주요 각주를 맡고 있는 운자배 사형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운풍을 비롯해서 차세대 점창을 이끌어 나갈 동량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운산과 운엽 등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의 눈으로 봤을 때 풍운대는 기꺼운 사제들이 분명했다.

특히 점창삼신룡으로 불리며 천하를 들었다 놓은 운호와 운상, 운여는 사제들임에도 경외의 대상으로 분류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뿐이 아니라 출정식을 위해 상청궁 뜰을 가득 메운 삼백의 점창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풍운대가 나타나자 일제히 눈을 돌려 존경의 시선을 보내왔는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작은 탄성은 하나가 되어 함성으로 변할 지경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던지 선방이 열리며 청현자를 비롯한 장로들이 나타났다.

현 점창의 최고 배분인 청자배 장로들은 여섯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나타나자 상청궁을 위엄으로 가득 채웠다.

“장문인을 뵈옵니다.”

청현자를 본 점창의 무인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여 극도의 존경을 표했다.

그의 잘려진 왼팔은 도복으로 가려졌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전함과 쓸쓸함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청현자의 없어진 왼팔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사문을 위해 자신의 팔을 단숨에 잘라 버린 의지.

현명함과 진중함을 동시에 갖추고 대소사를 관장하며 점창의 성세를 회복하도록 만든 장문인이 팔을 잃은 채 산으로 돌아왔을 때 전 문인들은 애통함과 분노로 온밤을 하얗게 새웠었다.

“제자들은 고개를 들라.”

앞으로 나선 청현자가 남아 있는 오른손으로 부채질하듯 시늉을 하자 정중하게 굽혀졌던 무인들의 허리가 동시에 펴졌다.

청현자의 말이 이어진 것은 제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을 때였다.

“오늘은 풍운대가 점창의 명예를 걸고 무림으로 나가는 날이다. 제자들은 지금부터 출정식을 시작할 테니 경건한 마음으로 풍운대의 건승을 염원하라.”

탕마행 때와 거의 똑같은 출정식은 반시진 동안 지속되었다.

원시천존(元始天尊), 현천상제(玄天上帝: 北極星) 등 도신들께 대한 제례를 지낸 후 신부(神符) 등의 경전이 낭송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문인인 청현자와 장로들의 찬송(讚頌)이 이어졌다.

식이 모두 끝나자 청현자는 풍운대를 앞에 세운 채 명경(明鏡)과 호부(護符)를 채워주었다.

탕마행 때 받았던 것들도 그대로 있었으나 청현자는 깨끗하게 다시 만들어진 명경과 호부를 일일이 제자들의 허리춤에 채워주었다.

명경과 호부는 요괴를 피할 수 있는 귀물로 알려져 있으니 청현자의 그런 행동은 세상에 나가는 제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경과 호부를 모두 채운 청현자는 풍운대 모두를 한꺼번에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비장했다.

“너희들은 점창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 천왕성의 야욕을 분쇄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여 점창의 명예를 드높여라.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하산.

출정식이 끝나고 모든 문도들의 환송을 받으며 점창산을 내려온 풍운대는 곧장 신법을 펼쳐 곤명(昆明)으로 이동했다.

사문에서 받은 명은 오직 하나.

한곳에서 머물지 말고 전 전선을 돌며 천왕성에 의해 위기에 처한 무림맹을 구해주라는 것이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쉬워 보였지만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임무였다.

하나의 전선에 가담해서 전투를 벌이게 되면 오히려 훨씬 수월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풍운대의 무력이라면 일개 문파를 상회하는 위력을 지녔기 때문에 전투에서 질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타격전을 벌이게 되면 적들은 풍운대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수뇌부 회의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림맹에게 점창이 전쟁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싶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장문인의 생각은 풍운대가 전 전선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점창이 참전한 것을 공공연하게 나타낸 후 결정적인 순간에 점창 본력이 출정하는 것인데 자칫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천왕성이 분노하면 점창으로 칼끝을 돌려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점창은 천왕성의 영역에 고립되어 있으니 그럴 가능성도 꽤 크다고 봐야 했다.

천하가 혼돈에 빠져 피를 흘렸으나 운남만큼은 조용함을 넘어 정적에 빠져 있었다.

칠 년 전 칠절문이 무정현을 점령했을 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은 운남은 천하통일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이 평온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민초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평온한 삶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힘없고 가난한 그들의 정신을 두려움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곤명은 운남의 성도로 인구가 오만을 헤아리는 거대 도시였다.

풍운대가 곤명으로 온 것은 활발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신응의 본거지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운곡이 이끄는 풍운대가 강현장에 도착한 것은 점창에서 내려와 이틀 후인 미시 무렵이었다.

강현장은 곤명 외곽에 있는 장원이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풍운대를 전각으로 안내해 준 집사가 물러난 후 반각 정도 지나자 사자 수염의 한 중년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활비응 정탁.

바로 신응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점창에서 칠 년간 수련하다 십 년 전 곤명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속가 무인이었다.

운학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전대의 십삼검과도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랬기에 운곡을 포함한 풍운대는 방으로 들어선 그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속가 제자지만 따지고 보면 사형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탁 역시 풍운대가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천하를 들어다 놨다 한다는 점창삼신룡까지 포함된 풍운대는 사제들이라 해도 허투루 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일어섰던 풍운대를 자리에 앉힌 그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천천히 현재의 전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하통일전은 크게 세 개의 전장을 형성하면서 전력이 집중되는 중이었다.

무림맹 측에서는 천왕성의 예하 세력으로 밝혀진 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삼십팔세의 문파들을 묶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전황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워낙 많은 문파가 천왕성의 음모에 걸려 반수 이상의 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병력이 남은 건 구룡과 칠대세가의 일부뿐이었다.

특히 호남에 형성된 남부 전선에서는 무림맹의 세력이 연신 패퇴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혈검쟁투에 참여했던 문파 간의 알력이 그 패배의 원인이었다.

비록 음모에 의해 상잔하는 짓을 하고 말았으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으니 서로 간의 분노를 멈추지 못했다.

은하문이 주축이 된 호천십문이 중심에 서서 중재를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그들의 내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쩌겠는가.

천하를 집어삼키기 위해 나선 천왕성보다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친구를 죽인 자들이 더 미우니 칼이 자신도 모르게 그들 쪽으로 향하는 것을…

적전분열.

안타까운 현실에 남부 전선을 형성한 무인들은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며 공격해 오는 적들의 칼날을 피하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하기야 그런 현상은 남부 전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청당전이 벌어졌던 북부 전선 역시 구룡과 칠대세가의 알력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며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문의 위기는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들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북부 전선에서 혹처럼 튀어나와 버티는 그들을 천왕성의 예하 세력인 대도문과 풍검문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보름 전의 일이었다.

당문의 든든한 우군인 황보세가가 결사적으로 돕고 있었으나 북부 무림의 중심인 구룡은 천왕성 본진의 치열한 공격을 이유로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일견 그럴듯한 변명이었으나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청당전의 앙금이 한몫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최전선에서는 수많은 무인들이 접전을 펼쳤지만 북부 무림맹이 꽤 많은 수의 예비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는 데도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은 건 구룡을 공격한 당문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당문은 수많은 피해를 보면서 연신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후퇴, 그리고 또 후퇴.

대도문과 풍검문의 전력은 당문과 황보세가의 연합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서워 당문 연합은 결국 최후의 보루인 간양으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일곱 번의 전투에서 당문삼무의 일인인 당추가 목숨을 잃었고 전투부대의 병력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운 건 십팔혈룡, 뇌광십삼포, 천뢰삼십이수 등 당문을 대표하는 무인들이 처참하게 찢겨졌다는 것이었다.

주력 무인들 중 살아남은 것은 불과 오 할도 채 되지 않는 상태였다.

거의 반시진가량 지도를 보며 천하 정세를 설명하던 정탁의 시선이 운곡에게 향한 건 당문의 상태를 들은 운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을 때였다.

“내가 봤을 때 이렇게 계속 전쟁이 진행되면 남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밀리게 될 것일세. 호천십문이 나서고 있으나 그들 뒤에는 팔황문과 무풍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앞뒤로 협공 받을 가능성이 커. 그리되면 결국 중부 전선으로 합쳐질 수밖에 없다네.”

“팽팽하게 맞선 중부 전선도 위험에 빠지게 되겠군요.”

“남부가 밀리면 결국 그리될 수밖에 없지.”

“음…….”

정탁의 설명에 운곡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부 전선의 문파들이 패퇴를 거듭하다 결국 중부 전선으로 후퇴한다면 이 전쟁은 이길 가능성이 적어진다.

축을 담당하던 한쪽이 무너진다는 것은 둑이 무너지듯 전쟁의 균형을 무너뜨려 패배라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풍운대가 갈 곳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였으니 운곡은 고개를 돌려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운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운몽과 운천 역시 뒤를 따랐지만 운상과 운여는 아무런 말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운곡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먼 곳을 바라보는 운호의 시선을 확인한 후였다.

사제들의 표정이 이상했으나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고 움직일 필요성이 있었다.

“우리는 호남으로 간다. 남부가 무너지면 이 전쟁은 질 수밖에 없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 천왕성의 뒤를 친다.”

“사형!”

“뭐냐, 운여. 할 말 있으면 하라.”

운곡이 시선을 던지자 입을 열었던 운여가 주춤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할 말은 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주춤대던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운호가 먼 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바라볼 때였다.

“남부도 위험하지만 당문도 급합니다. 당문 연합이 무너지면 북부도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뜬금없는 소리다.

뭔가 긴히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기회를 주었더니 운여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었다.

당문이 위험하다 해서 남부처럼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당문의 뒤에는 구룡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앙금이 남았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원할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심정적으로 운여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상대가 당문이라는 것이었다.

칠절문과의 전쟁에서 당문은 온갖 협잡을 일삼으며 점창을 괴롭힌 자들이었다.

물론 대세를 보면 점창의 감정을 생각하더라도 풍운대는 당문보다 남부 전선을 지원하는 것이 맞았다.

그랬기에 운곡의 음성은 뚝뚝 끊겨 나왔다.

“당문은 때가 되면 구룡이 지원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사형, 거기엔… 운호가 사랑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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