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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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36화
36화. 흑사
'감히. 감히……!'
맹익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랬다. 아마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쩌면 그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때보다도 더 빠를지도 몰랐다.
'이것들이 이젠 하다하다 정파까지 끌어 들여?'
정파인을 데리고 왔다는 건, 볼 것도 없이 제갈 새끼들을 끌고 왔단 의미. 그건 오늘 아주 날 잡고 일을 벌인 것이란 뜻이었다.
'내 이놈들을 오늘 아주 작살을 재고 말리라!'
눈빛만으로도 능히 사람을 죽일 만큼 험악한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쏘아져 나가는 맹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가 나아간 곳엔 웬 시체 셋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주위를 살펴 안전을 확보한 뒤 시체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하나는 독, 다른 둘은 목이 부러져 사망.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시신 두 개에 내기가 하나도 없어?'
일을 벌일 각오였다면 그저 그런 마인들을 데려오진 않았을 터.
사람은 죽어도 일정 시간은 단전에 기가 존재한다. 그런데 세 시체 중 두 개에서는 꺼져가는 생기만이 남아있을 뿐, 단전에 내기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뭔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인데……."
피부만 새까맣다면 영락없는 흡성대법에 당한 형태. 그때 맹익의 눈에 바위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쓰인 글자들도.
『흑살마신 왔다감.
잠깐 자리비운 사이에 내 물건 손대면 가만 안 둔다.』
"하, 하하하하핫!"
웃음이 나온다. 그것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기쁨의 함성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맹익에게 천강은 특별한 존재다. 어떨 때는 친한 친구이자 형제였고, 때로는 보호자이자 부모였다.
암운곡 시절에는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버틸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위기의 순간마다 그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었었다.
그래서일까?
- 어이, 땡추. 나 스승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 한동안은 너랑 못 다니게 됐어.
암운곡 졸업 이후, 갑자기 듣게 된 소식. 그 말을 들었을 때가 그의 인생에서 세 번째로 슬픈 때였다.
- 흑살마신이 죽었다. 시체는…… 여기 있다.
마교의 반역무리를 처단한 날. 그날 맹익은 울었다. 그때가 아마 그의 인생에 두 번째로 슬픈 시기였을 것이다.
그는 소교주에게서 시체를 양도받아 오목골에서 제를 지냈고, 삼일 밤낮을 그 앞에서 통곡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 선배? 선배!"
시체가 사라졌다. 감쪽같은 일이었다.
찾아보려 해도 그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흑살마신 선배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드디어,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맹익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
'뭐지?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누가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기라도 하나?
자고로 본인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면 귀가 간지럽다 하지 않던가? 천강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자신을 그리워할 만한 이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인물, 홍랑.
"젠장."
천강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그 상념을 떨쳐냈다.
마인도 아니면서 마인보다도 더 표독스런 얼굴. 미치지 않았으나 미친년보다도 더 광기어린 눈동자. 집요하게 천강을 쫓아다니며 협박에 가까운 애정을 표하던 여인.
50년이 지나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 그녀가 유일하리라.
'뭐 지금쯤이면 늙거나 죽었을 테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홍랑아.
천강은 지하수로 천정, 구멍 끝자락에 매달려 그 안을 슥슥 살펴보았다. 흑사 녀석이 혹시 매복 중인가 확인하는 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북명신공으로 흡수한 내기를 하나로 만들고 올 걸.'
전생의 흡성대법 시절 습관이 남아있다 보니, 기운을 갈무리해야 함을 늘 깜빡하는 천강이었다.
'뭐 짐까지 다 챙겨왔는데 도로 올라가기도 그렇고……. 그냥 암운곡으로 돌아가서 하도록 하자.'
딱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
'잠만. 그러고 보니 나 왜 흑사를 칼로 잡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지?'
가만 생각해보니 흑사 녀석한테 그가 쫄릴 이유도, 꿀릴 이유도 전혀 없었다.
녀석의 독무는 천강에게 전혀 통하지 않고, 천강의 주요 공격 방법은 외부 타격이 아닌 내기 흡수다. 그냥 손을 가져다댄 뒤, 녀석의 기운을 깡그리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싸우다 영 아니다 싶으면, 도로 이 굴로 들어오면 그만.
'그럼 일단 한 번 붙어볼까?'
품에서 수리검 세 개를 꺼내, 들고 온 짐들을 벽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다.
'일단 녀석에게 달라붙을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준비를 마친 천강은 천산의 지하수로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며 힘껏 소리쳤다.
"뱀 대가리야, 어딨냐! 한 판 붙자!"
소리치기가 무섭게 곧바로 튀어나오는 녀석.
크워어어어-
정말이지…… 언제 봐도 어마어마하구만.
가까이서 보니까 녀석이 얼마나 큰지 더욱 실감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왜 놈이 내 바로 밑에서 떡 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거지?
이대로 가면 녀석의 입속에 그대로…….
"아, 젠장."
쾅!
흑사의 입이 닫히고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 놈이 한 입에 꿀꺽 삼킨 탓에, 천강은 아무런 상처 없이 녀석의 몸속에 안착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됐네. 아무래도 바깥보단 안이 낫겠지.'
딱히 내기 흡수에 방해를 할 요소도 없고 말이야.
기를 이용해 내부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러자 곧바로 녀석의 몸에 있는 기운이 빠르게 천강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
내부의 이상이 생김을 느끼고는 몸을 흔들어대는 녀석. 그러나 북명신공을 이용해 적의 내기를 흡수할 때에는 천강이 손을 거두지 않는 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그 어떤 물리적인 방해요인도 없는 이런 상황엔 더더욱.
쿵. 쿠웅.
진동이 거세진다. 흑사의 발버둥이 점점 강력해진다.
천강은 필사적으로 녀석에게 달라붙어 진기를 끝없이 빨아들였다.
'아니…… 뭐 이딴 괴물이 다 있어? 기운이 끝이 없는데?'
덩치가 커서 그런 걸까? 한 손도 아니고 무려 양손으로 기운을 빨아들이는 데에도 끝이 없다. 오히려 천강이 가진 내기보다 벌써 곱절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강의 얼굴에 고민이 떠올랐다.
'위험해. 아무리 이종진기가 없다곤 해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흡수하면 문제가 생길 지도 몰라.'
공자님이 그러지 않았는가.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그때 뱀의 뱃속 깊은 곳에서 특정한 액체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위산액이었다.
굳이 더 버틸 이유가 없는 천강은 몸을 진기로 감싸, 위산과 함께 흑사의 몸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크억- 크억-
구역질을 하기를 잠시, 천강을 매섭게 노려보는 흑사. 세로로 길게 갈라진 눈이 천강을 죽일 듯 노려본다.
그리고는 단번에 달려드나, 굳이 더 싸워야 할 이유가 없는 천강은 오목골로 향하는 굴에 다시 들어섰다. 그런 뒤 내기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쿵. 쿠웅.
화가 아주 단단히 났는지 계속 천강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부딪치는 녀석. 놈은 무려 한 시진을 그리 성질을 내고 나서야 진정을 했다.
'거 참 성질 더럽긴.'
작게 투덜댄 천강은 살포시 눈을 감고는 기운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눈이 감기기가 무섭게 도로 뜨인다.
"응? 뭐야. 기운이 왜 두 개지?"
정확히 말하면 7개.
천강 본인, 사신, 마인 둘, 제갈 녀석, 그리고 흑사 내단 기운까지. 총 6개여야 하는데, 몸속에는 7개의 기운이 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여전히 7개다.
'내가 뭘 빼놓은 게 있었나?'
그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는 없다.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없기에, 천강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융합 작업에 착수했다.
***
내 생애 첫 기억의 순간은, 풀뿌리를 먹는 나의 모습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나는 분명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잡아먹는 존재인데, 언젠가부터 풀뿌리를 찾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산삼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것엔 특별한 힘이 있었고, 언제부터가 나는 동족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갔다.
일단 다른 친구들보다 오래 살게 되었다. 100년이 넘으면서는 덩치는 웬만한 구렁이보다도 더 커졌고, 200년 즈음 됐을 때에는 이곳에 나보다 큰 동물은 없었다.
그러나 산삼을 너무 많이 먹었던 탓일까? 몸에서 부작용이 일었다.
'뜨, 뜨겁다.'
양기가 충만해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 그 해결책을 찾던 중 나는 우연찮게 지하수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그곳에 똬리를 틀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 몸집은 점점 커져갔다. 그에 응당 덤비는 이들은 줄어들어야 하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잡겠다고 달려드는 존재들은 도리어 늘어났다.
"네놈의 내단은 바로 내 것이다!"
"널 잡아 나 또한 화경의 경지에 오르리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를 보양식으로 삼겠다는 의미인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개미만한 존재들이 백날 덤빈다한들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그래도 가끔은 따끔한 공격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역시 마영신위님!"
"오오오!"
"내 걱정은 말고 다들 뒤로 물러나라. 이런 한낱 미물은 화경에 도달한 내겐 그저 밥이니……. 오늘 너를 죽여 네 가죽으로 나의 강함을 증명하리라!"
그러나 이럴 땐 그냥 적당히 독을 뿌려주면.
"끄어억. 나 마영신위가 겨우 독무에……."
간단히 처리가 된다. 물론, 이리 되면 식감은 별로지만.
그렇게 999년을 살아왔다. 이제 1년 남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딱 1년만 지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몸과 머리가 느끼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건 99년 전이었다.
기억이란 게 생길 때부터 체내에 무언가 작은 기운이 생긴 걸 느꼈는데…… 그것이 완전히 충만해진 순간, 매 아래쪽에 영롱한 구슬이 새로 자라나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는 그날,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도.
'1년 남았어. 열심히 먹고 준비를 해야 해.'
그에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급습해 먹었는데…….
크어어어어-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극심한 통증.
몸을 이리저리 뒤흔든다. 벽에 부딪쳐도 보고 구르기도 해보고. 그런데 뱃속에 들어간 녀석이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크오오오오!
이건 999년 흑사 인생 최대 위기였다.
그때였다. 발악과 몸부림이 먹혔는지 몸 밖으로 튀어나온 녀석. 놈은 나를 잠깐 가만히 바라보더니, 눈 깜짝할 새에 조그마한 구멍 사이로 몸을 피신했다.
'하……! 저런 쥐새끼 같으니라고!'
저런 놈은 잡는다고 힘 빼면 나만 손해다. 그에 그냥 상한 음식 하나 잘못 먹어 고생했다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응? 무, 뭐지? 왜 구슬의 기운이…….'
당황스러웠다. 1년만 더 모으면 완성이 될 구슬의 기운이 줄어들어, 대기시간이 9년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완전하던 내단의 기운조차 줄어들어, 합산하면 총 19년을 이 지하수로에서 더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쿠궁……!
'아…… 이, 이런 버러지가!!!'
쿵. 쿠웅!
'망할 인간! 내 기운을 내놓아라!!'
천강에게 기운을 뺏겨 승천할 날이 19년 미뤄진 흑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