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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18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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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풍운사일 188화

여남(汝南)에 모인 천왕성 병력이 성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날 오후부터였다.

현재 정벌군을 이끌고 있는 소천 요문이 스스로 성주가 주화입마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수장들에게 밝히면서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대부분의 수장들이 바닥에 쓰러져 목 놓아 울었다.

그들의 젊은 시절은 타개한 요광과 함께한 삶이었다.

같이 무공을 익혔고 같이 전략 전술을 논하면서 천하 정복의 꿈을 키워 나갔다.

함께 웃고 함께 슬퍼했으니 어찌 보면 그들의 진정한 주군은 요광 한 사람밖에 없다고 봐야 했다.

요문이 정권을 틀어쥔 것은 요광이 자신의 친위 세력들에게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오패와 천왕삼공을 비롯해서 천왕이십오성의 대부분이 요광의 명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그의 말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물론 요문의 인품과 무력이 천왕성을 이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아무런 잡음 없이 정권의 이양이 이루어졌지만 만약 요광이 다른 생각을 했더라면 결코 요문은 천왕성을 손아귀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천왕성의 당주급 이상 수뇌부가 거대한 연단이 설치된 여남의 황초에 모여든 것은 그다음 날 새벽의 일이었다.

무려 삼백에 달하는 지휘관들은 이미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옆에는 갑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연단에는 요문이 자신의 동생들과 함께 천왕성주 요광의 장례식(葬禮式)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시신은 멀리 천왕성에 있었으나 그들은 최후의 일전을 앞에 두고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기필코 이겨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절차에 의해 재배를 하면서 고인을 송별하는 그들의 몸에서는 투지가 물씬거리며 풍겨 나오고 있었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나자 요문이 연단 앞으로 나와 지휘관들을 향해 웅혼한 음성을 토해냈다.

“제장들은 들으라. 천왕성의 꿈은 언제나 천하통일뿐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그 꿈을 위해 전력을 다해왔으니 어찌 행복했던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제 이곳에서 오십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평에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제장들은 오로지 하나의 생각과 신념으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운호는 내일 서평으로 진군한다는 수장 회의의 결론을 들은 후 곧장 청성 무인이 주둔한 청초를 향해 움직였다.

청초에는 청성의 오백 무인이 전막을 치고 있었는데 묻고 묻자 금방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모르는 무인들도 많았지만 그의 정체를 알고 있던 청성 무인들은 직접 안내까지 해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그를 안내해 줬다.

알게 모르게 그와 한설아와의 관계는 청성 무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기에 그녀를 찾는 그에게 청성 무인들은 상당한 호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반응.

한설아는 운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겁을 하며 달려와 안겼다. 그녀는 갈수록 운호에 대한 애정 표현을 감추지 않으려 했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운호는 황현에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도명현으로 갔다.

도명현은 인구 오천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였지만 웬만한 도시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갈했는데, 섬서와 하남을 가로지르는 무역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하통일전이 벌어지면서 지금은 상인과 여행객이 모두 발이 묶였기 때문에 도명현은 예전처럼 활발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늦은 밤의 도명현은 더욱 그랬다.

전쟁의 불씨가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기 때문인지 도시는 사람의 인적조차 보기가 어려웠다.

도시 중심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간 운호는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주문했고 여간해서 마시지 않는 백주까지 시켰다.

같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니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운호는 한설아의 의견조차 듣지 않고 객잔 주인에게 방을 달라고 했다.

이미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여행객이라면 당연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들은 내일 벌어질 최후의 결전을 생각한다면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운호의 행동에 대해서 한설아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가만히 얼굴만 붉혔다.

믿는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점소이의 안내로 방에 들어선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주정을 몰아내지 않고 그대로 술을 마신 운호와 한설아의 얼굴은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운호였다.

“설아야, 안 무서워?”

“뭐가요?”

“나랑 둘이 있는 거.”

“오라버니와 같이 있는데 왜 무서워요?”

“내가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르잖아.”

“…바보.”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리고 운호의 손이 얼굴을 만지자 마치 용광로처럼 뜨겁게 변했다.

처음이지만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를 침상에 눕히고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한설아는 몸을 떨며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운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렇게 하나씩 옷을 벗기자 끝내 백옥처럼 눈부신 한설아의 몸이 나타났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가슴을 가렸지만 운호의 손에 의해 전신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뜨겁고도 화려했고 너무 아름다워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기나긴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들의 사랑은 폭풍처럼 거칠었고 때로는 따스한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사랑의 밀어를 끝없이 속삭였다.

그들의 머릿속에 전쟁의 두려움 같은 건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낸 운호는 그녀의 눈을 그윽하게 들여다본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밤새도록 속삭였던 꿈결 같던 목소리에 익숙해진 한설아는 갑자기 몸을 일으킨 운호를 바라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운호의 시선은 여전히 사랑이 담겨 있어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설아야, 이제 새벽이야. 오늘이 지나면 아마 세상은 많이 변해 있을 거야. 누가 이기든 전쟁은 커다란 상처를 주는 거니까. 나는 이제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려 해.”

“나도 가야죠.”

“아니, 넌 여기에 있어.”

“무슨 말이에요?”

한설아가 옷도 입지 않은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녀의 가슴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확실히 무공을 익힌 여인답게 세속의 허례와는 거리가 먼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스르륵 자리에 다시 쓰러졌다.

어느새 운호가 그녀의 혼혈을 짚었던 것이다.

운호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은 후 정성껏 그녀의 옷을 하나씩 입혀 나갔다.

그런 후 침상에 곱게 그녀를 눕혀놓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설아야, 하루만 이렇게 있어. 나는 반드시 이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뜻을 묻지 않고 이런 짓을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얼른 돌아올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운호가 황현으로 돌아왔을 때 점창 무인들은 전막을 걷고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었기에 운호는 급히 자신이 묵고 있던 전막으로 향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오냐?”

“응, 산책.”

“허어, 이놈이!”

운호의 대답에 운상이 인상을 긁었다.

밤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운호가 여유 있게 오리발을 내밀자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운호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뻔뻔하게 풍운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운상이 저렇게 나와도 입이 무겁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외박을 사형들이 모를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자연스럽게 일행의 뒤에 가서 섰다.

그러나 운상은 집요했다.

씩씩거리며 다가온 운상은 운호의 귀를 잡아당긴 채 사형들에게서 그를 끄집어냈다.

“정말 계획대로 했냐?”

“응.”

“잠은 어디서 자고?”

“도명현에서.”

“설아는?”

“얼른 끝나고 가봐야 돼. 다섯 시진 정도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혼혈을 짚어놨다. 너는 어쨌는데?”

“가까운 인가에… 번천검께 미리 허락을 받았으니까 난 너랑은 달라.”

“장하다.”

“장문인 나오신다. 이제 출발하려는 모양이다.”

운상이 뭐라 더 말하려 하는 운호의 말을 끊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청현자와 장로들이 마지막까지 덩그렇게 남아 있던 전막에서 나와 점창 본대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청현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 다가오던 장로들이 멈춰 선 후 장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왼팔은 볼 때마다 허전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청현자의 너그러운 얼굴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너그러움을 버리고 불타는 시선으로 점창 무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성은 나직했으나 비장했고 내용은 듣는 사람의 심정을 울릴 만큼 강렬했다.

“점창 제자들은 들어라. 우리 점창은 그 옛날 천왕성의 무림통일 야욕을 꺾기 위해 운남의 길목에서 홀로 일어선 적이 있었다. 선조들께서는 점창의 손실보다 명예를 먼저 생각하셨고 협이 있어야 의가 살아난다는 행동을 직접 무림에 보여주셨다. 이제 그 뜻을 우리가 이어받을 것이다. 점창은 언제나 비겁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으니 오늘 제자들은 이 전쟁에서 목숨보다 더한 명예를 위해 분투하라!”

 

무림맹 이만오천의 병력이 서평으로 진군을 시작한 것은 이른 새벽인 묘시 무렵이었다.

적들의 이동이 감지된 것도 비슷했기 때문에 양쪽 세력이 서평에서 부딪친 것은 태양이 환하게 떠오른 진시(唇時)였다.

천왕성의 병력이 쳐 놓은 진형을 보고 청문자가 먼저 깊은 신음을 흘려냈다.

서평의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에는 거대한 천왕무영진이 세 개나 펼쳐져 있었다.

신화에서 천왕무영진을 깨뜨린 적이 있으나 운호가 없었다면 점창은 결코 신화를 탈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적들의 천왕무영진은 신화에 펼쳐졌던 것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였다.

워낙 진법에 관한 지식이 뛰어난 청문자는 고전을 면치 못했던 천왕무영진의 파훼법을 며칠 동안 연구한 끝에 칠성 중 끝자리 별인 파군성이 약점이란 것을 알아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하나의 진이 존재했을 때의 약점이었지, 저렇게 진과 진이 어울려 반응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적들은 거의 사천에 가까운 부대를 진법 사이에 배치해서 언제든지 약점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확실한 파훼법이 아니었으니 걱정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그냥 있기에는 무림맹의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아 청문자는 전령을 통해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파군성이 약점이라는 정보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멈춰지지 않았다.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을 가지고 있지만 적들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우세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막강한 진법을 완성시킨 채 공격을 기다리는 천왕성의 기운이 무림맹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때 청문자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파군성이 약점이라면 머리 쪽에 해당하는 탐라성도 약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진법의 원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먼저 파군성을 타격하면 견고하게 버티던 탐라성의 기운이 급히 다른 행으로 이동할 것이고 그리되면 탐라성은 조금의 타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

하나의 약점만 있다면 적들의 반격에 고전을 면치 못하겠지만 만약 또 다른 약점이 노출된다면 적들의 진법은 무용지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무턱대고 공격할 일이 아니었다.

천왕성을 공격하기 위해 무림맹이 만들어놓은 것은 일자진이었다.

정면 공격을 위해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이었고 이런 평야 지대에서 가장 효용성이 컸으니 당연한 선택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천왕무영진이 구축된 상태에서 아무런 계획 없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무림맹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자진은 그 효용성만큼 단점도 많은 병진이었다.

신화에서의 싸움은 촌각을 다투었기 때문에 무작정 돌진했지만 서평의 마지막 결전은 수많은 무인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했다.

그랬기에 청문자는 청현자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수장들을 부르는 초계기를 연신 날렸다.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던 병력이 움직임을 멈췄고 수장들이 점창 쪽으로 날아온 것은 불과 이각 만의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문파의 수장들 중 절대고수 반열에 들어서지 못한 것은 청현자뿐이었으니 다가오는 그들의 기세는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청문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문자 앞에 모인 수장들의 숫자는 모두 스물둘이었는데 백대고수에 포함된 사람이 열다섯이나 되었다.

물론 구룡의 진형에는 열여덟에 달하는 백대고수가 싸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으니 무림맹의 진영에는 절대고수가 무려 서른셋에 달했다.

하나 이는 점창에 숨어 있는 숫자를 뺀 인원이다.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재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며 천하통일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점창이라 해도 스스로가 아니라 명에 의해 모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소림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현 무림맹주로서 누군가의 부름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각 파의 수장들은 청문자가 그들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된 이후부터 한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자칫 소속 무인들을 헛되이 죽게 만들 뻔한 자신들의 무사안일을 청문자가 일깨워 줬으니 돌아가는 그들의 허리는 깊게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전략을 마련한 무림맹의 진형이 아홉 개로 갈라졌다.

여섯 개는 천왕무영진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세 개는 적들의 타격 병력을 집중적으로 막기 위해 배치한 진영이었다.

이번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동시에 파군성을 흔들어놓아 적들의 진영을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파군성을 흔들어놓아야 탐라성을 집중 공략할 수 있으니 파군성을 공격하는 전대는 가장 강한 전력을 지닌 병력이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소림과 화산이 합쳐진 일대, 점창과 은하문의 이대, 무당과 모산파의 삼대 공격진이었다.

그중 점창이 맡은 것은 중앙에 펼쳐진 진법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었다.

“진격하라!”

청현자의 명에 의해 점창 본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번천검이 은하문을 이끌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공격과 방어.

드디어 천하의 운명을 결정짓는 서평전투의 서막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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