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6화
16화. 덕을 쌓다
천산. 두 개의 산등성이가 쭉 내려가며 생긴 깊은 계곡.
이곳에는 거대한 구멍 하나가 자리했다.
웬만한 마을보다도 더 큰 이 구렁텅이는 깊이도 매우 깊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칠흑 같은 심연만이 내다보이는데, 그것이 마치 검은 구름이 모여 있는 것 같다 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암운곡이라 불렀다.
지금 그 입구에는 두 사람의 지시 아래, 한 무리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
"예에."
"그것은 이쪽으로."
"넵!"
지금 이들은 암운곡 2년차들.
새로이 들어오는 1년차들을 위해 밥상(?)을 준비 중인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은 다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기대감이 역력했다. 자신들의 후배로 들어오는 이들이 어떤 애들인지 궁금한 탓이다.
"들었어? 이번에 마두의 자녀도 있다지?"
"어. 두 명이나 있다고 들었어."
"허……. 이거 우리 기수가 밀리는 거 아냐? 우리는 마인 출신들 밖에 없잖아."
"에이. 그래도 꿀리진 않을 걸?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하루하루 지낸다는 게 보통이 아니잖아? 그 차이는 메울 수 없을 거야."
"하긴……. 그렇긴 하지."
암운곡의 훈련은 빡세다.
밥은 꼬박꼬박 배부르게 먹을 정도로 나오나, 훈련을 견디지 못해 종종 자살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그런 곳에서 1년간 버틴 이들이다. 그들은 이번에 오는 쥐 굴 후배들보다 자신들이 절대 꿀릴 리 없다 확신했다.
"우리가 3년차들에게 못 까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지."
"진짜 3년차 선배들은 너무 강하더라. 저번에 생사투하는 거 보고 소름이 돋았잖아."
그런데 그 때, 그들을 진두지휘하던 교관이 손을 들어올렸다.
"다들 조용."
"왜 그러십니까, 교관님?"
"……누군가 오는군."
조교가 고개를 돌린다. 가파른 턱이 자리한 까닭에 아직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교관이 틀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는 초절정 고수이기에.
"빠르네요. 역시 마두의 자제라 그런 걸까요?"
"그건 모르지."
그러나 말은 그리해도 암운곡의 창술 교관 비격창마는 느끼고 있었다. 평범한 쥐 굴 출신은 가질 수 없는 강한 기운을.
그리고 그 순간, 머리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2번 패거리였다.
복식을 보고 한눈에 쥐 굴 출신인 걸 파악한 교관은 무리에게 지시했다.
"밥 먹일 준비들 해라."
"예에!"
***
"비밀통로가 엄청 넓네요, 형님."
"응. 까딱 잘못하면 길 잃어버릴 지도 모르겠어. 뒤에는 잘들 따라오고 있나?"
1번이 슥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걷기만 하는 거니까. 먹은 건 없어도 그 정도는 다들 거뜬하지."
심지어 그 걷는 속도조차도 매우 느려 힘들 턱이 그다지 없었다. 어찌됐든 안전해 보여도 함정 여부는 파악하면서 전진을 해야 했기에.
'그래도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그때 5인방이 남겨놓은 바닥 흔적을 따라 걷던 천강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갑자기 그들의 흔적이 벽 안쪽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를 운행하지 않고 조심스레 손을 벽에 대본다.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린다.
'출구로군.'
이곳에 들어온 지도 대략 열 시진 정도 흘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어떤 방향으로도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
과거 맹익의 말에 따르면, 암운곡이 제일 가깝다 했으니 지금 이 자리가 출구가 맞을 것이다.
그에 벽을 해체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천강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암운곡에 도착하자마자 싸움을 해야 하잖아?'
13번과 한 판 붙고. 2번 패거리들도 손 좀 봐줘야 한다.
그 이야기인즉슨, 따로 싸움 유도를 할 필요도 없이 2명분의 기운을 정당하게 빼앗을 수 있다는 뜻.
아직 진법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천강은 바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휴식이야?"
"어. 이거 문을 열어야 하는데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서 말이야."
"그래? 그럼 잠깐 비켜봐. 내가 주먹으로 한 번……."
뚜둑뚜둑. 몸을 푸는 1번의 볼을 꽉 움켜쥐고는 쭉쭉 잡아당기며 말해준다.
"진법 부셔서 여기 매몰될 일 있냐? 가만 좀 있어라. 응?"
"알아써어……. 그, 그만. 나 볼 늘어나아아……."
"정말 알아들은 거 맞지? 이거 손 놓자마자 주먹 내지르는 거 아니지?"
뜨끔.
얼씨구. 정말이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꼬맹이구만.
"알아들었으면 앉아. 내가 잘 해결할 터이니."
1번이 투덜대며 앉자, 98번을 포함 그 뒤 아이들 역시 모두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천강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찬찬히 기운을 하나로 섞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섯 시진.'
그 시간만 공을 들이면 진법의 기운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1번을 넘어 이번 쥐 굴 기수 중 천강 자신이 제일 내공이 많다고 볼 수 있었다.
'빨리 섞여라. 빨리……!'
다음 녀석 거 흡수하러 가자!
***
"정말 운이 좋았네, 우리."
"그러게."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도 입 안 가득 미소가 걸린 아이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배고픔을 애써 잊고 있었다.
"나 솔직히 그 절벽을 보는 순간, '여기가 내가 죽어야할 자리로구나.' 라고 생각했다니깐."
"나도. 솔직히 쥐 굴 인원들 중 반은 그거 못 올라갈 걸?"
"반이 뭐야. 아마 1/3이나 겨우 올라갔겠지. 솔직히 먹은 게 있어야 힘이 나지."
너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99번이 그들을 데리고 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죽을 날만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곤 서서히 기력이 쇠하다 이내 지나가는 들짐승에게 잡아먹혔겠지.
그때 한 명이 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근데 그 새끼들 진짜 끝까지 너무하더라. 와아……. 어떻게 줄을 다 자르냐? 그거 그냥 지들만 통과 하겠다 뭐 그런 거잖아?"
"씨발 새끼들. 힘 좀 있다고 진짜."
"뭐 어쩌겠어. 우리가 약한 게 죄지……."
"진짜 암운곡 들어가면 빡세게 훈련할 거다. 그 새끼들 복수해 줘야지."
그렇게 다른 이들 욕도 하고, 미래 계획도 짜고 저마다 분주히 떠들 때였다.
갑자기에 98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나누어 준다.
뭔가 하여 받아본즉…….
"어어? 이건 육포……?"
"진짜로? 98번 이거 우리 먹으라고 주는 거야?"
"어. 많지는 않지만 허기들 좀 채워."
"고, 고마워……!"
감사를 표하자, 고개를 내젓는 소년.
"나 말고 우리 형님에게 해. 너희들 배고플 테니 나누어 주라 하셨고, 나는 그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
모든 아이들의 눈이 한곳으로 향한다.
한 소년이 가부좌를 튼 채 가만히 앉아 있다.
그것은 마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는 고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 절로 가슴에 무언가가 올라오는.
"지금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위해서 집중하고 있는 거라고 했지?"
"진짜 마교 5인방이나 2번 패거리와 너무 비교된다."
"하아……. 나 왜 갑자기 눈물 나려고 하냐."
힘 좀 있다고 빼앗아 가는 2번 패거리.
가진 지위를 이용해 약삭빠르게 잇속을 챙기는 마교 자제 5인방.
그런 그들보다 강한 힘과 뒷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어 주다니…….
비록 한입거리에 지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양의 육포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천강은 약 200여 명의 쥐 굴 아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런 의도로 나누어준 게 아니었다.
'암운곡에 육포 들고 갔다 걸리면 귀찮아지는데…… 어떡하지.'
버리거나 파묻으면 볼 것도 없이 수색하는 이들에게 걸릴 테고. 그러다 보면,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심문 받게 될 것이다.
그에 1번에게 다 먹을 수 있냐 물어보자, 여기를 나가면 더 맛난 걸 먹을 수 있단 걸 아는지 고개를 젓는다.
'흠……. 그럼 어떡해야…….'
그런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수많은 입들.
천강은 바로 98번을 불러들였다.
"아우야."
"예, 형님."
"지금 이거 애들한테 다 뿌려라."
"이걸 전부요……?"
"응. 하나도 남기지 말고. 싹 다."
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천강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천강에게 마음 깊이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응? 왠지 귀가 간지럽구만.'
***
"킁. 역시 마교 자제들이라 이건가?"
"그러게. 줄을 끊었는데도 용케 올라왔네."
마교 자제 5인방을 보고는 쑥덕거리는 2번 패거리.
설마 그들이 비밀통로를 이용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마교 5인방 또한 그들을 보고는 서로 속닥거렸다.
"어떻게 우리보다 빨리 들어올 수 있지?"
"그러니까. 하아…… 짜증나. 그 탓에 나랑 11번은 10위 안에 못 들었잖아!"
2번 패거리 7명이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마교 5인방 중 후미에 있던 두 사람은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그것이 못내 불만인 13번이 투덜거린다.
"아 놔. 그 보상 받아야 하는데, 진짜……. 존심 상하게."
그리고 7번은 그걸 쌤통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마교 출신이라도 평소 13번의 깐족대는 게 영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에 풉 하고 웃다 그만 걸려버리고 만 그녀.
"야, 너 뭐냐? 지금 나보고 웃은 거 같은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씨발. 기분 탓은?"
감정조절을 못한 13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7번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런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 7번.
"왜? 나랑 한판 붙게?"
"그래. 씨발 한 판 붙자."
"하. 꼬리 말고 도로 돌아갈 줄 알았더니, 그래도 남자는 남잔가 보네?"
두 사람 사이로 짙게 흐르는 날선 긴장감.
2번 패거리도, 마교 5인방도, 그리고 2년차들의 시선도 모두 둘에게 집중된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바로 싸움이 시작될 폭풍전야의 상황 속에서 7번과 13번은 서로를 조용히 탐색했다.
둘 다 속도 위주 타입. 그러니 선공을 잡는 자가 유리하리라.
그에 움직이려는 순간, 계곡 아래에서 누군가 뛰어올라오며 외쳤다.
"야, 온다!"
"그래. 이번엔 몇 명이야?"
그런데 배식 준비를 하며 묻는 이들의 질문에, 뛰어온 이가 바로 대답을 못한다.
"야! 몇 명이냐고?"
"그, 그게…… 정확히 몰라."
"응? 뭐야. 모른다니. 지금 장난해?"
"근데 개 많아."
"뭐?"
이해를 못하는 이들에게 소년이 또박또박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다.
"진짜 개 많아. 한 200명쯤 되는 듯."
"미친. 너 졸다 왔지, 이 새끼야? 아오. 진짜……. 확 안 꺼져?"
"아니, 진짜라고!"
"오늘 너 좀 맞자. 틈만 나면 졸아대는 네놈의 대갈빡을 오늘 내가 고쳐놓는다!"
그러나 성질을 내며 쫓아가던 소년은 이내 제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도 본 것이다.
계곡 아래 언덕을 가득 메운 채 올라오는 수많은 아이들을.
"다, 당장 교관님하고 조교님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