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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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第 177 章 지혜로운 여자
“……!”
사군보는 고개를 홱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앞 3장거리에 있던 냉면신룡 비여래가 기나긴 양팔의 소매를 순간적으로 펄럭였다.
슈슈슈슛-!
열두 줄기의 은광이 섬전처럼 쏘아나갔다.
그것은 열두 자루의 비검으로 비여래가 전력으로 발출해 그 속도는 실로 전광석화 같았다.
“죽어랏, 탈명혈하!”
그의 외침은 비검을 발출한 직후에 터졌다.
실로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3장거리에서 뻗은 비검은 호통이 들린 순간 이미 사군보의 3척 거리에 이르렀다.
그와 거의 동시 허공에 떠있던 굴오산인의 쌍장이 사군보의 머리를 가격했다.
위잉-!
사군보가 고개를 막 돌린 그 짧은 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 동시에 가해진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대정맹 고수들의 얼굴에는 일제히 희색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탈명혈하가 곧 머리가 부서지고 온몸에 비검이 꽂힌 채로 죽는 광경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될 것을 확신했다.
허나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흥!”
사군보의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순간, 그는 공격도 방어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한 가지 행동만 했다.
돌연 그는 옆으로 비스듬히 손목을 잡고 있던 황보경을 번개같이 낚아채더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앗!”
“아앗!”
중인들은 대경실색했다.
허나 그 순간 그들이 놀란 것보다 더욱 비참하고 수십 배나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그것은 굴오산인과 냉면신룡 비여래이 벌인 행동이었다.
“아앗-!”
비여래는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자신이 발출한 비검을 회수하려 급히 섭물대인신공(攝物大接神功)으로 양손을 당겼다.
허나 이미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비검은 완전히 발출되어 회수가 불가능했다.
바로 그때,
피리리링-!
허공에 떠있던 굴오산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몸을 빙글 돌렸다.
‘황보 낭자가 죽으면 절대로 안 된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했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신형은 전광석화처럼 떨어져내려 몸으로 황보경의 앞을 막았다.
그 일련의 동작은 실로 너무나 빠른 순간에 이어졌다.
단지 중인들은 인영의 그림자만을 보았을 뿐이다.
황보경의 몸을 막으며 떨어진 굴오산인은 전력으로 자신의 몸으로 날아온 열두 자루의 비검을 막으려 했다.
허나 그가 채 손을 뻗기도 전,
“으아악-!”
그는 참담한 비명을 발했다.
파파파팍!
그의 목, 가슴, 복부, 팔, 다리……
그의 전신에 정확히 열 자루의 비검이 깊숙이 꽂히고 말았다.
“으으으……”
굴오산인은 비틀거리다가 이윽고 넘어졌다.
쿵!
비검은 그의 등까지 뚫고 나와 날카로운 칼끝을 보이고 있었다.
“아-”
“저럴 수가……”
중인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허나 이때 비여래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이놈! 죽어랏!”
그는 자신의 생사도 돌보지 않고 쌍장을 뻗으며 사군보를 덮쳐갔다.
“흥!”
사군보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여전히 한손으로 황보경을 안은 채 왼손으로 혈륜수를 뻗었다.
콰르릉-!
펑!
“으악-!”
비여래는 정통으로 권력을 얻어맞고는 곤두박질쳤다.
사군보의 두 다리가 수백 개의 각영(脚影)을 그렸다.
펑!
원앙각이었다.
“으악-!”
비여래는 즉시 갈비뼈가 완전히 박살나며 뒤로 날아갔다.
쿵-!
그는 커다란 바위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냉면신룡 비여래!
결국 대정구기의 한 명인 그는 구기 중 제일 먼저 황천으로 갔다.
“아!”
“잔인한 놈!”
중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치를 떨었다.
사군보는 황보경을 옆구리에 낀 채 중인들을 향해 음침하게 웃었다.
“후후후…… 잔인하다고?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 만약 내가 반대로 저렇게 죽었다면 너희들은 비여래, 그자에게 잔인하다고 욕하겠느냐?”
“……”
“……”
중인들은 모두 안색이 변해 대답하지 못했다.
“하하하……”
사군보는 비웃음의 일진광소를 터뜨렸다.
슈앗-
그의 몸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앗, 놈이 달아난다.”
“쫓아라.”
대정맹의 고수들은 고함을 치며 몸을 날렸다.
“쫓아오지 마라. 만약 쫓으면 이 계집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
사군보의 으스스한 협박이었다.
그 말에 대정맹의 고수들은 모두 섬뜩했다.
“하하하…… 훗날 보자. 잘있거라.”
사군보는 광소를 터뜨리며 사라져 갔다.
“아……”
“음……”
중인들은 모두 탄식을 터뜨리며 넋을 잃고 있었다.
무학은 도호를 발하며 침중하게 말했다.
“무량수불…… 실패다. 완전한 실패다.”
옥면검룡 남궁혁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
“구천대제만 왔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대체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
중인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가슴 속은 무거운 불안과 비애감, 패배감이 가득 밀려 들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한 사람, 뇌운장 국제강만은 은연중 괴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놈은 도망을 쳤지만 조만간 다시 잡힐 것이다. 멀리 못 간다……왜냐하면 비여래의 비검에는…… 후후후……놈의 발을 묶고 정도의 머저리 놈들을 더욱 광분하게 할 사건을 일으킬 독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비여래의 비검 끝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던 이유가 바로 독 때문이란 말인가.
백도의 고수가 독을 사용하다니.
그런데 사군보가 멀리 못 간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또 뭔가?
더욱이 백도인들이 더더욱 광분하게 될 사건이란.
**
휘이익-!
사군보는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협곡을 벗어난 지 약 한식경이 지났다.
어느덧 주위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깊은 산중이었다.
사군보는 서서히 신형을 멈추었다.
‘이 정도면 놈들도 추적하지 못하겠지.’
사군보는 아직도 옆구리에 끼어 있는 황보경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이 계집은 필요 없게 됐다.”
그는 곧 주위의 편편한 바위 위에 황보경을 눕혔다.
이어 그는 돌아서려 했다.
허나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멈칫하고 말았다.
황보경의 안색은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으며 입술 또한 하얗게 변해있었다.
뿐만 아니라 숨결마저 희미했다.
‘부상을 입었나?’
그럴 리 없다.
사군보는 그녀를 제압했을 뿐 상해를 하지 않았다.
문득 무학이 한 말이 떠올랐다.
‘병약하다 하더니만, 이딴 일로 힘들어 하다니.’
사군보는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는 의술에 정통했으므로 곧 그녀가 선천적으로 지극히 허약한 체질을 타고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외부의 조그만 충격이나 심적인 타격에도 위험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군보는 중얼거렸다.
“잘못하면 이 소녀는 죽겠구나.”
허나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동정이다. 나도 결국 이 소녀로 인해 죽을 뻔 했고 이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닌가?’
사군보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덮였다.
‘흥,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너는 이렇게 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일이다.’
사군보는 몸을 홱 돌려 걸었다.
허나 그는 멈칫했다.
‘에잇! 진짜 자꾸 거슬리네.’
그는 다시 걸었지만 곧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탓했다.
‘쳇!’
결국 사군보는 황보경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사군보는 마침내 도로 돌아와 죽은 듯이 의식을 잃고 있는 황보경의 상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진맥해 보았다.
사군보의 눈살이 찡그려졌다.
“맥이 너무 약하다. 이 소녀는 천성적으로 허약한 맥을 지녔다. 놀라움과 정신적인 타격, 그리고 심력의 소모가 커 일시에 탈진상태에 이르렀구나.”
사군보는 손을 뻗어 황보경의 몸을 뒤집었다.
그녀의 등 뒤 명문혈에 손바닥을 대고 내공을 주입했다.
실로 정파인물 중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리라.
탈명혈하가 남을 위해 치료한다고는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부상도 치료하지 않고 내공까지 소모해가며 치료함은 물론,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을 치료하리라곤 더더욱 생각지 못할 것이다.
사군보는 한동안 내공을 주입한 다음 황보경의 몇 군데 혈도를 차례로 짚었다.
“으음……”
황보경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혜가 충만한 눈을 가만히 떴다.
그녀는 놀랐다.
자신을 치료한 사람이 바로 탈명혈하 사군보일 줄은 그녀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왠지 모르게 그녀의 가슴은 진한 감동으로 뭉클한 느낌이었다.
허나 그녀는 곧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그냥 떠날 줄 알았어요.”
사군보는 그녀에게서 약간 떨어진 후 코웃음 쳤다.
“흥! 오해하지 마라. 단지 네 덕분에 무사히 탈출했기에 그 빚을 갚은 것뿐이다.”
황보경은 여전히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당신은 생각처럼 그렇게 악독한 분은 아닌 것 같군요.”
사군보는 그 말에 갑자기 으스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탈명혈하다. 천하에서 나보다 악독한 자는 없다. 후후…… 낭자는 사람을 잘못 보았다.”
뜻밖에도 황보경은 가볍게 풋 하고 웃었다.
“천하에서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아마 당신 밖에 없을 거예요.”
“……”
그 말에 사군보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황보경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뜻밖에도 순진하구나. 어쩌면 내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찾던 사람이라면……쓰러져 가는 백도 무림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갑자기 그녀는 심한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
사군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황보경은 얼굴을 붉히며 조그맣게 말했다.
“추워요……”
사군보는 그 말에 무어라고 비웃으려다 그녀의 오들오들 떠는 모습에 그만 가엾게 느껴졌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려다 멈칫했다.
옷은 너무도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고마워요.”
황보경은 먼저 말하며 스스로 옷을 받아 어깨에 걸쳤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옷을 받아 어깨에 걸쳤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옷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소중한 듯이 받았다.
“……”
사군보는 묵묵히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은 잔뜩 흐렸고 해는 거의 떨어진 상태였다.
이때 황보경이 그의 옆에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무림은 당신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당신은 묵혈방의 후예라던데 맞는가요?”
“그래.”
“그럼…… 콜록, 콜록……”
황보경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다시 기침을 터뜨렸다.
“……”
사군보는 그녀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하자 손을 뻗어 부축을 하려했다.
허나 그는 곧 멈칫했다.
그 모습에 황보경은 희미하게 웃으며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무공은 모르지만 사람의 골상을 보는 안목은 있어요. 제가 보건대 당신은 체질이 상당히 특이해요. 실로 천하에서 보기 드문 것이에요.”
“……”
“더군다나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대단히 선량해요.”
사군보는 코웃음을 쳤다.
“흥! 나는 마음이 그 정반대로 독하니 낭자는 잘못 보았다.”
황보경은 야무지게 말했다.
“제 눈이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