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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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33화
33화. 흑살마신의 거처
쾅. 쾅쾅.
작업실 내로 서늘한 기운이 흐른다. 같이 일하는 이들은 흘끔흘끔 맹익의 눈치를 보며 수군거렸다.
"선배님. 어서 말씀하십시오. 이번에 선배님 차례입니다."
"나 다음에 하면 안 될까? 오늘은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얌마. 빨리 안 해?"
오늘의 당번에게 눈총을 주는 작업실 동료들. 남자는 죽을상을 한 채 천천히 맹익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심호흡 후 왈.
"저, 저기…… 괴기나한님."
쾅!!
"히익?!"
"왜 그러나?"
"아니, 그게……. 저, 저희들끼리 하고 있을 테니…… 괴기나한님께서는 자, 잠깐 바람이라도 쐬시는 게 어떤가 해서요."
"……그래도 되겠나?"
맹익이 고개를 들고는 주위를 슥 둘러보자,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고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다들 고맙네. 내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네."
그렇게 맹익이 나가고. 남은 이들은 푹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오늘은 너무 살벌하네요. 아마 그 재수 없는 실눈 녀석이 협박한 탓이겠죠?"
"그렇겠지……. 한두 번이 아니잖냐? 솔직히 하늘은 왜 그런 개새끼는 안 데려가나 싶다."
"적삼혈마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이 뭘 했길래 그러시는 건가요?"
들어온 지 이제 한 달 즈음 된 신입의 질문에, 최고참이 고갯짓을 했다. 바로 윗 사수보고 설명하란 뜻이다.
"5년 전엔가? 당시에도 이런 식으로 놈들과 마찰이 자주 있었거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대장님 아드님이 덜컥 시체로 발견됐어."
"예에? 시체로요?"
"어. 근데 웃긴 건, 그날의 정황이 여울나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단 거야."
"여울나무면…… 적삼혈마가 총책임자로 있는 곳 아닌가요?"
"그래. 그 외에 다른 모든 것들도 그 실눈새끼에게 향하고 있었지.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 됐었는데……."
선배가 물을 한 차례 들이킨다. 신입 또한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5년이 지난 지금, 놈이 다시 같은 요구를 하러 왔단 거야. 오목골을 훈련장으로 개발할 테니 허락해 달라고."
"잠깐만요. 왜 하필 지금…….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이번에 대장님 손녀딸이 암운곡에 들어갔잖아? 협박을 하는 거지. 5년 전 일을 또 겪고 싶지 않다면 이번엔 물러나라고."
"그런 개 같은……! 가족을 건드리는 건 마교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선배가 웃는다.
"요새 개판이잖냐. 그놈의 여울나무 쪽 놈들 때문에 말이야. 이건 무슨 사파도 아니고. 하……."
하던 일을 멈추고는 분을 삭이는 신입. 그러다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랐는지 묻는다.
"그런데 선배. 괴기나한님께서는 왜 저리 고집스레 거절하시는 건가요? 가족 목숨까지 걸어가면서요."
"너 흑살마신 알아?"
"당근 알죠. 그분 모르면 마교 사람이 아닐 걸요?"
"거기에 흑살마신의 거처가 있다더라. 대장님께서 젊을 적 그분 도움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더라고. 아마 그 은혜를 갚으려는 거겠지."
"대체 어떤 은혜를 입으면 그럴 수 있을까요? 상상이 안 되네요."
"그러게 말이다."
***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그득하다. 맹익은 숲길을 걸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선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목골을 여울나무 훈련장으로 개발할 테니 허가를 놓아 달라.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약 50년 전. 전대 천마를 음독시키고 마교를 장악하려 하는 시도가 있었다.
다행이 그의 선배인 흑살마신이 단 하루 만에 1-84위까지 모조리 숙청시키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교주는 큰 어려움 없이 천마의 자리를 계승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 살아남은 반란의 무리가 바로 지금의 여울나무 숲이란 것.
'조금만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지금의 교주는 약해진 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여러 구조를 개편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암운곡과 같은 인재 등용문인 여울나무 숲을 새로 만든 것이었는데, 놈들은 그곳을 은밀히 장악해 자신들의 세력을 부풀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로인해 현재 놈들의 세력은 마교의 반을 차지할 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배의 존재 덕분에 기를 못 펴고 있습니다만은…… 그것도 슬슬 한계인가 봅니다.'
호시탐탐 마교를 삼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50년 전의 일이 재현되는 것.
그래서 흑살마신의 생사 확인과 그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이렇게 오목골을 무리하게 파헤치고 있는 것이었다.
노인이 고개를 든다. 상수리나무가 빼곡히 자리한 숲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무리도.
"당장 뒈지고 싶지 않으면 썩 꺼지라!"
"헛. 괴기나한님. 그게…… 저희 일행이 여기 진법에 걸려서……."
"지금 당장 죽여주랴?"
거센 호통에 바로 자리를 피하는 녀석들.
"음흉한 새끼들. 퉤."
뻔히 진법이 설치된 걸 느낄 수 있는 실력들이다.
설령 실수로 들어갔다 해도 그냥 그대로 뒤로 걸어 나오면 빠져나올 수 있는 진법이었다. 그런데도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는 건, 구린 짓을 하고 있었단 뜻.
'백날 도전해 봐라. 니들이 뚫을 수 있나.'
뚫고자 한다면 제갈 녀석들이라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상수리 숲으로 나아간다. 안으로 한 발 들어서기가 무섭게 지형들이 확 뒤바뀐다.
나무도 풀도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만이 밑으로 자리하고 있다. 맹익은 천천히 발을 내딛어 그 절벽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
"호오. 진법이네?"
멋이란 전혀 없이 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가옥.
뒤쪽으로는 창고가 세워져 있고, 앞으로는 널찍한 마당과 텃밭이 자리해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전체를 두르는 낮은 울타리.
천강은 울타리를 찬찬히 살펴보며 진법을 가만히 파악했다.
'누구지? 내 집에 이리 방벽을 쳐둔 사람이?'
50년이 흐른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꽤나 진법에 능통한 인물이 분명했다.
'식물들 상태도 그냥 방치된 게 아냐.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갔어.'
혹시 집주인이 바뀐 건가?
그나마 그게 가능성이 있는 상황. 천강은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시오. 거 누구 안 계십니까!"
"여보시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기운을 펼쳐 건물 안쪽을 살펴보려 해도 진법에 막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알몸으로 밖에 서있기도 뭐해, 천강은 안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뭐 시간이 오래 걸릴 뿐, 푸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이네.'
빠르게 진법을 해석해 나간다. 전생에 딱히 별다른 무공을 익히지 않고, 남는 시간을 진법이나 그 외 잡다한 것을 습득하는데 10년 가까이 할애한 천강에게는 이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좋아, 됐어. 진법을 해체하는 대신 통과해야 한다는 게 조금 귀찮지만…… 뭐 방법은 알았으니, 아쉬운 대로 어디 한 번 들어가 볼까?"
괜히 저번처럼 해체하겠다고 손썼다가 진법을 부서먹지 않을까 주의하는 천강이었다.
아무튼 당당히 정문으로 한발 짝 들어간다. 확 뒤바뀌는 지형.
거처와 주위 숲이 사라지고, 황금빛 모래만이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오. 사막인가?'
피부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빛이 참으로 실감나는구만.
그것도 알몸으로 맞으니 뜨겁다 못해 따갑다. 천강은 바로 발을 움직였다.
"보폭은 성인 기준. 앞으로 5보, 좌로 3보, 그런 뒤 앞으로 7보, 우로 4보. 그 다음엔……."
마지막으로 앞으로 3보 전진하고 제자리에 멈춰서면 끝!
화아악-
뜨거운 태양 볕이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담벼락 기준, 딱 한 걸음 안으로 들어온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진법이란 신기하지. 분명 그렇게 움직여 댔는데도 겨우 한 걸음 움직였다니 말이야.'
알면 알수록 신비한 세계인 것 같다.
"자, 그럼 어디…… 일단 옷부터 찾아볼까?"
다행이 옷은 있었다. 문제는 천강이 암운곡 졸업할 때 입고 있었던 것이라, 상당히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단 낫겠지. 암.'
다리의 긴 부분은 검기로 싹둑 잘라 길이를 맞추고, 상의는 그대로 입는다. 그렇게 한참을 입고 있을 때였다.
"이곳이다."
음? 집주인이 돌아온 건가?
재빨리 흔적을 지우고 벽 틈 사이로 바깥을 살펴본다. 네 사람이 울타리 근처를 살피고 있다.
아까 울타리 밖에 있을 때, 이 안쪽 기운을 전혀 감지할 수 없던 걸 떠올린 천강은 진기로 청력을 강화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여기가 흑살마신의 거처라 이 말이지?"
"그렇다."
얼레. 이거 아직 내 집이었어?
그동안은 남의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좀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여전히 내 집이었다니? 본인 명의의 집임을 확인한 천강은 집주인답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팔짱을 꼈다.
'근데 그럼 저것들은 대체 뭐하는 종자들인 거지?'
다시 귀를 기울인다. 놈들의 대화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
"물론. 우리 제갈에서 이런 건 아주 식은 죽 먹기라고."
"그래도 조심해라. 어찌됐든 마교 내 최고 진법 전문가가 설치한 것이니. 교묘하게 함정을 설치했을 수 있다."
제갈? 놈을 살펴보자 다른 세 놈과는 다르게, 마인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정순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 재수 없는 정파 놈이 어떻게 이곳에?'
정파인은 천산에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오는 순간, 천산 밑자락에서 대기하고 있는 감시자들에 의해 모두 처리당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곳을 통과해도 천산은 마인들 천지.
그런데 놈이 이 안까지 들어왔다는 건, 마교가 배신자들로 넘쳐나고 있단 뜻이었다.
'50년 전에도 조짐이 있긴 했지. 난 나 살기에도 바빠, 신경을 하나도 못썼지만.'
북명신공의 비급서를 얻기 위해 직접 다 죽여 놓고는,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후대에 어떻게 알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하나도 모르는 천강이었다.
'흠. 어떻게 한다? 가만 놔두면 볼 것도 없이 이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
막으려면 지금 막아야 한다.
적들은 현재 화경 하나에 초절정 셋. 그냥 싸우면 지금의 천강으로는 이기기 불가능하나, 진법을 끼고 싸운다면 능히 승리를 점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대로 은밀히 몸을 빼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
'……그래. 그냥 내빼자.'
싸워서 뭣하겠는가? 일만 더 커지는 꼴이지.
그에 천강은 슬쩍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려는데… 그 순간 그의 눈에 창고가 들어왔다.
홀린 듯 다가가 문을 열어본다. 창고 안으로 전생의 물건들이 그대로 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부터 해서, 마인들과 내기해 빼앗은 것들과 강호에 나가 훔쳐온 것들까지.
"……."
천강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창고에 들어가, 당가에서 훔쳐온 수리검들과 표창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날에다가 능숙하게 당가표 독을 바르며 씨익 웃었다.
'도둑놈의 새끼들. 나 흑살마신의 물건이 그리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창고의 물건들을 보고, 밖에 인원들을 도둑으로 오인한 천강이었다.
'그럼 어디 손님 맞을 준비를 해볼까?'