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5화
15화. 비밀통로
"야, 땡추."
"아, 그렇게 부르지 마십셔. 머리카락 몇 없어 진짜 서럽구만."
"하핫. 미안미안. 근데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야?"
"아……. 얼마 전 여기서 싸움이 났었는데, 아니 글쎄…… 곱게 싸울 것이지 온산을 부수고 다닌 탓에 여기 진법도 망가지지 않았답니까? 그래서 손 좀 보고 있습니다."
천강이 고개를 내밀어 맹익이 수리중인 곳을 바라보았다.
성인 남자 하나가 겨우내 들어갈 굴이 자리하고 있다.
"이건 어디로 통하는 길이야?"
"이곳저곳으로 뚫려있습니다. 제일 가까운 암운곡부터 해서 천암과 그 뒤 여울나무 숲까지요."
"흐응. 흥미롭네. 마교에 이런 비밀 통로가 많은가?"
"많긴 하죠. 뭐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수십 개니……."
***
50년도 더 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천강은 바로 발길을 돌려 산 밑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1번, 98번. 가자."
"예? 형님 대체 어딜……."
"있어. 그런 게. 뭐 그 외에도 살고 싶은 놈들은 따라와라."
천강이 성큼성큼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자, 아이들이 저마다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뒤따르는 1번과 98번을 보고는 너도나도 허겁지겁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강은 약 20분 정도 밑으로 내려가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으며 경사진 언덕을 찬찬히 나아갔다.
"야, 99번.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여기에 뭔가 있어?"
"그래. 뭔가 있지."
"뭐가 있는데?"
"아주 좋은 거."
그러자 1번의 두 볼이 빵빵해진다.
"치이. 매번 의미심장한 말만 하고……! 그냥 속 시원히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
"머리를 좀 써라, 머리를. 내가 볼 때, 지금 나 따라오는 애들 중 너만 모른다."
"정말이야?"
1번이 뒤돌아 묻자, 아이들은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후엥?"
눈이 동그래진 1번. 결국 보다 못한 98번이 옆에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애들 말로는 쥐 굴에서 출발한 뒤 5인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데. 그런데 선두는 2번 패거리였단 말이지."
"걔들을 앞질렀을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체력단련 시간 때를 기억해봐. 너 빼고는 1-7위는 늘 2번 패거리였다고."
"하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1번. 그때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 그럼 걔들은 어디로 간 거야? 우리랑 2번 녀석들 사이에 있어야 하잖아?"
"아마 내 생각엔 어디 비밀통로를 이용한 것 같아. 그렇죠, 형님?"
"맞아."
"정말로?"
"그래. 그래서 지금 우리도 그 비밀통로를 이용할까 해서 가는 것이고."
1번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난다. 그녀는 천강에게 찰싹 달라붙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그런데 너는 여기에 비밀통로가 있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나도 모르는 걸?"
"그건……."
"그건?"
천강이 그녀의 이마에 딱밤 한 대 먹이며 웃었다.
"비밀!"
"에에? 야! 농담이지? 그렇지? 나 궁금해 죽게 할 생각 아니면 그냥 좀 말해줘. 응?"
"걱정 마. 그 정도론 안 죽는다."
"야!"
그때 거침없이 나아가던 천강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옆을 바라보니, 그 앞에는 단단한 암벽 하나가 높다랗게 서 있었다.
"유달리 나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덩그러니 자리한 거대한 바위 하나. 딱 봐도 이상하지 않냐?"
"응? 이게? 전혀 안 이상한데. 그냥 돌이잖아?"
그러고는 주먹을 들어 올려 치려는 걸, 천강이 재빨리 뒤에서 끌어안아 잡아당겼다.
"어휴. 넌 정말이지 한시도 방심을 할 수가 없구나."
딱밤 한 대 더 먹여주고, 홍조를 띤 채 멍 때리는 1번을 98번에게 보낸다. 그리고 천강은 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순서가 변하지 않았어야 할 텐데.'
그러나 설령 바뀌었다 한들 딱히 변하는 건 없으리라. 뭐…… 정 안 되면 직접 풀면 그만이니까.
흡성대법을 익히고 부턴 딱히 무공 수련을 할 게 없었던 천강은 스승 밑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진법과 기계식 또한 그중 하나였다.
'어디보자. 그럼 시작은 여기부터…….'
천강이 바위 위에 손을 대고는 기를 운용한다.
그런데 그 순간, 뭘 해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다량의 기운.
'앗. 젠장. 실수했다. 북명신공 특성상 자동으로 흡수해 버리는 것을……!'
모든 무공은 안에서 밖으로 내공을 운행한다.
그렇기에 무공을 익힌 이가 서로 맞붙으면 강한 반발력이 일게 된다.
흡성대법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적의 기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전을 임의로 비우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단전을 공허히 비워 적의 진기를 강제로 확 끌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북명신공은 다르다.
'옥문(안)에서 소상혈(밖)로 내공을 운행하는 여타 무공들과는 달리 북명신공은 반대로 소상혈에서 옥문으로 운행을 하는 방식.'
그렇기에 상대와 접촉한 상태에서 서로 기를 운행할 경우, 물 흐르듯 상대의 기가 자연스레 내게로 넘어오는 것이다.
쿠구구구구. 쿵.
"와아. 손을 대자마자 열렸어!"
"여, 역시 마두의 자제!"
"대박."
고개를 들자, 진법이 망가지며 활짝 열린 바위 중앙으로 성인 하나가 겨우 들어갈 어두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지금은 누구 담당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안합니다.'
당시 맹익 녀석이 이거 고친다고 하루를 꼬박 붙들고 있었던 걸 떠올린 천강은 진심을 담아 사죄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뒤처지지 말고 잘들 따라와."
***
천강과 아이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2번 패거리의 얼굴에 하나 같이 의문이 떠올랐다.
"이 녀석들 대체 어딜 간 거야?"
"포기한 거 아닐까?"
"아서라. 다른 애들은 몰라도 1번하고 99번은 절대 그럴 놈들이 아냐."
66번의 미간이 크게 좁혀졌다.
눈에 힘을 주고는 밑을 둘러보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포기하고 가면 그때 올라오려는 건지도 모르지.'
그때 그들 뒤에서 2번이 다가왔다.
"잘들 쉬고 있었나?"
"아, 예. 형님, 오셨습니까?"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이동한다."
"벌써요?"
"그래. 산중에서 식량을 구하기보단 조금이라도 일찍 암운곡에 들어가는 게 낫다. 거기부터는 제대로 먹을 게 나오니 이동을 서두른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밑을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66번.
역시나 아이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졸업관문을 통과하진 않겠지?'
줄까지 다 잘랐다. 설령 자신이라 해도 이 절벽을 올라오긴 불가능하다. 99번의 체력을 아는 66번은 고개를 치켜드는 불안감을 단번에 훅 털어냈다.
"가자, 66번아."
"예, 형님!"
***
같은 시각.
천강을 가만히 살펴보던 두 인영은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에 위치한 비밀통로를 아는 이들은 마교 내에서도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르신. 저 소년이 대체 저 통로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다."
먼저 들어갔던 5명은 이해가 된다.
그 중에는 괴기나한의 손녀딸이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마교 내 기계와 진법들을 총괄하는 남자. 그가 모르는 비밀통로는 아마 천산 내에 몇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뭐지?'
이제 갓 열 살짜리가 대다수 마인들도 모르는 비밀통로를 안다?
"어디 출신인지 아느냐?"
"마교 출신은 아닙니다. 이번 기수에 마교 출신은 아가씨를 포함 총 7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흠……. 그렇다고 먼저 들어간 5명의 흔적을 찾아 이동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단 말이지.
이동하는데 거침이 없고, 진법을 해제하는 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진법을 10초도 안 되어 푸는 걸 보면, 저 진법을 자주 사용해봤거나 그쪽에 조예가 깊다는 것인데……."
"어르신. 제가 한 번 쥐 장수들에게 알아보고 올까요? 녀석을 어디서 데려왔는지?"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나무 위에 서 있던 여인이 복면을 쓰고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혼자 남은 이는 가만히 서서 비밀통로에 들어서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암운곡이 발칵 뒤집어지겠군.'
합격자 수가 200명이 넘는다니…….
얼굴이 크게 구겨질 암운곡 담당자를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진 권광투마가 크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핫!"
***
"잘들 따라오고 있지?"
"예, 형님."
"응. 근데 왜 이렇게 어두워? 불 없어? 한치 앞도 안 보이네."
"참아. 어차피 비좁아서 길 잃을 일은 없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그러나 말은 그리해도 답답한 건 천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쪽 비밀통로를 단 한 번도 이용해 본적 없었기 때문이다.
제일 선두에 서 있는 만큼, 혹여나 함정이 있는 건 아닐지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천강의 시야에 은은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록빛을 띠는 야광석이었다.
"1번. 조금만 참아라. 야광석이다."
"정말?! 후우……. 살았다."
빛이 나는 곳으로 다가가자, 비좁던 길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천정에 띄엄띄엄 일정 간격을 두고 자리한 녹색 돌멩이들.
천강은 제일 뒷사람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조금 더 이동한 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금 쉬었다 가자."
"얼마나 쉬실 생각이십니까, 형님?"
"음……. 아예 이참에 밥까지 먹도록 하지 뭐. 한 시진 정도 쉰다고 해."
"예. 한 시진 휴식이랍니다!"
"한 시진 휴식!"
아이들이 뒤를 돌아 천강의 지시를 전달한다.
1번이 천강에게 육포를 받아가며 묻는다.
"앞으로 얼마나 이동해야 할 것 같아?"
"글쎄. 이동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한나절 이상 걸리지 않을까 싶네."
절벽에서부터 암운곡까지는 최단 거리로 길이 나 있다.
그 거리를 찬찬히 걸어서 가면 한나절 정도 걸린다.
물론, 각종 난관들을 지나다 보면 다소 늦어지긴 하겠지만.
그러니 최소 그보단 더 걸린다고 봐야할 것이다. 굴이 꾸불꾸불 나 있는 정도에 따라 가야할 길이 늘어나는 것이니.
"난 잠시 기공 훈련 좀 할 테니까, 한 시진 있다 깨워줘."
"예, 형님."
"알았어."
눈을 감는다. 아까 흡수했던 진법의 기운을 찾아본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기들 마음대로 자리를 잡던 흡성대법 때와는 달리, 그것들은 천강의 임맥, 즉 기의 바다에 모여 있었다.
물과 기름마냥 두 층으로 분리되어 있는 기운들.
천강은 그것을 태극문양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열 명분을 섞을 때까진 꼬박 하루가 걸린다 했었지?'
굳이 사람으로 치자면 지금이 두 명 째.
'기다려라. 금세 천 명을 채워줄 테니.'
두 기운이 천강의 의지 아래 섞이기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그것들은 기의 바다에서 뱅글뱅글 돌뿐, 이전처럼 바깥으로 증발하거나 하지 않았다.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