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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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34화
34화. 도둑 처리
"대장님."
"왜?"
마교서열 97위 마도추귀. 그는 부하 둘을 이끌고 제갈태유란 외부인과 함께, 흑살마신의 거처 오목골에 들어와 있었다. 상수리나무 숲을 나아가며 부하 한 명이 조심스레 묻는다.
"이렇게 천천히 가도 되겠습니까? 이러다 괴기나한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걱정마라. 그 늙은이가 온다한들 변하는 건 없을 테니."
마교의 기계와 진법에 총책임을 맡고 있는 중요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마두에도 못 든 인물. 그 자신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영 귀찮게 하면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그래도 들리는 소문으론 그 늙은이도 화경이라 합니다."
"화경이라고 다 같은 화경인 줄 알아?"
마교 서열 5-100위까지가 모두 다 화경이었다. 그러나 5위와 100위의 실력은 천지차이다.
이미 육체의 한계는 벗어났고 순수하게 깨달음의 경지인 까닭에, 아는 만큼 그 차이가 한도 끝도 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서열이 97위여도 실력은 80위 안쪽이다."
적삼혈마의 뒤치다꺼리 하느라 서열 경쟁에 못 끼어들어서 그렇지, 적극적으로 뛴다면 능히 70위 안에도 들 수 있다고 확신하는 마도추귀였다.
"그러니 걱정 따윈 하지 마라. 그깟 늙은이쯤 열댓 명이 덤벼도 끄떡없으니."
그제야 안도하고는 찬찬히 걸음을 옮기는 부하들. 그때 그들 앞으로 작은 나무집이 나타났다.
"도착했다. 이곳이다."
"여기가 흑살마신의 거처라 이 말이지?"
"그렇다."
진법의 기운을 느낀 네 명이 각자 쭈그려 앉아 울타리를 살펴봤다. 그런데 진법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마도추귀가 제갈태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나? 밖의 것보다 어려운데."
"물론. 우리 제갈에서 이런 건 아주 식은 죽 먹기라고. 잠깐 기다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이 각 정도 꼼꼼히 살펴보더니, 제갈태유가 진법을 통과하는 법을 말해주었다.
그걸 암기하는 세 사람.
"……우로 4보, 앞으로 3보. 맞나?"
"정확하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마도추귀님."
"그래."
마인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있자, 그는 성공적으로 울타리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차례차례 한 명씩 들어가도록 하지. 제갈태유. 그대가 세 번째로 들어가라."
"아니, 난 굳이 안에까진……."
"너의 안전을 위해서다. 혹시나 후미에 혼자 남았다가 큰일을 당할 수 있다."
"후우. 그럼 어쩔 수 없지."
"마도추귀님. 그럼 전 안전 확보를 위해 건물 뒤쪽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먼저 들어선 이가 건물을 뱅 돌아 뒤 창고로 이동한다. 그 사이 다른 마인이 울타리를 넘어섰다.
두 사람 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제갈태유 또한 넘어가고. 혼자 남은 마도추귀도 울타리 안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막 마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스스슷!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마도추귀는 볼 수 있었다. 그 자신에게 짓쳐드는 수많은 암기들을.
'제길! 기습인가?!'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재빨리 호신강기를 펼쳐 몸 주위로 검은 막을 생성했다. 그러나 이미 코앞까지 날아온 탓에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깟 암기 따위…….'
살짝 박히다만 표창과 수리검 세 개를 몸에서 빼낸다. 그런 뒤, 이걸 던진 새끼를 바로 쫓아가 족치려는 순간…….
"컥……."
마도추귀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온 몸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독……?"
말도 안 돼. 이 마도추귀가 한낱 독에 쓰러진다고?
고개를 든다. 자신의 공격이 성공적으로 먹혔음을 깨닫고는 활짝 웃고 있는 열 살 배기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이 내가…… 저깟 핏덩이에게……!'
수치심에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마도추귀! 그러나 그의 몸은 그 의지를 벗어나 더욱 허리를 수그렸다.
'이럴 순 없어! 화경인 내가 겨우 독에 당하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의 눈이 거칠게 흔들거렸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소년의 입가엔 더욱 진한 미소가 걸렸다.
***
약 일각 전.
무기에 독을 바르는 천강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과연 당가의 독은 화경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사천당문은 암기와 독을 다루는 혈족이다.
강호에 그 이름을 날릴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그들은 독 종류만 수천 가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등급제도 갖추고 있었다.
일명 백청적(白靑赤).
독을 담은 병의 색으로 그 위험도를 구분하는 것이다.
흰색은 일반적인 독, 청색은 맹독, 붉은색은 극독을 나타낸다. 그러나 천강이 날에 바른 독은 검은색 병이었다.
바로 사천당문의 가주가 만든 희대의 독으로, 그의 개인 서재에 은밀히 보관되고 있던 걸 훔쳐온 것이었다.
'준비 끝! 그럼 어디 시험을 해보러 가볼까?'
준비를 마친 천강이 지붕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기를 완전히 죽인 채, 기회가 오기를 가만 기다렸다.
하나씩 들어오는 도둑들.
'초절정 수준은 밥이야. 기습할 가치도 없어.'
처음부터 화경급을 노리고 매복한 천강이었다. 화경만 제압한다면 나머지 떨거지들은 3 대 1도 충분하기에.
그리고 마침내,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녀석.
천강은 미리 준비해둔 수리검과 표창들을 날려 보냈다. 바람을 가르고 다량의 암기들이 놈에게 쇄도해 나간다.
"웬 놈이냐?!"
천강의 진기를 느끼고는 먼저 들어와 있던 세 명이 일제히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천강은 떨거지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화경 녀석에게만 집중했다.
'맞아라. 맞아라. 제발 맞아라!'
간절함이 담긴 암기들이 일제히 놈에게 날아든다. 그러나 닿으려는 순간, 팡!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날아드는 급습에, 피하는 건 늦었다 판단한 적이 급한 대로 호신강기를 펼친 것이었다.
즉, 눈앞에 적은 겉 무늬만 화경이 아닌 진짜배기라는 뜻.
'실패인가?'
천강이 두 다리에 바짝 힘을 주었다.
실패라면 바로 냅다 도주를 해야 한다. 화경이란 그런 괴물이다. 제 아무리 최강의 무공인 북명신공을 익힌 초절정이라 한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존재.
그때였다.
"컥……."
암기를 몸에서 빼냄과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녀석.
성공이다! 독을 주입하는데 성공한 걸 확인한 천강이 몸을 일으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괜찮아?"
"마, 마도추귀님!"
"이놈, 죽어랏!"
건물 양쪽에서 두 마인이 튀어 올라 날붙이를 내려친다. 천강은 피하는 대신, 코웃음을 치며 양손을 뻗어 그것들을 붙잡았다.
"헛."
"무, 무슨……?"
온힘을 실은 일격을 이리 간단하게 제압하다니?!
"어이. 이 정도로 놀라긴 아직 이르다고?"
입가에 씨익 미소를 띠고는 북명신공을 운용한다. 그러자 곧바로 그들의 내기가 날붙이를 타고 천강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 크아아악!"
"크허억……."
내기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흡수한 천강.
"일단 간단히 처치를 하고……."
두 마인을 점혈한다. 그리곤 발로 차자, 그들은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천강은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정파인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하나 남았나?"
"히익?!"
천강과 시선을 마주한 제갈 놈이 곧바로 몸을 돌려 도주각을 잡는다. 경공을 사용해 후다닥 울타리를 뛰어넘고는 단번에 숲으로 내달린다.
그러나 과거엔 몰라도 이젠 추격에 제법 자신이 있는 천강이었으니…….
'암운행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녀석의 목덜미를 잡은 천강은 녀석의 내기 또한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는 점혈하려 하자, 놈이 무릎을 꿇고는 싹싹 빌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너 이름이 뭐냐?"
"제갈태유입니다."
"제갈태유라……. 왜 정파 새끼가 이곳에 있는 거지?"
"그, 그것이……."
천강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녀석.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녀석이 눈을 이리저리 회피한다.
"아니다. 그냥 죽이련다. 잘 가라."
"마,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을 살려주겠다 약조해 주십시오!"
오오. 협상? 좋지.
"좋다. 널 죽이지 않고, 이곳 오목골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마. 그러니 상세히, 아주 상세히 말해야 할 거야."
"예, 예에! 그리하겠습니다."
"근데 만약 너에게서 들은 내용이 저기 세 놈과 비교해 봤을 때 영 시원찮다……? 그럼 알지?"
꿀꺽. 제갈태유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설명해라. 왜 정파인인 네가 이곳에 있는지."
"그것이 말입니다……."
제갈태유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어느 날 진법을 해체해 달란 의뢰가 왔고, 그걸 들어주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거래 상대가 마인인 걸 알았을 텐데도 왔다고? 야, 뭔가 말이 안 되잖아?"
마교와 정파는 교류가 불가능한 집단이다. 비록 앙숙이라도 같은 강호에서 종종 협력하며 지내는 사파와는 달리, 정파에서 마교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지워버려야 할 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둘이 교류를 한다고?
"너 혹시 날 놀릴 생각이었다면, 아주 재능이 있다고 칭찬하고 싶어."
"조,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역시 이래서 제갈 놈들이 좋아.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셈은 더 빠르고.
"근데 혹시…… 마인 맞으십니까?"
"그걸 왜 묻지?"
"아니, 말씀하시는 게 꼭…… 산속에만 틀어박혀서 세상 돌아가는 걸 하나도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만한 건 다 알아, 인마. 다만 정파놈들 입장에서 어떤지 듣고 싶어 그런 것뿐이니까 빠짐없이 설명해."
"예에……."
조금은 찜찜하단 표정을 지으나, 눈을 치켜뜨자 바로 꼬리를 말고는 자신이 아는 걸 모조리 불기 시작하는 녀석이었다.
"아시다시피……. 마교에는 정파와 서로 협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희 제갈에서는 그들의 부탁을 받고 진법을 해체해주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
정파와 협력하는 마교 무리가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천강은 계속 이야기하라며 턱을 한 차례 위로 치켜들었다.
"그래서 와보니…… 흑살마신의 거처를 들어가 볼 거라고 하더군요."
"뭐 때문에?"
"드, 듣기로는 흑살마신의 생사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거라고 들었습니다."
이건 뭔 개떡 같은 소리지?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천강의 눈동자가 얇아졌다.
"너 내가 혓바닥 놀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차, 참말입니다. 저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이. 그냥 솔직히 말해. 흑살마신의 물건들이 탐나서 함께 털기 위해 왔다고."
"저, 절대 아닙니다!"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죽은 사람의 생사 여부를 왜 찾아?
아……. 설마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고 난 뒤에 내 물건들을 가져가려고?
이 새끼 이거 누가 제갈 놈 아니랄까봐, 혓바닥을 아주 미꾸라지 마냥 잘 놀리네?
"그래. 넌 진실만을 이야기 했겠지."
천강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상수리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리고는 검기로 이리저리 다듬기 시작한다.
"저, 저기 왜 갑자기 나뭇가지를……?"
"이거? 그냥 가끔은 고운 말보단 매가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더라고."
"예에……?"
천강이 오른팔을 든다. 그의 손아귀엔 어느새 몽둥이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자, 그럼 일단 좀 맞고 시작할까?"
"자, 자, 잠깐만요. 대인. 대인? 아아악!!"
퍽. 퍽. 퍽. 퍽.
"어서 사실대로 말해! 물건 훔치러 온 거 맞지? 엉?!"
"정말 아닙니다! 제, 제발! 아악! 전 정말로…… 악! 사,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 악!!"
"그래. 그러니까 흑살마신이 죽은 거 확인한 뒤에 물건 훔쳐가려고 한 거잖아?"
"그, 그런……! 전 결백해요. 정말 억울합니다!"
"그럼 별 수 없지. 대답이 똑바로 나올 때까지 더 맞자."
"아아악!"
분명 진실만을 말했건만, 이미 50년 전에 죽은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왔다는 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천강이었다.
"누, 누가 이 사람 좀 말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