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1화
11화. 북명신공
1번의 질문공세에서 벗어난 천강은 한 시진 동안 있었던 일을 가만히 떠올렸다.
한 시진 전.
"그럼 저 바로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응? 뭐니?"
"제 부탁은 이거에요."
조교에게 설명했다. 자신의 손을 잡은 뒤, 맞잡은 부위에 기를 응집시켜 달라고.
"어느 정도나 기를 뭉쳐야 하는데?"
"그냥 매우 소량이면 돼요."
"이렇게 잡고만 있으면 되는 거야?"
"네. 그럼 저 한 시진 있다 깨워주세요."
"한 시진? 이러고 한 시진?"
깜짝 놀라 되묻는 여인. 천강이 조심스레 물었다.
"한 시진은 너무 길까요?"
"아니, 그건 아닌데……."
오히려 한 시진동안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환호를 외치는 중인 초아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복도에서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쥐 굴 수련생이랑 조교가 손잡고 있다 걸리면 뭐라 할 건가? 특히 다른 이들도 아니고 교관이라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암실로 가서 하자."
"넵."
그렇게 천강은 암실에서 조교 초아의 손을 잡고는 북명신공을 사용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갔다.
'확실히 빠르네.'
기의 농도가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기 중의 기를 끌어오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그래서 그는 겨우 반 시진 만에 길을 뚫고 닦아내는 것까지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라는 것인데…….'
길을 뚫었으면, 이제 기를 임맥으로 끌고 와 체내 진기와 융화시켜야 한다.
천강은 자신의 고유의 기와 초아에게서 가져온 기를 계속해서 뒤섞었다.
두 개의 기가 태극 모양을 그리며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금세 바깥으로 빠져나가 그대로 공기 중으로 소멸되었다.
'제발 섞여라. 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계속 젓는다. 두 개의 기가 하나가 되도록.
그런데 그때, 초아가 그를 깨웠다.
"99번. 시간 다 됐어."
"아……."
벌써 한 시진이 이렇게 빠르게…….
눈을 뜬다. 어둠 속, 한 쪽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그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 지은 채 그의 볼을 꾹꾹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 제, 제가 왜 누나 다리에 누워 있는……."
"아. 그냥 좀 불편해 보여서 다리를 내주니까 알아서 눕던데?"
그럴 리가.
그러나 노려본들 생긋 웃을 뿐. 도리어 능글맞은 한마디가 날아왔다.
"한 시진동안 무릎베개를 해줬더니 다리가 좀 아프네. 누가 좀 주물러 줬으면 좋겠는데~"
……이년이?
천강은 끼 부리는 년을 혼자 놔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아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그를 따라 암실 밖으로 나선다.
"그럼 이따 봐요, 누나."
"그래. 잠자기 전에도 할 거지?"
"네……."
이왕이면 빨리 하는 게 좋겠지. 여마인의 마음은 마치 갈대와 같으니까.
"그럼 취침 한 시진 전에 여기서 기다릴게!"
초아가 눈웃음을 짓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천강 또한 훈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서는데, 문득 시원한 느낌에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상의가 풀어져 있다.
'진짜 뭔 일 일어나기 전에 빨리 강해져야겠어. 최대한 빨리.'
그때부터 천강은 시간만 나면 암실로 가 훈련을 거듭했다.
"99번, 어디가?!"
"개인 훈련."
"또? 아, 뭔 혼자 훈련이야. 내가 도와줄게! 그냥 나한테 배워!"
"넌 98번 좀 도와줘. 우리 셋 다 졸업 관문 모두 통과해야지."
"아, 아니 잠깐…… 야? 야!"
"그럼 부탁 좀 한다! 둘 다 이따 보자."
천강은 체력훈련을 제외하고는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을 내 북명신공을 익히는데 할애했다.
그러나 이틀간은 도대체가 이렇다 할 성과가 전혀 없었다.
섞일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아,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속하는 천강.
"밥 먹자마자 왔나보네?"
"바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후훗. 그래."
검지를 통해 조교의 기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임맥에 저장. 그곳에서 하나로 섞는다.
그 무의미한 행위를 3일째 지속했을 때였다.
'드디어……!'
물과 기름 마냥 절대 섞이지 않던 두 기가 서서히 융합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한 번 섞이기 시작하자 급속도로 빠르게 녹아들었고, 이후 5일이 흘렀을 땐 희한한 형태의 기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교도 이상한 점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어라? 너 갑자기 체내에 기가……?"
"아, 이제 단전이 만들어지나 봐요."
"아아……. 단전 만들려고 내 도움을 구한 거였어? 그냥 내가 직접 기를 불어넣어줘도 되는데."
"그래선 큰 도움 안 되는 것 알잖아요. 차근차근 해나가야죠."
"그거야 그렇지. 후훗. 우리 99번 기특한데? 남자다워."
눈치는 분명 빠르나, 아직 천강을 그저 애라고 생각한 그녀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천강은 마음을 놓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쥐 굴 졸업 관문을 하루 앞둔 날.
거의 다 섞인 두 개의 기가 천강의 의지를 받들어 뱅글뱅글 돌기 시작. 그러다 완전히 섞여 하나가 되었을 때 돌연 변화가 일었다.
우웅.
불안정하여 수시로 증발하던 기가 갑자기 안정을 이룬다. 그것은 이내 슥 펼쳐지더니, 임맥에 고루 퍼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함께 만들어지는 중단전.
'이것이 기의 바다……!'
기의 바다가 생겼다는 건 단순한 사실 하나를 의미한다. 드디어 그가 북명신공을 입문하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은 좀 불안정하군.'
천강은 죽기 직전 보았던 구결들을 가만 떠올렸다.
비급에는 이리 쓰여 있었다.
- 처음에는 불안정하여 꼬박 하루가 걸리지만, 열 사람의 기를 섞고 나면 그때부턴 기의 바다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한 시진 안에 조화를 이루게 된다.
- 거기에 백 사람의 기를 섞게 되면 일각이면 충분하며, 천 사람의 기를 섞으면 상대의 기를 내 것으로 하는데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즉, 이제부턴 다른 이의 기를 흡수해야 한단 뜻이로군.'
자리에서 일어난다.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보며 이리저리 기를 운용해 본다.
'확실히 가볍다. 이제야 좀 쓸 만한 몸뚱어리가 됐네.'
물론 전생에 비하면 아직 답답한 수준이지만, 불과 한 시진 전과 비교하면 정말 천지차이였다.
지금이라면 1번뿐만 아니라, 쥐 굴 내 모든 이들이 덤빈다 해도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전 만드는데 성공했구나? 축하해, 99번!"
"감사합니다."
"무공 뭐 익힐지는 생각해 봤어?"
무공은 사실 따로 익힐 필요가 없다.
전생에 익혔던 흡성대법은 심법의 완성이 곧 기술의 완성.
그저 상대의 몸에 손을 댄 채로 심법을 운용하면 그것이 곧 공격이 된다.
방어도 달리 필요가 없다. 기가 체내에 차고 넘치니, 말 안 듣는 기들을 몸 주위에 철갑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만이다.
'심지어 보법도 딱히 필요는 없지. 적의 공격을 받아주며 바로 반격하면 그만이니.'
아류가 그 정도인데, 원류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그는 대충 둘러댔다.
"그냥…… 혼자 만들어보려고요."
쥐 굴 출신들 대부분은 기본 마공 심법을 가지고 직접 무공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걸 5년간 암운곡에서 갈고 닦아 발전시킨 뒤, 졸업하면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다.
"흐응~"
천강의 대답에 진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초아.
"그러면 우리 사문으로 들어오는 건 어때?"
"윽…….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들어봐. 의외로 너랑 잘 맞을 지도 모른다고? 특히 우리 사문이 다른 건 몰라도 신법, 그중에서도 보법만큼은 가히 독보적이거든! 마교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니까?"
보법? 그건 좀 끌리는데?
살아생전 유일하게 천강이 취약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보법.
아까도 이야기했듯, 상대가 덤비는 순간 늘 그걸 맞아주면서 반격을 해주었기에 딱히 익힐 필요가 없어 안 익히던 게 결국은 이런 사달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데 마교 내에서도 손에 꼽는 수준이라고?'
천강은 초아의 말에 마음이 끌리는 걸 느꼈다.
"그래서 무공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듣고 놀라지마. 그 이름 하여……."
초아가 눈을 찡긋 하며 말했다.
"암운신공!"
"……."
천강은 마음속에 일던 거품이 순식간에 꺼지는 걸 느꼈다.
***
쥐 굴 졸업관문 시작 당일.
수많은 아이들이 한 쪽을 바라보며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근 100일간 보지 못했던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내다보였다.
그에 흥분한 아이들은 저마다 시끄러이 떠들어댔다.
"이제부터 바깥에서 훈련하는 걸까?"
"후우.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동굴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간만에 시원한 밤공기를 맡아보겠네!"
그러나 생각 좀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표정이 바짝 굳어 있었으니……. 졸업 관문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시험인 만큼 쉽지 않을 것을 직감한 것이다.
"시험 내용이 뭘까?"
"간단한 건 아닌 것 같던데."
"아니 알고 있으면 말 좀 해주지, 치사하게 지들끼리만 아냐?"
무리의 시선이 세 집단을 향했다.
2번 패거리, 마교 자제 무리, 그리고 99번 삼인조.
부모를 잘 만나 어릴 적부터 꾸준히 준비를 한 건 그렇다 쳐도, 시험으로 뭘 볼지 까지 안다니. 뭐 이런 불합리함이?
그러나 정작 아이들의 감정이 상한 건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마치 자신들을 따르면 뭐든 도와줄 것처럼 굴던 마교 자제 5인방이 입을 싹 닫고는 모른 채 한 것이다.
"난 재들에게 잘 보이려고 몇 끼 감자도 바쳤었다고."
"어후. 나도."
"근데 지들이 해준 게 뭐 있어?"
"99번이 2번 패거리 손보고 그 사이 이득만 챙겨간 거지. 씨발."
물론, 마교 자제 무리가 아예 한 게 없진 않다.
시간을 틈틈이 내 그들의 잘못된 자세나 싸움 방법 등등을 지적해 주곤 했다.
그러나 정작 진짜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서 그 손길을 뚝 끊어버리는 행태에 아이들이 이리 흥분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99번처럼 처음부터 나대지 않고 얌전히 있었으면 이리 욕을 먹진 않았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저들이 욕먹을 짓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천강이 고개를 돌려 마교 자제 5인방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이 한 쪽 구석에 모여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무리와 잘 어울리다 졸업 관문 하루를 놔두고 갑자기 냉담해진 녀석들.
쥐 굴에서 나가는 날이 되자, 더 이상 감자가 필요 없어지게 되면서 일종에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이유 없는 선행은 없는 법이지. 아예 강하거나 약하면 모를까, 어중간하게 강한 힘을 가진 것들은 말이야.'
그때 갑자기 손이 훅 날아와 천강의 멱살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앞뒤로 마구 흔들어댄다.
"야! 너 내 말 듣고 있어?"
"네, 네. 조교님. 저기…… 머리 어지러우니 가만히 좀……."
천강이 듣고 있는 걸 확인한 초아가 바로 손을 놓아준다. 그리고는 왈.
"아무튼 결론은 이거야.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으니 우리 사문에 들어와."
"괜찮습니다."
"아, 왜 안 하겠다는 건데?"
"그냥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요."
"히잉. 99번 그러지 말고 한 번 잘 생각해봐~"
폭력이 안 되자 이젠 아양을 떤다.
그러나 천강은 속으로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주태 녀석의 무공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