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2화
12화. 졸업관문
주태와 천강은 같은 기수 쥐 굴 출신이었다.
녀석은 늘 다른 이들 뒤에 몰래 접근해 깜짝 놀라게 하는 걸 즐기곤 했는데, 결국은 그걸로 대성을 이룬 모양이다.
그러나 5년간 함께하며 녀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천강으로서는 그저 웃음밖에 안 나왔다.
'내가 죽을 때까지만 해도 마두도 못 되었던 녀석이야. 그런 녀석의 무공 따위를 배울 이유가 없잖아?'
그러나 이어진 초아의 말에 천강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으니…….
"너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 무공의 창시자이신 우리 스승님께서는 이래봬도 마교 서열 7위에 해당하신다고!"
"에에……?"
아니, 그런 좆밥이 마교 서열 7위? 알고 보니 지금 마교 윗대가리들은 전부 다 좆밥들 뿐인 거 아냐?
천강의 떡 벌어진 표정을 오해한 초아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었다.
"심지어 그 서열도 암살이 아닌 정식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일대일로 싸워 얻으신 거라고?"
천강은 자신의 이해 한도를 넘어선 초아의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대에 전달되는 옛 기록들은 허구가 듬뿍 담겨있다더니. 어휴. 진짜 못 들어주겠네.
"그러니 어때? 우리 사문 들어와라!"
"98번. 너 들어가라. 너랑 잘 맞겠다."
"예? 혀, 형님?"
"아 쫌! 들어오라고!"
성질을 부리는 건지 권유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그 행태에 천강과 98번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에 적당히 달래서 보내야나 고민을 하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 후다닥 달려와 천강과 초아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1번이었다.
"조교님?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꼬마 아가씨께서는 좀 빠지시지?"
"지금 조교님 때문에 불편한 거 안 보이세요? 주변 보는 눈도 생각하셔야지요."
"미안! 난 주위 시선 따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
"조교님 말고 99번이랑 저희가 불.편.하.다.고.요."
"정말? 정말 불편해, 99번?"
진짜 이 둘은 요새 왜 이래?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완전 견원지간이다.
"99번 불편하지?"
"99번 안 불편하지?"
천강을 바라보며 대답을 촉구하는 두 여인.
어느 한 쪽 편을 들었다가는 반대쪽에겐 아주 단단히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만 같은 상황이다.
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를 구원해줄 인물이 한쪽에서 나타났다.
"조용. 다들 집중."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 남자. 흑철마괴와 다른 두 교관이 나타나 무리들을 집중시킨다.
그의 등장에 곧바로 그 뒤로 가 서는 두 조교들. 어쩔 수 없이 초아 또한 혀를 차고는 이동하고, 흑철마괴는 아이들을 슥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100일간 수고했다. 이제 그 결실을 볼 차례다. 우린 너희들을 시험할 것이다. 마교에서 우리와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를 없는지를 말이다."
바깥을 향해 팔을 뻗은 교관이 설명을 시작한다.
"시험은 5일간 진행된다. 지금 이곳에서 출발해 목표지점에 5일 안에 도착하면 합격이다. 가는 길이 하나라 헷갈리진 않을 것이다. 가끔 두 개로 나뉠 때도 있으나,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하나로 합쳐지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
70년 전과 차이가 없군.
시험 내용은 그대로. 천강의 얼굴에 여유가 올라왔다.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다. 질문이 있으면 해라."
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들어올린다.
처음 질문의 자격을 부여받은 아이는 쥐 굴 내 대부분의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걸 물어보았다.
"과, 관문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죽는다."
"예에?!"
안 그래도 무서운 교관의 얼굴에 서늘한 대사가 다시금 더해진다.
"시험에 떨어진 이는 모두 죽는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도전하도록."
웅성웅성.
무리 사이로 큰 소란이 인다.
그러나 교관이 발로 바닥을 내려찍고 그 지반이 직경 3장가량 가라앉자, 아이들의 소란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다음 질문."
"저, 저 그럼 순서는 상관없나요? 5일 안에만 도착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순서는 상관없다. 다만 1에서 10등, 그리고 11등에서 50등까지 각각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이는 중복 수령 가능한 보상이다."
꿀꺽.
보상이라는 말에 이곳저곳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목숨이 걸린 시험의 보상인 만큼 결코 평범하진 않을 것이다.
"더 질문 없나?"
"혹시 다음 지역은 어떤 곳인지……."
"그건 직접 가보면 안다. 가지도 못할 것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것으로 질문은 끝이 났다. 교관은 곧바로 아이들을 출발시켰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다. 다들 밖으로 나가라."
"다들 출발해라!"
"어여, 출발해!"
조교들의 재촉에, 눈치를 보다 하나둘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이내 그 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종국엔 너도나도 경쟁하듯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달려달려!"
"거리가 얼마나 될지 몰라. 처음부터 바삐 움직여서 5일 안에 도착해야해!"
"조금이라도 먼저 달려가서 보상을 차지하는 거야!"
그리고 천강과 그 일행도 발걸음 뗐다.
"그럼 우리도 슬슬 가보자고."
"저희도 뛸까요, 형님?"
"아니. 일단은 좀 걷자. 몸 좀 풀 겸."
"예."
천강은 1번과 98번을 데리고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에게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99번 꼭 붙어. 힘내!"
"아, 네……. 누나, 감사합니다."
한쪽 눈을 찡긋 눈웃음을 짓는 초아.
그때 그걸 본 1번이 우뚝 멈춰 섰다. 팔을 펼쳐 천강을 보호하듯 자세를 취하고는 적의를 불태우며 말한다.
"조교님. 우리 다음 지역에선 보지 말아요. 무슨 뜻인지 알죠?"
"네가 시험에 떨어지렴. 그럼 우리 서로 볼 일 없으니. 후훗."
"뭐래, 이 아줌마가."
"뭐? 아, 아줌마?"
천강은 쌈닭이 되려는 두 여인을 말리고는 1번을 잡아끌었다.
진짜 한시도 안 싸우는 때가 없네.
"아줌마! 다음 지역에서 진짜 얼굴 비칠 생각 하지 마! 알았어?!"
"관문 치르다 콱 죽어버려라, 쌍년!"
"야, 가자. 98번 넌 그쪽 팔 잡아라."
"네, 네. 형님……!"
"그럼 초아 누나, 우리 이만 갈게요!"
그렇게 천강의 2회차 쥐 굴 졸업관문이 시작되었다.
***
"이번엔 얼마나 낙오할 것 같은가?"
"글쎄……."
이번 쥐 굴 졸업관문을 뛰는 인원은 총 269명.
오차의 범위가 있긴 하지만, 보통 한 기수당 반수 정도가 통과한다.
"그걸로 유추해볼 때, 이번엔 130명 안팎이지 않을까?"
"하긴. 그렇겠지? 그럼 이번엔 누가 1위를 할 것 같은가?"
"흠. 그건 좀 어려운 문제로구만."
응당 마두의 자녀가 1등을 할 것 같긴 한데……. 둘 중 누가 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사실 나도 아까부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네만, 답이 나오질 않더군."
일단 뒷배만으로 따지면 1번의 압승이었다.
같은 마두라도 서열이 있기 마련. 2번의 어미는 하위권, 1번의 아비는 상위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공도 1번은 권격에 신체강화. 체력을 요하는 이번 졸업관문 특성상 그녀가 유리한 건 분명 사실이었다.
'문제는 2번이 남자고 나이가 11살이라는 것이지.'
1년의 차이는 크다. 성별 차는 더더욱.
결국 결론을 못 내린 두 교관. 그들은 조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저는 1번이요."
"저는 2번."
둘로 나뉘는 의견. 교관이 하나 남은 조교에게 묻는다.
"그럼 초아 너는 누가 1등할 것 같으냐?"
그러자 초아, 그 쉬운 문제로 뭘 그리들 어렵게 고민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왈.
"99번이요."
"응?"
"전 99번이 1등 할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은 두 조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교관들 또한 마찬가지.
초아는 이미 마교 내에서 엉뚱하고 유별나기로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관심을 가진 99번이라는 소년에게 그들은 작게 애도를 표했다. 초아는 자기 것에 대한 집착 또한 심히 남달랐기에.
"아아~ 99번 빨리 보고 싶다~"
***
동굴을 나서자, 환한 빛이 천강과 그 일행을 반겨왔다.
공기가 시원하면서도 햇빛이 닿는 부위는 따스한 거로 보면 아직 정오가 되기 전.
천강이 길이 닦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찬찬히 옮기자, 그 뒤를 따르며 98번이 묻는다.
"형님, 그런데 5일이면 일단 먹을 것부터 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우야. 그래도 넌 머리가 좀 있구나."
눈앞의 이익과 그에 따른 경쟁, 군중습성에 의해 우르르 몰려갔으나, 사실 진짜 중요한 건 잘 먹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면 금방 지친다. 그 상태로 무리를 하면 피로가 회복되지 않고 누적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번 관문에서 사실상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 식량이었다.
그에 보통은 지나가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식물을 캐 먹고는 해야 하나…….
"걱정 마라. 내게 비상식량이 있으니."
"뭐? 99번, 정말이야?!"
좌우로 달라붙는 1번과 98번.
천강은 품속에서 육포주머니를 슬쩍 보여주었다. 그것은 초아에게서 돌려받은 그때 그 육포였다.
"이거면 5일간 굶지 않아도 될 거야. 대신……."
"물은 직접 구해야겠네요, 형님."
"그렇지."
그러자 1번 왈.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가다 보면 물 마실 곳이 몇 군데 있어."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98번의 질문에 1번이 콧날을 세우며 말했다.
"이 길, 나도 아버지랑 몇 번 오고간 적이 있거든."
쥐 굴의 졸업 관문. 사실 그것은 천산 꼭대기로 향하는 길 중 하나이다.
목표지점은 그 중간에 있는 암운곡.
그래서 사실 가는 길은 전혀 어렵지 않다. 마인들에겐 말이다.
'아직 제대로 단련을 하지 않은 열 살 어린배기들에겐 꽤 어렵지만 말이지.'
아무튼 그런 연유로 마두의 자녀인 그녀가 이 길을 다녀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천강에게도 이 길은 매우 익숙하니까.
"와아……. 1번 너희 부모님도 마교 출신이었구나?"
"엣헴! 아까 본 어중이떠중이 다섯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라고? 그러니 앞으로 나에게 잘 보여. 그럼 내가 모…… 졸업하고 신경 좀 써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며 천강을 슬쩍 곁눈질하는 여인.
그러나 정작 그녀의 목표 대상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50년이 지나도 여긴 옛 모습 그대로군.'
정말로 환생을 한 게 맞나 의아함이 들 정도로.
'아무튼 드디어 시작인가?'
평지였던 지형이 갑자기 경사를 이루기 시작한다. 그에 천강은 뒷짐을 지고 있던 자세를 풀고는 찬찬히 산을 오를 준비를 했다.
"애들아, 올라가자."
***
"헉. 허억. 젠장."
"배, 배고파."
해가 뉘엿뉘엿 져,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
앞 다투어 올라가던 아이들이 저마다 굶주린 배를 잡고는 주변을 뒤지고 있다.
몇몇은 흙을 파는가 하면, 누군가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곤 이내 이런저런 걸 구해다 한 소년에게 뛰어갔다.
"149번, 이건 먹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안 돼. 그거 먹었다간 너 밤새 복통에 시달린다."
"젠장. 그럼 이것은?"
"지금 네 손에 있는 것들은 다 안 돼."
149번은 어릴 적부터 산으로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캐고 다녔었다.
그는 그 지식을 이용. 식물을 캐오는 아이들에게 먹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 뒤, 그 대가로 그것의 반을 챙겨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여기는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다른 쪽들은 난리가 났겠구만.'
세상엔 생으로 먹어도 되는 풀보단 그러지 말아야할 풀이 더 많다. 아마 오늘 밤 탈이 날 아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잔대 뿌리와 풀을 씹으며 저 앞쪽을 바라본다.
크게 소란이 이는 걸 보니, 먹을 걸 두고 싸우고 있거나 사냥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내일부터가 걱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